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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한가롭던 마을 공용 주차장이 제법 붐빈다
▲ 마을 공용 주차장 평소에는 한가롭던 마을 공용 주차장이 제법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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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다를 것 없는 까치집이지만 고향을 찾은 이들에게는 오늘따라 더욱 정겹게 보일 것이다.
▲ 동구밖 정자나무의 까치집 어제와 다를 것 없는 까치집이지만 고향을 찾은 이들에게는 오늘따라 더욱 정겹게 보일 것이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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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들이 떼지어 오르락내리락 수선스럽다. 까치도 설이라고 음식 장만을 하는지, 아니면 집집마다 풍기는 맛난 음식냄새에 회가 동했는지.

지난 3일, 동구 밖 정자나무 주위가 모처럼 사람소리 차 소리로 요란 시끌벅적하다. 하지만 시끄러운 게 아니라 훈훈하다. 사람 사는 것 같다. 개울을 군데군데 덮어서 만든 공용 주차장은 오랜만에 차가 그득하다. 평소에는 거의 비어 있던 주차장에 차들이 들어차니 신기하기도 하고 괜히 가슴이 뿌듯하기도 하다.

불린 떡 쌀을 가지고 떡 방앗간에 갔다. 시골 방앗간치고 엄청 넓은 편인데도 가래떡을 빼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실내를 둘러보니 왼쪽에는 간격이 촘촘하면서도 넓은 선반이 늘어서 있고, 선반 위에는 썰어 놓은 가래떡을 말리는 중이었다. 그 양이 얼마나 많은지 입이 떡 벌어졌다. 그 아래에는 사람대신 떡쌀을 담은 함지들이 얌전히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입을 벌리고 감탄하고 서 있는데 주인이 다가오더니 오히려 나를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장성 사람이 아니구만이라... 이런 광경 첨 보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이 술술
▲ 가래떡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이 술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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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그 다라이 뒤에다 놓으시오."

그래도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의 아래 위를 살펴보더니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말했다.

"떡 뽑으러 온 거 아니요?"
"아, 예, 맞아요. 떡 뽑으러 왔어요."
"이, 장성 사람이 아니구만이라. 이런 광경 첨 보요?"
"예, 처음 봐요. 이렇게 큰 떡 집이 있다니, 이 게 다 이번에 뽑은 떡이에요?"

떡 방앗간에 모인 어르신들이 이야기꽃을 피우신다.
▲ 이야기꽃 떡 방앗간에 모인 어르신들이 이야기꽃을 피우신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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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양이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신기했는지, 우스웠는지 많은 눈들이 내게로 쏠렸다. 나는 얼른 모른 척 하고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가 봤다. 안쪽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이 차지게도 술술 나오고 있었다.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고 나오려는데 삼삼오오 모여 앉은 할머니들이 하하호호 재미지게 이야기들을 나누고 계셨다.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이야기의 내용들은, 자식들 얘기다. 엄격히 말하자면 자식 자랑들이었다.

'우리 아들이 스웨터를 사 왔다' '용돈을 얼마를 준다' '다리가 저리다고 했더니 일부러 와서 병원을 데리고 갔다왔다' 등등 자식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 그런 것까지도 자랑을 하는 그 모습들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반면에 한편으로는 짠하기도 했다.

떡쌀 함지를 맨 뒤에다 놓고 언제 찾으러 오면 되느냐고 물었더니 나흘 뒤에 오란다. 또 한 번 놀랐다. 떡을 빼는 양도 많거니와 어느 정도 말라야 썰기가 좋기 때문이란다. 수요일에 맡긴 떡을 토요일에 찾으러 오라는 이야기다. 조금 멀긴 하지만, 일요일(7일)에 서울에 가니 차질없이 토요일에만 찾을 수 있다면 문제 없겠다는 생각에 "그러마" 하고 떡집을 나섰다.

지난해 시아버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뒤에 가족회의를 했다. 시동생들, 시누이들, 우리 아이들을 포함한 열대여섯 명이 의논한 끝에 설과 추석은 서울에서 차례를 지내고 제사는 시골에서 하는 걸로 중지가 모아졌다. 그 이유는, 제사 때는 교통대란이 없는 평일이고, 산소를 찾아 봬야 하니까 시골에서 모이고, 그것을 계기로 동기간이 시골집에서 모여서 얼굴들 보는 것은 어떻겠느냐는 의견에 모두 찬성표를 던진 게다.

늘 오늘만 같아라

어르신들은 앉아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동안 떡쌀을 담은 저 그릇들이 줄을 서고 있다
▲ 질서 어르신들은 앉아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동안 떡쌀을 담은 저 그릇들이 줄을 서고 있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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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과 추석에는 민족 대 이동이 있는 관계로 교통이 복잡하다. 그러니 우리 내외만 역귀성을 하면 서울이나 서울 인근에 사는 여러 명의 동기간들이 모이기에 편리한 점을 들어 그렇게 정했던 것이다.

7일, 장성에서 서울로 오는 버스는 예상했던 대로 한가했다. 설 전날이지만 빈자리가 제법 있었다. 강남고속버스 터미널이 임박해 오자 여기저기서 전화소리 요란하다.

"이, 지금 다 와 가야. 니는 어딘디?"
"이, 시방 쪼까만 돌아가믄 돼야."

이런 저런 전화통화가 끝나자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행복에 겨운 소리가 더욱 시끌벅적하다. 각자 버스에 타고 만난 옆자리 사람들이 어느 결에 친해져서 서로들 자기 자식들을 발견하고 반가움에 소리친다.

"쩌그 우리 아들 나왔네."
"우리 아들도 나왔어라."

그 소리가 하도 재미있어서 나도 가만히 속으로 따라해 봤다.

"쩌그 우리 아들도 나왔어라."

그런데 우째 이런 일이! 혼자 가만히 중얼거렸는데 옆의 할머니께서 들으시고 내 팔을 툭 치시며 한마디 하셨다.

"거그 아들도 나왔어라?"

얼결에 '예' 하고 대답을 했더니 주위에 있던 차안의 사람들이 왁자하게 웃었다. 그 웃음들이 얼마나 해맑고 근심걱정이 없어 보이던지! 병신년 열 두 달이 이 사람들에게 오늘 같았으면 싶다.


태그:#설, #떡 방앗간, #정담, #고향,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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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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