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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2300고지가 넘는 산 중턱에 나타난 소. 뒤로 보이는 히말라야 설산을 이곳 문시아리 사람들은 시바신이 거처하는 시바산이라 부르고 있다.
 해발 2300고지가 넘는 산 중턱에 나타난 소. 뒤로 보이는 히말라야 설산을 이곳 문시아리 사람들은 시바신이 거처하는 시바산이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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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산책에서 돌아와 보니 숙소 앞에 관광버스가 세워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단체손님들이 몰려들어 소란스러웠다. 모두가 인도 사람들이다. 이참에 문시아리 곳곳을 둘러보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관광객들을 위한 호텔과 게스트하우스는 현대식 건물들이지만 시장 점포들은 시간이 멈춰져 있는 듯 낡고 허름했다.

재봉틀 두 대 달랑 들어서 있는 수선집, 두 평 반도 채 안 되는 이발소, 과일 가게 등, 꼭 필요한 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작은 점포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작은 마을의 점포들이 화려하고 클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점포가 크고 작은 것에 따라 옷 수선이 달라질 이유도 없고 머리를 깎지 못할 이유가 없다. 또한 필요한 생필품을 팔고 사는 데 물건의 질이 중요하지, 점포의 겉모습이나 유행하는 옷과 머리 스타일은 삶의 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재봉틀 두 대 달랑 놓여진 문시아리 옷 수선집.
 재봉틀 두 대 달랑 놓여진 문시아리 옷 수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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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평도 채 안돼 보이는 이발소처럼 문시아리 시장골목 점포들 대부분이 작고 소박하다.
 두 평도 채 안돼 보이는 이발소처럼 문시아리 시장골목 점포들 대부분이 작고 소박하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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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내가 보았던 인도의 시골 점포들은 겉모습, 포장과 광고에 사활을 걸다시피 하는 자본의 거품이 없어 보였다. 포장과 광고는 상품의 질과는 상관없는 자본의 거품이다. 소비자들은 허영심을 자극하는 이 자본의 거품을 고스란히 껴안아야 한다.

히말라야 설산에 둘러싸여 있는 이곳 북인도 문시아리에도 여지없이 삼성전자 간판이 내걸려 있다. 주로 모바일을 취급하는 전자제품 수리 판매소 역시 3평도 채 안돼 보인다. 나는 이곳에서 모바일 데이터와 함께 전화요금을 50루피 어치 충전했다. 1루피면 인도에서 1분을 통화할 수 있다.

전화요금을 충전하자마자 코사니에서 30여 일을 함께 보냈던 명상가 가텀씨와 락시미 아쉬람 학교 선생인 부럼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코사니를 떠나온 지 나흘에 불과했지만 두 사람 모두 무척 반가워한다.

그들은 먼저 내 무릎 상태와 건강부터 물었다. 그럭저럭 괜찮다고 했다. 보통 4백에서 5백 루피 정도 하는 게스트 하우스를 일주일에 천 루피로 지내기로 했다니까 무척 놀래며 아주 잘됐다고 한다. 방 상태를 묻길래 차마 창고나 다름없다고 말할 수 없어 지낼 만하다고 했다.

세계 최대 쇠고기 수출국 인도, 물소 덕분

영화배우처럼 잘 생긴 청년이 닭장 만큼이나 비좁은 공간에 앉아 닭을 잡아주고 있다.
 영화배우처럼 잘 생긴 청년이 닭장 만큼이나 비좁은 공간에 앉아 닭을 잡아주고 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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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제품 판매소 앞쪽에는 주변 마을을 오가는 지프 택시 정류장이 있고 또 그 앞으로 영세한 닭집이 들어서 있다.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젊은 청년이 비좁은 닭장 틈바구니에 닭처럼 앉아 닭을 잡아주고 있다.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인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고기가 닭일 것이다.

인도에서 2개월 여 보내면서 닭을 잡아주는 닭집은 어디에서든 볼 수 있었지만 쇠고기를 판매하는 정육점은 본 적이 없다. 문시아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쇠고기를 파는 정육점은 찾아볼 수 없었고 할 일 없이 어슬렁거리는 소들도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닭도 돼지도 다 같은 생명인데 어찌하여 인도에서는 소만 귀하게 여겨 도축을 금지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인도에서는 무조건 소를 먹거나 도축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인도에서는 일반 소 대신 물소를 도축하고 먹는다. 물소는 인도의 소도살 금지법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2014년 기준으로 인도는 총 208만 2000톤의 쇠고기를 수출해 세계 최대 쇠고기 수출국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싼 물소 고기 가격으로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이 높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도살이 늘어나면서 호주·브라질 등을 제치고 세계 최대 쇠고기 수출국가로 부상했던 것이다.

