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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남부 운남성과 광서성에 주요 거주지를 두고 있는 장족(壯族)은 그 유구한 역사만큼 풍부한 신화를 가지고 있다. 장족의 신화는 그 민족만의 다양하고 독특한 신화 체계를 가지고 있다. 장족 신화 체계의 중심에는 남성신 포락타(布洛陀)와 여성신 모육갑(姆六甲)이 있는데 이 두 신의 역사적인 선후 관계가 장족 사회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먼저 포락타와 모육갑에 대해 알아본 후 두 신 사이에 일고 있는 시조신에 대한 논쟁을 살펴보기로 한다.

포락타는 먼 옛날 장족 조상인 백월(百越)의 주요 부족인 낙월민족(駱越民族)의 시조로 몸집이 장대하고 실력이 출중하고 지혜가 높아 비길 사람이 없었으며 힘이 무궁무진하였다. 그는 인자하고 선한 얼굴에 볼이 튀어나오고 오목한 눈을 가진 전형적인 백월인(百越人)으로 한 부족의 수령이었다. 그는 비록 역사적인 인물이었지만 그가 일군 뛰어난 업적으로 인해 3000년 전부터 신격화되어 오늘날까지 장족 민중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장족 사회에서 구전되어 오는 신화에 의하면 포락타는 모르는 것이 없고 하늘과 소통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할 줄 아는 다재다능한 만물박사였다. 천지와 산천, 해와 달과 별, 남자와 여자, 물과 불 그리고 천하 만물을 창조한 포락타는 장족의 시조로서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특히 그의 생일인 음력 2월 19일 3월 9일까지 장족의 성산(聖山), 광서성 감장산(敢壯山)에 그의 수많은 후손들이 모여 시조 포락타에게 제사를 올린다.

포락타의 조각상은 황제(黃帝)와 염제(炎帝)의 조각상을 참고하여 제작하였다.
▲ 광서성 감장산(敢壯山)에 있는 포락타의 조각상 포락타의 조각상은 황제(黃帝)와 염제(炎帝)의 조각상을 참고하여 제작하였다.
ⓒ baid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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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 모육갑은 모락갑(姆洛甲), 먀락갑(乜洛甲), 무륵갑(毋勒甲), 마록갑(麽淥甲) 등으로 불리고 있다. 구전되고 있는 신화에 따르면 모육갑 역시 포락타와 마찬가지로 신력이 매우 커서 천지를 개창하고 인류를 창조하여 번창시키고 세상의 만물을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만물에게 질서를 부여하는 등 인류문화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하지만 현재 모육갑의 신화는 장족 사회에서 포락타 신화를 구성하는 일부분으로 전락되어 그 신분의 격이 많이 낮아졌다.

현재 장족 사회에서는 모육갑을 생육신(生育神)으로 봉하여 그녀를 성모(聖母)로 받들고 있다. 그 이유는 복잡다단한 여러 갈래의 장족 신화에서 모육갑의 공적 중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인류의 창조에 관한 내용 때문이다.

따라서 오래 전에 이미 모육갑은 시조신의 신분에서 생육을 주관하는 꽃의 여신인 화파모신(花婆母神), 즉 화파왕(花婆王)으로 변신하여 기혼 여성들이 자식, 특히 아들을 갈구하는 대상이 되었다. 장족과 조상의 뿌리를 같이 하는 중국의 여러 소수민족에게는 모두 화파와 관련된 신화가 있다. 아래는 거라우족(仡佬族)에게 전해오는 파왕(婆王)에 관한 신화이다.

파왕은 규모가 매우 큰 화산(花山)에 거주하며 날마다 화산의 꽃들을 돌보느라 바쁘게 지낸다. 인간들은 파왕이 애지중지 기르는 꽃들의 혼(魂)이 변신하여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파왕이 어떤 집으로 꽃의 혼을 보내면 그 집에서는 곧 아이가 탄생한다. 파왕이 붉은 꽃을 보내면 여자 아이가 태어나고 하얀 꽃을 보내면 남자 아이가 태어난다. 화산의 꽃이 무성하게 자라 산뜻하고 아름답게 피면 인간 세상의 아이도 잘 자라서 병이 없고 몸이 건강해진다.

