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특집 프로그램은 다음 시즌 예능의 트렌드를 선점하고자 하는 각 방송사의 각축장이 된다. 각 방송사는 기존의 뻔했던 예능 대신,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아 '고정'이 될 수 프로그램을 선보이기 위해 고심의 '파일럿'들을 즐비하게 선보인다. 2016년 설에도 변함없이, 그 결과에 따라 방송사 별로 희비가 엇갈린다.

2015년을 강타한 예능의 트렌드는 먹방이었다. 또한 <나는 가수다>에서 <복면 가왕> 식으로 콘셉트만 바뀌어 가며 스테디셀러가 된 음악 서바이벌 예능도 빼놓을 수 없다. 설 연휴에도 변함없이 다수의 프로그램이 이 콘텐츠를 답습했다. MBC는 <이경규의 요리 원정대>로 셰프의 열풍을 이어가고자 했고, SBS는 <먹스타 총출동>을 통해 '먹방'의 끝판왕을 제시하고자 했다.

음악 예능도 눈에 띄었다. KBS2의 <전국 아이돌 사돈의 팔촌 노래자랑>이 조용히 지나간 데 비해, SBS의 <보컬 전쟁 : 신의 목소리>와 MBC의 <듀엣 가요제>의 출연 인물들은 포털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오르내렸다. 물론 먹고, 노래하는 프로그램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제는 설날 씨름대회처럼 찾아오는 MBC의 <아이돌 육상 씨름 풋살 양궁 대회>가 올해도 변함없이 등장했고, 이에 대적하기 위해 SBS가 선보인 새로운 콘텐츠는 <머슬퀸 프로젝트>였다.

'나'를 돌아보는 새로운 트렌드의 예능

 MBC <미래일기>의 한 장면. 타임워프를 통해 출연자가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끔 했다.

MBC <미래일기>의 한 장면. 타임워프를 통해 출연자가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끔 했다. ⓒ MBC


이렇게 떠들썩한 명절 잔치 분위기 속에서 신선한, 그리고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한 프로그램 몇 편을 꼽을 수 있었다. MBC의 <미래 일기>, SBS의 <나를 찾아줘> 그리고 KBS2의 <기적의 시간 로스타임>이 그것이다.

MBC의 <미래 일기>에는 '시간 여행자'가 된 연예인이 등장한다. 미래의 어느 날 하루를 정하여 살아보는 예능판 '타임 워프'를 내세운다. 그런데 드라마 등에서는 '판타지'의 실현이 되었던 '타임 워프'가 '예능'이 되자 전혀 다른 질감을 드러낸다. 여든이 된 안정환, 결혼 40주년이 된 강성연, 김가온, 엄마의 나이가 된 제시와 그 세월만큼 나이를 먹은 제시의 엄마.

이들은 비록 잠시지만, '나이 듦'의 소회를 때론 웃프게, 때론 감동적으로, 때론 반추의 시간으로 시청자의 공감을 얻는다. 과연 이 프로그램이 정규 편성이 되었을 경우, 이번 파일럿 프로그램과 같은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7.8%(닐슨 코리아 기준)의 시청률에서 보이듯 설날 예능 프로그램 중 가장 큰 호응을 얻은 것은 물론, 그 '의미'에서도 남다른 평가를 얻은 게 사실이다.

 <나를 찾아줘>에 출연한 홍석천. 그와 아버지의 이야기는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나를 찾아줘>에 출연한 홍석천. 그와 아버지의 이야기는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 SBS


그에 반해 SBS가 2부작으로 선보인 <나를 찾아줘>의 첫술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부부·부모-자식 간의 '소통'을 내세운 이 프로그램은 가상의 상대방을 내세워, 진짜 자신의 지인을 찾도록 하는 '게임쇼'의 성격을 띠었다. 1회, 정인 조정치 부부, 2회 홍석천 부자를 출연시킨 <나를 찾아줘>가 각각 2.5%, 4.3%(닐슨 코리아 기준)의 시청률에서 보이듯, 프로그램의 만듦새에 따라 여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첫 회 정인-조정치 부부를 내세웠지만, 부부의 스킨십으로 '똥침' 등의 민망한 상황을 연출하는 방식 등은 이 프로그램의 앞날을 어둡게 하지만, 2회 나이 든 아들은 몰랐던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실감 나는 대역 연기자를 통해 구현해내는 방식은 이 프로그램이 포기되기엔 아직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나를 찾아줘>가 정규 편성이 되기 위해서는 출연자의 섭외에서부터 패널의 선택, 그리고 대역 출연자의 적절한 선택까지 좀 더 가다듬을 여지를 많이 남긴다. 게임쇼의 성격을 띠면서도, 친하지만 사실은 잘 몰랐던 지인의 이면을 알아가는 '소통'을 내세운 기획 의도만큼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출연자와 시청자 모두를 돌아보게 하다

 <기적의 시간 로스타임>은, 드라마타이즈 기법을 차용한 '예능'으로 분류할 수 있다.

<기적의 시간 로스타임>은, 드라마타이즈 기법을 차용한 '예능'으로 분류할 수 있다. ⓒ KBS2


지난 10일 오후 11시 10분에 1회를 선보인 2부작 <기적의 시간 로스타임>은 앞의 두 예능과 달리 드라마의 형식을 띤다. 하지만 캐스터의 김성주, 해설에 정성호, 거기에 저승사자를 대신한 죽음의 심판진 네 명이 등장하는 데서 보이듯, 그 예전 <테마 게임>과 같은 드라마타이즈 예능으로 보는 게 더 적절하다.

극 중 주인공은 어느 날 뜻하지 않게 죽음의 선고를 받고, 축구 경기의 '로스타임'처럼 마지막 추가 시간을 얻는다. 첫 회 주인공으로 등장한 달수(봉태규 분)는 떡을 먹다 죽게 되지만, 그에게 주어진 로스타임은 12년이었다. 그는 히키코모리에서 보람된 삶을 산 물리 치료사로 거듭나게 된다. 드라마는 이렇게 죽음 앞에서 삶의 변화를 겪게 되는 인물을 중계와 심판진이라는 조미료를 끼얹어 흥미를 배가시키고, 12분, 12시간, 12개월, 12년이라는 늘어나는 로스타임의 점층법을 통해, 마치 게임을 보듯 드라마를 즐길 수 있도록 한다. 실제 내용은 <드라마 스페셜>의 한 꼭지 같은 정도이지만, 그 진행이 달라짐으로써 시청자를 흡인한다.

타임워프, 게임쇼, 드라마타이즈 등 서로의 형식은 다르지만, <미래일기>, <나를 찾아줘>, <기적의 시간 로스타임>은 공교롭게도 시끌벅적한 명절 예능 가운데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과 기회를 얻게 하는 프로그램들이다. 하루아침에 몇십 년을 건너뛴 자신과 지인의 모습에서,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나의 아내 혹은 아버지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리고 죽음 앞에 주어진 뜻밖의 시간 속에서, 출연자들은 당혹스러워하고, 슬퍼하고 반성하며, 감동한다.

동시에 시청자들에게도 자신을 들여다볼 기회를 준다. 물론 이들 프로그램이 정규가 될 수 있을지의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이들 프로그램이 먹고 노래하고 떠들썩한 예능의 새로운 트렌드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번쩍이는 불야성의 거리만이 고달픈 일과를 달래주지 않듯, 먹고 떠드는 것만으로는 여전히 시청자들이 허기져 한다. 이들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예능이 등장하기를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미래일기 나를 찾아줘 기적의 시간 로스타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