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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 산업은행 앞에 모인 전국초등스포츠강사연합회와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등 구성원들이 초등스포츠강사 사업에 대한 정규예산 삭감을 규탄하고 대량해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학교체육 활성화를 위한 초등스포츠강사 궐기대회'를 하고 있다.
 2015년 8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 산업은행 앞에 모인 전국초등스포츠강사연합회와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등 구성원들이 초등스포츠강사 사업에 대한 정규예산 삭감을 규탄하고 대량해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학교체육 활성화를 위한 초등스포츠강사 궐기대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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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비 쪽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농업, 공업 종사자의 목소리처럼 들리지만 그렇지 않다. 최근부터 경기도 일선의 학교 현장에서 나오는 목소리다.

초등학교에서 '스포츠 강사'로 근무하고 있는 최진호(가명)씨는 설을 맞이하기 직전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접했다. 스포츠 강사 선발 방식이 기존의 '교육감 채용'에서 '11개월 단위의 학교장 채용'으로 변경됐다는 것이었다. 그간에 소문으로만 떠돌던 내용을 현실로 맞이하게 된 순간이었다.

"고용을 장담할 수 없게 됐습니다. 고용돼도 학생들이 아닌 교장한테 맞춰야만..."

이러한 상황을 맞이하기까지 최씨가 가만히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스포츠 강사 학교장 채용'에 대한 소문이 돌던 지난해 겨울부터 사실 확인을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해왔던 최씨였다. 동료들과 함께 민원을 넣었고, 교육감 면담과 간담회 등을 여러 번 신청했었다. 그러나 번번이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최씨뿐만 아니라 다수의 일선 스포츠 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경기도 교육청 홈페이지의 게시판은 한 달이 넘도록 '스포츠 강사 학교장 채용에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글들로 가득 메워졌지만 경기도 교육청은 시종일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작년 12월부터 꾸준히 게시된 '스포츠 강사 학교장 채용 반대' 게시물들.
▲ 경기도 교육청 홈페이지 게시판 작년 12월부터 꾸준히 게시된 '스포츠 강사 학교장 채용 반대' 게시물들.
ⓒ 주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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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례 요구했던 간담회가 올해 2월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마련됐지만, 이 자리는 경기도에서 근무하는 스포츠 강사들이 '학교장 채용'에 대한 교육청의 방침을 일방적으로 통보 받는 자리였다. 그간 '소통'과 '합의'를 위해 주말도 반납한 채 고군분투 해왔던 이들은 그 자리에서 어떠한 말도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불안한데..." 스포츠 강사들 숨통 조이는 '학교장 채용'

'초·중등 스포츠 강사 배치 사업'은 지난 2008년부터 일자리 창출과 학교 체육 활성화 등의 일환으로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시행했다. 시행 첫해에는 문체부가 예산 전액을 지원했으나 그 다음 해인 2009년도부터는 예산을 줄이기 시작하더니 현재는 교육청이 예산의 대부분인 80%를 지원하고 있다.

문체부의 지원 예산이 줄면서 2013년도에 3800명이던 스포츠 강사는 2014년도에는 2911명으로, 2015년도에는 2408명으로 줄었다. 불과 2년새 1392명이 사라진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기도 교육청의 '스포츠 강사 학교장 채용 방침'은 이전부터 고용 불안정에 시달려왔던 스포츠 강사들의 숨통을 더욱 조이게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일선 학교 내에서 일고 있다.

"이게 과연 공정할 수 있을까요?"    

'학교장 채용 방침'을 두고 일선 스포츠 강사들은 공정성에 의문을 던지며 반발하고 있다. 기존에는 수업 능력과 자질에 대한 평가점수를 통해 재계약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지만 학교장 채용은 실력과는 무관한 요소가 개입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가뜩이나 고용불안에 시달리던 스포츠 강사들이 앞으로는 더욱 극심한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아무리 실력이 좋고 열정이 남달라도 학교장의 친척이나 지인들과는 경쟁이 안 되겠죠..."

"학생들을 위해서..." 같은 이유, 다른 해석

스포츠 강사들은 원칙적으로 담임의 체육수업을 보조해주는 역할이지만 여교사 비율이 월등히 높은 초등학교의 경우 체육을 전공한 스포츠 강사들이 실질적으로 수업을 주도하고 있다. 이는 '학교 체육 활성화'라는 스포츠 강사 도입 취지와도 걸맞아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 사이에서 모두 90% 이상의 높은 만족도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교육청과 스포츠 강사들은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교육청은 '학교장 채용 방침'의 커다란 이유 중 하나로서 "각 학교 실정에 걸맞은 맞춤형 체육수업 진행"을 들고 있다.

