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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2월과 5월 일본은 저급한 대동아공영권 건설이라는 명분으로 일으킨 아시아 지역의 침략전쟁(태평양 전쟁)중 중국 전체를 먹기 위해서는 중국 화북 지역을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지역이었다.

그래서 일본은 본국과 만주 등의 여러 사단의 비행기와 전차 등의 화력과 군사를 동원하여 화북지대의 항일투쟁 세력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소탕 작전(일명 참빗작전 : 이를 잡기 위해 촘촘하게 이루어진 참빗을 사용하듯이 항일 투쟁세력들을 잡기 위해 사용된 작전)을 펼친다.

태항산 산맥 마전 주변에는 중국 팔로군 전선총사령부와 조선의용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일본군에 완전 포위되어 퇴로를 열기 위한 긴급 작전을 수행할 정예부대가 필요했는데 중국쪽에서는 좌권(左权)부참모장이, 조선에서는 조선의용대가 책임을 맡아 적진에 침투하여 적을 교란시키며 퇴로를 확보하였다.

장자령계곡 일본군의 포위를 뚫고 퇴로 확보를 위해 일본군을 유인하며 싸우다 윤세주와 진광화 등 조선의용대원들이 순직한 흑룡동 장자령 계곡
▲ 장자령계곡 일본군의 포위를 뚫고 퇴로 확보를 위해 일본군을 유인하며 싸우다 윤세주와 진광화 등 조선의용대원들이 순직한 흑룡동 장자령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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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용대 화북지대는 윤세주, 진광화(본명 김창화) 등은 장자령으로 일본군을 유인하며 전투를 하였고, 팔로군은 좌권부참모장이 십자령으로 일본군을 유인하며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조선의용대 윤세주열사는 5월 28일 피격되어 장자령계곡의 흑룡동 야전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6월 3일 전사한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

순례단은 이 장자령 계곡의 흑룡동 야전병원이 있던 터(지금은 사원으로 바뀌었으며, 사원 내에 수맥이 흐르고 추운 날에도 얼지 않고 있었음)에서 최필숙선생이 밀양에서 손수 준비해간 제물로 상을 차리고, 옥재선생이 전통가마에 손수 만든 다기에 차를 올렸으며, 무형문화재 45호를 전수 받은 박용섭선생의 대금 연주로 항일투쟁을 하다 구천을 헤매이는 영혼들을 달랬다.

순례단도 밀양아리랑을 함께 부르며 장자령계곡에서 산하한 순국 열사들의 영혼들을 달랬다. 부산에서 참가한 석정 윤세주 열사의 증손자가 한국 막걸리로 잔을 올리며 할아버지와 함께 한 항일 투사들의 뜻을 가슴에 새겼다.

이어 십자령(十字嶺)계곡을 향했다, 장자령(庄子嶺)계곡과 십자령 계곡은 길도 좁고, 험하여 겨울철은 눈이 많아서 진입이 불가능하였으나 이번 순례길에는 온도는 낮았으나 햇살이 좋아 그동안 내린 눈이 차량 진입이 가능할 정도로 녹아서 윤세주 열사와 진광화 열사가 전사한 장자령 계곡도, 좌권장군이 전사한 십자령의 기념각에도 갈 수 있었다.

가는 길마다 중국이 지난해 승전 70주년에 맞춰 대대적인 승전비 사업을 추진하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었는데, 좌권 장군 기념비가 있는 십자령 계곡에는 산등성이를 절단하여 엄청난 크기의 대리석으로 승전에 대한 기념비를 세웠으며, 시골의 전적지마다 6각정에 항일전적비를 세워 항일전쟁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한 사업이 마무리되고 있음을 보면서 우리의 해방 70주년 사업과는 한눈에 비교가 되어 안타까움이 컷다.

태항산 전투에서 일본군이 중국을 삼키기 위해 반드시 정복해야하는 팔로군 129사단 사령부가 마전에 있었는데 그곳엔 당시 팔로군사령부가 사용했던 시설 그대로 보전하여 관리되고 있었으며, 그 옆에는 조선의용대 건물이 있어 당시 팔로군과 조선의용대의 협력을 통한 항일 투쟁의 현장을 볼 수 있었다.
팔로군사령부 팔로군 129사단 총사령부와 조선의용대가 있었던 마전
▲ 팔로군사령부 팔로군 129사단 총사령부와 조선의용대가 있었던 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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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의 소탕작전에 대항한 반소탕전은 조선의용대와 좌권장군의 유인작전으로 퇴로를 열었고, 팔로군 사령부의 수뇌부인 등소평, 팽덕회, 주덕 등이 무사히 탈출하였다. 이를 계기로 팔로군은 조선의용대의 값진 희생에 대한 보답으로 조선의용대와 의용대 가족들을 팔로군 129사단 사령부의 후방인 중원촌(中原村, 중위안촌)의 원정사(元定寺)로 이동시켜 일본군과의 전투로부터 안전한 곳에 정착을 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하였다. 원정사에도 조선의용군이 사용했던, 외형이 보전된 건물에 탁자와 의자, 사진 자료 등을 전시하면서 우리를 반겼다.

