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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다니는 동네 대학생 형의 얼굴은 머리칼에 가려져 있었다. 예배를 마친 정오의 햇살 속에 그의 누런 치아만 가끔 드러날 뿐이었다. 그의 어깨에는 늘 기타가 둘러메져 있었다. 기타는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연주되고 싶었으나, 그 한 사람은 기타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외사촌 누나의 관심은 말끔한 양복쟁이 아저씨에게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 시절, 교회오빠에게 기타는 필수덕목 중 하나였을 뿐, 현실 세계에서는 힘을 펴지 못했다.

이웃집 작은 삼촌은 늘 같은 복장이었다. 살이 쪄 터져 나갈 것 같은 교련복 바지와 목까지 덮이는 순 나일론 추리닝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의 방에서는 낮이건 밤이건 기타를 튕기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이 화상아!"를 비롯한 욕설 섞인 아줌마의 고성도 대등하게 들려왔다. 작은 삼촌의 주 연주곡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신중현의 <미인>이었는데, 그의 바람과 한이 절절히 녹아들어서인지 제법 가수다운 느낌이 묻어났다.

요즘 나와 가장 가깝게 지내는 기타. 거의 5년만에 다시 기타를 잡았다.
▲ 나의 사랑스런 기타 요즘 나와 가장 가깝게 지내는 기타. 거의 5년만에 다시 기타를 잡았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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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남동생은 공부 대신 기타를 선택했다. 아버지가 술김에 때려 부순 기타를 보고 녀석은 그날로 가출했다. 집을 나가며 철문에 남긴 주먹 자국은 그 후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어머니가 빚을 내어 새로 산 기타를 보고 녀석은 집으로 돌아왔다. 당연히 녀석의 오른손은 깁스를 두른 상태였고, 새 기타를 한참 동안 뚫어지게 쳐다만 봐야 했다. 기타를 치는 사람은 많았지만 기타리스트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동생은 한참 후에 깨닫게 되었다.

대학 시절, 연극반 맞은편 지하 동아리방에 노래패가 있었다. 복도에서 기타를 연습하는 선배들의 실력은 연극 연습도 잠시 잊고 물끄러미 쳐다보게 만들 정도는 아니었으나, 담배를 꼬나물고 기타를 치는 모습만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청계천 8가>라는 노래를 나중에 정식으로 듣고 나서 그때 연습하던 것이 그저 허세였음을 알게 됐지만, 담배연기 자욱한 지하 복도에서 기타 줄을 튕기던 실루엣은 추억 속 동경의 대상이었다.

스물아홉, 서른을 코앞에 두고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에 심취하게 됐다. 가사의 깊이도 제대로 모르면서 술만 마시면 노래방에서 악을 써댔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니고,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마이크를 잡으면 놓지 않는 내 곁에서 일행들은 하나 둘 사라졌다. 그럼에도 광석이형의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했다. 그 즈음에 나의 버킷리스트에 '광석이형 노래 부르며 기타치기'가 등록됐다.

내가 다시 기타를 잡은 이유

책상 앞에 붙여 놓고 틈만 나면 보고 연습한다
▲ 기타 입문을 위한 필수 코드 책상 앞에 붙여 놓고 틈만 나면 보고 연습한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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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를 낳고 아빠가 되면서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주어졌다. 잊고 지내던 버킷리스트 속 기타 배우기가 생각났다. 여전히 기타와 연애중인 남동생을 꼬드겨 통기타를 하나 선물로 받았다. 기타를 부둥켜 안고 기쁨에 들뜬 것도 잠시, 기타 줄은 자석의 같은 극처럼 나를 밀쳐내기 시작했다. 배우기 시작한지 일주일 만에 물집 잡힌 손가락을 바라보다가 기타를 고이 가방에 넣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렸다. 내게 음악적 재능 따윈 애초부터 없는 거란 확신이 생겼다.

그렇게 다시 몇 년이 흘렀다. 마흔을 넘으며, 새로 시작한 일은 끝장을 보자는 결심을 했고, 첫 번째 목표로 세운 기타 배우기에 다시 도전했다. 일주일을 이를 악물고 기타 줄과 사투를 벌였다. 모르는 부분은 동생에게 물었다(주변에 기타 좀 치는 사람이 있으면 물어가며 충분히 독학으로 배울 수 있다). 낮잠 자던 점심시간과 아이들 재우고 난 늦은 밤에도 오로지 굳은살을 목표로 줄을 부여잡았다. 정확히 일주일 만에 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생기며 줄잡는 고통이 줄어들었다.

그때부터는 한결 수월했다. 나의 목표는 김광석 형님의 노래를 세 곡 연주하며 부르기였다. 일반 학원에서처럼 기본 코드 하나하나 외우는 식이 아닌 오로지 한곡을 위한 무한 반복 연습이 시작되었다. 첫 곡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비교적 간단한 코드로 구성되어 있어 나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곁에서 듣는 사람이 지겨워할 정도 똑같은 구간을 반복 연습했다. 그리고 3주 만에 마침내 한 곡을 마스터했다.

내 손은 남자 치고 작은 편이다. 손가락이 긴 사람에 비하면 마디 하나가 모자랄 정도다. 기타에는 아주 쥐약인 게다. 그럼에도 기를 쓰고 기타를 배우고자 했던 건 사실, 난청을 가진 아이에게 음감을 익혀주고 싶어서였다. 난청인지도 모르고 음치라고 생각해서 노래할 때마다 웃어 넘기던 일들이 가슴을 치는 후회로 남았었다. 다양한 악기를 접하게 해주는 것이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 이를 악물었다.

꽁꽁 언 당신의 감성이 스르르 녹을 겁니다

어느 행사에서 기타를 연주할 뻔했으나, 아쉽게도 불발에 그쳤다. 올 연말에는 지인들을 모아 놓고 작은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 기타 연주하는 나 어느 행사에서 기타를 연주할 뻔했으나, 아쉽게도 불발에 그쳤다. 올 연말에는 지인들을 모아 놓고 작은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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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를 배운 지 이제 두어 달쯤 되는 것 같다. 어렵지 않은 곡들로 서너 곡을 연습 중이다. 보름 정도의 고비를 넘기고 나니 기타 치는 일이 재미있어진다. 직장에 기타를 두고 오는 날이면 다음날 서둘러 출근하고 싶어질 정도다. 기타 배우기를 망설여하는 분들이 있다면 눈 딱 감고 일주일만 버텨보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손가락 끝이 무뎌지는 만큼, 얼어붙은 감성이 스르르 녹는 걸 느낄 것이다.

주말이면 아이들과 기타를 가지고 함께 논다. 아직은 코드가 뭔지 모르는 아이들이지만 기타 줄에서 나는 소리가 마냥 즐겁고 신기하기만 하다. 직원들과 함께한 신년회 자리에서 간단하게나마 발표회도 가졌다. 올 연말에는 지인들을 초대해 작은 콘서트를 열어볼 계획이다. 퍽퍽한 삶에 활력을 찾아 준 기타라는 단비를 온몸으로 맞는 기분, 저 멀리 인생의 무지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지난 기사]

① 중년에 '첫사랑'을 다시 만났다... 반갑다 LP야


태그:#통기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교회오빠, #김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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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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