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 봄... ...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산책길에서 만난 매화~
▲ 매화꽃이... 산책길에서 만난 매화~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봄 빗장을 여는 입춘이 지났다. 입춘이던 지난 4일, 모처럼 동네 산책길을 걷다가 매화를 만났다. 산책길 옆 양지바른 비탈에 선 매화나무 앙상한 가지마다 어느새 초롱초롱 단단한 꽃봉오리들이 음표처럼 달려있는 가운데 몇몇의 꽃잎이 벙글었다. 봄이 왔다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겨울 내내 야윈 햇볕이 살이 올라 볼에 와닿는 볕이 조금 토실하게 느껴지고 마른 덤불 속에서는 쑥이 몰래 몰래 돋고 있는 소리 들리는 듯하고, 꽁꽁 얼어붙었던 강물이 풀리는 소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겨울 내내 생존해 낸 나목들이 조용히 수액을 끌어올리는 소리 들리는 듯한 날, 바람은 아직 차가운데 햇볕이 따사로운 날이었다.

젊은 날, 봄의 의미

..
▲ .. ..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12일, 오늘은 비가 내린다. 전국적인 비소식이라고 했던가. 이른 아침 우산을 쓰고 산책길 걷다가 또 매화꽃을 만나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매달린 단단한 꽃망울들 가운데 하얗게 방긋 웃는 매화꽃. 봄을 재촉하며 봄을 깨우는 빗소리에 깨어난 걸까. 이 비가 그치면 꽃잎이 더 많이 피어나겠다.

어떤 시인은 '봄은 고양이'라고 노래했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이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生氣)가 뛰놀아라"

- 이장희 <봄은 고양이로다>

젊은 날, 나는 그 찬란한 봄에 내 초라한 모습과의 괴리감으로 힘겨워했다. 봄이 오면 잔뜩 주눅 들었다. 봄이 오면, 꼭꼭 숨고만 싶었다. 봄이 오면, 그 찬연한 봄, 화사한 봄, 약동하는 봄에 비해 내 모습 너무나 초라해 보이고 초라한 내 젊음에 시름겨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봄이라는 계절도 그 봄을 만끽하는 사람들도 찬란하게 빛나 보이기만 하고 세상은 온통 꽃빛인데 번화한 거리를 걸어 다니기 힘들었다. 나의 누추함과 초라함은 봄의 찬란함과 극적인 대비를 이뤘다. 그래서 나는 봄이 싫었다. 괜스레 마음 들뜨게 하는 봄, 붕 떠서 땅에 발이 닿지 않게 하는 봄…. 그럼에도 나는 땅에 붙어 있어야 했고 초라했고 어두웠다. 봄을 시샘하고 봄과 불화했다.

그래, 실컷 놀 거다

봄비 오시는 날에...
▲ 매화... 봄비 오시는 날에...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지금…, 다시 봄 앞에 있다. 겉 사람은 나날이 후패해 가고 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봄 앞에 설렌다. 봄이 반갑고 고맙다. 봄소식에 가슴이 발랑발랑 설렌다. 봄에 올라오는 새순과 봄꽃들… 연둣빛으로 물든 봄을 맞을 걸 생각하며 마음이 저절로 봄빛으로 물드는 것 같다. 겉 사람은 날로 초라해지고 늙어 가는데 봄이 황홀하다. 봄이 고맙고 반갑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피는 꽃들과 꽃 같은 연두빛 잎새들…. 그 앞에서 경이로움과 황홀감으로 놀라고 감탄하면서 손 놓고 마음 놓고 봄을 만끽하고 싶다. 봄바람을 킁킁거리며 맡아가면서 봄길 따라 봄처럼 흐르고 싶다.

어린 시절에 그러했듯이, 그리고 요즘도 봄이 오면 어린 시절 추억하며 그랬듯이, 봄이 번지는 들판으로 나가 봄나물 캐고 봄을 마음껏 누리고 봄과 실컷 놀고 싶다. 산으로 들로 봄 마중하며 참꽃도 따고 쑥도 캐면서… 빨리 소멸하는 그 봄을 마음껏 향유하고 싶다.

세상이 온통 흉흉하고 어지럽고 난장판 소식들만 가득할수록 나는 이 고단한 세상에서 더 봄이 기다려진다. 세상 속에서 따뜻한 봄 같은 사람, 봄 같은 젊음, 봄 같은 시절, 봄 같은 따뜻한 소식들이 없고 보기 드물수록 더욱… 봄을 기다린다. 봄 같은 젊은이들의 생기에 찬 희망과 벅찬 미소가 그립고, 사람 사는 세상에 따뜻한 소식이 그리울수록 봄을 더 만끽하고 싶다. 봄 속에서나마 따듯하고 싶다.

바야흐로 봄…. 봄이 낮은 걸음으로 오고 있다. 이제 매일 봄 마중을 나가야겠다. 오늘은 비. 봄을 깨우는 이 비 그치면 매화꽃 더 많이 피어나고 세상에는 더 따뜻한 소식, 희망에 찬 소식들이 꽃처럼 피어났으면 싶다.

봄비 오시는 날에 남도의 봄을 전하며…. 이해인 수녀의 시 <봄 일기>로 글을 맺는다.

"봄이 일어서니 / 내 마음도 / 기쁘게 일어서야지 / 나는 어서 / 희망이 되어야지 // 누군가에게 다가가 / 봄이 되려면 / 내가 먼저 / 봄이 되어야지 // 그렇구나 / 그렇구나 / 마음에 흐르는 / 시냇물 소리"


태그:#봄 매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