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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저 얼마 있으면 복직해요. 복직하면 잘할 수 있을지 걱정돼요…."

한 달 뒤에 복직을 한다고? 정말 시간 빠르다. 아이 낳았다고 소식을 알린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말이야. 물론 그동안 초보 엄마로서 참 어려운 길을 걸었을 그대의 시간을 생각해보면 결코 짧지만은 않은 세월들이었을 텐데, 어느새 훌쩍 1년이 흘러버렸네.

그대가 말한 '복직하면 잘할 수 있을지'라는 문장에 담긴 의미는 일에 대한 두려움, 아이를 남의 손에 맡겨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일과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두려움, 모두를 함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3년 전 나를 생각하며 오늘 이 글을 써. 이 글은 3년 전의 내게 그리고 복직을 앞둔 그대에게 전하는 편지야.

미안함·죄책감을 견뎌낼 '마음의 체력'을 기르겠어

아이가 우는 것도, 아이가 아픈 것도 사실은 엄마가 일해서도 아니고 엄마가 아이를 덜 사랑해서도 아니야.
 아이가 우는 것도, 아이가 아픈 것도 사실은 엄마가 일해서도 아니고 엄마가 아이를 덜 사랑해서도 아니야.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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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육아 도서는 이야기하지. 일하는 엄마가 미안함을 느끼면 아이도 그걸 느낀다고 말이야. 그런 미안함은 좋지 않다고,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말고 당당해지라. 그런데 나는 도대체 당당해질 수가 없더라.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서 엉엉 우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돌아서는 길에 눈시울 붉혀보지 않은 엄마들이 있을까?

죄책감·미안함은 워킹맘에게 어쩔 수 없는 감정인 것 같아. 큰 아이가 돌 정도 됐을 때 어린이집에 맡겼는데, 그때 같은 반 어린이 중엔 기어 다니지도 못하는 갓난쟁이들도 있었어. 그나마 누워서 스스로 젖병을 잡고 분유를 먹는 아이는 나아 보였으니까. 그 아이들을 보니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어. 다만, 그것들을 견뎌낼 '마음의 체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다시 복직을 준비한다면 미안한 감정은 받아주되, 상황에 대해서는 '내 탓이 아니야'라고 버틸 것 같아. 아이가 우는 것도, 아이가 아픈 것도 사실은 엄마가 일해서도 아니고 엄마가 아이를 덜 사랑해서도 아니야. 충분히 사랑하고 안타까워해도 아이는 아프면서 크고, 울면서 크는 것이더라고.

우리는 아이를 낳는 순간 엄마라는 역할에서 절대 도망갈 수 없어. 그럴 거면 충분히 울고, 충분히 아파하고, 이 사회가 도와주지 않는 것에 충분히 분노해야 한다고 생각해. 다만, 미안함과 죄책감과 분노, 슬픔, 이런 감정에 매몰되지 말고 실컷 울고 난 다음에 툭툭 털고 일어나서 다시 일터로 나갈 수 있는, 그런 씩씩함을 기르겠어. 왜냐하면 난 엄마니까!

보약과 비타민을 챙겨 먹고 체력을 비축할 것 같아

추운 겨울, 워킹맘의 출근길은 마음이 더 시립니다. 아이와 이불속에서 더 뒹굴고 싶은 욕심을 접어야 하니까요.
▲ 회사에서 바라본 풍경 추운 겨울, 워킹맘의 출근길은 마음이 더 시립니다. 아이와 이불속에서 더 뒹굴고 싶은 욕심을 접어야 하니까요.
ⓒ 이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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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한 순간부터 우리는 약조차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잖아. 아이를 낳고 나서 먹는 약은 모유 수유에 도움이 되거나 혹은 아이에게 좋다는 것을 위해서 먹는 것이지 엄마인 내 몸을 위해서 먹는 것은 잘 챙기지 않게 되잖아. 복직 그전에는 전업맘과 워킹맘 사이의 고민 그리고 아이를 맡기는 문제에서부터 복직 후의 상황에 대한 걱정으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가버리더라고.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 보내다가 복직하고 나면 대부분의 워킹맘들이 몸살을 앓곤 해. 왜냐하면 반복적인 출·퇴근만으로도 몸이 힘든데, 육아라는 무게까지 짊어지다 보면 몸이 더 이상 버티질 못하는 거지. 그렇게 한바탕 몸살을 앓고 나면 그 힘든 상황에 어느 정도 몸이 익숙해지기는 해.