만약 화산의 꽃에 벌레가 생기면 아이에게 병이 생기거나 재난을 당하지만 파왕이 꽃에 있는 벌레를 없애면 아이의 병은 곧 낫는다. 파왕이 꽃에 물을 주어 꽃이 물에 젖으면 아이가 잠을 잘 때 온몸에서 땀이 나고 옷이 축축하게 젖는다. 이후 사람이 죽으면 혼은 화산으로 돌아가서 다시 꽃으로 환원한다. 파왕이 이 꽃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면 다시 환생하게 된다.

음력 2월 29일은 화파 모육갑이 탄생한 날이다. 이날이 되면 장족 여성들은 돈을 걷어 제사 용품을 사서 모육갑에게 제사를 지낸다. 제사가 끝나면 무리지어 들로 나가 꽃을 꺾어 몸에 꽂은 후 자식들이 건강하게 성장하게 해 달라고 빈다. 아직 아이를 낳지 못한 부녀자들 역시 꽃을 꺾어 몸에 꽂고 화파에게 꽃을 보내 달라고 기도한다. 이후 임신을 하면 임신부의 침대 머리맡에 화파신위(花婆神位)를 모셔놓고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낸다.

화파 모육갑이 꽃을 선물해 아이를 점지해 주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 화파절(花婆節)의 모습 화파 모육갑이 꽃을 선물해 아이를 점지해 주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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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보았듯이 모육갑은 장족 신화에서 천지를 창조하고 인류와 만물을 창조하는 등 수많은 신성한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모육갑은 장족 사회에서 포락타보다 더 낮은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의문을 품은 일부 학자들은 장족 신화의 계보에 대해 재인식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들 학자들이 모육갑 신화와 관련된 자료 발굴에 힘쓴 결과 일부 긍정적인 성과를 얻게 되었다. 이들은 장족 민간문학에 대한 일제 조사를 실시하여 모육갑 신화에 대한 구전 기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조사와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모육갑 신화에는 장족 모계사회 시대의 생활상이 반영되어 있음을 밝혀냈다. 학자들은 연구 결과를 토대로 모계사회가 부계사회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장족 신화의 내용에 많은 변화가 발생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이 과정에서 남신 포락타가 점차 모육갑을 대체하여 장족의 시조신이 되었다고 이들은 확신하게 되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일부 학자들은 장족의 신화가 변화해 가는 경로에 대해 대략적인 계보를 만들어 냈는데 다음과 같다.

우주가 혼돈의 상태에서 한 줄기 빠르게 회전하는 기체가 생성되었다 → 그 기체는 둥근 알로 변했는데 그 안에는 세 개의 노른자(三黃神蛋)가 들어 있었다 → 개벽신인 금갑천신(金甲天神)에 의해 둥근 알이 대폭발을 일으켰다 → 둥근 알이 대폭발하면서 하늘, 대지, 물이라는 삼계(三界)가 생겨났다 → 이후 시조신 모육갑 탄생하였다 → 모육갑은 자신을 본떠 사람 세 명을 만들었는데 그중에 창조신 포락타가 있었다.

포락타는 후에 모육갑과 결혼하였다 → 모육갑과 포락타 사이에 전쟁신 포백이 태어났는데 포백은 인간을 괴롭히는 뇌왕, 용왕과 싸움을 전개했지만 뇌왕과 용왕이 일으킨 대홍수로 인해 인간이 멸종했다 → 대홍수에서 포백의 아들과 딸인 생육신(生育神) 복농남매(伏儂兄妹) 둘만 살아남았다. 이들 남매는 인류를 번식시키기 위해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 → 이후 여동생이 임신하여 살덩어리를 낳았다 → 두 남매가 살덩어리를 잘게 잘라 사방으로 뿌리자 살점들이 모두 인간으로 변했다 → 얼마 동안 세월이 흐른 뒤 영웅신인 잠손(岑遜), 막일(莫一)이 탄생하였다.

