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숨바꼭질을 합니다. 마당에서도 하고 집에서도 합니다. 숨바꼭질을 즐깁니다. 고샅에서도 즐기고 골짜기에서도 즐깁니다. 책상 밑으로 들어가서 숨고, 옷장에 살짝 들어가서 숨습니다. 이불을 뒤집어쓰면서 숨고, 이불로 문을 가로막으면서 숨습니다. 나무 뒤에 숨고, 자전거 뒤에 앉으면서 숨어요. 풀밭에 쪼그려앉고, 억새풀을 손에 쥐고 숨습니다. 숨은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하고 두리번거리면서 즐겁게 찾기놀이를 해요.

겉그림
 겉그림
ⓒ 미운오리새끼

관련사진보기

추운 겨울에도 마당에서 얼마든지 숨바꼭질을 합니다. 이러다가 손발이 시리고 몸이 꽁꽁 얼면 집으로 들어가지요. 자, 이제 숨바꼭질은 그만하고 다른 놀이를 해 볼까? 여기에 멋진 '숨은그림찾기' 그림책이 있거든.

오늘은 할머니의 90번째 생신이에요. 세계 여러 나라에 사는 친척들이 생신 잔치를 하러 모두 모였어요. 탐험가 찰리 삼촌도, 한껏 멋을 부린 에스메랄다 숙모도 왔어요. 옆집에 사는 폴리도 직접 쓴 생일 카드를 들고 찾아왔지요. 할머니는 잔치에서 입을 옷들을 허둥지둥 찾기 시작했어요. (4쪽)

크리스티안 예레미스 님하고 파비안 예레미스 님이 함께 빚은 그림책 <폴디와 폴리 할머니의 생신 잔치>(미운오리새끼,2015)는 '펭귄 식구'가 잔뜩 나오는 숨은그림찾기 그림책입니다. 가로세로 길이가 26.7×34.2센티미터에 이르는 커다란 그림책을 펼치면 두 쪽에 펭귄이 한가득 나옵니다. 아이들은 혼자서 이 그림책을 넘기며 숨은그림을 찾기도 하고, 둘이서 함께 숨은그림을 찾기도 하며, 때때로 어디에 숨었는지 못 찾겠다면서 함께 찾아 달라고도 합니다.

나는 어깨너머로 들여다보면서 하나도 모르는 척합니다. 숨은그림찾기는 더 빨리 찾아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후다닥 찾아서 후다닥 넘기면 재미없어요. 이 그림 저 그림 꼼꼼하게 살피면서 찾는 재미인 숨은그림찾기입니다. 어디에 그림이 숨었나 하고 들여다보면서 그림을 넓고 깊이 살피도록 북돋우는 숨은그림찾기예요.

몇 가지 그림을 숨기려고 구석구석 온갖 그림이 깃듭니다. 두 쪽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흐르면서 새로운 숨은그림찾기가 이루어집니다. 모두 비슷비슷해 보이는 듯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두 다른 펭귄입니다. 몸짓이랑 차림새가 다르고, 낯빛하고 손짓이 달라요. 그림을 꼼꼼하게 알뜰히 담은 <폴디와 폴리 할머니의 생신 잔치>이면서 할머니 펭귄이 아흔째로 맞이한 생일을 기리는 이야기가 흐르기에 한결 재미나게 들여다볼 만합니다. 기쁨을 나누는 이야기를 엿보고, 잔치를 벌이는 웃음 어린 놀이마당을 살펴요.

