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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헤 기차역 부근의 가톨릭 베긴회 수도원에서 바라본 브뤼헤 시내의 풍경. 전혀 손을 대지 않은 중세 도시 모습 그대로다.
▲ 중세 도시 브뤼헤 풍경 브뤼헤 기차역 부근의 가톨릭 베긴회 수도원에서 바라본 브뤼헤 시내의 풍경. 전혀 손을 대지 않은 중세 도시 모습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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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전통문화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캐나다 출신 원어민 교사와 2년간 함께 지낸 적이 있다. 10년 전 쯤이니 꽤 오래된 이야기지만, 교무실 바로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었던 데다 내가 한국사 교사라는 이유로 그의 질문에 서툰 영어로 일일이 답해주느라 진땀을 빼곤 했다. 그가 건넨 이야기들 중 조금은 불편한 것도 있었는데, 벨기에를 여행하다 갑자기 그를 떠올린 이유다.

"한국은 정작 자신의 전통을 내다 버리면서 외국인들에게는 그걸 상품으로 내다 파는 목적으로만 활용하는 것 같아요. 민속촌엔 사람이 살지 않고, 도자기는 박물관에만 고이 모셔져 있죠. 또, 궁궐은 겉만 화려할 뿐 속은 비어 있어 흡사 큰 레고블록처럼 보여요. 외국인들에게 여행 1번지라는 인사동도 그저 기념품 파는 상가일 뿐이잖아요. 실제 생활과 동떨어진 전통문화가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얼마나 감동을 줄까요?"

브뤼셀에서 아침을 시작할 때마다 그의 말이 생각났다. 숙소의 낡은 현관문을 열고 나서면 우리네 일방통행로보다 더 좁은 도로를 마주한다. 그 숨막힐 듯 비좁은 길을 사람과 자전거와 차들이 무시로 오간다. 도로의 바닥은 울퉁불퉁한 돌로 깔려있어 자동차와 자전거 바퀴가 멀쩡할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나마 족히 수백 년은 된 듯 반들반들해져 윤기가 난다.

'재개발'의 의미가 한국과 완전히 다른 브뤼셀

브뤼헤 기차역에서 중심인 마르크트 광장에 이르는 간선도로의 모습. 그 흔한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 브뤼헤의 간선도로의 바닥돌 브뤼헤 기차역에서 중심인 마르크트 광장에 이르는 간선도로의 모습. 그 흔한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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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역에서 브뤼셀 남역에 이르는 도심 간선도로 등을 제외하면 브뤼셀 도심에는 도로다운 도로가 없다. 돌로 덮인 길만큼이나 오래돼 보이는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빼곡하고, 그 틈으로 졸졸 시냇물처럼 도로가 비집고 들어선 형국이다. 도심 곳곳에 설치된 광장이 아니었다면, 걷다가 숨이 막힐 뻔했다. 광장의 원래 기능이 그런 것 아니었을까 하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우리 같으면 수만금을 준다 해도 못 살 것 같은 답답한 그곳에 사람들은 별 일 없이 잘 살아가는 것 같다. 수백 년 전 낡은 건물에서 세련된 옷차림으로 나와 녹슨 자전거에 올라타 출근하는 브뤼셀 사람들의 일상을 마주하는 건, 적어도 내 시각에선 그로테스크했다. 그들은 여행객들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았지만, 이방인들에게 그들의 일상은 더없는 '관광 상품'이었다.

'재개발'이라는 단어에 익숙한 내게 브뤼셀 도심의 풍경 자체가 그랬다. 도심 한복판에 떡 하니 버티고 선 기차역부터가 낯설었다. 우리 같으면 금싸라기 땅에 웬 기차역이냐며 진작 외곽으로 옮겨버렸을 텐데, 그들은 일부 구간을 지하화해서라도 지켜냈다. 도심에 그 흔한 콘크리트 빌딩조차 드물고, 도미노 늘어선 듯한 우리식의 아파트란 번역조차 어려울 정도로 낯선 존재다.

