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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은 가족과 함께 하는 즐거운 날이다. 하지만 집에 가는 것이 끔찍한 사람들도 있다. 백수라면 단기 알바라도 해서, 일을 핑계로 고향 행을 피하고 싶어진다. 모 영어학원에서는 고향에 가기 싫은 취업준비생들을 위해 '명절대피소'라는 이름으로 공부 공간을 마련했다.

알바노동자라면 친척들에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밝히기가 저어된다. 얼마 전에는 한 취업준비생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며 1년간 거짓 출근을 하면서 생활비를 대출 받아 월급을 받는 것처럼 지내다가 자살했다. 2015년에도 취업에 번번이 떨어진 취업준비생이 자살을 했다.

자신이 처한 경제적 조건과 상관없이 즐겁게 사람들을 만나고, 최소한 일자리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것을 위해서는 당신이 어떤 직업을 선택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하며, 소득이 충분해야 하고, 지금 당장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것이 생계에 절대적 위협이 되지 않아야 한다.

중요하게는 백수나 알바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사회로부터 경멸적인 시선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어야 한다. 기본소득은 이러한 변화를 위한 조건일 수 있다. 사회에서 대표적으로 하찮은 일로 취급되는 알바노동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자.

좋지 않은 일자리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

요즘, 알바노조는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것에 대한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있다. 일명 알바차별금지법을 총선에서 중요한 의제로 제시할 생각이다.

하지만 모든 알바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한다고 해서 알바노동자들의 노동형태가 달라질 수 있을까? 법만으로는 안 된다. 아무리 노동인권 교육을 하고 사회적인식이 변한다고 해도, 사장님들은 상대적으로 사회적 힘이 약한 노동자들에게 비용을 절감하고 싶은 유혹이 있다.

이것은 도덕적 문제가 아니다. 영국노동계급의 형성이라는 책을 보면, 산업혁명 시기 새로운 기계가 발명되었을 때, 신제품은 즉각 노동자를 대체하지 못했다. 사람의 가격이 기계의 가격보다 낮으면 사장은 기계를 도입하지 않고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을 택한다.

대한민국이 독보적인 OECD1위를 달리고 있는 산업재해 문제도 마찬가지다. 2014년 대한민국에서 일을 하다가 사망한 사람의 숫자는 1850명(노동부 산업재해 현황분석)으로 하루 5명씩 일을 하다가 죽는다(이 숫자는 통계에 잡힌 사망자 수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산업재해는 안전 불감증 때문에 발생할까? 아니다. 사람의 목숨 값이 안전에 대한 시간적 물질적 투자비용보다 저렴할 때 산업재해가 발생한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왜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으며, 일상적인 인격모독이 일어나고, 안전하지도 않은 데다가 임금도 낮은 일자리를 거부하지 못할까? 많은 사람들은 개인의 능력이 모자라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좋은 조건의 일자리에서 일할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혹은 노동력의 공급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공급이 너무 많으니깐 가격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노동시장이 완전히 경쟁적일 때만 성립 가능한 이야기다. 즉 노동력을 공급하는 노동자들이 임금이 낮을 때 노동력 제공을 거부할 권리가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나 노동력은 다른 상품과 다르다. 노동력은 팔리지 않을 때 창고에 들어가서 보관될 수 없다.

당장 생존의 문제, 즉 생계비의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또한 공정한 시장질서가 성립해야 한다. 가령 근로기준법을 어기거나 최저임금 미만의 일자리가 있다면 시장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노동청이나 고용노동부이지만, 알바노조가 1월 22일 서울고용노동청 점거를 통해 알렸듯이 근로감독관은 노동자를 위해 제대로 일하지 않고 있다.