예를 들어 학교 내에 수영장이 있어, 학생들에게 수영을 가르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경우 수영에 특화된 스포츠 강사를 뽑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각 학교별 특성을 보다 잘 아는 교장이 스포츠 강사를 선발하는 것이야말로 학생들을 위한 제도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다수의 스포츠 강사들은 이에 반발하고 있다. 학교 체육은 '엘리트 체육'이 아닌'생활 체육'이라는 이유에서다. 다시 말해, 스포츠 강사들은 그 자격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학교 체육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이수했으므로 엘리트를 육성하는 목적이 아닌 이상에야 누가 됐건 학생 맞춤형 수업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제도를 통해서도 매해마다 이루어지는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언제든지 더 좋은 강사를 채용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학교장이 스포츠 강사를 채용하게 되면 학생들은 오히려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존의 경우 스포츠 강사들은 수업 능력과 자질에 대한 평가점수에 따라 재임용이 결정되므로 학생들에게 더 좋은 교육을 제공하려 애써왔지만, 학교장이 채용하게 될 경우 '학생 맞춤형'이 아닌 '교장 맞춤형'으로 지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도 교장한테 밉보이면 더는 아이들을 못보는 거잖아요? 그럼 누가 과연 열과 성을 다해서 아이들을 가르치겠습니까? 내년에 이 아이들을 또 볼 수 있다는 확신도 안 서고 불안한 마음만 들 텐데요.." 

경기 지역 초등학교에서 8년째 스포츠 강사로 근무중인 김정미(가명)씨는 방 한 구석에 이력서들을 가득 쌓아놓은 채 매일마다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경력과 평가점수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덕에 이전 같았으면 자신감에 차있을 그녀였지만 불안한 낌새를 느꼈기 때문이다.

김씨는 동료 교사로부터 "교장이 여자는 안 뽑겠다더라"하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소문에 불과하지만 스포츠 강사들 내부적으로는 이전부터 나돌던 얘기인지라 무심코 넘기기 힘들었다.

"제가 아는 동료가 타 지역에서 스포츠 강사로 일을 했었거든요. 저랑 같이 일을 시작했으니까 경력은 당연히 높았고, 평가점수도 상당한 상위권이었는데 그 지역이 학교장 채용으로 바뀐 해에는 지원하는 곳마다 다 떨어졌어요. 실제로 합격자들은 다 남자였더라고요. 누군가는 억측이고 피해의식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어요. 경력이나 평가점수가 분명 훨씬 높았었는데... 이젠 남의 일이 아닌 게 되어 버렸네요."

60살이 넘어서까지 이 일을 할 것이란 김씨의 다짐은 올해부터는 흔들리게 됐다. 김씨는 스포츠 강사를 비롯해 기간제 교사 이력서까지 다양하게 준비해놓은 상태다. "다 떨어지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미래가 안 보이는 거죠 뭐..."라고 대답했다.

"소통을 통해 공정성 담보해달라"

앞서 언급된 스포츠 강사 최진호(가명)씨는 "최대한 합리적으로, 바람직하게 이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저희들이 다양한 문제제기를 하고는 있지만 소통이 안 되니까 너무 답답합니다. 단체행동에 나서는 것이 어쩌면 나을 수도 있지만, 이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는 교육청과 소통이 잘 됐었거든요. 어느 순간 갑자기 이렇게 되어버린 건데... 당장 기분 나쁘다고 단체행동에 나서고, 소리지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혹 그런 행동 때문에 아이들이 볼모로 잡히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고요. 하지만 영 안 되면 1인 시위가 됐든 뭐가 됐든 해야하는데... 그렇게까진 안 됐으면 해요."

그러면서도 최씨는 "학교장 채용 그 자체만 놓고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당장 바라는 것은 '소통'입니다. 우리가 일선 현장에서 오랜 시간 근무해 왔는데 이번 방침에 우리들의 의사는 조금도 반영되지 않았어요. 우리가 학교장 채용 그 자체만 놓고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학교장이 채용을 하더라도, 공정한 시스템만 보장되면 괜찮겠죠. 고용에 대한 불안을 줄일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만요.

교육청이 겉으로는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를 말하고는 있지만 '제도적인' 보장은 없거든요. 우리더러 그냥 믿어달라는 건데 일방적으로 통보만 해놓고선, 우리 입장에서 어떻게 믿는 것으로만 끝낼 수가 있겠어요. 교육청이 이제는 좀 대화에 나섰으면 좋겠습니다."

김정미(가명)씨는 본인의 미래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동료들의 모습 또한 걱정된다는 심경을 밝혔다.

"중장비 다루는 일을 알아보는 친구도 있어요.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설령 올해에 잘 된다고 해도, 내후년엔 어떻게 될지 또 모르는 거고, 그 이후도 마찬가지고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보니 미래를 준비하지 않을 수가 없죠."

경기도 교육청의 이번 조치와 관련해 경기도 지역 스포츠 강사들은 교육감과의 면담신청을 꾸준히 하는 것은 물론 국민권익위원회에다가도 민원을 제기한 상태다. 이들은 "그간 교육청과의 대화시도에 꾸준히 실패한 이상 굳이 단체행동이 아니더라도 더 적극적으로 우리의 사정을 곳곳에 호소할 것"이라며 "국민권익위원회의 응답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http://vumedia.tistory.com(개인 블로그)에도 함께 싣습니다.



태그:#스포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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