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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화에서 이어집니다.

역사적으로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하기 전 일제 이토 히로부미는 1907년 음모에 앞장섰다. 음흉하게도 고종 퇴위, 양위에 이어지는 순종 등극의 모든 기획을 도맡았다는 것이다. 역사적인 선행 학습 덕택인지 이토 후예들 일왕 선양 작업도 착착 진전되고 있다.

'다케우치 메모'에는 '①유력 황족들, 황제폐하 양위 주청 포섭 ② 황제 폐하 고령 문제 언론 플레이 ③황태자 전하 등극 의사 확인 및 부각화 총력  ④황제폐하 선양' 등 4단계 주요 과정이 적혀 있다. 그리고 세부 사항에 대한 실행 계획 청사진도 짜였다. 만에 하나 황제가 양위를 거부할 경우 황제를 언론과 격리시키는 방안과 황제를 압박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도 제시돼 있다.

이 계획이 보고된 다음 미우라 전 총리는 다케우치를 칭찬한다.

"역시 자네는 전략가이자 전술가야. 큰 그림도 그릴 줄 알고, 디테일에도 물샐 틈이 없어. 원래 그러기가 힘든데 자네는 정말 능력이 출중한 별종이야, 별종! 하하하!"

이 대목에서 속내는 아니더라도 다케우치가 겸양을 보여야 하는 게 당연하다. 하다못해 '별말씀을요'라는 요식적인 말도 없다. 오히려 다나카 간사장이 귀 기울여 들으라는 것처럼 뻐기는 눈치다.

'저 미우라의 어린 개. 그래, 마음껏 즐기고 까불어라. 너의 숨통은 내가 쥐고 있단다. 사냥이 끝나면 곧 삶아 줄게.'

다나카 간사장 머리끝까지 분이 차오른다. 너무 방자하다. 그 오만이 눈덩이 굴리 듯 점점 더 커져 감당하기 힘들다.

'미우라, 늙은 여우. 조선 민비를 죽일 때 작전명이 '여우사냥'이었지. 이번에 내가 당신을 잡는 '여우사냥'을 벌여줄 게. 정계에서 영원히 떠나.'

속으로라도 이렇게 무언의 소리를 질러댄다. 그렇지 않으면 분노 조절 장애 증상이 폭발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조금 나아졌다. 세 사람 회동을 마치고,  짜증이 잔뜩 묻어 있는 명예회장실을 나온다. 그런 다나카 단장에게 미나미 겐조 의원이 바싹 붙는다.

"단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따가 저녁 시간에 그곳에서 뵙겠습니다."

은밀하고도 신속하게 의사만 전한다. 실내라면 어디든 도청 위험성은 물론 해상도가 높아진 CC-TV를 통해 입술도 쉽게 읽힐 수 있다는 우려를 미나미 의원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나미 의원 선택이 탁월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우울한 다나카 단장에게 정보 전달과 함께 오랜만에 '분내'도 맡을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다.

모두는 아니다. 그러나 남자라는 것들 대부분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 아름다운 여자를 좋아한다. 영화 <행오버(The Hangover)>에서도 결혼을 앞둔 친구 더그(저스틴 바사)의 '총각파티'를 위해 라스베가스로 떠난다. 그리고 술을 진탕 마시고는 다음날 일어났지만 숙소는 난장판이 됐다. 뿐만 아니라 신랑 더그는 행방불명. 전날 기억을 더듬지만 아무 것도 떠올리지 못하는 친구들. 결국 필(브래들리 쿠퍼), 신부의 오빠 앨런(자흐 갈리피아나키스), 스투(에드 헬름스)는 '잃어버린 기억'과 없어진 더그를 찾아 나선다.

