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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장터가 아니면 사기 어려운 물건에 관심을 보이는 손님
 시골 장터가 아니면 사기 어려운 물건에 관심을 보이는 손님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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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는 한 달에 한 번 장이 선다. 동네의 자원봉사 그룹에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시작한 시골장이다. 1990년 부활절에 처음 장이 열렸다고 한다. 올해로 26년이나 되는 시골장이다. 동네 신문에 의하면 첫날에는 여덟 개의 가게로 시작해 30달러의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달에는 129개의 가게가 물건을 팔정도로 규모가 커졌다고 한다. 따라서 평소에는 한가한 시골이지만 장이 서는 일요일에는 곳곳에서 밀려든 자동차로 주차할 곳이 없을 정도다. 심지어는 장이 열리는 근처 공터에서는 적은 돈이지만 주차비를 받기까지 한다.

동양사람을 보기 힘든 곳이지만, 장터에 나오면 어디서 왔는지 동양 사람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독일·네덜란드 사람이 간단한 그들만의 음식을 즉석에서 만들어 사람의 입맛을 돋운다. 타일랜드 남성 서너 명이 갖가지 꽃나무와 과일나무를 팔기도 한다. 호주가 다문화 국가임을 다시 한 번 생각나게 하는 장터다.

장터에는 장사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장이 서는 날은 자선 단체도 바빠진다. 라이온즈 클럽을 비롯해 동네 노인회(Senior Citizens Association) 등 여러 자선단체가 소시지, 샌드위치 등을 팔며 자금을 모은다. 동네에서 채소를 가꾸며 정보를 교환하는 친목단체에서는 싱싱한 채소를 가지고 나와 팔면서 단체를 소개한다. 가끔 광대들이 나와 외발자전거를 타고, 여러 쇼를 벌이면서 박수를 받기도 한다.

매월 참가하는 단체에는 정치 단체도 있다. 소수당이면서도 호주에서는 제법 큰 목소리를 내는 정당, 녹색당(Green Party)이다. 이곳에서 가까운 포스터(Forster)에 지부가 있는 녹색당은 장터를 서성거리는 사람에게 그들의 정책을 홍보한다. 평소에 관심이 있었기에 말을 걸어 보았다. 거니 준비한 팸플릿을 주며 녹색당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는 당 모임에 참석하라는 말을 잊지 않으며 악수를 청한다. 그런데 아직까지 참석 못하고 있다. 사상은 실천된 것만이 자신의 것이라는 말이 있음에도….

시골 장은 아내가 무척 좋아한다. 그렇다고 굳이 살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분위기를 찾아 나선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장날에 소방차? 무슨 일이지?

장터에서는 소방차를 개방하며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도 한다.
 장터에서는 소방차를 개방하며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도 한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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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역시 장이 서는 날이다. 오늘도 늦은 아침을 먹고 장을 찾아 나선다. 집을 나서니 장이 서는 날이라는 것을 알려주듯 평소 한가하던 도로에 자동차가 붐빈다. 물론 큰 도시에 비하면 한가한 편이다. 지난번 시드니에 사는 친구와 함께 장을 찾았을 때 자동차가 많다고 푸념을 했다가 핀잔(?) 들은 적이 있다. 시드니에 비하면 양반이라고.

장터에 도착해 평소와 같이 조금 떨어진 공용 주차장에 주차하고 화창한 하늘과 바닷바람을 만끽하며 천천히 걷는다. 시골에 살면서 생긴 습관이다. '빨리빨리'의 생활이 아닌 조금은 느리게 사는 것을 즐긴다. 느리게 살다 보면 삶도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장터에 들어서니 평소와 같이 소방서 트럭이 주차해 있다. 장이 설 때마다 소방대원이 같은 장소에서 화재에 대한 경각심도 알리고 자원봉사 요원을 모집한다. 호기심을 갖고 찾아온 어린이에게 물도 쏘게 하고 트럭에 앉혀주기도 한다. 동네 사람에게 팸플릿을 나누어 주며 화재에 대한 경각심도 일깨운다.

천천히 걸으며 가게를 기웃거린다. 아내는 과일 가게와 화초가게를 기웃거리고 나는 시골에서 쓰던 골동품을 모아 놓은 가게들과 사람구경에 더 관심이 있다. 이곳은 휴양지라 놀러온 사람들도 많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먹을 것을 손에 들고 호기심 많은 표정으로 장터를 누빈다. 커피와 간단한 음식을 파는 곳에는 아침을 거르고 나온 사람들로 붐빈다.

장터에 나올 때마다 아는 사람을 만난다. 동네 사람이 장터를 많이 찾기 때문이다. 오늘도 아는 사람을 만났다. 이웃에 사는 사람이다. 우리처럼 특별히 살 물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산책 삼아 나온 모습이다. 평소와 같이 길 한가운데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누구는 어떻게 지내고, 동네에서 무슨 일이 있다는 등의 잡다한 이야기이다. 꼭 필요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떠드는 시간이 즐겁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는데 낚시 도구 파는 곳이 보인다. 낚싯대를 비롯해 모든 물건이 일본제품이다. 일본에서 수입한 제품을 시골에서 열리는 장터를 찾아다니며 팔고 있다고 한다. 중년쯤 된 부부의 인상이 좋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시골 장을 찾아 망아지 한 마리와 함께 산길을 터벅거리며 걷던 장돌뱅이. 길에서 지낸 시간이 많았기에 이야깃거리도 많이 가지고 있었다. 호주의 장돌뱅이는 망아지 대신 자동차로 호주의 시골 길을 누비며 장터를 찾고 있다. 이러한 삶을 살다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면 돌아다닌 만큼 이야깃거리가 많을 것이다. 나름대로 재미있는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내는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나는 낚싯대를 사 들고 장터를 나온다. 오늘따라 하늘이 더 청명해 보인다. 기분이 좋다.

글을 마무리하는데 얼마 전에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님이 문득 생각난다. 선생님의 수필집을 꺼내 든다. 북적거리는 장터 생각 때문일까, 수많은 좋은 글 중에 아래 구절이 시선을 빼앗는다.   

"사랑의 확실한 방법은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장미'가 아니라 함께 핀 '안개꽃'입니다."


태그:#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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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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