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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정생 / 그림 정승각 / 길벗어린이
▲ 강아지똥의 겉표지 글 권정생 / 그림 정승각 / 길벗어린이
ⓒ 길벗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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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골생활의 꿈을 무참하게 깨어버린 건 집 앞 마당이었다. 잡초 제거제를 치지 않는 마당은 잡초 천지였다. 처음 몇 번은 즐겁게 호미를 들고 잡초를 뿌리째 뽑았다. 그러지 않으면 며칠 있다 다시 싹이 났다. 열매라도 캐듯이 일일이 호미로 땅을 헤집어야 했다.

조막만한 손에 호미를 들고 재미삼아 몇 번 하는 척 하더니 너는 개울가로 도망치기 일쑤였다. 잡초더미 중 민들레는 골치 아픈 단골손님이었다. 해마다 그 무리가 늘어 마당은 온통 민들레 밭이 될 것 같았다. 한 번은 민들레를 보고 네가 물었다.

"우리 집엔 강아지도 없는데 왜 민들레가 잘 커?"
"얘들은 거름 없어도 잘 커."
"뭐야, 그럼 민들레가 강아지똥한테 거짓말 했어?"
"거짓말은 무슨 거짓말. 거름이 있으면 더 잘 크니까 도와달라고 그런 거지."

엉뚱한 상상력이 반짝 점화된 순간, 너는 거침없는 질문에 스스럼이 없었다. 덕분에 민들레가 거짓말쟁이로 둔갑할 뻔 했지만.

돌이네 흰둥이가 골목길 담벼락 밑에 두고 간 강아지똥! 흙덩이가 똥 중에 가장 더러운 개똥이라고 놀렸다. 날아가던 참새도, 지나가던 어미닭과 병아리 떼도 더러운 찌꺼기라고 무시했다. 강아지똥은 눈물을 흘렸다. 눈 내리는 골목길 모퉁이에 모로 누운 강아지똥은 혼자 중얼거렸다.

"난 더러운 똥인데, 어떻게 착하게 살 수 있을까? 아무 짝에도 쓸 수 없을 텐데."

강아지똥의 독백은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길바닥에 나뒹구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짙은 회의감. 그건 말문을 걸어 잠근 너의 싸늘한 눈빛 속에서 묻어나는 감정의 조각들이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존재감으로 꽁꽁 얼어버린 마음이 너의 눈빛 속에 고드름처럼 매달려 있었다.

"그래,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특별한 재능이 없는 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엄마의 키를 훌쩍 넘어버린 듬직한 너의 몸집에 비해 너의 자존감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왕성한 호르몬으로 빚어지는 일시적인 부작용이라 여겼지만, 찌푸려진 엄마의 눈살은 좀처럼 펴지질 않았다. '십대의 원대한 꿈'이란 표현은 구시대의 낡은 부산물에 불과한 것일까.

봄비 내리던 날, 싹을 틔운 민들레에게 강아지똥은 용기 내어 말을 걸었다. 어느 봄날 피어날 꽃망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강아지똥. 강아지똥이 민들레의 뿌리에 도달할 수 있다니,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데 거름이 될 수 있다니. 강아지똥은 민들레를 힘껏 껴안았다. 온몸을 녹여 땅 속 깊이 박혀있는 민들레의 뿌리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꽃망울을 향한 "강아지똥의 눈물겨운 사랑"에 대해 얘기한다면, 넌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렸을 적 민들레의 거짓말에 대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던 네 얼굴이 아른거렸다. 갈수록 세상은 화려한 꽃봉오리에만 관심을 두었다. 꽃이 못 된다면, 꽃의 그늘 속으로라도 들어가야 했다.

우린 어떤 존재로 태어날지 선택할 수 없다. 강아지똥도 왜 그런 옷을 입고 세상에 태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어느 날 우리는 이 세상 속에 던져졌다. 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달고 태어난 우리가 평생 할 일이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설령 강아지똥처럼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세상에 던져졌다고 해도.

그런데 엄마는 너에게 온 몸이 부서지는 위험을 무릅쓰고 민들레의 꽃망울 속으로 들어가라고 재촉했던 것 같다. 강아지똥으로 태어난 본질적인 존재감을 부정하고 꽃이 되어야 한다고 강요했던 것만 같다.

