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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 중인 버니 샌더스.
 연설 중인 버니 샌더스.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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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어딘가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TV에서 유튜브에서 들었던... 약간 쉰 듯, 절규하는 듯한 그 목소리. 건물 밖으로 연결된 스피커 앞엔 미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이들이 뒤꿈치를 들고 휴대폰을 대고 한마디도 빼놓지 않으려는 듯 귀 기울이고 있었다.

50분 연설에 74번의 환호와 박수

뉴햄프셔 동부 포츠모츠에 있는 그레이트 베이 커뮤니티 칼리지 강당 안엔 벌써 1200여 명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연설회장 안의 온도는 입고 온 외투가 거북스럽게 매우 높았다. 반은 청중, 반은 기자인 듯싶은 사람들. 피켓을 들고 환호하는 청중들과 노트북, 수첩, 카메라를 들고 취재하는 기자들로 강당은 발 디딜 틈이 없다.

그 청중들 앞에 사진으로만 보았던 할아버지가 주먹을 쥐며 연설을 하고 있다. 생각보다 큰 키에 은발의 은테 안경을 낀 남자, 버니 샌더스 (Bernie Sanders) 바로 그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행진을 뒤따르던 스무 살 청년이 일흔 넷의 나이에 미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저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역사의 현장에 있다는 생각마저 드는 순간이었다.

헐렁한 기지바지에 남색 스웨터는 방송에서 봐왔던 양복에 넥타이보다 편안해 보였다. 연단을 짚은 왼손은 구부정한 그의 허리를 받쳐주고 있었고 허공을 향한 오른손은 연설의 핵심을 짚어주고 있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는 전국에 생중계되는 수백대의 카메라를 응시하며 말했다.

"백만장자들이 하는 역할, 그건 우리가 맡아 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소수의 부자들이 아니라 우리들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트럼프처럼 우리를 이간질 하려는 자들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뉴햄프셔 로컬 뉴스 기자에 의하면, 이날 샌더스는 50분에 걸쳐 연설을 했고 관중은 일흔 네 번의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41년생 노 '혁명가'는 강당에 모인 1200명을 40초에 한번씩 감동을 준 것이다.

"월가가 정부를 좌우하게 할 순 없어"

자넬과 크리스 부부. 'Bernie for the Future' 티셔츠는 자넬의 작품.
 자넬과 크리스 부부. 'Bernie for the Future' 티셔츠는 자넬의 작품.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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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칼리지 강당에 모인 이들의 면모는 다양했다. 피어싱을 한 대학생부터 버니와 동갑이라는 할아버지, 12살 레드삭스 팬부터 30년 간호사 아줌마까지... 20~30대가 다수일 거라는 내 예상은 현장에서 빗나갔다. 그들이 샌더스를 지지하는 이유도 다양했다.

"나는 2004년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이 될 때도 자원봉사를 했어. 그런데 언제부턴가 월가가 정부의 정책을 좌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지. 그걸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샌더스뿐이다 싶었어. 그는 우리 미국에 특별한 기회라 믿어."

크리스가 자랑스레 입고 있는 티셔츠는 셔츠 제작자인 아내가 직접 만들었다고 했다. 영화 'Back To The Future'를 패러디한 'Bernie For The Future'는 버니 지지자들에게 최고 인기라는 말도 곁들이면서.

간호사 코키
 간호사 코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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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한 전미 간호사 노조는 버니를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있어. 그는 지난 20년동안 한결같이 우리 간호사들과 함께해주었거든. 가장 낮고 힘든 곳에서 궂은일을 하는 우리 간호사들은 우리를 알아주는 버니를 열심히 응원중이야."

메인 주에 살지만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 휴가까지 내서 달려 온 간호사 코키는 사람 만나는 게 직업인 만큼 뉴햄프셔에서 샌더스를 위해 캔바스(Canvass: 지지를 위해 가가호호 방문하는 유세 방법)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연설 중 샌더스가 청중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각자 학자금 대출이 얼마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마치 골동품 경매장처럼 여기 저기서 자신의 빚 액수를 외쳐댔다. 그 때 뒤쪽의 한 젊은이가 크게 소리쳤다.

"11만불"

안경 너머로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은 샌더스가 말했다.

"그래, 당신이 이겼다."

버니의 연설을 듣고 있는 학생들
 버니의 연설을 듣고 있는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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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하자마자 우리 돈 1억 3천만 원의 빚쟁이가 될 수 있는 것, 그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그런 이유로 오늘 모인 20~30대들이 샌더스에게 향하는 마음은 간절함 그 자체였다. 올해 대학 2학년인 올리비아와 메간도 그래서 샌더스를 지지한다고 했다. 학비가 무료인 아일랜드에서 왔다는 시니아도 학자금 융자 때문에 허덕이는 남편과 열심히 버니를 돕는다고 했다.

100년전 여성의 투표가 어불성설이던 때처럼, 오늘 만난 젊은이들도 잘못된 것은 순응이 아니라 바꾸어야 하는 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 앞에 버니 샌더스가 서 있다. 그들은 왜 버니를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한결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해낼거야. 그가 평생 그랬던 것처럼."

뉴햄프셔를 달리는 많은 차량 번호판에 새겨진 문구가 있다

'Live Free or Die 자유 아니면 죽음'

프랑스 혁명에서 빌려 온 스테이츠의 공식 모토다. 뉴햄프셔는 미국 정치 혁명의 시작을 알렸다. 샌더스는 9일(현지시각) 미국 대선 레이스의 두 번째 경선인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 20% 포인트 이상 크게 앞서나가며 일찌감치 승리를 확정지었다.

<자유 아니면 죽음Live Free or Die> 뉴햄프셔 번호판을 단 버니 지지자
 <자유 아니면 죽음Live Free or Die> 뉴햄프셔 번호판을 단 버니 지지자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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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버니샌더스, #뉴햄프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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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뉴욕 거주중.

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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