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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열치열(以熱治熱), 이한치한(以寒治寒). 더위는 뜨거운 음식으로 다스리고 추위는 찬 음식으로 다스린 게 우리 조상들이었습니다. 더운 날일수록 삼계탕과 육개장, 보신탕으로 더위를 풀었고 추울수록 냉면과 김치말이국수, 동치미국수 등 찬 음식으로 풀었습니다.

특히 냉면은 겨울에 맛봐야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입니다. 평양냉면은 겨울에 육수와 동치미 국물을 섞은 냉면 국물에 메밀로 만든 면을 넣고 시큼한 맛이 나는 무김치와 편육 등을 고명으로 얹어 먹지요. 한겨울 이북 사람들은 방에 불을 때고 이불을 뒤집어쓰며 냉면을 먹는 것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쳤습니다.

이불을 뒤집어써도 냉면을 먹으면 저절로 이가 딱딱 부딪혀집니다. 그러나 그 이의 부딪힘이 바로 겨울 냉면의 참맛이지요. '춥다'는 느낌보다 오히려 시원함이 느껴지는 바로 그 순간. 이 순간을 느끼게 되면 '냉면은 역시 겨울에 먹어야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 겁니다.

겨울철 밤참으로 즐겨먹은 음식이기에 냉면은 누가 뭐래도 겨울에 먹는 게 일미입니다. 한여름에 입맛이 없을 때 먹는 냉면도 좋지만 추운 겨울에 먹는 맛에 비하면 솔직히 풍미가 떨어집니다. 겨울에 만들어진 음식은 당연히 겨울에 맛이 나지 않을까요?

냉면은 누가 뭐래도 '겨울 음식'이랍니다


겨울에 먹어야 제맛이 나는 냉면
 겨울에 먹어야 제맛이 나는 냉면
ⓒ 임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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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겨울은 그야말로 휴식기였습니다. 소 여물을 끓이거나 새끼를 꼬는 잡일 등이 물론 있지만 큰 일은 없었지요. 거기에 겨울은 밤이 깁니다. 기나긴 밤을 보낼 뭔가가 필요했고, 밤을 보내자면 밤참이 필요했겠지요.

그래서 저녁이면 투전판이 벌어지고 투전판에서 출출해지면 동치미 국물에 국수를 말아 냉면을 먹었습니다. 이가 딱딱 부딪히는 시원함을 느끼면서 겨울을 즐기고 오는 봄을 기다렸던 게 북쪽 지방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박종화 선생이 쓴 소설 <세종대왕>을 보면 잠행을 나온 양녕대군에게 기생 어리가 냉면을 밤참으로 내놓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리는 양녕대군이 열이 많은 체질이라 찬 음식을 좋아한다면서 각종 고명을 얹은 냉면을 내놓은 것이죠. 양녕대군은 이를 맛있게 먹으면서 어리와의 관계를 이어가게 됩니다. 양녕의 기행이 이어지는 것이죠.

냉면은 고종 황제도 좋아한 음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고종의 냉면은 즐겁게 먹은 냉면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에 의해 강제로 퇴위당한 뒤 그는 하루하루 불안한 생활을 해야 했고 그 때문에 밤낮이 뒤바뀌고 말았습니다. 그 긴 밤을 보내려면 야참이 필요했을 터. 그때 먹은 음식이 바로 동치미에 말은 냉면이었다고 합니다.

면과 고명을 분리해 면에는 식초를, 국물에는 겨자를 넣습니다.
 면과 고명을 분리해 면에는 식초를, 국물에는 겨자를 넣습니다.
ⓒ 임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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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들에겐 그들만의 냉면 먹는 방식이 있다고 합니다. 면으로 속을 채우고 고명을 술안주로 삼고, 냉면 국물을 들이키면서 해장을 한다나요? 우스갯소리일지도 모르지만 냉면의 그 시원한 맛은 먹어본 이라면 누구나 잊기 어려울 것입니다.

겨울 냉면은 긴 겨울을 보내는 하나의 방법이자 낙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여유이기도 하죠. 이 겨울 차가운 냉면 한 그릇 먹으며 이한치한의 즐거움을 누려보는 건 어떨까요? 기름진 음식을 계속 먹게 되는 설날 연휴에 한 번 속을 다스리는 의미로 냉면 한 그릇 드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겨울 힘차게 보내면 곧 봄이 오겠지요.


태그:#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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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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