최저임금이 시장가격보다 너무 낮으면, 사장이 좋은 조건의 일자리를 만들어 비싼 일꾼들을 잘 소비하려고 하는 유인도 사라진다. 작업환경과 근무조건에 투자하기보다는 저렴한 노동력상품을 쓰다 버리는 게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노동자들에게 현저하게 불리한 노동시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구이다. 근로기준법 위반 일자리, 위험한 일자리, 성희롱과 인격모독이 일어나는 일자리를 거부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특히 알바노동자들에게 기본소득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요구할 수 있는 든든한 '빽'이 될 수 있다. 근로계약서 이야기만 꺼내도 해고되는 알바노동자들은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있다면 최소한 해고 이후의 생계비 걱정 때문에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을 망설이지는 않을 것이다. 알바노조 입장에서는 해고기금 또는 파업기금이 사회적으로 마련되는 것이다. 이렇게 노동자들이 저질의 일자리를 거부하게 된다면 사장들 사이에서 노동자들을 고용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질 것이며, 사회 전반적으로 일자리 질이 높아질 것이다.

실업급여 vs 기본소득

기본소득은 실업급여제도와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있다. 실업급여제도는 심사와 선별적 조건을 전제한다. 특히 알바노동자에게는 고용보험 가입이 관건이다. 알바노동자들이 일하는 일자리의 대부분은 4대 보험 가입을 당연시 하지 않는다. 첫 시작부터 난관이 있다. 고용보험 가입 조건을 완화하거나 모든 사업장에서 4대보험 가입이 의무화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노동자는 자신이 구직의사가 있음을 국가에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구직급여를 타기 위해 자신이 흥미를 가진 일자리와는 반대로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어야 한다. 또한 직장을 가지게 되면 실업급여가 중단되기 때문에 실업함정에 빠지게 된다. 실업함정이란, 직장을 가졌을 때의 수익이 구직급여의 금액과 별 차이가 없을 때 일을 하기보다는 구직급여를 받는 것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구직급여를 100만 원을 받고 있는데, 126만원 짜리 일자리를 구할까?

기본소득은 조건 없이 주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실업함정이 없다. 일을 한다고 해서 기본소득의 지급이 중단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효율적인 노동시장을 만들 수도 있다. 현재 우리가 직업을 선택할 때는 생계의 이유가 제1순위다. 자신의 적성과 흥미, 존엄과는 거리가 멀다. 기본소득은 자신이 꿈꾸고 욕망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당장 다음 달의 월세나 식비, 교통비를 위해 저임금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또한 존엄의 문제가 있다. 구직급여 대상자, 실업자라는 사회적 낙인은 노동자가 당당한 주체로서 살아가지 못하게 한다. 여기서 기본소득의 무조건성이 가지는 강력한 힘이 있다. 수급조건은 오로지 '존재'다. 그것은 우리 사회 전체가 사람에 대한 존엄을 표하는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박원순 서울 시장의 청년수당과 이재명 성남시장의 청년배당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기본소득은 존엄의 문제

녹색당이 만든 기본소득 통장 샘플.
 녹색당이 만든 기본소득 통장 샘플.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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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OECD 독보적인 1위인 자살과 기본소득이 불러올 존엄의 문제로 이야기를 마치고자 한다. 알바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알바나 하지"다. 세인의 눈에는 알바노동자들이 하는 일이 하찮게 여겨지는 것이다.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시간당 6030원짜리 일이나 하는 사람들이 한심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래서 새벽시간 편의점에는 알바노동자들에게 술주정하는 아저씨들이 그렇게 많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알바에게 반말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것이다.

노력하지 않아서 실패하는 것이라는 신념이 확고한 사회에서 기본소득 지급은 사회적 토론과 합의가 필수적인 아이디어다. 이것은 철학적인 문제이자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만약, 우리가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결정한다면, '존재하다면 권리가 있다'라는 선언을 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당신이 백수이든 알바를 하든 나이가 적든 많든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에서 성남시에서 시행되고 있고, 녹색당과 노동당에서 기본소득을 이야기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박정훈 기자는 알바노조 위원장입니다.



태그:#알바노조, #기본소득, #박정훈, #이재명, #청년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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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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