또한 인도 언론에 따르면, 2012년 인도는 364만 톤의 쇠고기를 생산했는데, 절반이 넘는 196만 톤이 인도 국내에서 소비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쇠고기는 물소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볼 때 인도 사람들의 1인당 연간 쇠고기 소비량은 아주 낮은 수준이다. 미국 농무성(USDA)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미국은 1인당 35.28킬로그램, 우리나라는 14.61킬로그램에 비해 인도는 1.74킬로그램에 불과하다.

인도에서의 쇠고기 소비를 인도 전역으로 확대해서 말할 수 없다. 쇠고기 소비가 집중되어 있는 지역이 따로 있다. 12억 인도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힌두교인들은 쇠고기를 먹지 않는다. 쇠고기 소비가 많은 지역은 소 도축을 허용하는 지역, 이슬람교도가 많이 사는 뱅골 지방과 그 옛날 유럽 세력이 지배하여 기독교 신자들이 많은 케랄라 주. 특히 남인도 케랄라 주는 인도의 최대 쇠고기 소비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히말라야 설산 앞 산자락에 오르기 위해 무작정 길을 나섰다.
 히말라야 설산 앞 산자락에 오르기 위해 무작정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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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시아리 사람들은 저 히말라야 설산을 한실링 혹은 시바산이라 부르고 있다. 시바신이 거처한다고 믿고 있는 산 꼭대기는 힌두 사원 지붕의 탑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다.
 문시아리 사람들은 저 히말라야 설산을 한실링 혹은 시바산이라 부르고 있다. 시바신이 거처한다고 믿고 있는 산 꼭대기는 힌두 사원 지붕의 탑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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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다는 한결 좋아졌지만 여전히 절룩거리는 다리를 끌고 시장을 벗어났다. 양떼들이 풀을 뜯던 목초지, 문시아리 언덕 반대편 길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아침마다 산책을 나서고 있는 언덕 위에서 멀리 까마득하게 길이 보이는 곳, 그 길 위에 히말라야 설산이 펼쳐져 있다. 이곳 사람들이 '한실링' 혹은 '시바산'이라 부르는 히말라야 설산 난다데비 줄기다. 시바산은 거대한 힌두 사원처럼 생겼다. 설산 꼭대기가 힌두 사원 건물의 지붕 끝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다.

그 시바산 왼편에는 인도 사람들이 가장 신성시 여기는 인도북부 쿠마온 히말라야 산맥의 최고봉인 해발 7816m의 난다데비 주봉이 자리하고 있다. 시바산 앞으로 뻗어 있는 나지막한 산에 오르면 난다데비 주봉이 훤히 보일 것이었다. 무릎 때문에 난다데비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포기했지만 저 산에 오르면 그토록 아름답고 신비롭다는 난다데비를 코앞에서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기필코 난다데비를 만나 보겠다는 의지는 없었다. 볼 수 있으면 좋고 볼 수 없어도 상관 없었다.

5월 중하순으로 접어드는 한낮의 북인도는 덥다. 30여 분도 채 걷지 않았는데 등줄기로 땀이 흐른다. 밤에는 침낭을 의지해야 할 만큼 춥지만 한낮의 볕은 따갑다. 문시아리 언덕 위에서부터 직선으로는 얼마 안돼 보이는 거리지만 꼬불꼬불 길을 따라 가다보니 꽤 먼 거리였다. 중간 지점에서부터 무릎이 통증을 호소해 왔다.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갈까 하다가 견뎌 내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가다 보면 주변 풍경이며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었다.

나는 관광지를 찾아 나서는 여행객도 아니었지만 신을 찾아 나서는 순례자도 아니다. 그렇다고 어떤 성취감으로 산 정상에 오르는 산악인도 아니다. 그 어떤 뚜렷한 목적도 없이 길을 가다가 낯선 사람들을 만나 미소를 주고받는 것이 좋다.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내 느려터진 삶이 그랬듯이 뚜렷한 목적도 없이 내 앞에 놓여진 길을 쉬엄쉬엄, 가다가 쉬다가 사람뿐만 아니라 꽃이며 나무며 동물이며 온갖 인연들을 만나는 것이 마냥 좋다. 낯선 길 위에서 지식이나 사상, 체면 따위로 포장되어 있는 나를 벗어 놓을 수 있는 것이 좋다.

