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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이가 "동그란 과자 하나 먹어도 돼요?" 하고 묻습니다. "하나만?" "응. 하나만." 아이는 동그랗게 생긴 모습으로 하나를 먹고 싶다 말합니다. 그러면 동그란 모습을 작게 잘라낸 조각은 그대로 하나일까요, 아닐까요?

동그란 과자가 하나만 있을 적에 아이한테 되묻습니다. "하나만 있는데 어떻게 하지? 네 사람이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넷을 알맞게 잘라서 조각을 내면, 넷이 '모두 하나씩'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넷이 됩니다. 또는 두 사람이 안 먹고 두 조각으로 내면 둘이서 '저마다 하나씩' 받습니다. 하나는 하나이면서 넷이 되다가 둘이 되지만 늘 하나입니다.

수가 무엇인지에 대한 피타고라스의 대답은 "모든 것이 수이다"라는 피타고라스의 유명한 연설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는 바꾸어 말하자면 우리의 모호한 질문에 대해서 우주의 모든 삼라만상을 이루는 기본 요소가 바로 수라는 답을 준 것이다. (15쪽)

물리학자들은 힘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제쳐두고 먼저 적절히 수학적으로 공식화한 다음, 그것의 성질을 공부하기 위해 힘을 측정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관련된 이론을 전개해 나갈 뿐이다. (19쪽)

김민형 님과 김태경 님이 함께 쓴 <수학의 수학>(은행나무, 2016)을 읽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학 강의'라는 이름이 붙은 책입니다. 우리 삶을 둘러싼 수(숫자)를 수식과 이야기로 풀어내는 책이니, 어느 만큼 수식이 익숙할 때에 이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알아들을 만하리라 봅니다.

아이들은 아직 수식을 모르니 이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수식을 알 만한 청소년이나 어른이라면 혼자서 읽을 만할 테고, 아이들한테는 어른이 먼저 읽고서 이야기를 들려줄 만하리라 생각해요.

<수학의 수학>에 나오는 피타고라스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구고 정리'를 떠올립니다. 나는 고등학교를 마치도록 '구고 정리' 이야기를 듣거나 배우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에 <한국수학사>(김용운·김용국 씀)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때에 '구고 정리'를 처음으로 알았어요.

피타고라스보다 훨씬 앞서 중국에서 갈무리했다는 수학 이야기예요. <한국수학사>를 읽으면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수학을 가르치거나 배웠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러나 학교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가르치거나 알려주지 않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수학은 모두 서양 수학이고 서양 이야기였어요.

처음에 제기되었을 때는 너무나도 어려웠던 개념들, 어려운 연산들이 인류가 점점 이해의 폭을 넓혀 오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결국 집단의 미성년들에게 지식으로서 전달하게 되는 일은 위와 같이 너무나 흔한 일이다. (32쪽)

어려워 보이는 문제를 일시적으로 더 어렵게 만든 것이 쉬운 답을 이끌어내는 실마리가 된 것이다. (44쪽)

내가 학교에 다닐 무렵을 돌아보다가, 우리 아이들하고 함께 공부를 하는 요즈음을 헤아립니다. 수학을 익히든 철학을 배우든, 서양 수학이거나 한국 철학이거나 대수롭지는 않다고 느껴요. 우리는 그저 수학을 익히거나 철학을 배울 뿐이니까요.

누가 먼저 찾아낸 연산이나 수식이든, 이러한 연산이나 수식을 삶에 받아들이면서 살림을 가꾸는 길에 쓸 수 있을 때에 '아름다움'을 이루지 싶어요. <수학의 수학>에서도 말하듯이 "집단의 미성년들에게 지식으로서 전달(32쪽)" 하는 일은 어른이자 어버이로서 기쁨이면서 아름다운 보람이 된다고 느껴요.

아이들한테 수(숫자)를 가르치고 말을 가르치며 살림살이를 가르치는 동안 생각을 북돋우거나 가꿉니다. 하나부터 백까지 모든 숫자를 더하는 길을 아주 쉽게 풀어낸 가우스 이야기는 바로 생각을 가꾸고 살림을 북돋우는 길을 밝히는 숱한 보기 가운데 하나예요. 이른바 "어려워 보이는 문제를 살짝 더 어렵게 바꾸어 외려 쉽게 풀이법을 찾는" 길이 나오거든요.