위의 계보에 따르면 모육갑은 장족 신화에서 제1대 신이자 최초의 여성신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모육갑 신화가 포락타 신화를 비롯한 후대의 모든 장족 신화 형성에서 기초적인 토대를 이루었음은 자명한 일일 것이다. 실제로 모육갑 신화와 초락타 신화 사이에는 중복된 내용이 많이 나온다. 그렇지만 두 신화 사이에 중복된 내용이 많다고 할지라도 무엇을 근거로 모육갑 신화가 포락타 신화보다 앞서 생겨났다고 단정하고 있는 것일까? 학자들은 그 이유로 몇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대부분 신화들은 그 신화가 탄생한 당시의 사회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모육갑과 포락타 신화도 예외는 아니다. 모육갑 신화 시기 때 인류의 중요한 경제적인 활동은 원시적인 채집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그 시기는 장족 사회가 초기적인 농경사회로 진입한 시기이기도 했다. 따라서 모육갑 신화에서는 농업 생산 초기 시대와 관련이 있는 단어들이 많이 출현하였다. 양도(楊桃), 고추, 사탕수수, 복숭아, 자두, 벼, 옥수수, 호박 등은 중국 남방에서 많이 생산되는 농업 생산물로 이는 채집 활동으로도 얻을 수 있는 작물이다.

이와 동시에 신화에서는 원시적인 농업 단계에서 출현하는 토란 줄기와 고구마 줄기, 과수 작물이 나오고 있다. 또한 도작 농업 단계에 이르렀음을 나타내는 구체적인 곡물 명칭도 출현하고 있다. 따라서 모육갑 신화가 발생한 시기는 장족 사회가 채집 단계에서 농경 단계로 이행되는 과도기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후대의 포락타 신화에는 논을 평평하게 고르는 모습, 씨를 뿌리고 모내기를 하는 모습, 시비(施肥), 관개 및 벼의 수확 등 구체적인 농경 방법과 그 순서가 기술되어 있다. 즉 농업 생산의 기술 축적과 생산 범위의 점차적인 확대가 이루어져 이러한 생산에 대한 변화된 체험이 자연스럽게 포락타 신화에 반영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기초적인 경작 농업 단계에서 모육갑 신화가 출현하였고 벼 재배가 이미 장족 사회의 주요한 경제 형태로 자리 잡은 후에 포락타 신화가 출현한 것이다.

광서장족자치구 남녕시(南寧市) 삼당향(三塘鄕) 구곡만(九曲灣) 온천 내에 있는 조각상으로 모육갑을 생육신으로 묘사하였다.
▲ 양도(楊桃)와 고추를 들고 있는 모육갑 광서장족자치구 남녕시(南寧市) 삼당향(三塘鄕) 구곡만(九曲灣) 온천 내에 있는 조각상으로 모육갑을 생육신으로 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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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모육갑 신화에서는 흙으로 사람을 빚은 과정이 상대적으로 간단하게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후대의 포락타 신화에서는 포락타가 흙으로 태양을 창조하는 과정이 비교적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또 도기를 굽는 과정 등 도기제조 방법이 정밀하게 묘사되어 있어 포락타 신화가 생성될 당시의 사회가 모육갑 신화 시기보다 기술적으로 더 발전된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장족의 원시종교 마교(摩敎)의 경전인 마경(摩經)의 심층에는 남녀신이 병존하는 상고 시대의 문화적 의미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즉 마경에서 '포락타에게 물어봤는데…, 모락갑에게 물어봤는데…, 포락타가 말하기를…, 모락갑이 말하기를…' 등의 표현들이 많이 나온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초기 장족 신화에서 모육갑은 최소한 포락타와 동등한 신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부계사회로 이행된 이후 마교에서 포락타를 주신으로 떠받들고 있지만 마경의 심층에는 여신 문화가 깊게 축적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대 씨족 부락 시대에 부락의 추장은 왕왕 여자 무당이 맡았다.
▲ 운남성에서 출토된 2,000년 이전의 청동기 유물 고대 씨족 부락 시대에 부락의 추장은 왕왕 여자 무당이 맡았다.
ⓒ CCTV 《麗哉?僚》 제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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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의 주장에 덧붙여 역사적인 관점에서 한 가지 더 근거로 들 수 있다. 고대 장족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종교 활동에 참여하는 전통이 있었다. 오늘날 장족 사회에서 마교에 관여하여 제사 등 활동에 참여하는 여성을 미마(咪摩)라고 부르고 있다. 미마는 장족어로 여자 무당 혹은 여자 사제라는 뜻이다.

