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망본초난, 농사를 잊어버리면 필멸입니다.
▲ 김종철 선생의 백남기 농민 쾌유 기원문 망본초난, 농사를 잊어버리면 필멸입니다.
ⓒ 유기농민 유문철

관련사진보기


녹색평론 자유시민대학에서 6개월 동안 강의를 통해 만난 유문철 농민으로부터 백남기 농민의 근황과 농성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김종철 선생.
▲ 김종철 선생과 유기농민 유문철 녹색평론 자유시민대학에서 6개월 동안 강의를 통해 만난 유문철 농민으로부터 백남기 농민의 근황과 농성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김종철 선생.
ⓒ 유기농민 유문철

관련사진보기


"亡本招亂.
農事를 잊어버리면 必滅입니다.
白 先生님 回復 기원합니다."
(백남기 농민 쾌유 기원문, 김종철, 2016년 2월 3일)

녹색평론 발행인인 우리 시대의 비판적 지성 김종철 선생님께서 2월 3일, 농성장을 찾아 주셨습니다. 지난해 한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 강화도 강연 때 뵙고 7개월 만에 선생님을 다시 뵙게 되었습니다. 오늘 선생님과 서울대병원 농성장 가톨릭농민회 천막에 마주 앉아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사건의 진행과정과 상황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김종철 선생님은 저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녹색평론의 오랜 독자였던 저는 2014년 11월부터 2015년 4월까지 한 달에 두 번씩 녹색평론 강의실에서 총 12회의 자유시민대학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의는 세 시간 또는 네 시간 동안 쉬는 시간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긴 시간 동안 열정적인 강의를 하시는 선생님의 열의에 농사일로 머리 쓰는 일이 어색하게 된 농민은 귀 쫑긋 세우고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강의를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강의는 대부분 정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연이은 폭정에도 불구하고 시민과 민중의 정치적 무기력한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선생님의 깊은 고민이 강의로 풀어져 나왔습니다.

삼권분립 대의민주주의제의 원형인 미국 민주주의제도의 성립과정과 과두정, 귀족정적인 태생적 한계에서부터 직접민주주의의 원형인 고대 그리스의 제비뽑기 민주주의에 대해서 깊이 있는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결국 국가와 정치의 타락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국가와 정치의 포기가 아니라 고대 민주주의의 원형인 제비뽑기 민주주의의 복원이라는 것이 김종철 선생님의 제안이었습니다.

민주주의의 기원과 역사를 되돌아보는 이유는 서양의 대의민주주의를 도입했으나 오랜 독재정권의 지배와 10년이라는 짧은 민주주의 정권기, 그리고 독재세력의 후예들에 의한 재집권으로 민주주의가 크게 후퇴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비롯되어 대안과 희망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학문적, 관념적인 수준의 공상이 아니라 이미 중국과 서구유럽에서 시행하고 있는 숙의민주주의와 더불어 우리나라 정치를 타락과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는 단순다수득표 소선거구제를 혁파하고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처럼 비례대표 국회의원 전면 확대라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한편, 김종철 선생님은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새로운 사회로 미국이나 서구유럽 부국들이 아니라 500년 서구의 침략과 지배를 받은 수난과 희망의 땅 라틴아메리카를 주목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했던 우루과이의 호세 무히카 대통령,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볼리비아의 모랄레스가 만들어낸 민중과 뭇생명을 받드는 새로운 세상, 중남미에서 유일하게 군대가 없는 나라로 아리아스 대통령이 이끌었던 코스타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세력의 집결지였던 쿠바와 이들 나라의 혁명세대의 정신적, 사상적 지도자였던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금 라틴아메리카는 (물론 예외는 있지만) 여러 모로 세계의 가장 선진적인 지역이 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엄청난 혁명적 변화 과정에서 막중한 역할을 해온 것이 시와 문학, 예술이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차베스를 비롯한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의 개혁정치가들과 그들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지식대중 중에 갈레아노의 글과 책을 읽지 않고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은 삼엄한 군사독재 하에서 갈레아노가 쓴 '금서'를 숨을 죽인 채 읽었고, 해외로 빠져나갈 때는 '갓난아기의 기저귀 속에' 숨겨서라도 책을 가지고 나갔다." (경향신문, 김종철의 수하한화, 2015년 5월 6일자)

선생님께서는 선진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이 강한 나라가 아니라 가난해도 뭇생명을 착취하지 않고,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지 않으며 서로 나누고 평화롭게 사는 나라임을 역설하셨습니다. 김종철 선생님은 강의 내용을 정리해서 녹색평론의 권두언과 번역글,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 칼럼을 통해 정갈한 문체로 다듬어져 세상과 공유했습니다.