그래도 말이야. 너무 힘들어. 하루하루가…. 적어도 아침에 아이들에게 웃는 얼굴 보여주면서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해서 아이들과 책 한 권 읽을 수 있는 여유와 체력은 있어야 하는데, 그것조차도 힘들 때가 많으니까.

나의 경우 아이들이 둘이라서 매일 두 권을 읽어야 해. 어쩌다가 책이 재미있다면서 다음 편을 읽어달라고 하면 네 권이 되는 거야. 하, 정말…. 내가 얼마나 피곤한데…. 독서교육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네 권은 너무 하잖아. 그래서 결국은 또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는 반복이 되더라고. 결국은 엄마 체력이 돼야 아이들에게 짜증도 덜 내고, 더 챙겨줄 수 있어. 오래 장기전으로 가려면 체력관리는 필수야. 일단 내 몸부터 챙겨보도록 하자.

잘할 수 있을까 걱정하기보다 길게 가는 방법을 고민할 것 같아

지치지 말자. 지치지 말자. 지치지 말자.
 지치지 말자. 지치지 말자. 지치지 말자.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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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도 직장생활도 장기전이라고 하지. 지치지 않고 길게 가는 것이 중요해. 나라면 '내가 다시 복직을 준비한다면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보다 나 자신을 점검하고 길게 오래가는 방법이 뭔지 고민할 것 같아. 나는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일에 대한 욕심이 좀 있었어. 아무리 어려운 일도 몰입하면 해결되고, 일을 끝낸 다음의 그 성취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짜릿하지.

성취감도 중독이라고 하더라. 난 아마 그 성취감에 중독이 돼 있었던 건가봐. 처음에 복직하고 나서 이전처럼 미친 듯이 일에 몰두했어. 사실, 복직 전에 일이 너무 하고 싶었거든. 매달 통장에 꽂히는 월급도 너무 그리웠고 말이지. 마침 대규모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일도 맡게 됐고, 아이들은 시부모님이 봐주시니 나는 그냥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

평일에는 아이들 잠자는 얼굴만 보고 출·퇴근하고, 심지어 주말에도 출근했지. 한 달에 쉬는 날이 2~3일뿐이었으니까…. 그런데, 1년 정도를 그렇게 지내고 나니까 '삐거덕' 소리가 나더라. 큰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정서가 불안정한 것 같다고 신경 좀 써달라는 말을 들었고, 작은아이는 밤에 자다가 깨면 내가 옆에 있는데도 울면서 할머니를 찾았어. 그즈음 두 번의 육아휴직으로 평가점수가 좋지 않아서 승진에서도 밀려났지. 모든 상황이 내게 말하는 것 같더라. '잠시 멈춰 생각해보라'고.

아이들에게도, 내게도 균형이 필요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지. 그걸 깨닫고 나는 전배를 했어. 직무를 옮기는 거였지. 조금은 덜 바쁘고, 조금은 내 책임감이 덜 무거운 곳으로…. 자존감은 조금 낮아질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나는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는 방법을 나름대로 찾았어. 아마 아이가 스스로 뭔가를 하기 전까지, 한동안 이런 고민을 계속하면 살게 되겠지?

물론, 그대에게 꼭 한직으로 물러나거나 전배나 이직을 하라고 권하는 건 아냐. 현재의 자리에서 균형을 맞추면서 장기전 레이스에 도전이 가능하다면 그냥 한번 버텨보는 것도 좋아. 중요한 건 육아 건 직장이건 오래 살아남아야 한다는 거야. 왜 그런 말도 있잖아.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고,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

마지막으로... 걱정은 접어두고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

워킹맘의 길에 대한 두려움, 아이를 맡기는 것에 대한 걱정이 순간순간 찾아올 거야. 그래서 복직 그전에 제대로 웃어보지도 못한 것 같아.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면 생각보다 아이가 잘 적응하는 경우도 있고, 설령 아이와 떨어져 일터로 나가는 패턴에 익숙해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모두 적응하게 되는 게 인간이고 사람의 삶이더라고. 그럴 거면 걱정보다는 그냥 현재를 살고, 현재를 즐기면 되는데, 다가오지도 않을 미래에 대한 걱정, 내가 콘트롤할 수 없는 어떤 상황에 대해서 미리 겁을 먹고 걱정만 많이 했던 것 같아.

복직까지 한 달 남았다고 했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아이와 좀 더 좋은 추억 쌓고 행복한 시간 보내길. 마음의 체력, 몸의 체력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니까…. 밝은 모습으로 한 달 뒤에 만날 수 있길 기대할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 <이틀, 두가지 삶을 담아내다>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워킹맘에세이, #복직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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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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