반소탕작전 전투에서 전사한 석정 윤세주 열사와 진광화(본명 김창화)열사, 그리고 좌권부참모장은 태항산 연화산 자락의 산세가 아름다운 곳에 묘역을 조성하였다. 이 곳 석문촌(石問村, 쉬먼춘) 묘역은 조선의용대원이었던 장진광선생(그당시 해외에서 예술전공)이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정부는 이 지역을 '혁명전통교양기지'로 지정하여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연화산 초장지 석정 윤세주열사와 진광화열사가 안장되었던 연화산 석문촌의 초장지로 밀양시 석정의 생가에서 가지고 간 흙을 기념관에 안치하기 위해 대학생들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묘역에서 기념관으로 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 연화산 초장지 석정 윤세주열사와 진광화열사가 안장되었던 연화산 석문촌의 초장지로 밀양시 석정의 생가에서 가지고 간 흙을 기념관에 안치하기 위해 대학생들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묘역에서 기념관으로 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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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으로 올라가는 오른측에 좌권부참모장의 묘역이 있으며, 가장 높은 봉우리위에 윤세주 열사와 진광화열사의 묘역이 있었다. 그리고 묘역 입구 왼쪽에는 '조선의용군 열사 기념관'이 2004년에 개관하여 방문자들이 있을시 관람할 수 있도록 현지 주민이 관리하고 있다. 이 곳은 도올 김용옥 선생이 2005년 광복 6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독립운동사' 10부작중 7부 '십자령의 뿌린 의혈'편 에서 도올 선생이 "석정 동지"라 부르며 무덤앞에서 오열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두 분의 묘역 주변에는 2005년도에 '한중 우정의 숲'이 조성되어 푸른 송백나무와 무궁화꽃나무가 심어져 있다, 석정의 묘비에는 '조선혁명영령', 진광화 열사의 묘비에는 '조선혁명열사'라고 새겨져 있어 당시 조선의용대의 항일투쟁의 정신을 길이 전하고자 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묘의 가운데에는 한 그루의 측백나무가 있는데 황재연이라는 사람이 조선의용대와 활동을 하였고, 항일 투쟁을 함께 한 관건이라는 조선의용대원이 죽자 그의 이름을 이어 개명을 하였다고 한다. 황재연은 항일 독립 투쟁시기 함께 한 동지들과 죽어서도 함께 하고자 마지막 유언으로 윤세주와 진광화의 묘역에 함께 묻어 달라고 하여 이곳에 수목장을 하였다고 한다.

이번 순례에서는 최필숙 선생님께서 직접 석정 윤세주 열사의 생가(밀양)에서 가지고 온 흙을 기념관에 안치하는 의식을 진행하였는데 함께 한 대학생들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묘역을 한 번 돌면서 조국의 대지를 열사들에게 안겼고, 조선의용군 열사 기념관으로 가서 안치하였다.
조선의용군열사기념관 연화산 석문촌의 석정 윤세주열사와 진광화열사의 초장지 입구에 있는 조선의용군열사기념관으로 중국은 이곳을 '혁명전통교양기지'로 지정·관리하며 중국인들의 항일교육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 조선의용군열사기념관 연화산 석문촌의 석정 윤세주열사와 진광화열사의 초장지 입구에 있는 조선의용군열사기념관으로 중국은 이곳을 '혁명전통교양기지'로 지정·관리하며 중국인들의 항일교육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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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층으로 지어진 기념관은 2004년에 한단시와 섭현 정부의 지원으로 건립되었으며, 중간에 우리나라 독립기념관의 지원으로 전시물이 교체되었다고 한다. 기념관의 전시는 조선의용대의 수립과 활동(1938년 10월 ~ 1942년 6월), 조선의용대 화북지대의 활동(1941년 6월 ~ 1942년 7월), 그리고 조선의용군 화북지대 활동(1942년 7월 ~ 1945년 8월)까지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었다. 또한 호가장 전투에서 교전 중 부상을 입은 후 체포되어 10년형을 선고받았으며, 다리를 절단한 마지막 분대장인 연변작가 김학철 선생과 학도병에서 탈출하여 조선의용대(군)으로 활동하면서 조선의용군의 영웅적인 투쟁을 소개한 '노마 만리'를 쓴 김사량 선생, 전남 광주 출신 정율성 선생님 등의 조선의용대(군)분들과 관련 당시의 사진과 사료들이 한국어와 중국어로 설명되어 있었다.

2015년 1월에 갔을 때 동행한 상영생(尙榮生:상룽성) 조선의용군열사기념관장은 "이 기념관은 중국 정부의 탄생과정에 한국의 항일 독립 투쟁의 우호에 대한 증거이며 양국 모두 소중한 공간"이라는 설명을 통해 한중간의 항일투쟁에 대한 연구와 상호방문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으며, 15년 여름에 밀양에서의 한중 토론회에서 발표를 하고 노무현대통령의 생가와 묘역을 방문하여 추모하기도 하였다.

지난해 기념관 방문시는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이 나와서 안내를 하였으나 운명을 달리하여서 이번 방문시에는 며느리가 관리한다며 열쇠를 가지고 나왔는데 순례단의 마음을 담은 선물을 전달하며 묘역과 기념관의 관리를 부탁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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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를 지키고자 노력한다. 특히 헌법에 보장된 권리인 정의의 실현은 민주주의의 기초라 생각하며 이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실천하는 노력이 역사를 바꾸는 힘이 될 것이며,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