속그림. 설날 같은 명절에 다 같이 모여서 숨은그림찾기 놀이를 해도 재미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속그림. 설날 같은 명절에 다 같이 모여서 숨은그림찾기 놀이를 해도 재미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미운오리새끼

관련사진보기


속그림
 속그림
ⓒ 미운오리새끼

관련사진보기


"이제 다락방에 가서 공작새 깃털이 달린 모자를 찾아보자." 할머니가 앞장서서 계단을 올라갔어요. 폴리는 오들오들 떨며 말했어요. "다락방에는 유령이랑 박쥐가 우글거릴 텐데……." 그러자 폴디가 깔깔대며 말했어요. "아니면 유령 박쥐가 있을지도 모르지!" (14쪽)

가만히 돌아보면 어느 집이나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셈일 수 있습니다. 어른들은 살림살이가 어디에 있는가를 다 알 수 있어도, 아이들은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아요. 옷장을 뒤지고 서랍을 열며 찬장을 들여다보면서 '뭔가 숨은 것'을 찾고 싶습니다. 어디 주전부리가 있는가 하고 살핍니다. 뭔가 남달리 재미난 것이 있을까 하고 찾아봅니다.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깜빡 잊었기에 두리번두리번 찾지요. 제때에 제대로 안 치우는 바람에 잃었구나 싶은 놀잇감을 찾으려고 온 집안을 뒤져요.

다만, 집안에서 어디에 두었는지 잊거나 잃은 살림살이나 놀잇감을 찾는 일은 '오래 끌면 오래 끌'수록 안 재미있다고 할 만합니다. 이렇게 집안을 안 치우고서야 어떻게 살림을 하거나 노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잊거나 잃은 것'을 찾고 나면 한숨을 돌리면서 '이제부터 아무 데나 함부로 두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이러다가 다시 잊거나 잃으면서 한참 온 집안을 뒤지지요.

숨은그림찾기 놀이를 이끄는 그림책은 이러한 우리 모습을 되새겨 주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 보라구, 아무 데나 또 두니까 자꾸 잃지 하고 일깨운다고 할까요. 이것 좀 봐, 즐겁게 놀았으면 네 장난감을 네가 기쁘게 잘 추스리거나 챙기면서 건사해야지 하고 깨우친다고 할까요.

속그림. 설날 같은 때에 버스나 자동차에서 오랫동안 보내야 한다면, 아이들이 이런 그림책을 무릎에 펼치도록 하면 시간 가는 줄 잊을 만해요.
 속그림. 설날 같은 때에 버스나 자동차에서 오랫동안 보내야 한다면, 아이들이 이런 그림책을 무릎에 펼치도록 하면 시간 가는 줄 잊을 만해요.
ⓒ 미운오리새끼

관련사진보기


그림책 <폴디와 폴리 할머니의 생신 잔치>를 펼치면 십 분, 이십 분, 삼십 분 너끈히 흐릅니다. 숨은그림을 찾느라 한나절이 쉬 흐릅니다. 예전에 다 찾은 숨은그림이라 하더라도 아기자기하게 흐르는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재미있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숨긴 것'만 찾아보는 숨은그림찾기이지는 않아요. 올망졸망하게 깃든 그림을 들여다보며 재미있는 숨은그림찾기이고, 꼬물꼬물하게 춤추는 그림을 하나하나 짚으며 신나는 숨은그림찾기라 할 만합니다.

그나저나 설날에 자동차나 기차나 버스를 타고 아이들하고 오랫동안 달려야 한다면, 이런 숨은그림찾기 그림책을 한두 권쯤 챙기면 어떠할까 싶어요. 아이들도 어른들도 숨은그림을 찾노라면 한두 시간쯤 쉽게 흐를 만하리라 생각해요. 온 식구가 둘러앉아서 함께 그림을 즐기고 숨은그림을 찾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을 테고요.

덧붙이는 글 | <폴디와 폴리, 할머니의 생신 잔치>
(크리스티안 예레미스·파비안 예레미스 / 유진하 옮김 / 미운오리새끼 펴냄 / 2015.11.20. / 15000원)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폴디와 폴리 : 할머니의 생신 잔치

크리스티안 예레미스, 파비안 예레미스 지음, 유진아 옮김, 미운오리새끼(2015)


태그:#폴디와 폴리 할머니의 생신 잔치, #숨은그림찾기, #그림책, #크리스티안 예레미스, #파비안 예레미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