이방인을 수줍게 바라보는 골목길 사람들

길가에서 만난 초가집.
 길가에서 만난 초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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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가 널려 있는 초가집 아이들
 빨래가 널려 있는 초가집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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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시아리 산간 마을은 새마을 운동으로 인심이 망가지기 전의 우리네 산골 풍경과 흡사했다. 얼굴 생김새조차 티베트나 네팔 사람들과 닮아 있었다. 돌담장 위에서 늘어지게 오수를 즐기고 있는 개며, 빨래가 널려 있는 초가집의 아이들이며 낯선 이방인을 수줍게 바라보는 골목길 사람들, 그리고 작은 창문을 열어 환한 미소로 환대하는 산골 아줌마의 미소를 만나면서 무릎 통증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문시아리 산간 마을은 온통 돌투성이다. 더러 볏짚이나 보릿대를 올린 초가집이 보이기도 했지만 대부분 돌을 이용해 집을 지었다. 벽체를 돌로 쌓아 올렸고 그 틈을 바람이나 벌레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소똥으로 마무리하고 있었다. 지붕 역시 구들돌처럼 보이는 얇은 돌을 기왓장 삼아 올렸다. 구들돌이 그렇듯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열을 흡수해 온기를 보존해줄 것이었다. 몇몇 집안에서는 겨우내 얼었다가 허물어진 낡고 오래된 가옥들을 수리하고 있었다.

수리가 한창인 집 앞에서 만난 여자 아이. 문시아리 산간마을에서 티베트나 네팔의 얼굴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수리가 한창인 집 앞에서 만난 여자 아이. 문시아리 산간마을에서 티베트나 네팔의 얼굴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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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방인을 환한 미소로 반기는 아줌마.
 낯선 이방인을 환한 미소로 반기는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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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문드문 몇 채의 집들이 모여 있는 산간 마을 사람들은 낯선 이방인의 출연에 다들 신기해했다. 아무런 관광자원도 없는 이 산골 마을에 외국인은 처음인 듯싶었다. 자신들의 얼굴을 닮은 네팔이나 티베트 사람 같기도 한데 낯선 옷차림, 긴 머리에 긴 수염, 어딘가 모르게 낯선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나마스테' 인사를 건네면 다들 순박하게 웃는다. 웃는 모습이 너무 선하다. 그 웃음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싶을 정도다. 순백의 히말라야 설산을 머리맡에 두고 살아가는 이 순박한 사람들과 생각 없는 웃음을 나누며 한 세월 눌러 살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그렇게 스쳐가는 인연들을 만나가며 세 시간 쯤 걸어 문시아리 언덕에서 바라다 뵈는 반대편 산자락에 도착했다. 마을을 지나 본격적으로 산줄기를 타고 오르다 보니 우리의 오래된 성황당 같은 낡고 허름한 힌두 사원이 나타났고 그 앞으로 시바 산봉우리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시바산 계곡 사이로 히말라야 설산이 녹아 흘러가는 고리강가강의 원류가 훤히 보였다.

마을 뒷산에서 바라본 시바산. 계곡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는 고리강가강의 원류.
 마을 뒷산에서 바라본 시바산. 계곡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는 고리강가강의 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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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부터 경사진 산길을 올라야 했다. 무릎의 통증을 감수해 가며 경사도가 최소 40도는 넘을 거 같은 비탈진 산길을 타고 올랐다. 그나마 나선형 돌길이 깔려 있어 다행이었다. 어느 정도는 돌과 시멘트로 돼 있었는데 거의 대부분이 돌을 촘촘하게 세워 길을 만들어 놓았다. 그 돌길 끝에 모바일 송신탑 같은 것이 세워져 있었는데 통신사에서 송신탑을 점검하기 위해 깔아놓은 돌길인 듯싶었다.

산길 주변에는 가시 달린 꽃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작은 벌들이 윙윙거리며 떼 지어 날아올랐다. 내가 벌들의 꽃을 탐할 생각이 전혀 없듯이 벌들 역시 나를 공격할 의도가 없어 보였다.

