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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열단 출신을 비롯해 조선의용대(군)의 항일투쟁 전적지 순례를 대부분 마치고 저녁에 숙소로 와서 참가자들이 회의실에 모여 4일 동안 항일독립 투쟁의 현장에서의 느낌과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항일전적지 관리에 대한 양국 간의 외교적 노력의 필요성도 제기 되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석가장역에서 북경으로 고속열차를 타고 이동을 한 후 북경에서 중국인 유학생인 제자를 만나 북경시 팔보산 애국열사능원인 혁명공묘로 함께 이동을 했다.
팔보산 혁명공묘 북경시내 팔보산에 있는 조선인 광주 출신 정율성선생과 부인 중국인인 정솔성여사의 묘의 비문을 중국인 유학생이 설명하고 있다
▲ 팔보산 혁명공묘 북경시내 팔보산에 있는 조선인 광주 출신 정율성선생과 부인 중국인인 정솔성여사의 묘의 비문을 중국인 유학생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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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보산 애국열사능원에는 전라도 광주가 고향인 정율성선생과 중국 최초의 3개국(네덜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여성 대사를 역임한 부인 정설송 여사님이 함께 모셔져 있다.

"항일 전쟁 초기에 율성은 연안에 도착하여 연안송을 창작하였고, 이 노래는 날개가 달린 새처럼 연안으로부터 해방구로, 광활한 대지로, 해외로 날아갔으며, 중화민족이 생사존망의 역사적 갈림길에 서 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은 연안송을 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팔로군 행진곡'을 창작했고, 중국 인민의 자제병들은 바로 이 노래를 부르며 변강을 지키고 조국을 보위"는 것이 정율성선생의 비문에 담긴 내용이라며, 중국인 유학생이 비석의 내용을 압축하며 설명했다.

우리 일행은 중국인 유학생의 모바일폰에서 나온 '연안송'을 들으며 정율성선생과 함께 한 항일 독립 투사들의 명복을 빌었다. 이후 일본헌병대 북경 본대와 형무소가 있었던 곳을 방문하였다. 당시 일본헌병대 본부 건물은 그대로 보전되고 있었으며 현재 중국 사회과학원 세계역사연구소와 근대사연구소가 들어서 있으며, 이곳은 우리의 귀에 익은 동북공정(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을 진두지휘한 곳이라 또 다른 아픔을 주었다.

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한문으로 八자 모양의 건물이 북경 일본군헌병대 본부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지금은 동북공정으로 유명하였던 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가 사용하고 있다
▲ 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한문으로 八자 모양의 건물이 북경 일본군헌병대 본부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지금은 동북공정으로 유명하였던 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가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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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으로 들어간 일본형무소에 도착했을 때는 눈발이 날리며 추위를 더했고, 이육사열사의 <청포도>가 환생하였는지 14년 여름에 왔을 때는 푸르른 포도나무가 이제는 형무소 담을 타고 형무소를 에워싸고 있었는데 이번은 이파리가 다 지고 줄기만 남아 겨울잠을 자고 있었다.

이곳은 마덕산으로 유명한 이원대열사(77년 건국훈장 독립장)가 석가장 포로수용소에 이어 일본의 잔혹한 고문과 함께 총살형을 당한 곳이며, 수인 번호가 264번이어서 이육사가 된 이원록열사(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가 비밀리에 처형된 곳이기도 하다.
북경형무소 수형 번호가 264인 이원록 열사와 마덕산으로 유명한 이원대열사가 고문 등으로 죽음을 맞이한 일본의 북경형무소에 이원록 열사의 '청포도'로 환생한 것처럼 포도나무가 이파리도 다 벗지 못하고 추운 겨울잠을 자고 있다
▲ 북경형무소 수형 번호가 264인 이원록 열사와 마덕산으로 유명한 이원대열사가 고문 등으로 죽음을 맞이한 일본의 북경형무소에 이원록 열사의 '청포도'로 환생한 것처럼 포도나무가 이파리도 다 벗지 못하고 추운 겨울잠을 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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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방문에선 많은 독립 투사들이 잔혹한 고문을 견디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순국한 지하 고문실의 철조망들이 시멘트로 덮여 있어서 지하를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곳은 철거되어 재개발된다고 한다는 이야기가 몇 년전부터 계속 있는 곳이라 한중 양국 간의 외교적 노력을 통해 보존하여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전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칼바람이 부는 5박 6일의 항일 전적지 순례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그 머나먼 길을 조선의 독립투사들은 사랑하는 가족도 뒤로하고 역사의 이름 앞에 당당히 나섰으나 오늘날 분단된 이데올로기와 타국이라는 이유로 항일독립투사들의 전적지와 순국지들이 하나씩 사라져 가고 있고 우리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고 있음에 안타까웠다.

해방된 지 70주년. 사농공상의 계급도, 춥고 배고픔도, 전쟁의 폐허도 이겨내고, 종교적 자유도 얻어 경제적 성장을 이뤄낸 오늘의 대한민국. 우리는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역사의 현장을 잘 보존하고 후손들의 살아있는 교육장으로 활용하면서 또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살아있는 공간으로 거듭날 때 그 숭고한 가치가 오늘에 빛날 것이라 본다.

스페인 출신의 미국 철학자인 조지 산타냐야(George Santayana)와 영국의 수상이자 노벨문학상을 받은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역사를 망각한 민족은 미래가 없다'라고 했다.

항일 독립 투쟁을 온몸으로 투신하신 단재 신채호 선생도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반드시 그 과거를 되풀이 한다'고 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아프고 치욕스런 역사를 가르치지 않기에 후손들이 모른다는 것이다. 역사를 가르치지 않으면 기억의 망각이 아니라 아예 존재를 모르기에 반성도 할 수 없으며, 미래를 설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역사의 현장을 오늘의 교육의 장으로 만들 때 그 역사는 망각되지 않고 남을 것이다. 해방 70주년의 역사 탐방은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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