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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때 건설된 금천교, 1928년 도로확장으로 매몰되기 전까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였다.
 고려 때 건설된 금천교, 1928년 도로확장으로 매몰되기 전까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였다.
ⓒ 유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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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경찰청을 지나 백운동천 물길을 따라 올라가면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이 나오고 큰 길을 건너야 한다. 이 길을 건너면 백운동천의 물길(현자하문로)을 기준으로 서쪽은 체부동, 동쪽은 통의동이다.

일설에 의하면, 이곳 경복궁역 교차로에는 고려 충숙왕 때 건설된, 한양도성 안에 있던 여러 다리 중 가장 오래된 다리인 '금천교'(禁川橋, 훗날 금청교禁淸橋로 통칭)가 약 600년 동안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다리는 1928년 도로 확장과 더불어 그만 매몰돼 지금은 그 위로 자동차가 달리고 있다.

 네이버지도에 표시된 금천교가 놓였던 자리
 네이버지도에 표시된 금천교가 놓였던 자리
ⓒ 유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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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문화재라면 우린 흔히 청자나 불상, 금속활자 등을 떠올린다. 물론 그것들 역시 찬란한 우리 문화를 꽃 피웠던 것이기에 더 없이 소중하다. 그러나 만약 고려시대의 다리가 여전히 우리의 눈앞에 펼쳐져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것이야 국왕부터 무지랭이 백성들까지 모두가 함께 밟고 건너던 다리가 아닌가. 무슨 이유인지 금천교가 지금까지 존재했다면, 일상에서 고려시대를 마음껏 상상해볼 수 있는 좋은 문화재가 됐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이 다리의 흔적은 다른 곳에도 남아 있다. 체부동 일대에 있는 금천시장이 바로 그것. 이 시장의 이름은 금천교에 유래한다. 하지만 이런 고유명칭이 있음에도 종로구청은 최근 이 일대를 '세종마을'로 이미지메이킹하고자 금천시장 입구에 원래 명칭 대신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라는 간판을 걸어놨다. 그 때문에 이곳 외지인들은 이 시장의 본래 이름도 모르게 됐다. 오히려 '금천시장'이라는 옛이릉믈 내세워 그 이름의 유래를 알리고, 이곳에 전해지는 역사를 널리 공유하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궁궐 속 금천교

 도성전도(1834)에 나타난 금천교
 도성전도(1834)에 나타난 금천교
ⓒ 유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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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명사로서의 금천교(禁川橋)는 흔히 궁궐여행 때 접하게 되는 말이다. 경복궁·창덕궁 등 궁궐에서 광화문·돈화문 등 궁궐 정문을 지나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바로 작은 물길이다. 궁궐 안에 있는 이 물길을 금천(禁川)이라고 부르는데 이 금천을 넘는 다리의 이름을 금천교라고 부른다.

여기서 금천교란 앞서 언급된 금천교와 달리 고유 명사가 아닌 일반 명사다. 궁궐에 흐르는 금천이란 명당수를 말하며, 대개 산에서 내려오는 자연 하천을 인위적으로 끌어와 궁궐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의미로, 배산임수의 뜻을 살리기 위한 명당수의 의미가 있다. 이렇게 일반명사로서 금천교는 자신의 명칭도 갖고 있다. 경복궁의 금천교는 '영제교'이고, 창덕궁의 금천교는 독음은 같지만 '비단 금(錦)'자를 써서 그 뜻을 달리하는 '금천교'(錦川橋)라 부른다.

그런데 체부동 금천교는 훗날 금청교라 더 많이 불렸다. 지도에도 금청교로 표기된 게 많다. 어쨌든 1928년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였던 체부동 금천교(禁川橋)는 사라졌다. 체부동 금천교에 이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는 무엇일까. 신기하게도 같은 독음을 지닌 다리, 창덕궁의 금천교(錦川橋)다. 이 금천교는 1411년(태종 11년) 창덕궁 건설 당시 축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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