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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을 축하합니다. 입학식 날, 교실 칠판에 환영 문구를 붙여두었다.
▲ 입학을 축하합니다. 입학식 날, 교실 칠판에 환영 문구를 붙여두었다.
ⓒ 윤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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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동 연필깎이 8만 원
2. 보조가방 백팩 세트 19만 7천 원
3. 맞춤형 책상 89만 9천 원
4. 플라워 백팩 27만 원
5. 방수 커버 백팩 12만 2천 원

'입학선물'을 검색해서 나온 어느 여성지의 '초등학생을 위한 입학선물' 리스트다. 사진까지 곁들여진 그것들은 우리 아이의 혹은 내 조카의 초등학교 생활을 정말 훌륭하게 출발시켜 줄 것만 같다.

잠시 몇 년 전으로 돌아가 본다.

입학식에 참석한 아이들은 엄마와 혹은 아빠와 잡은 손을 놓고 신입생 대열에 선다. 설렘, 기대감, 두려움까지 섞여 있는 얼굴들.

그 사이로 한 아이가 들어온다. 비교적 또래들보다 큰 키에 안경까지 끼고 단정하게 하나로 묶은 머리에 하얀 얼굴은 모범생의 전형처럼 보였다. 막 엄마와 잡은 손을 놓고 줄에 선다. 나는 짐짓 반가움을 드러내며 다가간다.

모두 다른 아이들 아이들이 자신의 얼굴을 만들었다. 어쩌면 이리도 자신과 닮았을꼬! 하지만 모두 다르다.
▲ 모두 다른 아이들 아이들이 자신의 얼굴을 만들었다. 어쩌면 이리도 자신과 닮았을꼬! 하지만 모두 다르다.
ⓒ 윤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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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워, 난 윤경희 선생님이야. 넌 이름이 뭐니?"
"한송이(가명)"
"그래, 송이야 반갑다. 여기 너 이름표"

시끌벅적한 체육관에서 아이의 조그만 목소리를 들으려 내 귀를 아이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이름을 재빠르게 확인하고 몇 개의 이름표 중에 아이의 것을 찾아 목에 걸어주며 얼굴을 보았다. 아이는 울고 있었다. 어찌할까 고민하기도 전에 다른 아이들이 이어서 줄을 서고 있었다.

송이는 입학식이 진행되는 엄마가 서 있는 뒤로 돌아서서 계속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뭐라고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말을 꺼냈다.

"송이야, 입학식은 저기 있는 시계에 긴 바늘이 8에 갈 때까지 할 거야. 8 지나면 교실에 가고, 그땐 엄마랑 같이 있을 수 있어."

내가 입학식 끝나는 시간을 알려주자 아이는 조금은 안심한 듯 보였다. 그 후 송이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계속해서 시계가 있는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입학식 내내. 송이는 교실에 와서도 내내 눈물을 흘렸고 엄마가 제 옆에 와서 서자 비로소 진정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본 송이는 순하면서 정직하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다. 특히 독서 수준이 높아서 2~3학년이나 읽음 직한 글밥이 많은 동화책을 곧잘 가지고 와서 독서시간에도 읽고 쉬는 시간에도 자주 읽었다. 한 번은 일기 쓰기 숙제를 내주었는데 송이가 써온 일기는 한 편의 동화였다. 너무 놀라워서 옆 반 선생님들에게 보여주기까지 하였고 댓글을 한 바닥 적어주었다.

엄마와의 끈이 너무나 짧은 송이

송이는 외동딸이어서 그런지 엄마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다. 등하교는 1년 내내 엄마와 함께였다. 봄 추위가 따스함으로 바뀐 4월의 어느 날. 놀이 시간인데도 혼자서만 교실에 있다.

"송이야, 왜 나가서 안 놀아? 같이 나가자."

내 권유에 마지못해 송이는 운동장에 나가 놀이터에서 놀았다. 얼마가 지나 기분이 좋아진 듯 송이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사실은 엄마랑 운동장에는 한 달에 한 번만 나가서 놀기로 약속했어요."

그때의 놀라움이란. 너무 놀라서 뭐라고 말도 하지 못했다.

1학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찬 바람이 부는 어느 날, 송이는 복도에 혼자 서 있다.

"왜, 아직 집에 안 갔어?"
"엄마가 아직 안 왔어요."

'지금쯤이면 학교 주변 인도로 혼자서도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이 많이 머니?"
"그건 아니고..."
"집에 혼자 안 가봤어?"
"네, 엄마 오면 같이 집에 가요."
"그렇구나."

밝게 인사를 하고 송이와 헤어졌지만 마음은 어두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아이 사이의 보이지 않는 끈이 있다면 송이와 엄마는 그 끈이 너무 짧은 것 같다는... 몸속의 씨앗으로 있던 아이가 생명으로 탄생한다. 그러면 한 해 한 해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부모는 아이와의 심리적 끈의 길이도 늘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눈앞에 보여야만 안심하고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다.' '실패할 것 같으면 미리 성공방법을 알려주어 실패를 예방해준다.' 그렇게 자라난 아이가 가정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용감하게 나올 수 있을까?

나는 교실에서 바쁘다. 그래서 항상 아이들의 도움을 받는다. 오히려 심부름 거리가 부족하여 아이들의 호의를 다 수용하지 못한다. 아이들이 못 할 거라는 생각은 대개의 경우 오해다. 아이들은 믿는 만큼 자라나고 믿는 만큼 책임감을 가진다. 믿었는데 아이들이 실수하고 실패하는 경우도 물론 있다. 그럴 때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 준다.

"얘들아, 너희들이 한 번에 다 잘하면 학교에 뭐하러 오겠니? 그런 애들만 오면 선생님이 필요하겠어?"
"아니에요."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목청껏 대답한다.

"그래, 모르면 모른다고 이야기하면 되는 거야. 잘못하면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되는 거야"

잘 하고 있어 "그래, 잘 하고 있어. 힘을 내!" 불안한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자.
▲ 잘 하고 있어 "그래, 잘 하고 있어. 힘을 내!" 불안한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자.
ⓒ 윤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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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진정한 입학 선물은 아이에게 믿음을 선물하는 것이다.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면 되는 것이다. 믿어주려면 정말 힘이 들어서 눈물이 날 때도 있다. 불안해서 몸이 떨릴 수도 있다. 무엇을 불안해하는지 내 마음을 들여다보자. 불안은 합리적인 대책을 세움으로써 이겨낼 수도 있을 것이다. 부모의 막연한 불안을 아이에게 떠넘기지는 말자. 아이들도 자신의 세상을 향해서 한 발짝씩 힘겨운 걸음을 내디디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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