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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낙안마을 고샅과 돌담길. 부족해서 더 애틋했던 그때 그 시절의 마을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순천 낙안마을 고샅과 돌담길. 부족해서 더 애틋했던 그때 그 시절의 마을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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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그때 그 시절이 모락모락 되살아난다. 설날이 다가온 탓이다. 그 시절 설날은 가장 큰 명절이었다. 평소 먹지 못했던 맛난 음식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어머니가 대목장에서 사주는 새 옷과 새 신발도 설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했다. 두둑하진 않아도 세뱃돈까지 챙길 수 있었다. 모처럼 일가친척을 만나는 것도 반가웠다. 풍족하지 않아서 더 애틋했던 그 시절의 설날이었다.

나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낙안마을로 향하고 있다. 지난 1월 30일이었다. 순천 낙안마을에는 그때 그 시절이 온새미로 자리하고 있어서다. 우리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았던 초가집이 고스란히, 다닥다닥 붙어 있다.

부러 만들어 놓은 민속촌이 아니다. 그 초가집에서 지금도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가 살고 있다. 120세대 280여 명이 초가집에서 생활한다. 대부분 여행객을 대상으로 장사를 한다. 음식을 내고, 민박을 친다. 새끼로 짚신과 맷방석을 만들고, 삼베를 짜는 주민도 있다. 집도, 사람도 모두 문화재급이다.

낙안마을로 가는 길. 뿌리깊은나무박물관에서 낙안읍성으로 가는 길이 부드럽게 휘어져 멋스럽다. 그 길을 두 할머니가 걷고 있다.
 낙안마을로 가는 길. 뿌리깊은나무박물관에서 낙안읍성으로 가는 길이 부드럽게 휘어져 멋스럽다. 그 길을 두 할머니가 걷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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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에서 내려다 본 낙안마을 전경. 낙안읍성 안팎의 초가집과 들녘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성곽에서 내려다 본 낙안마을 전경. 낙안읍성 안팎의 초가집과 들녘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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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집 사이로 구부러지는 고샅이 정겹다. 돌담도 모나지 않게 고샅을 따라 휘돌아간다. 아주 오래 전, 우리네 마을 풍경 그대로다. 옛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지켜봤을 고목도 많다. 팽나무와 은행나무, 푸조나무에 수백 년 세월의 더께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액운을 없애고 행운을 가져다달라는 간청을 들으며 주민들로부터 고사(告祀)상을 받는 나무들이다.

초가의 지붕엔 마른 짚이 켜켜이 쌓여 있다. 비둘기와 참새 무리가 지붕에 내려앉아 이엉 속에 숨겨진 낟알을 훑고 있다. 돌담에 올라앉은 넝쿨은 봄을 기다리며 생기를 머금기 시작했다. 고샅에서 집안과 마당이 들여다보일 만큼 돌담도 높지 않다.

겨울 한낮의 햇살이 초가집의 툇마루와 토방을 비추고 있다.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서 햇볕을 쬐던 그 시절 식구들이 떠오른다. 찐 고구마와 동치미 국물로 주린 배를 채웠던 피붙이들이다. 한가로운 마당에는 자치기와 딱지치기 놀이를 하던 어릴 적 추억이 머물고 있다. 마당 한쪽의 텃밭에선 푸성귀가 자라고 있다. 눈을 지그시 감은 누런 황소의 되새김질도 쉴 새가 없다.

옛 낙안고을 수령이 마셨다는 큰샘이 복원돼 있다. 그 우물가에서 마을의 한 아낙네가 빨래방망이를 두드리며 빨래를 하고 있다.
 옛 낙안고을 수령이 마셨다는 큰샘이 복원돼 있다. 그 우물가에서 마을의 한 아낙네가 빨래방망이를 두드리며 빨래를 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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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는 아낙네. 어릴 적 어머니를 만난 것처럼 화들짝 반갑다. 빨래방망이 소리가 기억 저편에 남아있던 마지막 추억까지 마저 꺼내 올려준다.
 마을의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는 아낙네. 어릴 적 어머니를 만난 것처럼 화들짝 반갑다. 빨래방망이 소리가 기억 저편에 남아있던 마지막 추억까지 마저 꺼내 올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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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만난 물레방아는 세월을 노래하고 있다. 마을 청년과 처녀들의 연분을 지켜봤을 물레방아다. 내 마음도 덜커덩덜커덩 돌아가는 물레방아의 선율을 탄다. 길 모롱이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는 아낙네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어릴 적 어머니를 만난 것처럼 화들짝 반갑다.

