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 시티> 스틸컷

대중매체는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지 않는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미디어는 메시지다(media is the message)."

마셜 맥루한은 말했다. 그리고 이 메시지는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내리거나 사고하도록 하는 모든 과정에서 미디어가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명언이기도 하다. 미디어가 중심이 된, 미디어가 강력한 힘을 지닌 현대 사회를 '매스미디어' 사회라고도 일컫는다. 오늘날 신문, 방송, 잡지, 영화, SNS 등으로 대표되는 미디어에서는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 다양한 일들을 재가공하고 재생산하여 수용자에게 전달한다. 각종 정보가 시시각각 쏟아지는 일명 '정보의 홍수' 시대에서 대중들은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할 새도 없이 미디어가 생산한 어젠다에 무분별하게 노출된다.

그런데 만약 출처가 불분명하고, 누군가의 입맛에 맞춰 편집된 정보가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고 있다면 어떨까. 과연 대중매체는 객관적인 사실만을 전달하는 매개체라고 할 수 있는가?

1997년 영화 <매드 시티>의 통찰력

 <매드 시티> 스틸컷

<매드 시티>는 1997년 작품이지만, 작품 내 묘사되는 미디어의 민낯은 시간을 뛰어넘는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1997년도에 방영된 영화 <매드 시티>는 진실의 왜곡과 편집이라는 미디어의 적나라한 민낯을 고발한다. 이것은 현재의 매스미디어사회에서 미디어가 과연 정확하고 투명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한다. 화제와 특종을 쫓는 한 방송국 기자(맥스)가 박물관에 잠입 취재를 하며 영화의 '대사건'은 시작된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샘은 박물관에서 시급 8달러를 받고 일했던 평범한 경비. 그는 복직을 요구하기 위해 관장을 찾아온다. 그러나 샘이 단지 '위협용'으로 가져온 총이 실수로 발사되고, 그 총을 동료 경비가 맞게 되면서 샘은 일생일대의 사건에 휘말린다. 그리고 샘의 '실수'는 결국 그를 '파멸'로 이끌고 만다.

샘의 의도치 않은 인질극 사건은 곧 미디어의 먹잇감이 되어 집중 포격을 받는다. 영화에서는 내내 자신의 이익과 입맛을 위해 사건을 조작하고, 미디어라는 권력을 휘두르는 기자와 방송국 사람들의 실태를 조명한다. 특종을 위해 샘을 한순간에 범죄자로 만든 맥스는 자신의 독점 방송을 이어가기 위해 샘의 자수를 만류한다. 이것도 모자라 보다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보도를 만들어가기 위해 샘을 달콤한 말로 꾀며 상황을 주도한다. 또한, 그는 자신이 의도한 스토리와 이미지에 맞춰 샘 주변인의 인터뷰를 조작하고, 편집한다.

샘의 사건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사건이 되어 이를 보도하는 미디어 간의 보이지 않는 경쟁과 권력관계에 의해 사건이 좌지우지된다. 그 결과 미디어의 특종주의와 시청률 우선주의는 진실을 외면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 속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방송국 본사의 메인 앵커 케빈은 여론조사 결과 샘의 지지도가 하락하는 추세를 보고 즉시 샘의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하는 뉴스를 편집한다. 방송국 국장은 샘이 목요일 저녁 대의 프라임 시간에 자수하도록 종용하는 '명령'을 내린다. 이것은 다름 아닌 목요일 저녁 대의 시청률이 저조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TV가 어떻게 현실을 왜곡하는가'에 대한 과정이 낱낱이 공개되었지만, 이를 알 리 없는 영화 속 대중들은 왜곡된 현실이 반영된 TV를 곧이곧대로 믿는다. 그 와중에 샘의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은행장 사기사건이 대대적으로 터진다. 그러나 언론은 샘의 사건을 내세워서 은행장 사기사건을 완벽히 입막음한다. 대중들은 당장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은행장 사기사건보다 미디어에서 주목받고 이슈화되는 샘의 사건에 더욱 관심을 기울인다. TV 밖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의 진짜 모습보다 TV 속에 비치는 세상만을 진실로 믿는 것이다.

영화 초반 "대중들은 변덕쟁이"라고 말했던 맥스의 예언처럼. 이는 미디어를 통해 뉴스를 시청하는 수용자가 현실을 어떻게 왜곡하여 인식하는지에 대한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마치 최근 <내부자들>에서 백윤식이 연기한 유명 논설주간 이강희가 "대중들은 개·돼지"라고 말한 것과 겹치며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인다.

무소불위의 권력이 된 미디어, 미쳐가고 있다

 <매드 시티> 스틸컷

휴머니즘을 잃은 미디어는, 이제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미디어 속의 정보는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가짜일까. '사실'은 맞지만 '진실'은 아닌 정보는 얼마나 되겠는가. 과연 이 미디어를 접하는 우리는 얼마나 믿고 있는가. 사실 <매드 시티> 속 매스미디어사회는 오늘날 우리들의 사회 모습과 크게 닮아있다. '앵무새' 식 받아쓰기 보도를 내보내는 공중파 뉴스와 특정 계층을 대변하는 언론사, 재벌이나 정치인이 연루된 사건을 덮으려 터뜨리는 연예계 특종, 신문사나 방송사의 사시(士視)에 따라 또는 정치 성향에 따라 한 사건에 대해 미묘하게 바뀌는 논조 등 여론을 호도하려는 미디어의 '무소불위' 권력은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친다.

<매드 시티>에서 나타난 더욱 무서운 사실은 사람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비인간적인 미디어'라는 것이다. 샘의 사건이 벌어진 박물관 앞에는 3일 내내 수백 대의 카메라가 24시간으로 작동한다. 그 앞에서 수십 명의 기자는 언제 특종이라도 떨어질까 봐 눈에 불을 켜고 서 있다. 심지어 샘이 결국 자살을 선택하는, 촌각을 다투는 순간에도 기자들은 어떻게 하면 좋은 각도가 나올 수 있을까에 대한 전쟁을 벌인다.

동료 경비는 결국 세상을 떠났고, 지독한 기자와 카메라는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아내에게 '소감'을 묻는다. 샘이 자폭한 박물관 앞에 서 있다가 파편에 맞은 맥스. 그의 이마에 흐른 피를 닦지 말라며, 그게 카메라에 잘 나온다며, 샘의 마지막 유언은 무엇이었느냐며 끝까지 특종에 집착하는 수백 명의 취재진에 둘러싸이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펜은 총보다 강하다'라는 말이 있다. 맥스는 샘이 다이너마이트를 통해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가 죽인 거야"라며 허탈함에 주저앉는다. 영화에서 맥스가 들고 있는 펜과 카메라는 샘이 들고 있었던 총보다 강했다. 영화 속 샘은 실수로 발사된 총알이 훗날 자신에게 돌아올 죽음의 탄환이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샘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그를 한낱 뉴스거리라는 소모품으로 여긴 기자와 왜곡된 진실로 얼룩진 미디어의 합작이었다.

과연 그들이 말하는 진실이란 무엇인가. 한 사람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은 다수의 폭력은 이 영화의 타이틀 '매드 시티'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또한, 영화에서 보인 미디어의 비인간적인 모습은 '매스미디어'가 아닌 '매드미디어'에 다름없다. 따라서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매스미디어 사회' 아닌 '매드미디어 사회'를.

 왜곡과 조작이 '판치는' 매스미디어 사회를 풍자한 <매드 시티>의 포스터

왜곡과 조작이 '판치는' 매스미디어 사회를 풍자한 <매드 시티>의 포스터 ⓒ 이은주



매드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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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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