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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소통하는 방법을 여전히 알 지 못하는 50대 학부모입니다. 삶의 목표를 잡지 못해 표류하는 큰애와, 은퇴 후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가 현실적인 문제가 된 저의 처지는 일응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 먼 이국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 보면서, 점점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문제와 베이비 부머들의 2막 인생에 대해 같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아울러 제 마음을 큰애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 기자말

아침을 여유 있게 보낼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내일 출발 전에는 어느 정도 길어 보였지만 사실은 너무나 짧았던 호주 여행을 마무리 하고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아이들을 기다리면서 우리 부부는 동네를 산책하기로 했다. 그저께 아침 산책은 주택단지를 가로 질러서 야라밴드 공원까지 가는 코스였는데, 사진을 많이 찍어놨다.

내가 희망하는 대로 일정이 진행된다면 나는 금년 중에 회사를 퇴직하고 멜버른으로 갈 생각이다. 어학연수를 핑계로 6개월 정도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지고, 2년은 요리학교를 다닌다. 요리학교가 끝나면 1년 6개월의 졸업생 비자 기간 동안 최대한 실전 경험을 쌓아서 레스토랑을 오픈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유형의 물건을 만들며 살고 싶다는 나의 소망이 이뤄지는 셈이다.

큰애는 내가 나이가 많아서 호주의 레스토랑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까지의 회사생활 경험에 의하면 나이가 많은 사람은 부리기 껄끄러운 면도 있지만 대체로 성실한 편이다. 이러한 성실함을 높이 사주는 레스토랑 주인도 있지 않을까? 도합 4년에 걸친 은퇴 후 유학이 끝나면 충북 진천에 있는 혁신도시에 정착할 계획이다.

충북 혁신도시는 계획도시이므로 주거 환경도 쾌적하고, 서울을 비롯한 주변 도시에 대한 접근성도 뛰어나다. 노후에 친구들을 만나고, 놀러 다니기에도 적당한 장소인 것 같다. 여기에 가게와 집을 지을 때 참고하기 위해 여행 중에 예쁜 집이 보이면 사진을 찍어 둔다. 민박집 근처에도 사진을 찍어 두고 싶은 근사한 집들이 아주 많았다.

다양한 식물군, 아름다운 휴식공간에 환상적인 조명이 어우러져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 알렉산드라 가든 내부에 있는 정자 다양한 식물군, 아름다운 휴식공간에 환상적인 조명이 어우러져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 정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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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산책코스는 '알렉산드라 가든'이다. 맬버른 시내에는 유서 깊은 공원이 많고, 거기에 심어져 있는 아름드리 나무들을 보면 옛날 우리네 살던 마을의 동구 밖에서 한 여름 시원한 쉼터를 제공했던 느티나무가 연상된다. 호주가 우리나라에 비해 역사가 아주 짧은 신생국가이지만, 건축물이나 공원 같은 것을 보면 근대의 시간은 우리보다 더 잘 간직하고 있어서 마치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알렉산드라 가든은 그 이름처럼 아담한 정원 형태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공원이다. 안내문을 보면 1905년에 부지를 매입해 공사를 시작했고, 1908년에 오픈한 것으로 돼 있다. 우리나라에 대한 일제의 강점이 한창 시작되던 때다. 공원에는 세계 각국에서 수입해온 식물들이 아기자기하게 심어져 있고, 산책로를 따라 감성적인 휴식공간을 설치해놓았다. 우리 부부는 아직 조명이 남아 있는 새벽의 공원에서, 이국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는 이름 모를 나무와 꽃들을 돌아 보며 여행 마지막 날의 아쉬움을 달랬다.

스타 선수의 플레이를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

큰애 일행이 도착한 것은 공원에서 돌아 와 아내가 해 준 아침을 먹고도 한참을 쉬고 난 후였다. 뭣 때문에 이렇게 늦었는지 턱밑까지 올라온 잔소리를 겨우 억누르고 우리는 서둘러 짐을 차에 실었다. 그리고는 바로 호주 오픈(ISPS Handa Women's Australian Open)'이 열리는 '로열 맬버른 골프클럽'으로 차를 몰았다.

30분 정도 걸려 도착한 골프장에 우리를 내려 주고 아이들이 떠난 후 나는 썬크림을 가져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사소한 실수로 인해 제법 긴 시간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날 내가 그랬다. 나는 썬 크림 없이 호주의 2월 햇볕을 온전히 받아내야 했다. 평지에 나무가 별로 없는 골프장을 모자를 눌러 쓰고, 최대한 그늘을 찾아 다니며 경기를 구경했지만 오후가 내 팔과 얼굴은 홍시처럼 붉게 타버렸다. '휴가 갔다 온 티가 너무 나겠네' 하고 후회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바로 앞까지 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 경기를 마친 유소연 선수 바로 앞까지 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 정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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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걸어 주면 너무 좋아 했다.
▲ 할머니 경기 진행 요원 말을 걸어 주면 너무 좋아 했다.
ⓒ 정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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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골프 경기를 구경하면 좋은 점이 있다. 한국에서는 치열한 경쟁 때문에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스타 선수의 플레이를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스타이지만 외국에 나가면 별로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경쟁 갤러리가 별로 없다. 시합 때마다 수 백 명의 갤러리를 몰고 다니는 스타선수가 미국 LPGA에 진출하면 거의 홀로 다녀야 하고, 이 때문에 슬럼프에 빠지는 선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날도 갤러리라고 할 만한 인원이 붙은 선수는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가 유일한 것 같았다.

