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동안 한국 극장에는 몇 개 나라의 영화가 걸릴까? 그중에서 한국인은 몇 개 나라의 영화를 볼까?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한국인은 극장에서 한 해 평균 4.22편의 영화를 관람한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한국과 미국, 두 개 나라에서 제작된 영화다.

지난 2015년 한 해 동안 한국 극장에 걸린 영화들의 제작국가별 관객점유율을 살펴보면 이런 쏠림 현상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전체 관객 가운데 52%가 한국영화를, 42.6%는 미국영화를 봤다. 둘을 합치면 94.6%에 이른다. 여기에 영화 강국으로 꼽히는 영국, 일본, 프랑스에서 제작된 영화를 더하면 99.3%에 달한다. 사실상 거의 모든 한국인이 한국,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의 5개 나라 영화만 본 것이다.

문제는 이들 5개 나라만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순위권에 들지 못한, 즉 한국에서 개봉기회를 제대로 얻지 못한 수많은 영화 가운데 전 세계 영화 애호가들로부터 호평을 받는 작품이 적지 않다. 독일, 중국, 스페인, 러시아, 호주, 이란, 벨기에, 이탈리아, 인도, 대만 등 영화산업에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역량을 지닌 나라의 작가들이 꾸준히 저만의 색깔을 가진 영화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유독 한국에선 이들을 찾아볼 수 없다.

이들뿐 아니라 독자적으로 영화를 제작해 배급할 수 있는 수많은 나라의 영화들이 한국 관객들과는 단 한 차례의 접점도 갖지 못한 채 스치듯 지나간다. 영화 등 문화예술은 수용자에게 다양한 자극을 경험하게 하고 이해의 폭을 넓게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다양한 나라의 영화를 접할 수 없는 이 같은 상황은 한국 사회 전체를 놓고 보아도 안타까운 일이다.

이스라엘 극장가를 휩쓸고 한국에 개봉했는데...

제로 모티베이션 영화의 백미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 스테이플러총 총격전 장면.

▲ 제로 모티베이션 영화의 백미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 스테이플러총 총격전 장면. ⓒ (주)유로커뮤니케이션 영화사업본부


이스라엘은 국내 극장가에서 만나보기 쉽지 않은 나라 중 하나다. 1950년대에 처음 존재를 알린 이래 매년 독자적인 작품을 내놓고 있지만, 마케팅의 측면에서 열세를 면치 못해 수입되는 작품은 거의 없다. 2015년엔 단 한 편도 개봉하지 못해 지난달 21일 개봉한 <제로 모티베이션>은 2년 만에 얼굴을 비친 이스라엘 영화다.

<제로 모티베이션>은 이스라엘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영화다. 2014년 이스라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 여우주연, 각본, 편집, 캐스팅, 음악 등 6관왕을 차지했고 대륙 맞은편에 있는 한국에서까지 개봉했으니 비범한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작품상은 놓쳤지만 감독, 여우주연, 각본, 편집은 영화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부문이다. 한 나라 최고 영화제에서 이들 부문을 휩쓴 영화라면 영화팬으로서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한국 개봉에서 <제로 모티베이션>이 거둔 성취는 미약하기 짝이 없다. 개봉 후 지난 6일까지 보름 넘는 기간 동안 704명의 관객이 전부다. 3대 멀티플렉스 가운데 CGV와 메가박스는 아예 단 한 개의 상영관도 허하지 않았다. 롯데시네마가 개봉 초반 전국 두 개 관을 내어준 게 고작이다.

대한극장 등 일부 독립 상영관에서 하루 한두 차례 상영되며 명맥을 이어나갔지만, 현재는 그마저도 찾아볼 수 없다. 사실상 극장 배급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이스라엘이 영화 강국으로 꼽히는 국가인 건 아니지만, 한 나라 최고의 흥행작이 이처럼 푸대접을 받았다는 건 당혹스럽게 느껴진다.

아쉬운 부분 있지만, 장점이 많은 영화

제로 모티베이션 참신한 블랙코미디로 나아갈 것만 같았던 이 영화가 우정의 복원이란 퇴행적 결말로 회귀하는 순간을 지켜보는 건 적잖이 안타깝다.

▲ 제로 모티베이션 참신한 블랙코미디로 나아갈 것만 같았던 이 영화가 우정의 복원이란 퇴행적 결말로 회귀하는 순간을 지켜보는 건 적잖이 안타깝다. ⓒ (주)유로커뮤니케이션 영화사업본부


영화의 흥행포인트가 없는 건 아니었다. 이스라엘은 여성까지 징병하는 나라로 알려졌고 한국 역시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기에 공감을 살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병영생활을 풍자하는 작품이 흔치 않은 한국에서 이스라엘의 병영생활을 비꼬고 풍자하는 <제로 모티베이션>은 신선함까지 갖추고 있었다.

내적으로 할리우드나 국내 좋은 영화와 비교해 빼어난 수준이라 할 순 없겠으나, 꼬집어 비판할 구석이 많지는 않은 썩 괜찮은 영화임엔 분명했다. 실제 여군 부사관 출신인 탈야 라비의 각본도 인상적인 부분이 많았고,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분투한 배우들의 연기도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공포나 로맨스, 코미디, 청춘물 등 각 장르의 장점을 넘나드는 유연한 연출과 능숙한 편집도 영화를 안정적으로 이끈 힘이었다. 서로에게 스테이플러총을 겨누고 싸우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선 마치 총격전을 보는 듯한 박진감까지 느껴졌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세 개 챕터 사이에 완성도의 편차가 있고, 사회적 메시지를 부각하기보다는 두 주인공 간의 우정으로 회귀하는 퇴행적 결말을 선택했다는 점이 아쉬웠다.

전체 관객 점유율의 96.9%를 차지하고 있는 세 개 멀티플렉스에서 철저히 소외된 채 관객의 시선에서 멀어지고 있는 <제로 모티베이션>을 바라보며 입안에 씁쓸함이 감도는 게 오직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제로 모티베이션 영화 <제로 모티베이션>의 포스터. 배급의 문제로 제대로 관객에게 평가받을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한 건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 제로 모티베이션 영화 <제로 모티베이션>의 포스터. 배급의 문제로 제대로 관객에게 평가받을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한 건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 (주)유로커뮤니케이션 영화사업본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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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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