 영화 <행오버(The Hangover)>는 남성들이 술에 취해 필름이 끊기는 '블랙 아웃(black-out)' 상태에서 난장판을 벌인 다음 날 '잃어버린 기억'을 역추적해 나가는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영화에서 남성들 치기와 예쁜 여자를 찾는 속성을 희극적으로 보여줬다.
 영화 <행오버(The Hangover)>는 남성들이 술에 취해 필름이 끊기는 '블랙 아웃(black-out)' 상태에서 난장판을 벌인 다음 날 '잃어버린 기억'을 역추적해 나가는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영화에서 남성들 치기와 예쁜 여자를 찾는 속성을 희극적으로 보여줬다.
ⓒ 영화 <행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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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조각들처럼 이어진 그들의 전날 행각은 어이없다. 만취한 다음 2차, 3차 술집을 전전하고, 스투는 거기서 만난 미모의 매춘부에게 사랑을 맹세한다고 생니를 뽑고, 그것도 모자라 간이 교회에서 결혼식까지 올렸다. 술 한 잔 하고 나서 그렇지 않아도 여자가 예뻐 보이는 '고글 이펙트(goggle effect)'에다가 조금이라도 아름다운 여성을 선호하는 남성적 속물 본능이 더해져 치른 결혼식이었다. 

그래서인지 남자의 세계, 특히 동양권이나 라틴계에서는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꼭 여자를 끼워 넣는다. 그 일 성사 뒤풀이에서 여자가 매개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게 비윤리적이든 반사회적이든 수컷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도 비슷하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진탕 술 마시고 처음 보는 여성과 뒹굴고 나서는 자기들끼리 일종의 유대감까지 느낀다고나 할까. 참으로 미개한 족속들인 것이 틀림없다.  

'라 스트라다'에 미나미 의원이 먼저 왔다. 다나카 단장이 늦게 와 자리를 잡는다. 이번에는 미나미 옆에 '하나'는 없다. 벌써 전(前) 파트너가 된 지 오래다. 새로운 '미니'라는 친구가 앉아 있다.

"하나 그 애는 다 좋은데, 너무 촌스러워서요. '체인징 파트너' 했습니다,"

미나미 의원이 자신의 경박과 천박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그렇다고 다나카 단장이 제재할 수도 없다. 지역 건설업을 하면서 번 돈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이 안 되는 인사다. 가끔 도움도 받는다. 그리고 늘 술값을 낸다. 그러니 뭐라고 말할 처지도 못 된다는 것이다.

"무슨 중요한 얘기가 있나?"

미나미 의원이 정색을 하고 눈짓을 한다. 시중을 들던 도우미들이 눈치 채고 조용히 자리를 비킨다. 미나미 의원이 다나카 단장 곁으로 바짝 다가가 남이 들을까봐서인지 너무나도 낮은 귓속말을 한다.

"개를 잡을 수 있는 정말 확실한 미끼가 있습니다."
"그래? 그게 뭔데."

지난번에 스텔라로부터 미나미 의원이 챙겨 놓은 성폭행 영상물 이외의 것이다. 오하라에게서 흘러나와 미키 그리고 스텔라를 거쳐 미나미에게 전달된 내용들이다. 다케우치가 미국에서 벌인 살인 교사, 그리고 마약 복용 등 다케우치를 더욱 옭죌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미나미는 설명한다.

"단장님, 이거 참 민망한 얘긴데요. 다케우치가 바이섹슈얼(양성애자)이랍니다. 이거 하나면 다케우치를 말에서 확실하게 치워버릴 수 있습니다."
"허허, 이거 뭐 '토사구팽'이든, '여우사냥'이든 너무 쉽게 끝나는 거 아냐?"
"그러니까요. 이제 걱정은 붙들어 매십시오. 오늘 거나하게 마셔 보세요. 자축해야죠, 자축! 늙은 여우와 어린 개의 명복을 빌며! 얘들아, 이제 들어와서 다나카 단장님 모셔라."

이게 그들 문화다. 그렇게 놀아야만 되는지에 대해서 그들은 고민해 본 적 없다. 그냥 당연히 여겼고, 그게 관습과 관행이 된 것이다. 그런 곳에서 추악한 음모도 싹트고 냄새나는 돈 거래도 이뤄진다. 이성은 마비되고, 비윤리는 일상이 된다. 그들 행태처럼 마음도 더러워졌기 때문이다. 아마 일본만이 아닐 것이다. 더하면 더했지 한국이라고 해서 다르리라고 생각하는 바보 또한 없을 것이다.