알고 보니 '재개발(Renewal)'이라는 개념 자체가 달랐다. 우리에겐 도시의 확장과 도심의 쇠락으로 발생하는 도심공동화를 방지하고 침체된 도시 경제를 활성화 시키려는 사업을 통칭한다면, 이곳에선 그저 '복원(Restoration)' 정도를 의미했다. 아닌 게 아니라, 여기도 도심 곳곳이 공사 중이었지만, 새 빌딩을 새로 짓는 게 아니라 기존의 건물을 '보강'하는 중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 극찬했던 곳으로, 사진 오른편의 잘린 건물이 인구 100여 만 명의 수도 브뤼셀의 시청사다.
▲ 브뤼셀 도심 그랑 플라스의 야경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 극찬했던 곳으로, 사진 오른편의 잘린 건물이 인구 100여 만 명의 수도 브뤼셀의 시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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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며 극찬했다는 브뤼셀의 그랑 플라스(Grand Place)도 그렇게 수백 년을 유지해올 수 있었다. 프랑스의 침공과 제2차 세계대전 등 여러 차례 심각한 피해를 겪었지만, 그때마다 그들은 '복원'을 선택했고 주민들 또한 그대로의 일상을 유지했다. 그랑 플라스는 여전히 일상의 삶터이기에 지금까지도 세계적인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 아닐까.

그랑 플라스 최고의 장관은 광장을 에워싼 여러 시대를 넘나드는 다채롭고 화려한 건축물이라고 말한다. 과연 어두워진 밤에 그곳을 찾는다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야경을 연출한다. 각양각색의 건축물마다 신기에 가까운 정교한 돌 조각들이 노란 전등에 비쳐 밤하늘로 튕겨 나가는 모습은 가히 황홀경을 만들어낸다. 빅토르 위고의 찬사는 전혀 과장이 아니다.

그러나 우선 놓치지 말아야 할 게 하나 있다. 그런 장관이 지금껏 연출되도록 광장에 생동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브뤼셀 사람들의 일상이 그것이다. 그랑 플라스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시청사는 지금도 브뤼셀 시청으로 쓰이고 있다. 인구 100만 명의 대도시의 시청사가 관광객들로 연중 북적이는 시끌벅적한 그곳에 그대로 자리한 채 시민들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시청사 내 관광안내소와 맨 꼭대기 종탑에 굳이 올라보려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입구가 온종일 어수선하다. 더욱이 주말이면 시민들을 위한 결혼식장으로 활용된다고 하니 시청으로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고작 3층에다 사무실도 몇 안 돼 보이는 그곳이 우리네 시골 군청만도 못한 규모인데, 과연 시청의 역할이 우리와는 다르게 미미한 탓일까.

우리라면 어땠을까. 틀림없이 그곳을 '관광지'로 비워둔 채, 대민 서비스 향상 운운하며 최첨단 빌딩을 새로 지어 이전했을 게 틀림없다. 국내 여행을 하다보면 그 어느 곳이든 도시의 가장 크고 새뜻한 건물은 시청이었다. 과문한 탓인지, 그렇다고 시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다. 게도 구럭도 다 잃는 결과가 초래되지는 않았는지 한 번쯤 반성해볼 일이다.

중세의 향기에 덮인 벨기에 여행

고작 60cm에 불과한 작은 기념물인 이곳엔 종일 사람들로 북적인다. 훗날 누군가 지어낸 사뭇 황당한 스토리가 전 세계의 여행자들을 불러모으는 벨기에의 대표 관광지다.
▲ 벨기에의 상징, 오줌싸개 동상 고작 60cm에 불과한 작은 기념물인 이곳엔 종일 사람들로 북적인다. 훗날 누군가 지어낸 사뭇 황당한 스토리가 전 세계의 여행자들을 불러모으는 벨기에의 대표 관광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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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였던 그랑 플라스를 브뤼셀에 머무는 동안 마실다니듯 찾고 또 찾았다. 야경에 반한 다음 날, 이른 아침에도 찾고, 해가 중천에 떴을 때도 광장을 거닐었다. 그때마다 건축물들은 햇빛과 구름에 따라 다른 자태를 뽐냈는데, 언제든 광장은 사람들과 함께였다. 중세와 현대가 수백 년의 간극을 두고 절묘하게 어우러진 모습이었다. 브뤼셀을 떠나기 싫도록 붙잡는 진한 벨기에산 향수 같다고나 할까.

벨기에 최고의 관광 도시라는 브뤼헤에서도 중세의 향기에 덮여 시간이 멈춰버렸다. 기차역을 나서 작은 운하 하나만 건너면 타임머신을 탄 듯 순간 중세로 시간 이동을 하게 된다. 운하엔 조각배가 군데군데 떠 있고, 관광객을 상대로 할지언정 마차가 길을 돌아다닌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의 흔적이 전혀 없는 수백 년 전 중세 도시의 모습 그대로다.