그 시절 겨울부터 봄까지 농한기에 강의를 듣기 위해 이른 아침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오고 마지막 기차를 타고 단양으로 내려가면서 온 마음을 집중해서 선생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한 달에 두 번 낯설고 번잡한 서울을 오고가며 선생님의 강의내용을 중심으로 국가폭력과 산업문명과 자본주의에 신음하는 사람들과 뭇생명들이 어떻게 하면 되살아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김종철 선생님께 강화도 강연을 통해 실천의 중요성에 대해 마지막 가르침을 받고 4개월이 지나지 않아 아스팔트 농사꾼이 되어 서울대병원 농성장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11월 18일 백남기 농민 농성장에 처음 참여한 후 농성장에서 가톨릭농민회 지리산 농사꾼 김영길 농민과 장기농성을 하게 된 겁니다. 생명평화 농사의 고참 선배님인 백남기 회장님이 11월 14일 전국농민대회를 마치고 민중총궐기대회 이동 중 경찰의 직사 살인물대포를 맞아 쓰러진 충격적인 국가폭력사건을 젊은 농민으로서 도저히 참고 견딜 수 없었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쌀 관세화 선언으로 우리의 주곡인 쌀시장을 전면 개방한 것도 모자라서 하지 않아도 되는 밥쌀을 마구잡이로 수입해서 쌀값을 폭락시키고 있습니다. 아무리 공적인 약속인 공약이 선거용 공약이더라도 21만원 쌀값 보장 약속을 하고는 쌀값을 13만원대로 떨어뜨렸습니다.

선거용 거짓말에 대해 일언반구의 사과도 없이, 거짓말과 잘못된 정책 항의하는 농민들에게 규정에도 어긋나는 불법 차벽을 설치하고 이에 항의하는 시민과 농민들에게 살인물대포를 쏘아댔습니다. 백남기 회장님은 무려 20초가 넘도록 머리에 살인물대포를 맞고 83일째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살인물대포라는 국가폭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절대 일어나서는 안되는 반인륜국가폭력입니다. 마이나 키아이 유엔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전국을 돌며 한국의 농성장들과 시민사회단체 및 공무원들과 면담하고 나서 1월 29일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경찰이 시위대에 물대포를 쏘거나 버스로 바리케이드를 치는 등의 행위도 우려되는 부분입니다. 1999년에 정부가 시위대를 향한 최루탄 사용을 금지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이후 집회 중 폭력의 사용도 줄었습니다. 저는 관계당국에 물대포 사용 및 차별 설치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단계적인 완화"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합니다.

백남기씨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물대포는 심각한 신체 부상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평화적으로 시위에 참가했던 다른 많은 사람들이 경찰이 분명한 이유없이 시위대에 물대포를 발사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고 말했습니다.

차벽 설치는 목표로 하는 대상으로부터 시위대의 모습과 목소리를 차단하여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게 만듭니다. 또한 물대포와 차벽을 사용하는 것은, 특히 과도한 무력과 함께 사용하게 될 경우는 경찰과 시위대간 긴장을 고조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위대를 이를 이유 없는 공격이라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공격은 공격을 불러올 수 밖에 없습니다." (보고서, 2016년 1월 29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 인류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과 대안을 제시하며 프란치스코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모르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에서 사제이던 시절 이름이 베르골료였습니다. 베르골료 사제는 가난한 사람의 편에 서는 해방신학자였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인 <복음의 기쁨>과 <찬미하소서>에는 해방신학자로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신앙관과 세계관이 잘 담겨 있습니다.

해방신학에서는 <관찰-판단-실천>의 삼단계 과정을 신앙인의 삶의 지침으로 삼고 있습니다. 관념과 연역 중심이 아니고 현실과 귀납의 방식으로 사는 것이 신앙인의 올바른 삶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해방신학에서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반대하며 가난한 사람을 옹호합니다. 인간에 의한 뭇생명과 어머니 지구를 착취하는 것도 반대하며 농업 중심의 생명평화적 삶을 옹호합니다.

