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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소리 없이 눈 내리는 밤/ 누나도 잠이 들고 엄마도 잠이 들고/ 말없이 소리 없이 눈 내리는 밤/ 나는 나하고 이야기하고 싶다. (눈 내리는 밤-강소천)

겨울 눈을 주제로 한 위 동시의 작가는 겨울 눈의 '과학적 속성'을 무의식중에서라도 예리하게 간파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대다수 사람들은 눈을 연상하면 십중팔구 먼저 흰색을 떠올릴 것이다. 헌데 위 동시의 작가는 누구나 다 아는 눈의 색깔이 아니라 눈의 '소리' 특성에 귀를 열고 있다. 감각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눈 오는 날은 유달리 사위가 조용하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눈은 비와 본질적으로 똑같지만, 물리적 속성은 사뭇 다르다. 구태여 비유하자면 성격이 판이한 형제지간 정도라고나 할까? 비는 도로나 지붕을 때리면서 요란한 소리를 낸다. 물이 고인 자리나 연못 위에 떨어지는 비도 다르지 않다.

반면 대략 같은 무게라면 부피가 비보다 10배쯤 큰 눈은 소리 없이 내린다. 이미 쌓인 눈 위로 내리는 눈은 너무도 살포시 떨어지는 탓에 눈 위에 귀를 바짝 대고 있다 해도 낙하해 착지할 때 발생하는 소리를 감지할 수 없다.

눈이 내리면 주변이 고요해지는 건 눈의 뛰어난 '흡음력' 때문이다. 음악 녹음 스튜디오나 아파트의 피아노 교습 방 등은 흡음력이 뛰어난 소재로 벽을 꾸미는 경우가 많은데, 조금 과장하면 눈의 흡음력은 웬만한 상업용 흡음 소재에 밀리지 않을 정도이다.

물리학에서 흡음력은 흔히 0에서 1까지로 표현되는 흡음계수로 설명된다. 1이면 완벽하게 음을 흡수해 버리는 것이고, 0은 반대로 소리를 100% 반사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상업용 흡음재는 보통 스티로폼이나 섬유재질 등으로 만들어지는데, 일반적으로 흡음 계수가 0.6~0.8 정도이다. 고급 자동차의 소음이 적은 이유 중 하나는 흡음 계수가 높은 소재를 사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눈의 흡음력은 대체로 적설량과 비례하는데, 학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5cm 정도 눈이 쌓여 있다면 흡음계수는 0.6 안팎이다. 한마디로 상업용 흡음 재료들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다. 이러니 눈이 많이 오면 사방이 유달리 조용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눈의 뛰어난 흡음력은 소음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지만, 눈사태 발생으로 사람이 눈 속에 묻힐 때 구조 등을 어렵게 하는 단점도 있다. 눈의 뛰어난 흡음력은 눈 사이에 빈 공간이 많은 덕분인데, 사람이 파묻힌 눈의 깊이가 50cm 정도만 돼도 구조 요청을 하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눈사태를 당한 사람을 구조할 때 막대기 같은 걸로 찔러보는 이유는 소리로는 위치 확인이 어렵기 때문이다.

미세한 공간이 많은 눈의 다공성은 눈을 밟을 때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나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눈을 밟을 때 나는 소리 또한 대부분의 다른 소음 발생 이유와 마찬가지로 마찰에서 비롯된다.

마찰 정도는 마찰계수로 정의될 수 있는데, 눈은 얼음판보다는 마찰계수가 높다. 다시 말해, 빙판보다는 눈이 쌓여 있는 곳에서 자동차가 덜 미끄러진다는 뜻이다. 또 같은 눈일 경우에는 다져진 눈보다 새롭게 쌓인 눈의 마찰력이 최소 2~3배 이상 높다. 운전 경력이 꽤 되는 운전자라면 경험적으로도 이 같은 사실을 잘 것이다. 눈의 흡음력과 마찰 정도는 그러고 보면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    

덧붙이는 글 | 위클리 공감(korea.kr/gonggam)에도 실렸습니다. 위클리 공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정책주간지 입니다.



태그:#눈, #조용, #흡음, #방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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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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