새 것이란 이따금 울퉁불퉁한 길 위를 데면데면하게 지나가는 소형 자동차와 오래된 건물 바깥벽에 삐죽 내민 채 걸려있는 간판들이 고작이다. 그중에서도 세월의 더께가 느껴지는 낡은 건물에 달려있는 노랗고 빨간 맥도날드 간판은 상투 튼 어르신이 요란한 귀걸이를 차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브뤼헤의 중심인 마르크트 광장까지 쉬엄쉬엄 걸어가는 30분 동안 당최 지루할 틈이 없다.

대문을 열고 중세의 기사가 말을 타고 나올 것 같은 집들마다 창문엔 커튼을 걷고 작은 화분과 장신구들로 예쁘게 진열해놓았다. 처음엔 기념품 가게인 줄 알았더니 주민들이 사는 집이었다. 간판만 없다면 일반 가정집과 가게를 거의 구분할 수 없다. 창가의 소담한 꽃과 인형들은 이곳을 찾아온 여행자들에게 말없이 건네는 브뤼헤 주민들의 환영 인사처럼 느껴졌다.

브뤼헤는 최고의 관광지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여행자들에게 '무심'했다. 만들지도, 치장하지도, 드러내지도 않았다. 브뤼헤에서 만난 호객꾼은 단 한 사람, 마르크트 광장 구석의 푸드 트럭에서 감자튀김을 팔고 있는 한 젊은 상인이 유일했다. 광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마차의 마부조차 한가로이 담배를 피우며 다른 마부와 담소를 나눌 뿐, 여행자들을 부르진 않았다.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가톨릭 베긴회 수도원은 일부 개방은 돼 있지만 적막강산처럼 고요할 뿐이다. 이름난 곳이니 안팎에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거나, 가이드를 두고 하다못해 입장료라도 받을 법 하건만 그냥 조용히 둘러보다 가라는 듯 무심한 표정이었다. 뜨내기 여행자들의 호기심 때문에 그들의 소중한 일상이 방해 받을 수 없다는 듯이.

마르크트 광장에 우뚝 선 종루에 올라 한참동안 브뤼헤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변변한 언덕 하나 없는 벌판에 세워진 도시라 시야가 거침없다. 쾌청한 하늘 덕에 저 멀리 북해도 아스라이 보인다. 저 바다를 건너면 영국 땅일 것이다. 발아래로 오래된 중세 도시의 풍광을 사방으로 감상하려니, 과거 남산타워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풍경이 겹쳐졌다.

남산타워의 높이를 이길 양 솟구치는 마천루들의 경쟁을, 하나같은 모양의 사각 콘크리트 빌딩들이 시야에서 초록의 산을 가리고 선 풍경을 멋지다며 구경했었다. 그런데, 이곳에선 성당을 제외하곤 4~5층짜리 건물조차 보기 드물게 도시 전체가 납작 엎드렸다. 언뜻 보면 모두 사람들 키만 하다. 두 도시의 사뭇 다른 경관이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의 차이 아닐까 싶다.

중세의 향기가 현재의 삶에서도 그대로 배어나는 그들에게 불편하지 않느냐는 건 그들을 순간 당황스럽게 만드는 우문일 뿐이었다. 이제 벨기에를 떠나 룩셈부르크로 향한다. 기차를 갈아타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족히 대여섯 시간은 걸릴 것이다. 룩셈부르크는 어떤 표정으로 우리 가족을 맞아줄까. 도착하면 밤일 텐데 도시 국가의 야경은 어떨지, 그들의 '저녁이 있는 삶'은 또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설렌다.

브뤼셀 중앙역 근처 도심 한복판 자리한 랜드마크다. 주위에선 최고층 건물로, 주위 건물들은 성당 앞에서 납작 엎드린 모양새다
▲ 브뤼셀의 랜드마크, 성 미셸 성당 브뤼셀 중앙역 근처 도심 한복판 자리한 랜드마크다. 주위에선 최고층 건물로, 주위 건물들은 성당 앞에서 납작 엎드린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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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베네룩스, #브뤼셀 시청, #브뤼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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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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