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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믿음'이라는 단어가 무색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믿고 산 물건을 써보니 속아 산 가짜 물건이고, 믿고 투자한 회사가 유령회사인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믿고 찍은 정치인들이 부패로 얼룩지고, 믿는 건 부모 밖에 없는 아이들이 부모의 폭력으로 죽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는 공동체에는 더 이상 '믿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듯하고 서로 의심하고 서로 속이는 일들이 당연시 되어 보이기도 합니다. 믿음이란 사람을 구하기도 하고 사람을 만들기도 하는 데 말입니다. 링컨의 신념은 수많은 흑인 노예들을 구했으며 평강공주의 소신은 바보온달을 장군으로 만들었는데 말입니다.

미야니시 타츠야/ 송소영 옮김/ 달리
▲ <나는 당신을 믿어요> 미야니시 타츠야/ 송소영 옮김/ 달리
ⓒ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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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니시 타츠야의 <나는 당신을 믿어요>는 이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림책입니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숲 속에 트리케라톱스 가족이 살았습니다. 엄마와 아빠와 아들은 함께 나무 열매도 따 먹으며 행복한 삶을 살았지요. 하지만 늘 그렇듯 불행은 예기치 않게 불어 닥칩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어느 날, 트리케라톱스 가족이 비를 피해 동굴로 들어갔는데 갑자기 땅이 흔들리며 동굴 밖에서 바윗덩이들이 굴러 떨어지지요. 아빠 트리케라톱스는 아들 리케라만을 '퉁' 쳐서 동굴 밖으로 내보냅니다. 동굴을 탈출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지요. 안타깝게도 엄마와 아빠는 굴러 떨어진 바위들이 동굴 입구를 막아 동굴에 갇혀버리고 리케라만이 동굴 밖으로 나온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밀어도 꼼짝도 하지 않는 바위 앞에서 "안 될 것 같아요, 아빠"라고 눈물짓는 리케라에게 아빠는 "무슨 말이냐, 안 되는 일은 없단다"라고 말합니다. 리케라는 아빠의 이 한마디 말에 도와줄 이들을 찾으러 숲으로 달려갑니다.

때로 우리는 너무 무겁고 너무 큰, 집채만 한 바위가 우리가 가는 길을 막고 있어 그냥 옴짝달싹 못한 채 주저앉아 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면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무슨 말이냐, 안 되는 일은 없단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은 상황을 헤쳐 나갈 힘을 만들어 줍니다. 리케라는 다른 공룡들을 불러옵니다. 머리가 단단한 파키케팔로사우루스, 커다란 입을 가진 아나토티탄, 강한 뿔을 가진 스티라코사우루스, 힘센 꼬리를 가진 사이카니아. 모두 와서 동굴 입구의 바위를 쳤지만 깨지지도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이제 남은 공룡은 무시무시한 티라노사우르스 밖에 없습니다. 리케라는 열심히 달려 티라노에게 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지요.

"저를 잡아 먹으세요."

리케라는 동굴에 갇힌 엄마 아빠를 구한 다음에 자신을 잡아먹으라고 티라노에게 말합니다. 티라노는 바위 속에 있는 맛있는 먹이를 더 먹으려는 욕심에 리케라의 말을 들어주기로 합니다. 하지만 티라노의 머리에서 피가 나도록 바위를 쳐도 바위는 꿈쩍도 안 하지요. 리케라는 티라노의 머리를 치료하기 위해 빨간 열매를 구해오고 다른 공룡들이 티라노에게 던진 돌을 대신 맞습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이 아저씨는 사납지 않아요. 저는 아저씨를 믿어요."

공룡들은 티라노사우루스를 믿는 리케라를 황당해하며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너......정말로 나를 믿니?"
"네, 모두 돌아갔지만, 아저씨는 끝까지 저를 도와주시잖아요. 아저씨는 나쁜 공룡이 아니에요. 전 믿어요. 그러니까 아저씨도 저를 믿어 주세요. 저 바위를 치우면 아저씨의 먹이가 될게요."

덩치 크고 소문이 좋지 않은 그리고 거친, 티라노사우르스는 우리 곁에도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심각한 취업난, 혼란한 정치 상황, 언제 좋아질지 모르는 분단국가의 현실... 거대 공룡 같은 삶이 우리를 짓눌러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 '오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세대), '7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 집 마련, 꿈 희망을 포기한 세대), 'N포 세대'(포기해야할 것이 정해져 있지 않은 세대-무엇을 포기하게 될지 모름)까지 이르게 합니다.

하지만 리케라의 믿음은 티라노를 변화하게 합니다. 티라노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바위를 머리로 칩니다. 피가 다시 흐르게 되어도 바위를 칩니다. 리케라가 건네는 빨간 열매도 마다한 채, 마지막 힘까지 전부 짜내어 바위에 박치기를 합니다. 그리고 결국 바위를 깨뜨리고 리케라의 부모님을 구해냅니다. 그리고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납니다. 거대하고 잔인한 공룡이 변화된 것입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보면 무섭고 거대한 티라노사우르스에게 먹힐 수밖에 없는 연약한 내 모습이 보입니다. 하지만 믿는다면, 우리 앞에 가로놓인 바위도 깨버리고, 티라노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면 모두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웬 뜬구름 잡는 이야기냐고, 동화 같은 이야기 하지 말라고, 현실을 좀 보라고, 답답한 일투성이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것을 믿고 달린 사람들로 인해 변화되었습니다.

라이트 형제의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비행기를 만들어냈고, 유관순의 믿음이 독립을 이끌었습니다. 전태일의 믿음이 노동 개혁을 이루었고 이름 없이 쓰러져간 젊은이들의 믿음이 이 땅의 민주화를 만들어 갔습니다. 할 수 있다고 믿으면 할 수 있습니다. 아빠 트리케라톱스의 말을 기억하세요.

"무슨 말이냐, 안 되는 일은 없단다."


나는 당신을 믿어요

미야니시 타츠야 글.그림, 김지현 옮김, 달리(2015)


태그:#그림책, #미야니시 타츠야 , #나는 당신을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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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속 보물들을 찾아 헤매는 의미 탐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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