'이너 서클(inner circle)' 밖에서 타자의 눈으로 바라볼 때, 속된 말로 '꼬마 잡힌' 미나미 겐조 자민당 의원은 '말 잘 듣는 내부자'일 뿐이다. 다케우치에 대한 정보를 주면, 조르르 다나카에게 달려가 고자질한다. 그리고 필요한 것, 그것이 문건이든 말로 하는 내용이든 주문하면 득달같이 내놓는다. 이른바 '정보 자판기'인 셈이다. 최고의사결정연구단 전모, 현재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과 참여 핵심 인물들 얘기 등을 소상히 전해온다는 것이다.

곤다 의원이 한 일이라고는 지인을 통해 미나미 의원과 관련된 몇 가지 사실을 흘린 것이 전부다. 대놓고 협박이나 공갈을 한 사실도 전혀 없다. 도둑이 제 발 저렸고, 소금 먹은 사람이 물을 켠 대표적인 사례다.

야당 쪽이나 시민세력에게는 참으로 큰 보탬이 됐다. 예를 들어 어렴풋했던 미우라 전 총리 역할에 대한 사항이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가 실질적으로 보수 우익의 가장 정점에 있다는 사실을 미나미가 확인해 준 것이다. 이렇게 미나미 의원이 다나카 단장 오른팔이면서도 내부 극비사항을 자신 생존을 위해 밖으로 흘리고 있다는 사실만을 봐도 연구단은 기울어가는 달이 틀림없다.

도쿄대 혼고캠퍼스 근처에 있는 전일본공동체본부 사무실은 여전히 담배 연기 자욱하다. 예닐곱 명 되는 사람들 가운데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이는 김윤아 밖에 없다. 기존 의원들이나 그밖에 나이 든 사람은 없고, 젊은 사람들로 채워진 점이 보통 회의 때와 다르다. K가 개설한 인터넷 커뮤니티 '한국문화라운지' 부시삽 김윤아, 열혈회원인 중학교 사회선생 리에, 그리고 앳된 반정부 파워 블로거  '태풍의 눈' 등이 새로 참여했다.

미키는 일전에 공동체본부 도쿄지부장인 김원택의 후쿠시마 르포를 인터넷에서 읽은 인연이 있다. 거기에 미야자와 회장에게 소개를 받고, 김윤아와 리에를 공동체본부에 입회시켰다. '태풍의 눈'의 영입은 김원택의 작품이다.

회의가 시작한 다음 뒤늦게 미키가 도착했다. 담배 연기가 너구리굴 모양 가득한 사무실에 기겁을 한다.

"이제부터 사무실에서 절대 금연이에요. 제가 임산부라는 것을 늘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뱃속 아기 조슈아가 싫어하거든요."

창문은 물론 사무실 문까지 활짝 열어젖힌다. 한참 있다가 담배 연기가 모두 사라진 다음에야 입실한다. 임산부가 보이는 시퍼런 서슬에 누구도 찍소리 못한다.

"늦어서 미안해요. 병원에 좀 다녀오느라고요."

미키가 임신한 이후 가끔씩 부리는 유세다.

"민주당 실종자 백서, 다 만들어졌다면서요?"

김원택이 임시로 묶어 놓은 백서 한 권을 미키에게 전해준다.

"전국에서 6월 이후 실종신고 된 사람이 8월 말 기준으로 거의 3천 명에 가까워요. 아직 소재를 모르는 사람이죠. 작년 대비 배 이상 늘어난 수치라는 게 경찰청 자룝니다. 그리고 예년에 비해 특이한 점은 20대와 30대가 급증했다는 점이고요. 우리가 우려했던 대로 실종자 중 '자이니치(在日)' 출신 비율이 70%에 가깝고, 그들 중 90% 이상이 남성입니다.

