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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시작인 며칠 전 우리 사회 불안한 노동 현장과 관련된 한 기사를 접했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고객들의 부당하거나 과도한 요구나 잘못에도 무조건 "죄송, 죄송" 할 것을 강요받는 감정노동자들. 그들은 그 수위가 훨씬 높아지는 명절이 더 괴롭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숨은 노동 찾기>(오월의 봄 펴냄)는 우리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고 관련 글쓰기를 하고 있는 3명의 르포 작가 최규화, 정윤영, 신정임씨가 우리사회 불안정하고 부당한 노동현장과 노동자들을 기록한 책이다.

<숨은 노동 찾기> 책표지.
 <숨은 노동 찾기> 책표지.
ⓒ 오월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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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만날 수 있는 노동이나 그 현장은 학교급식실, 서울고속도로 톨게이트 등 10곳. 글쓴이들이 토론을 통해 현장을 선정했다는데, 그간 여타의 언론에서 깊이 다루지 않은 곳들을 우선했다고 한다. 그리고 가급 여러 지역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했다고 한다.

명절이 더 괴롭다는 감정노동자들의 현실, 그에 관한 기사를 읽으며 최규화가 만난 콜 센터 상담원 봉혜영씨와, 정윤영이 만난 서울고속도로 톨게이트 수납원 한은미씨. 그리고 신정임이 만난 대형마트 노동자 김진숙씨 편에서 읽은 몇몇 부분들이 휙휙 떠올랐다.

"어떤 젊은 사람이었는데 지금도 기억이 나요. 고객이 나한테 성질을 냈어요. 왜 이렇게 비싸냐고. 여기가 민자 구간이라 그렇다고 했더니, '집어 치우고 한 마디만 더 하면 침 뱉을 참이니까 사장한테 가서 그대로 전하라'그러는 거예요."

여성 노동자가 8시간 동안 혼자 일하는 밀폐된 공간은 온갖 욕설과 성희롱을 당하기에 적절한 장소로 보였고, 차 한 대가 지나가는 7초의 시간은 꽤나 길게 느껴졌다. 나이가 많은 남자들은 손을 잡고 놓지 않기도 했다. 아예 톨게이트로 들어오기 전부터 바지를 내리고 오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내비게이션에 야한 동영상을 틀어놓고 "아줌마 이것 좀 봐" 하며 한참을 안 가는 트럭 기사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을 보면 기가 막히지만 그렇다고 화를 내거나 욕을 할 수는 없다. 그런 이유로 민원이라도 들어왔다가는 도리어 사과를 하고 경위서를 제출해야 한다. 수납원들은 다음 차가 얼른 오기를 기다리며 창문을 닫는 것 말고는 아무런 할 것이 없었다. - <숨은 노동 찾기>에서.

이 부분은 잊고 싶어도 특히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우리도 자주 이용하는 외곽순환도로, 그것도 하필 내가 사는 곳 인접 톨게이트에서 일하는 데다가, 다른 고속도로 구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통행료 때문인지 그간 더러 앞차의 '거칠고 큰' 소리를 목격하기도 했던 터라, 한은미씨 편(고속도로 위 마네킹처럼 앉아있는 그녀들)은 좀 더 특별하게 읽혔다.

한은미씨와 같은 서울고속도로 하청 수납원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 다시 말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일까? 그녀에 의하면 "차 한 대가 지나가는 7초 동안 수납원들이 지켜야 하는 21가지 매뉴얼들을 토대로 점수를 매기는 국토부에서 실시하는 CS평가(고객만족평가)"다.

CS평가는 어둡고 한적한 지하통로를 매일 몇 번씩, 그것도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 여자 혼자 8분 가까이 걸어야 한다거나, 규정대로 제대로 쉬지 못한다거나 하는 열악한 근무조건, 최저시급 5210원(2014년 기준) 계산 월급 같은 것보다 더 수납원들을 정신적으로 힘들게 한다고 한다.

'돈을 확인하고 거스름돈을 주고 받는 것으로 빠듯한, 별 생각 없이 미리 챙겨둔 돈을 건네고 가급적 빨리 통과하고 마는 그 몇 초 동안 수납원들이 지켜야 하는 것들이 21가지나? 대체 뭐가 그리 많을 수 있을까? 오타 아냐? 21가지가 정말 가능한 건가?'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부터 들었다.

그런데 7초 동안 지켜야 할 것 21가지가 맞다. 그녀에 의하면 "귀고리 크기부터 머리모양, 립스틱 색깔까지 정해져 있다. 또 고객에게 공손하게 인사하는 법과 순서도 정해져 있다. 매뉴얼 대로라면 수납원들은 차가 지나갈 때까지 고객을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감정노동자들이 회사가 들어야 할 불만과 욕설을 대신 들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잘못을 빌어야 하는 자신의 일이 억울하면서도, 잘리지 않기 위해 기꺼이 화풀이 창구가 돼 주었다. 회사는 노동자들의 친절을 방패삼아 자신의 배만 불렸다. 그러나 고객의 불만과 요구는 회사를 향한 것이지 직원들의 친절함 문제가 아니다. "웃음으로 모든 걸 무마하는"거라던 한은미씨의 말이 떠올랐다. 거대한 회사가 참으로 교묘하게 느껴졌다.