현재 미마는 남성 종교 집행자인 마공(摩公)의 보조자의 역할을 하는데 그치고 있다. 하지만 고대 장족 사회에서 미마의 역할은 대단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마천은 <사기·서남이열전>(史記·西南夷列傳)에 미막(靡莫)라고 불리는 부락을 기록했는데 미막은 고대 장족 조상들로 구성된 여러 백월(百越) 부락 중에서 통치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한 명의 여자 무당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고대 씨족 부락 시대에 부락의 추장은 왕왕 여자 무당이 맡았다. 운남성에서 출토된 2000년 이전의 청동기에는 16개 부락 수령들이 회맹을 하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이 청동기에서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맹주가 바로 여성이었다. 이것으로 볼 때 모육갑 신화가 창출될 때는 분명 여성이 주도적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시대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남성신 포락타가 활동하는 시대는 그 이후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모계사회에서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다.
▲ 16개 부락 회맹 때 여 추장의 모습 모계사회에서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다.
ⓒ CCTV 《麗哉?僚》 제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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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모육갑 신화가 어떤 경로를 통해 시조신화가 아닌 화파 신화로 변질되었을까? 두 가지 과정을 그려볼 수 있다.

첫째, 모계사회에서 모육갑 여신이 독자적 창세하는 시대로 여성신 독존 시기 →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남녀신이 힘을 합치거나 분업하면서 창세하는 시대로 남녀신 병존 시기 → 농경 사회가 정착되고 부계사회가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면서 여신의 창세 업적을 남신으로 대체한 시기 → 모육갑 신화가 전승 과정에서 부녀와 아동을 보호하는 생육신, 화파, 여무당(雅芒)으로 변화된 시기.

둘째, 모계사회에서 모육갑 여신이 독자적 창세하는 시대로 여성신 독존 시기 → 모육갑이 흙으로 포락타 등 세 명의 사람을 빚은 후 모친 역할을 하던 시기 → 포락타가 성장하여 모육갑을 아내로 맞은 시기 → 모육갑 신화가 포락타 신화에서 벗어나 화파 및 여무당으로 독립한 시기.

현재 장족 신화 속에서 모육갑은 포락타의 수행신 또는 동행신의 역할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비록 포락타를 기리는 행사가 지방정부에서 주최하는 공식행사가 되었고 포락타 신화가 중국 국가급 무형문화재로 등록되었지만 장족 민중들은 여전히 여신 모육갑을 추앙하고 있다. 3월 3일 모육갑을 기념하는 화파절(花婆節)에 수많은 장족 여성들은 각지에 있는 화파묘(花婆廟)에 가서 모육갑을 기리고 있다.

위에서의 주장은 아직 일부 학자들의 의견이기는 하지만 장족 최초의 시조신이자 창세신인 모육갑이 장족 사회에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태그:#모육갑(姆六甲), #포락타(布洛陀), #창세신, #시조신, #화파(花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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