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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베라 지구 전경. 크기는 2.5 제곱킬로미터로 뉴욕 센트럴 파크와 비슷하다. ⓒ 지유석
케냐 수도 나이로비는 유럽인들이 좋아할 만한 곳입니다. 케냐의 계절은 한국과는 정반대입니다. 즉, 한국이 겨울이면 케냐는 여름이란 뜻이지요. 여름이어선지 나이로비의 날씨는 무더웠습니다.

그러나 밤이 되니 선선한 바람이 불어 더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법 쌀쌀하다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낮이어도 그늘에만 들어가면 그만입니다. 낮은 화창하고 밤은 선선하니 유럽인들이 나이로비를 좋아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곳이든 빛과 그림자는 공존하기 마련입니다. 도심에서 남서쪽으로 5km 떨어진 '키베라'라는 이름의 슬럼가는 나이로비의 민낯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곳입니다. 이곳의 총면적은 2.5 제곱 킬로미터로 뉴욕 센트럴파크와 비슷한 크기입니다.

인구통계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2009년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이곳 거주 인구는 17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케냐에서 구호활동을 펼치는 비정부기구들이 내놓는 수치는 다릅니다. 이들은 약 50만에서 100만으로 봅니다. 현지에서 선교활동을 펼치는 공인현 선교사는 약 100만 정도로 추산합니다. 나이로비 인구가 330만 명이니까 셋 중 한 명은 키베라에 거주하는 셈입니다.

인구통계가 정확하지 않은 이유는 현장을 가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양철로 지붕을 인 판자집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데, 각 가구별로 정확히 몇 명이 사는지 제대로 집계하기가 어렵습니다. 정치적인 이유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케냐 정부는 여러해 동안 키베라의 실상을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인구를 낮게 잡는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왼쪽) 키베라 지구에는 양철로 지붕을 인 움막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이런 탓에 인구 집계가 쉽지 않다. (오른쪽) 키베라 지구 안의 모습. 하수구와 쓰레기로 온통 악취가 진동한다. ⓒ 지유석
키베라에 들어서면 먼저 악취가 코를 찌릅니다. 지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좁은 길을 통해야 합니다. 성인 남자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길인데, 그 옆엔 하수도가 흐릅니다. 주민들이 버린 생활 쓰레기도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습니다. 심지어 염소가 죽어 있는 모습마저 눈에 띠었습니다. 이런 실정이니 악취가 진동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저는 비위가 약한 탓에 몇 차례나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몇 년 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곳의 또 다른 문제는 치안입니다. 현지 활동가들은 강도, 강간이 수시로 횡행한다고 전했습니다. 이런 탓에 키베라 지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무장경찰의 호위를 받아야 합니다. 저희 일행 역시 무장경찰 두 명과 함께 했습니다. 치안 불안은 주거환경을 악화시키는 또 하나의 요인입니다.

이곳은 화장실이 따로 없습니다. 물론 공용화장실이 있기는 하지만, 용변은 대개 조용히(?) 해결합니다. 날이 저물면 치안 불안으로 인해 주민들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비닐 봉지에 용변을 본 뒤 봉지를 묶어 밖으로 내던집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비닐 봉지를 '나는 화장실(flying toilet)'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쌓인 '나는 화장실'은 악취를 더욱 가중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한 세기의 역사를 가진 슬럼가 '키베라'
아프리카 제1의 슬럼가 키베라 지구. ⓒ 지유석
아프리카 제1의 슬럼가 키베라 지구. ⓒ 지유석
이곳의 역사는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국은 아프리카 부족을 군 자원으로 활용했습니다. 주로 누비안 부족으로 구성된 왕립아프리카소총대(KAR)가 그중 하나였습니다. 영국은 이들을 위해 땅을 내줬습니다. 키베라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누비안 족은 받은 땅으로 임대업을 시작했습니다. 일거리를 찾기 위해 나이로비로 몰려든 케냐인들은 키베라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키베라라는 슬럼이 형성된 것입니다.

슬럼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키베라는 나이로비에 사는 평범한 흑인들의 주거공간입니다. 이들은 아침이면 나이로비 시내로 출근했다가 저녁이면 퇴근하는 일상을 꾸려나갑니다. 우연히 이들이 출근하는 광경을 목격했는데, 일터로 향하는 행렬은 우리네 출근시간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거주자 둘 중 한 명은 실업 상태고, 취업 중인 한 명은 비숙련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지만 말입니다.

키베라의 실상은 전세계 구호기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한국, 특히 대형교회의 단기선교팀이 이곳에 자주 얼굴을 비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반기문 UN사무총장은 지난 2007년 키베라를 방문해 새마을운동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외부의 관심과 별개로 최근 이곳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청년층 주민이 주축이 돼 농산물 판매업에 뛰어드는가 하면 케냐 정부가 운영하는 주거환경 개선 프로그램(National Youth Service, NYS)에 참여해 일자리를 얻기도 합니다. 영국 BBC는 NYS를 2014년 11월부터 시행해,  2015년 2월까지 3500명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얻었다고 보도했습니다.
키베라 지구 안에서도 아이들은 태어나고 자라난다. ⓒ 지유석
그럼에도 어려움은 여전합니다. 케냐 정부는 키베라 지구 외곽에 빌라를 짓고 주민들을 이동시킨다는 계획입니다. 일제 몇몇 빌라동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현지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공인현 선교사는 현실과 동떨어진 계획이라고 지적합니다. 공 선교사의 말입니다.

"키베라 주민들은 걸어서 도심으로 출퇴근한다. 만약 지구 외곽으로 이주한다면 당장 주민들의 출퇴근이 어려워진다. 그리고 새로 짓는 아파트가 주민들에게 다 돌아갈지도 의문이다. 돈 있는 사람들이 벌써부터 투기에 나서고 있어서다."

키베라는 변화의 몸부림이 역력합니다. 그러나 워낙 내력이 오래된 데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에 쉽게 접근할 수도 없습니다. 이곳을 다니다 보니 아이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 열악한 곳에서도 아이들이 태어나 자라고, 취학연령이 되면 학교에 나갑니다. 지구 안에는 학교도 있습니다. 공 선교사도 2009년 '킹 세비어 아카데미(King Savior Academy)'를 세워 현재 600여 명의 학생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검은 머리 이방인을 신기하게 바라보면서도 이내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미소를 잃지 않고 자라날 수 있도록 누군가는 관심을 갖고 누군가는 도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새마을운동 같은 밀어붙이기식은 안 될 말입니다. 외부의 투자가 시급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이 변화의 주체라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일깨우는 일이 관건이라고 봅니다.
키베라 지구에서 마주친 아이들. ⓒ 지유석
태그:#키베라, #공인현, #나이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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