빨래방망이 소리가 기억 저편에 남아있던 마지막 추억까지 마저 꺼내 올려준다.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빨래 건조대도 옛 우물가 풍경 그대로다. 세탁기는커녕 수돗물도 없던 시절의 모습이다. 당시 우물은 마을 주민들의 생명줄이었다. 부녀자들이 정담을 나누던 소통공간이기도 했다.

우물가에서 한동안 넋을 놓고 있는데, 깨복쟁이 친구들이 어깨를 걸고 고샅에서 달려 나온다. 돈삼아! 놀∼자. 혜진아! 놀∼자. 담장에 기대서서 목청 높이던 그 친구들이다. 나지막한 담장 너머로 옆집에 음식을 건네던 어머니의 모습도 새록새록하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의 시 '향수'가 입안에 맴돈다. 몸도 하늘하늘, 발걸음이 오래 머문다.

낙안읍성의 성곽과 길. 왜구의 침략에 맞서 방어용으로 쌓은 성이었다. 태조 때 처음 쌓았고, 230년 뒤에 석성으로 고쳐 쌓았다.
 낙안읍성의 성곽과 길. 왜구의 침략에 맞서 방어용으로 쌓은 성이었다. 태조 때 처음 쌓았고, 230년 뒤에 석성으로 고쳐 쌓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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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의 동헌. 형틀을 배경으로 한 동헌 풍경이 옛 모습 그대로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공간이다.
 낙안읍성의 동헌. 형틀을 배경으로 한 동헌 풍경이 옛 모습 그대로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공간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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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시 낙안면 동내·서내·남내리를 품은 낙안읍성은 1397년(태조 6년) 처음 쌓았다. 이 고장 출신 김빈길 장군이 주도했다. 낙안군수로 부임한 임경업 장군이 토성에서 석성으로 고쳤다. 1626년(인조 4년)이었다. 성곽은 높이 4m, 너비 3∼4m, 길이 1410m에 이른다. 성 안에 옛 수령이 묵었던 내아와 손님을 맞던 객사도 오롯하다. 동헌과 형틀, 옥사 등 볼거리도 푸짐하다.

성곽길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성곽의 폭이 넓어 걷기에 부담이 없다. 읍성 안팎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성안에는 초가집이 즐비하다. 성밖으로는 낙안과 벌교의 들녘이 펼쳐진다. 이순신이 심었다는 푸조나무도 성곽길에서 만난다.

이순신이 낙안현청을 찾은 건 1597년 8월 9일(양력 9월 19일)이었다. 칠천량 해전에서 와해된 조선의 수군을 재건하면서 보성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순신은 환영 나온 백성들과 술을 마시고, 당산나무에도 한 잔 따라줬다. 백성들은 이순신에게서 술을 받은 나무를 '장군목'이라 불렀다.

낙안읍성의 성곽길 풍경.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성곽을 따라 걸으며 성 안팎의 풍경을 둘러보고 있다.
 낙안읍성의 성곽길 풍경.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성곽을 따라 걸으며 성 안팎의 풍경을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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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사 뒤에서 만나는 이순신나무. 이순신 장군이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리를 기원하며 심었다는 설과, 왜교성 전투를 앞둔 1598년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승전을 기원하며 심었다는 설이 있다.
 객사 뒤에서 만나는 이순신나무. 이순신 장군이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리를 기원하며 심었다는 설과, 왜교성 전투를 앞둔 1598년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승전을 기원하며 심었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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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사 뒤에 비스듬히 누운 푸조나무를 이순신이 심었다고 전해진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리를 기원하며 심었다는 것이다. 왜교성 전투를 앞둔 1598년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승전을 기원하며 심었다는 설도 있다.

난전에 있는 은행나무도 이순신과 엮인다. 낙안에서 의병과 군량미를 모은 이순신이 좌수영으로 가면서 들렀다. 이순신은 이 나무 아래에서 고장난 마차의 바퀴를 고쳤다는 이야기다. 이래저래 마음 푸근하게 해주는 낙안마을이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걷기 좋은 고샅이고, 성곽이다.

낙안마을 풍경. 부러 만들어 놓은 민속촌이 아니다. 초가집에서 지금도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120세대 280여 명이 살고 있다.
 낙안마을 풍경. 부러 만들어 놓은 민속촌이 아니다. 초가집에서 지금도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120세대 280여 명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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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국도 승주 나들목에서 낙안읍성 방면으로 간다. 서평삼거리에서 857번 지방도를 타고 죽학·금산·성북삼거리를 차례로 지난다. 서해안고속국도 죽림 나들목에서 연결되는 순천 방면 남해고속국도를 타고 벌교 나들목으로 나가도 된다. 봉림교 삼거리를 건너면 낙안으로 연결된다. 내비게이션은 전남 순천시 낙안면 충민길 30.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낙안읍성민속마을, #이순신나무, #설날, #낙안마을, #순천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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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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