거기 살펴보시면, 가족들 인터뷰한 내용 중 실종될 이유가 전혀 없다는 말이 대부분이고요. 실종 특징은 징후 같은 것이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집에 안 들어왔다는 얘기가 주륩니다. 사라진 다음 핸드폰을 포함해 전혀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하소연과 함께요.

그런데 실종 신고 이후 되돌아왔다는 소식이 거의 전무하다는 점이 특이해요. 가출한 경우에도 실종 신고를 하는 가족들이 많은데, 그럴 경우 경찰 통계에 따르면 20% 정도는 실종 신고 이후 1개월 내로 돌아온다는 겁니다. 하지만 올해는 20%는커녕 5%도 안 된다는 점이 이상하다고 경찰도 얘기하더라고요."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은 이 백서를 언제 공표할 계획인가요? 그리고 언론과는 협력은 상황이 어떤지 알고 계세요?"

미키는 백서를 읽어보고 나서 최근 들어 일체의 반정부 기사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언론에 대한 의구심을 감추지 못한다.

"야당 간 마지막 검토 단계만 남았어요. 일단 그나마 이성적인 아사히신문과 도쿄신문을 중심으로 작업 중이라고 곤다 의원이 얘기하더라고요. 나머지는 지금 좀 힘들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시면서요."

"그럴 거예요. 제가 방송사를 떠난 이유였죠. 언론이면서도 정부 눈치 보고 알아서 기면서 언론임을 포기하는 게 요즘 방송, 신문입니다."

2006년 영화 <보더타운(Bordertown)>은 미국과 멕시코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된 다음 멕시코 국경도시 시우다드 후아레스에서 1993~2005년에 일어난 살해·실종된 여성이 800여명에 이르는 연쇄 살인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협정 체결 이후 미국의 수많은 기업들은 후아레스에 몰려들어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이 가능한 어린 여공들을 고용한다. 임금도 박하고 언제든지 자를 수 있어 자본가들에게는 천혜의 공간이다.

 영화 <보더타운(Bordertown)>은 북미자유무역협정 체결 이후 후아레스라는 국경도시의 여성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이 영화는 자유무역협정의 부작용은 물론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얼마나 무서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시사한다.
 영화 <보더타운(Bordertown)>은 북미자유무역협정 체결 이후 후아레스라는 국경도시의 여성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이 영화는 자유무역협정의 부작용은 물론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얼마나 무서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시사한다.
ⓒ 영화 <보더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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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어린 여공들은 치안부재로 인해 수천 명이 강간당하고 심지어 살해돼 허허벌판 곳곳에 묻히게 된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지역 신문 '엘 솔' 편집장 디아즈(안토니오 반데라스)는 취재에 애쓰지만, 그 지역에 막대한 이해관계가 있는 멕시코와 미국 고위층 인사들의 압력에 살해위협까지 당하게 된다.

그때 한때 후배였던 미국 신문기자 로렌(제니퍼 로페스)가 찾아와 함께 취재하고, 미국으로 돌아가 기사를 싣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기사는 나가지 않는다. 편집장이 대기업과 유력 상원의원의 압력에 굴복해서다. 그녀에게 해외 특파원을 미끼로 입을 막으려 시도하지만, 영화에서 로렌 기자는 한 어린 소녀를 지키기 위해 재판까지 가서 증언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조차 상영되지 않았다고 한다.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미국이지만 돈 앞에서는 언론조차 그 본연의 기능을 기꺼이 마다하는 게 현실이라는 점을 새삼 느낀다. 그러니 그렇지 않아도 '보도관제'를 스스로 일삼는 일본 언론은 오죽하겠나.

"민주당 쪽에서 일정 잡히면 알려준다고 했으니 우리는 기다려 봅시다. 그리고 슈이치, 자네는 이제 전국적인 활동가가 됐다며?"

김원택이 약간 무거운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태풍의 눈'에게 말을 건넨다. 그의 본명이 가와사키 슈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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