톨게이트 수납원들은 일을 할 때 생각을 비우고 습관처럼 웃는 얼굴을 한다고 했다. 노동자들이 꼭 친절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회사뿐 아니라 고객들도 노동자라면 으레 그런 줄 알고 친절을 강요한다. 그 친절과 웃음에 점수를 매긴다고 하니, 더욱 미안해지고 불편해졌다. 노동자들이 자기 얼굴과 목소리로 일에 집중할 수 있으면 하고 바라본다. - <숨은 노동 찾기>에서.

사측은 잔인하게도 매달 점수를 공개한다. 그리하여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은 제주도 여행 등과 같은 일종의 포상을 한다. 반대로 낮은 점수를 받은 사람에게는 화장실이나 사무실과 연결된 지하통로 계단 청소를 시키거나, 8시간 동안 서서 고객들에게 인사를 시키는 등을 비롯한 다양한 벌을 내린다.

수납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벌은 감봉과 강등. 그러니 낮은 점수를 피하려면 무례하기 짝이 없는 모욕과, 성희롱까지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수밖에 없다. 책에는 6년차 직원들이 시간제 아르바이트로 강등된 경우 등을 소개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런 젠장! 사측도 잔인하기 이를 데 없고, 먹고 사는 값도 참 잔인하단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면, 그녀가 일하는 외곽순환도로 167명 수납원들의 평균점수는 97점. 이처럼 높은 점수가 가능한 것은 '친절하기도 하지만 최하위를 받으면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서울고속도로 소속 수납원들은 CS평가란 것이 없단다. 또, 과도한 친절이라며 불편해하는 이용자들도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굳이 필요하지 않을 CS평가이지 않은가.

고속도로를 자주 이용하면서도 톨게이트 수납원들은 명절이나 주말에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책 덕분에 처음 알았다. 조금만 관심을 두면 마네킹이 아닌, 가족들과 단란한 주말이나 명절을 보내고 싶은 그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보였으련만, 내 일이 아니라 그간 무심한 때문에 이 쉬운 사실을 인식조차 못한 것이다.

책을 통해 만나는 노동자들은 고속도로 톨게이트 수납원 외에 학교급식실 조리원과 콜 센터 상담원과 알바노동자, 대리운전자, 장례지도사, 청소노동자, 보조출연자, 그리고 요양보호사와 대형마트 노동자다. 글쓴이들은 이들을 인터뷰, 자신들의 시각은 최대한 배제하고 주인공들의 목소리와 입장을 우선해 썼다고 한다. 때문일까. 책을 통해 만나는 노동현장과 저마다 처한 사정들이 현실감 있게 와 닿았다.

그러고 보니 내 이웃에나 각별한 마음을 나누는 지인 중에 고속도로 톨게이트 수납원과 장례지도사, 보조출연자 빼고 나머지 직업의 사람들이 다 있다. 그래서 다만 그런 일을 하는 사람 또는 막연하게 힘들겠다고 생각하고 말았던 그들이 하는 일을 어느 정도 알게 하고, 그 처지와 입장을 헤아리게 하는 이런 책이 고맙기도 하다. 

책을 다 읽은 지 여러 날이 지났다. 여러 사람의 고통과 눈물, 그에 대한 책이라 그 어떤 책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우리의 부당한 노동 현실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라면서도 책 소개 글을 선뜻 쓰지 못했다. 책 속 주인공들이나 글쓴이들을 대신해 독자들에게 호소하고 싶은 것들이 그 어떤 책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줄까? 고민도 컸다. 그리하여 어떤 날은 대형마트 노동자 김진숙씨 이야기를, 어떤 날은 청소노동자 박봉순씨 이야기를 우선해 책 소개 글을 썼다. 앞서 절망부터 배우고 있는 내 아이들 또래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안타깝고 사회선배로서 미안해 알바노동자들의 인터뷰를 우선해 쓴다고 다시 읽기도 했다.

이처럼 많은 시간을 들여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그런 책이라는 것으로, 여러 사람들의 동참이 필요한 책 속 글을 내세워 가급 많은 사람들이 꼭 읽기를 부탁드린다. 

"때마다 알바들의 권리에 대해 SNS에 뿌리는데 그런 게 보이면 적극 '좋아요'와 '공유하기'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자기 SNS 친구들 중에 알바들이 한 명 이상은 꼭 있을 거거든요. 그리고 저희 알바상담소 번호가 1800-7525(전국 어디서나)예요. 꼭 자기가 상담할 일이 없더라도 그 전화번호를 핸드폰에 저장해두셨다가 '누가 알바 하다가 돈 떼였다더라' 하는 걸 들으면 바로 알려 주세요" - <숨은 노동 찾기>에서.

덧붙이는 글 | <숨은 노동 찾기>(최규화. 정윤영. 신정임 외 공저) | 오월의봄 | 2015-12-24 | 13,000원



숨은 노동 찾기 - 당신이 매일 만나는 노동자들 이야기

최규화.정윤영.신정임 지음, 송기역 기획, 오월의봄(2015)


태그:#노동자, #알바상담소(1800-1575), #알바노동자, #톨게이트 수납원, #오월의 봄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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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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