이러한 해방신학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은 김종철 선생님이 지난 25년 녹색평론을 통해 설파한 사상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녹색평론에서 부단히 주창한 소농 중심의 공생공빈의 삶이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입니다. 또한 이러한 삶이 바로 지난 30년 가톨릭농민회의 중추적 농민이자 독실한 가톨릭신자인 백남기 임마누엘님의 삶과 일치합니다.

오늘 농성장에는 사진으로나마 백남기 농민과 김종철 선생님이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어른인 두 분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어주고 있었습니다. 김종철 선생님이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언급한 말씀을 잠시 함께 읽어 보시죠.

재작년 취임 직후 발표한 <복음의 기쁨>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가난한 교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임을 천명했다. 그리하여 그는 "시장의 절대적 자율성과 금융투기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에 의한 '새로운 독재' 때문에 "소수의 소득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에 다수의 삶이 피폐해지고 있는 모순을 지적하고, 이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자고 호소했다. 그 교황이 최근에는 현재 인류사회의 가장 긴급한 문제인 기후변화에 대한 신속하고 합리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회칙>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회칙>의 특징은 기후변화에 대해 (흔히 다른 '지도자'들이 하듯이) 그냥 원론적인 염려의 말씀을 늘어놓는 게 아니라 근본적 원인을 명쾌하게 적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글로벌 자본주의시스템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교황은 현재의 경제체제가 구조적으로 빈부격차를 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그 근저에 있는 '성장' 논리가 환경위기와 기후변화를 초래한 결정적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교황에 따르면, 오늘날 세계경제는 "이 지구에서 무한한 상품공급이 가능하다는 '거짓말' 위에 기초해 있고, 이 때문에 우리의 행성이 말라가고 있다". (경향신문, 김종철 칼럼 수하한화, 2015년 9월 30일)

이렇게 백남기 농민, 김종철 선생님, 프란치스코 교황은 농성장으로 저를 이끈 세 분의 스승입니다. 백남기 농민과 같은 길을 걸은 생명평화 농민으로서 8년의 삶, 김종철 선생님과 함께 한 25년 녹색평론 독서와 6개월의 자유시민대학 강의, 가난한 사람들과 어머니 지구와 함께 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

세 분의 스승을 하나로 엮는 건 생명에 대한 존중과 생명평화가 중심이 된 소농 중심의 농업 사회입니다. 산업문명이 압도적인 현실에서 공상적이고 뜬구름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기계나 로봇이 아닌 다른 뭇생명처럼 지구라는 생명공동체에서 함께 숨쉬고 있는 수많은 생명의 하나입니니다.

다른 생명과 평화적인 공존을 위해서 우리는 소농 중심의 농업사회로 되돌아 가야 합니다. 그런 사회를 꿈꾸며 우리 사회와 인류에게 말없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백남기 농민과 뜻을 함께 하며 서울대병원을 지킵니다.

"추운 겨울, 몸 조심하면서 지내게. 금방 끝나지 않을 싸움이라 마음이 아프네. 나도 이 사태에 대해 나름의 일을 하고 있으니 힘 내게나. 또 들림세. "

농사를 잊어 버리면 필멸입니다.
백남기 농민을 외면하면 필멸입니다.
시민 여러분, 백남기 농민을 기억해 주세요.

백남기 농민 농성장 앞에 걸린 국가폭력사건 달력의 숫자는 계속 늘어가고 있지만, 박근혜 정권은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83일째 백남기 농민 농성장 앞에 걸린 국가폭력사건 달력의 숫자는 계속 늘어가고 있지만, 박근혜 정권은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 유기농민 유문철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유문철 시미기자는 2월 4일 기준, 33일째 백남기 농민 농성장에서 노숙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유기농민으로 검색하시면 농성장 활동에 대해 많은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백남기, #김종철, #녹색평론, #유기농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충북 단양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단양한결농원 농민이자 한결이를 키우고 있는 아이 아빠입니다. 농사와 아이 키우기를 늘 한결같이 하고 있어요. 시골 작은학교와 시골마을 살리기, 생명농업, 생태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