이를테면 이런 보기를 들 만해요. 가우스는 '(1+100) + (2+99) + …… (50 + 51)'을 묶음으로 바라보았다면, 짐을 나를 적에도 '하나부터 백에 이르기까지' 따로따로 들어서 나르기보다는, 알맞은 부피와 무게를 살펴서 함께 들어서 나를 수 있어요. 때로는 수레를 빌어 짐을 나를 수 있지요. 수레를 쓰든 어깨에 짐을 얹든, 왼쪽과 오른쪽이 무게가 어우러져야 하고, 앞과 뒤에도 무게를 골고루 나누어야 해요. 이러한 일이나 살림도 모두 수(숫자)라고 할 만합니다.

'수가 무엇이냐'에 대한 답을 주려고 할 때 어떤 것이 '수'라는 성질이 그 물체 자체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처음에는 수와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이는 곡면이나 곡선, 반도체에도 연산을 줄 수 있었다. 그것보다는 수 체계를 이루는 자연스러운 집합 속에 들어가는 것이 수라는 것이 답이다. (73쪽)

<수학의 수학>이라는 책을 덮으면서 '수(數)'라는 낱말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이 한자는 '세다'를 뜻합니다. '세다'에서 '셈'이 나오고, 컴퓨터를 가리켜 '셈틀'이라 일컫기도 합니다. '세다'는 '헤다'와 같은 낱말이며, '헤다'에서 '헤아리다'가 나왔으며, '헤아리다'는 '생각하다'와 같은 낱말이기도 합니다.

한국말사전에서 '수'를 찾아보면 "1. 셀 수 있는 사물을 세어서 나타낸 값 2. [수학] 자연수, 정수, 분수, 유리수, 무리수, 실수, 허수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합니다. "세어서 나타낸 값"이니 '셈값'이 '수'라는 뜻이겠지요.

그래서 날을 세면서 '하루 이틀 사흘' 같은 말이 태어나고, 얼마나 있느냐를 세면서 '하나 둘 셋' 같은 말이 태어납니다. 우리가 서로 나누는 꿈이나 사랑은 '셀' 수는 없습니다만,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도표나 통계로 꿈이나 사랑을 나타낼 수는 없어도 마음 속에 그림으로 그려 보일 수 있어요.

'1 2 3'처럼 적는 글씨는 상징처럼 적는 기호입니다. 'ㄱ ㄴ ㄷ' 같은 글씨도 상징과 같은 기호이고요. 수학을 익히거나 배운다고 할 적에는 '삶자리에 있는 것'을 마음 속으로 그리면서 나타내 보이려고 한다는 뜻이리라 느낍니다. 삶자리에 있는 것을 글씨(한글 같은 글씨)라는 기호로 옮겨서 마음을 나타내듯이, '1 2 3'이든 '하나 둘 셋'이든 '하루 이틀 사흘'이든, 이러한 기호를 빌어서 우리가 누리거나 이루는 삶을 그려서 나타내는구나 싶어요.

모든 것은 셀 수 있고, 모든 것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니, 모든 것은 '세면'서 우리 앞에 나타나고, 모든 것은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우리가 느끼거나 알 수 있구나 싶어요. 어버이자 어른으로서 아이한테 수학을 가르치고 함께 배운다고 할 때에는 바로 이 대목 '세는 힘'과 '생각하는 슬기'를 북돋우려는 뜻이지 싶습니다. '세는 놀이'를 하면서 수학을 익히고, '생각하는 즐거움'을 헤아리면서 수학을 배웁니다.

덧붙이는 글 | <수학의 수학>(김민형·김태경 글 / 은행나무 펴냄 / 2016.1.13. / 12000원)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수학의 수학 - 옥스퍼드대 김민형 교수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학 강의

김민형.김태경 지음, 은행나무(2016)


태그:#수학의 수학, #김민형, #김태경, #수학, #셈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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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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