아내와 같이 경기를 구경하면서 경기진행요원이 거의 70대 할머니, 할아버지 들이라는 점에 놀랐다. 여기도 고령화가 많이 진행된 모양이다.  덕분에 한번 말을 붙이면 친절한 설명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빨리 다른 홀로 이동해야 하는데 필요한 내용만 듣고 말을 끊기가 곤란했다. 대학에 다닐 때 고향집에 가면 친척 할머님들이 내 손을 잡고 한참 동안 놓아주지 않았다. 나도 저 나이가 되면 그렇게 사람이 반가워질까?

이국에서의 골프 갤러리 경험을 끝내고 우리는 다시 모여서 호주에서의 마지막 바비큐를 근처 공원에서 즐겼다. 언제 다시 올까 애틋한 마음에 나는 나도 모르게 계속 큰애의 어깨를 감싸안고 큰애는 자꾸 빠져 나가려고 하고. 지금 내 심정이 대학생 시절 내 손을 잡고 한참 동안 놓아 주지 않았던 친척 할머님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요리는 창의적인 작업이며 기본기를 잘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글에 윌리엄 앵글리스의 커리큘럼을 소개하기로 했는데 호주 여행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어쩔 수 없이 앞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에 조금씩 나눠 적어볼까 한다. 먼저 윌리엄 앵글리스의 쉐프 양성과정은 2월과 8월 1년에 두 번 개설되고 각 과정은 20주로 구성돼 있다. 10주 교육이 끝나면 1주일의 휴식기를 가지고, 다음 10주 교육이 끝나면 한 달 정도의 방학이 주어진다.

학교에 입학하면 첫 학기에는 요리에 필요한 기본적인 기술을 두루 배운다. 입학하기 전에 한번도 요리를 해보지 않은 학생들을 요리과정에 연착륙 시키는 과정으로, 요리에 눈을 뜨고 장비 사용법을 익히게 힌다는 의미가 강하다. 요리는 창의적인 작업이며 기본기를 잘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2학기부터는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실전적인 트레이닝이 이뤄진다.

큰애의 설명을 들으면서 내가 이해한 1학기 수업내용의 아주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여기에서 말하는 단계는 내가 나름대로 정의한 것이다.

먼저 1단계에서는 나이프, 팬, 온도계 등의 요리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운다. 큰애는 야채 썰기, 마늘 다지기, 파슬리 초핑(Chopping)과 같은 기본적인 장비 사용법을 익힌 후 바로 크라페, 닭가슴살 돈까스 등을 만들었다고 한다. 오후에는 이론 강의, 다음날 오전에는 실습을 하고 마지막 날에는 이론과 실기시험을 각각 본다.

2단계에서는 'Wet method'라고 하여 물, 육수, 포도주와 같은 액체를 매개로 한 요리방법을 배운다. 체계적이고, 한편으로는 재미있기도 하지만 전체 레시피는 너무 방대해서 그냥 요리법 명칭만 적어 보았다. 명칭은 내가 나름대로 번역 했는데, 적당한 용어를 모르는 경우에는 그냥 발음대로 적었다.

1일차 - ① 끓이기(Boiling), ② 약불로 요리하기(Simmering), ③ 삶기(Poaching),
2일차 - ④ 찌기(steaming), ⑤ 전자레인지 사용법,
3일차 - ⑥ 스튜잉(Stewing),  ⑦ 브레이징(Braising)
4일차 – 평가

인터넷을 찾아 보니 3일차의 스튜잉은 고기, 채소 등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 기름에 볶은 후 육수를 부어 약한 불에서 끓이는 조리법이고, 브레이징은 식품을 소량의 기름으로 갈색이 돌 때까지 조린 후 물이나 포도주를 역시 소량만 넣어서 뚜껑을 덮어 끓이는 요리방법이다. 스튜잉과 브레이징의 차이점은 끓일 때 붓는 액체의 양이라고 한다. 푹 잠기면 스튜잉이고 소량만 뿌리면 브레이징이 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람의 능력은 생각보다 크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지만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번쩍하고 가야 할 방향이 보인다. 커리큘럼을 계속해서 보니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하고, 실습과제를 보면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되지만 막상 부닥치면 헤쳐 나갈 것으로 믿는다. 큰애도 나도.


태그:#호주, #쉐프, #멜버른, #2막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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