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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말 '6학년'을 맡게 됐다는 발표를 듣고, '허걱'했다. 매일 6교시를 찍는 수업시수가 부담스러워서도, 정치, 경제, 과학실험 등 교과 내용이 어려워서도 아니었다. 이유는 학생들이 '말을 안 해서'였다. 1~4학년 아이들은 조잘조잘 말도 잘하고, 자기 의견도 당차고 솔직하게 잘 낸다.

이들은 웃거나 찡그리거나 씨익 미소 짓거나 반응이 빠르다. 수업이나 학급 경영을 할 때도 '같이'가는 느낌이 있어 힘이 불끈 솟는 반면, 13살이 되면 우선 표정을 숨긴다. 그리고 입을 닫는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지 정직하고 용감하게 말하고 눈치 안 보게 하고자 모든 학급운영체계를 '경청'과 '토론'으로 바꾸고 교과 수업에서 그들의 입을 열게 만들고자 노력했다.

이의있습니다!(학급토론문화조성)

- 학급토론을 자주 한다. 사소한 거라도 문제가 있을 때마다 아이들의 의견을 구하고 토의를 통해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예를 들면, 철수와 영희가 싸웠다./○○에게 돼지라고 놀린다./프로젝트 수업 과제에서 협조 안 하고 논다 등이다. 학생들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주제로 잡고 의견을 나누며 이성적인 사고를 키우고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배운다.

- 사람은 무엇으로사는가! (책토의)
■ 톨스토이가 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읽고 토론한다.
■ 톨스토이가 아닌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이야기한다.
■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발표한다.
■ 실천 분야를 5 모둠으로 나누고 각자 관심 분야에 들어가서 실천 계획을 짜고 한 달 동안 행동한다.

- 세계무역놀이(경제구조이해)
■ 세계무역놀이를 시작하기 전에 나라별로 중요한 자원, 노동력, 무역 문화 등을 토론한다. 이를 통해, 시야를 세계로 돌리고 우리나라가 가지지 않은 천연자원이나 노동 환경이 다르다는 것을 안다. 모둠원들이 전략을 짜고 다른 나라로 가서 물건을 사고 판다. 무역을 통해 자산을 늘린 나라를 발표하고 전략과 내용, 느낀 점을 공유한다.

- 노사협정(회사 측-노조 측토론)
■ 회사 측과 노조 측으로 나눈 학생들은 토론을 하기 전부터 기 싸움을 했다. 노조 측 어떤 아이가 "월급 올려주세요. 이 월급으로 생활을 꾸릴 수가 없어요. 지금 배에는 다섯째가 자라고 있어요."라고 말했을 때, 회사 측 여기저기에서 대답이 나왔다. "그러게 공부를 좀 열심히 하시지요." "아이를 지우시지요." "그만두세요. 다른 사람 뽑으면 됩니다." 노조 측은 목이 메인 채로 울분을 토했다. 결국 2차, 3차까지 토론을 진행했고 결코 좁혀지지 않는 노사관계의 장벽을 확인했다.

- 아디다스현상(꼭 입어야해?)
■ 유행을 따라 입지 않는 데도 용기가 필요한 시대다. 학기 초 아디다스 추리닝을 한 두 명이 입기 시작하더니, 반 학기가 지나자 8~9명이 넘었다. 아이다스 꼭 입어야 하나? 왜 입고 싶어 하는 지. '그래도 입어야한다'팀과 '입지 말자'팀이 나누어져 열띤 토론을 했다. 아디다스 한 벌 값으로 다양한 옷 열 벌을 입을 수 있다는 학생의 끈질긴 노력으로 아이다스 추리닝은 그 후 2명 빼고 다 입고 오지 않았다. 토론은 학생들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만든다.

- 책발표(365책소개)
■ 아침 활동 시간에 학생들이 소개하는 책 이야기다. 매일 한 명씩 나와서 다양한 책을 알리고 자신이 감동 받은 부분이나 토론 주제로 삼고 싶은 부분을 발표한다. 책을 읽은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여하게 되고 아직 읽지 못한 아이들은 읽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된다. 예를 들어, 윤○○은 <초장리 편지>를 소개하고 한글이 민중들에게 어떻게 전해졌는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바른말 고운 말 실천으로 연결하여 토론을 이끌었다.

