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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사다.
나는 행복한 교사다.
그래서 나는 스승이 되고 싶은 꿈이 있다.

열심히 그리고 지우고 또 그린다.
▲ 필통에 있는 캐릭터를 따라 그리고 있는 지연 열심히 그리고 지우고 또 그린다.
ⓒ 윤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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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1학년 아이들 27명을 수료시켰다. 20년이 넘는 시간을 해마다 반복했다, 2월이면 헤어지는 것을. 헤어짐은 무딜 대로 무뎌진 내게 여전히 어떤 마음의 파문을 일으킨다.

최근 3년간 나는 1학년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래서 "아이들이란?"이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한 발 더 다가갔다고 느낀다.

자신의 실내화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제법 비슷하게 그려낸다. 얼굴은 함박 웃음꽃!
▲ 수진이와 선미 자신의 실내화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제법 비슷하게 그려낸다. 얼굴은 함박 웃음꽃!
ⓒ 윤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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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떤 면에서 나는 '나쁜 교사'다. 공부도 대충 하고, 냅따 놀게 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줄넘기를 매일 시키고. 때로는 1학년 아이들에게는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어른인 내가 애들에게 앞뒤사정도 듣지 않고 오해하여 버럭 화부터 내고 진짜 나쁘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글씨 쓰기를 할 때에는 말한다.

"얘들아, 연필을 가볍게 쥐고, 허리를 펴고, 어깨 힘을 빼고, 숨을 천천히 마시고 뱉으면서, 한 글자, 한 글자에서 광채가 나게 빛이 반짝반짝거리게 글자를 쓰는 거야. 알았지?"

대답이 없다. 당연하지, 이런 말도 안되는 요구에는…. 하지만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반 아이들은 진짜 그렇게 쓰려는 듯이 조용히 글씨를 썼다. 내가 말하면서도 '이거 말이 되나?'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아이들은 그것을 현실에서 이뤄보려는 듯 집중했다.

내 무리한 요구는 이상하게도 아이들이 글씨쓰기를 제일 좋아하는 것 중의 한 가지로 바꿔놓았다. 나도 쉽게 이해되지는 않지만.

자를 이용해서 선을 긋는 모습이 무척 진지하다. 그래서 물어보지 못했다.방해가 될까봐.
▲ 얘들아 뭐하니? 자를 이용해서 선을 긋는 모습이 무척 진지하다. 그래서 물어보지 못했다.방해가 될까봐.
ⓒ 윤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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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이나 놀이 시간에 운동장에 나가지 않는 아이가 보인다면 나는 말한다.

"나가서 놀고 와라. 운동장에서 뛰어 놀고 와야 공부가 잘 된다. 당장 운동장으로 나가거라."

짐짓 임금님의 말투를 흉내내며 위엄을 잡아본다. 쭈뼛쭈뼛 아이는 운동장으로 나간다. 알 수 없는 혹은 사소한 이유로 교실에 있는 아이를 기어코 밖으로 내모는 교사다. 그래서일까? 놀이시간 끝나고 교실에 오면 12월에도 교실은 창문이 활짝 열려있다.

"얘들아, 창문은 왜 열었니? 추운데."
"더워요."

몇 명이 합창을 한다. 발그레한 볼을 가진 아이들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진짜 아이들이다.

"얘들아, 너희들 싸우는 거 아니지?"몸 싸움 같아보인다. 허나 물어보면 놀이 중이라고 대답한다.
▲ 몸 싸움? 몸 놀이? "얘들아, 너희들 싸우는 거 아니지?"몸 싸움 같아보인다. 허나 물어보면 놀이 중이라고 대답한다.
ⓒ 윤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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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부시간에 가짜와 진짜 이야기하기를 즐긴다. 교과서에게는 대개 이야기의 전문이 실리지 않는다. 그러면 원본 동화책을 읽어주고 보여주며 말한다.

"얘들아, 이게 진짜야. 어때?"
"훨씬 재미있고 실감나요."

교사인 나조차도 교과서의 이야기는 건너뛰는 전개로 인해 흐름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물론 교과서는 지면상의 제약과 저자나 출판사와의 문제로 인해 그럴 것이라 짐작은 한다. 아이들은 진짜를 보며 이야기의 맛을 제대로 느낀다. 그래서 가짜(교과서야, 미안!)보다 진짜를 좋아한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얘들아, 우리 주변에도 가짜도 있고 진짜도 있어. 어떤 게 가짠지, 어떤 게 진짠지 잘 살펴보고 생각해보렴."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이런 걸 알기 위해서야."

애들은 내 말을 알아들었을까?

'근데 나는 진짠가? 나는 진짜 교사인가? 지금 진짜로 사는 게 맞나?'

아이들은 너무나 솔직하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용감하다. 부모님은 변명으로 포장한 문자를 보내어도 아이에게 물어보면 진실을 알 수 있다. 부끄러운듯 솔직히 알려준다.

"…. 음…. 사실은 늦게 일어났어요."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직접 만든 초코렛을 정성스레 포장하여 쪽지까지 곁들여서...
나에게 전해준었다. 이로운의 선물. 행복의 맛!
▲ 선생님에게 주는 선물 직접 만든 초코렛을 정성스레 포장하여 쪽지까지 곁들여서... 나에게 전해준었다. 이로운의 선물. 행복의 맛!
ⓒ 윤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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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배운다. 그래서 나는 나이가 들어도 꼰대가 되지 않으려 몸부림친다. 아이들의 정직함을 닮고 싶고, 아이들의 속없음을 닮고 싶고, 아이들의 대책없음을 닮고 싶다.

27명의 스승과 살아가는 꿈 많은 교사일 뿐이다, 나는.

덧붙이는 글 | 수료식을 마치고 아이들과의 한 해를 생각나는 대로 적어봅니다.



태그:#초등1학년, #수료식, #교육,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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