"예체능은커녕 손재주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따지고 보면 공부만큼 평등한 것도 없다. 다른 분야는 소질이 있어야 덤벼볼 수 있지만, 그래도 공부는 열심히만 하면 어느 정도의 성과가 주어지잖아."

막상 네 앞에 드러낸 본심은 공부하라는 잔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안 그런 척 애를 써도 역시 부모의 속마음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저녁밥을 먹다 우연히 불거진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확실한 쐐기를 받고 싶었던 듯 했다.

너의 자존심에 금이 가는 소리는 듣지 못한 채 이참에 벼르고 별렀던 말들을 우르르 꺼내놓았다. 부모의 암묵적인 강요를 눈치 채지 못하는 자식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데.

"그러게 특별한 유전자 좀 물려주지 그랬어? 내 유전자가 누구한테서 만들어졌는데, 엄마 때문에 밥도 못 먹겠잖아."

너의 갑작스러운 펀치에 오늘의 공방전도 이렇게 끝나고 말았다. 뭘 할 수 있냐는 드센 항의까지 듣고 보니 본전도 못 추린 셈이었다. 특별한 재능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세상에 대한 자기만의 관심을 찾길 원했다. 강아지똥으로 흙바닥에 뒹굴어도 밤하늘의 빛나는 별빛을 품어보기를 바랐다.

별빛을 품지 못한다면, 그냥 강아지똥으로 담벼락의 응달 속에서 외롭게 누워있다면, 그런 강아지똥을 향해 다가서는 발자국은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강아지똥의 본질적인 존재감은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을 수 없었다. 강아지똥 옆에 아름다운 미사여구가 붙어야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별빛을 동경하던 강아지똥. 민들레의 거름이 된 강아지똥.

엄마는 너의 이름  앞에 붙일 그럴듯한 수식어를 찾아다녔다. 착한, 성격 좋은, 노래 잘 하는, 공부 잘 하는 등등. 모두가 인정해줄 만한 의미 있는 수식어에 몰두했다. 어쩌면 강아지똥 말고 다른 무엇으로 탈바꿈하기를 강요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착하려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쓸모 있는 인간만이 훌륭한 존재는 아니라고 다정하게 얘기해준 적이 없었다. 그냥 너여서 좋다고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했다. 어서 빨리 꽃이 되라고 성화만 부렸다.

"세상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 꽃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꽃을 피우기 위한 거름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정말이지 그냥 강아지똥이어도 괜찮다."

진심으로 강아지똥이 듣고 싶었던 말은 이런 말이 아니었을까. 변화될 그 무엇에 대한 기대보다, 먼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 볼 넉넉한 마음이 솟아나면 좋으련만. 민들레꽃을 무조건적인 선망의 대상이 아니라, 강아지똥의 도움이 필요한 파트너로 여기는 당찬 생각이 네 마음 속에서 피어날 수 있도록.

길 아래 놓여 있는 응달 속에 스며든 강아지똥의 눈물을 보았을 때, 우리 집 담벼락 밑에서 익어가는 빨간 김치가 떠올랐다. 차가운 바람을 맞은 김치가 익어갈 때면, 뻣뻣했던 배추의 섬유질이 부드럽게 녹아들었다. 아삭하면서도 보드라운 식감 때문에 겨울이면 꼭 바깥에서 김치를 익혀 먹었다. 냉장고에서 숙성된 맛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건 차가운 겨울 공기가 만들어준 특별한 맛이었다.

세상의 모진 응달의 맛은 그리 단순하지 않는 법이었다. 강아지똥이 흘린 눈물도, 네가 거칠게 내뱉었던 말들도 풍성하게 무르익어 갈 세월의 맛을 내는데 톡톡히 제 몫을 다할 거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그 시절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입안에 알싸하게 퍼지는 묘한 풍미를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오늘부터 잠자기 전에 이런 주문을 외워보려 한다. 그냥 너이어서 좋다고, 그냥 나이어서 좋다고, 우리가 가족이 되어서 좋다고. 그 앞에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다고. 우린 우리 대로 꽤 괜찮은 존재라고! 한밤중 엄마가 속삭이는 주문이 너의 가슴에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덧붙이는 글 | <강아지똥> 글 권정생/ 그림 정승각/ 길벗어린이/ 값 11000원



강아지똥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길벗어린이(1996)


태그:#강아지똥,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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