- 공기놀이(다양한 놀이)
■ 겨울엔 나가기 싫어서 교실에서 빈둥거리기 일쑤인데, 다양한 공기놀이 계발과 공기대회를 통해 실내 놀이가 활발했다. 그 중 공기 땅따먹기는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로 도란도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며 수학, 과학의 원리를 고민하는 자리였다. 공기대회를 앞둔 여학생들은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 "공기대회 빨리하고 싶다."라고 말했고 대회 후 공기를 잘 하는 법, 다양한 놀이법을 서로 공유했다.

태양뷔페발표회(나눔잔치)
■ 모둠에서 뷔페에 낼 음식을 개발하고 신제품 발표회 형식으로 프리젠테이션을 하였다. 음식을 만들 때는 5~7인분씩 하고 넉넉하게 뷔페음식을 차려 모두가 고생하고 같이 나누는 '태양반 나눔'을 실천했다. 음식을 먹으면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비교하기 ▲서로 발전된 부분 이야기해 주기 ▲성숙을 위한 길을 토론하고 함께 대청소로 마무리했다.

사회 프리젠테이션 발표
 사회 프리젠테이션 발표
ⓒ 김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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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 빚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는 아이들
 송편 빚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는 아이들
ⓒ 김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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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간의 토론하는 모습
 노사간의 토론하는 모습
ⓒ 김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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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반 부페식에 참여해 만들고 다같이 나누어 먹는 모습
 태양반 부페식에 참여해 만들고 다같이 나누어 먹는 모습
ⓒ 김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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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이야기를 꾸미고 역할을 정하는 국어 시간 아이들
 재미있는 이야기를 꾸미고 역할을 정하는 국어 시간 아이들
ⓒ 김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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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문화 실천에 대한 성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정직하게 말하고 용감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꾸준히 실천했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앉아 있는 아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했다.

둘째, '배려해라', '존중해라'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스스로 실천해 갔다.

셋째, 교육과정에 토론 수업을 넣어서 같이 활동을 짜서 흥미를 주었고 따로 시간을 확보하지 않아도 되어 여유 있는 학습이 되었다.

넷째, 이성적 사고와 자신감에 살이 붙었다. 이 모든 활동은 '삶을 가꾸는 글쓰기장'을 통해 정리하고 표현했다. 꾹꾹 눌러쓰는 글씨의 속도처럼 자신이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껏 나타내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다섯째, 아이들이 좋아하는 '삼국지' '조선왕조실톡' '신의나라 인간나라' '토론의 전사' 등 다양한 책을 접했다. 특히, 역사, 세계사, 토론문화에 관한 책을 의도적으로 제공했으며 자신의 시야를 넓히고 다름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반면 토론문화 운영과정에서 문제점은 이렇다.

첫째, 이기적인 자아들만 키워 냈다.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말하고 주장을 굽히지 않지만 남의 입장이 되거나 전체적인 구조적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렸다. 토론의 기본은 우선 '경청'인데, 다른 친구가 말을 하고 있는 동안 자기 말을 마음속으로 준비하고만 있는 듯, "따다다다다" 쏘아 붙이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노사협정 토론을 할 때는 서로가 결코 양보하지 않고 팽팽하게 수평선을 달렸다. 우리 현실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씁쓸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신의 이익은 절대 나누려 하지 않는 본능이 작용했나보다.

둘째, 말과 행동을 같이하는 게 어려웠다. 머리로는 이성적인 판단과 지혜로운 생각이 가득한데, 행동은 다르기 일쑤였다. 컴퓨터실에서 컴퓨터 모니터가 나오지 않아 쩔쩔매는 신○○을 보고, "으으씨, 다른 자리 가서 하면 되잖아."라며 짜증을 냈다. 다른 친구가 조용히 다가가 모니터 선을 다시 꽂아 금방 나왔는데 말이다.

그래도 꾸준히 시도하고 실패하고 또 시도할 거다. 아이들이 나름대로 생각할 시간도 필요하고 경험을 통해서 성장하는 게 조금씩 보이기 때문이다. 머리 맞대고 언제나 토의, 토론하는 우리반. 어떤 상황속에서도 절대 기죽지 않기를 바란다.


태그:#토론, #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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