경사진 산길을 오를수록 무릎이 점점 고통스럽게 꺾였다. 중간에 포기할까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어느 순간 내 육신은 정신에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산 하나만 넘으면 그토록 아름답다는 난다데비를 볼 수 있는데 그냥 되돌아 갈 수 없었다. 가는 데까지 가보자 마음을 다잡아 나갔다.

송신탑 부근에는 고사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대가 길고 굵은 고비들도 즐비했다, 한 웅큼 꺾어 천 가방에 잘라 넣었다. 한국에서 만나는 고사리 굵기의 두 배는 될 듯싶다. 욕심이 생겼다. 작은 천 가방 가득 채웠다. 끓는 물에 삶아 말려 놓았다가 느끼한 인도 음식을 만났을 때 함께 먹으면 좋을 것 같았다.

송신탑에서 다시 가파른 산길을 타고 오르니 시바산이 손에 잡힐 듯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난다데비가 보이지 않는다. 난다데비 설산을 조망할 수 있는 앞산에 다 오른 줄 알았는데 눈앞에 겹겹이 산이다. 난다데비 주봉이 보이는 앞산 자락을 오르기에는 무릎에 너무 큰 무리가 갈 듯싶다. 거기다가 산길 주변에 가시가 달린 넝쿨 식물들이 곳곳에서 길을 막고 있었다.

중간에 너른 터가 있었다. 소나 말, 양떼들이 한바탕 지나간 듯했다. 너른 터에는 풀들이 잔디처럼 잘게 깔려 있고 군데군데 소똥이며 양들의 배설물이 보인다. 그리고 그 중간에 물웅덩이도 있다. 이곳에도 고사리 천지다. 코사니에서도 그랬듯이 북인도 사람들은 고사리를 먹지 않는 모양이다. 고사리 욕심을 버리고 폭신폭신한 풀밭에 주저앉아 있는데 난데없이 산 위에서 소 한 마리가 내려오고 있다.

녀석은 나와 눈길이 마주치자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가 있거나 말거나 어슬렁어슬렁 목초지로 내려선다. 그리고는 물웅덩이에서 물을 마신다. 몇 마리가 더 있을 줄 알았는데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물을 다 마신 녀석이 왔던 길로 돌아갈 생각도 없이 우두커니 서 있다. 사진 몇 장 찍어 놓고 나도 녀석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을, 속세를 벗어나 녀석과 나, 단 둘 뿐이다. 해발 2300고지가 넘는 이 높은 산에서 녀석이 혼자 서성거리고 있는 이유가 대체 뭘까.

해발 2300고지가 넘는 산 중턱에 난데없이 나타난 소. 인도의 3대 신 중에 하나인 시바신이 거처한다는 시바산을 배경으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해발 2300고지가 넘는 산 중턱에 난데없이 나타난 소. 인도의 3대 신 중에 하나인 시바신이 거처한다는 시바산을 배경으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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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는 모든 소를 풀어 놓지 않는다. 오래전 우리의 시골 풍경이 그랬듯이 낮에는 소를 풀어 놓아 풀을 뜯기고 저녁이 되면 소를 몰아 외양간에 묶어 놓는다. 시골 농가에서는 소를 사육하여 젖을 짜내 요구르트나 치즈를 만들어 유용한 양식으로 사용한다. 마을과 이곳 산 중턱과의 거리는 꽤 멀다. 마을 사람들 중에 누군가 녀석에게 풀을 뜯기기 위해 이곳에 데려다 놓았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한 마리 정도는 마을 근처에 풀어놓고 풀을 뜯기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녀석을 의아해 하고 있듯이 녀석 또한 인적없는 산중턱에 홀로 올라와 밑도 끝도 없이 앉아있는 나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체 뭐하는 인간이기에 다리까지 절룩거려 가며 이 높은 산 중턱에 올라와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녀석은 처음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를 경계하는 것도 아니다. 시바산을 배경삼아 그냥 우두커니 서서 간혹 꼬리를 휘휘 저어대며 몸에 달라붙는 쇠파리를 쫓아내고 있다. 나도 큰 관심거리 없이 시바산을 향해 앉아 있다. 갑자기 아뜩한 정신이 휘몰아친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만났던 사람 사는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처럼 다가온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앉아 있는 것만 같다. 소와 나는 물 웅덩이를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소가 서 있는 곳이 죽음의 세계처럼 아찔하게 다가왔다. 땡볕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곳은 가시 돋힌 잡목들이 대부분이다. 그늘 신세 질만한 큰 나무가 없다.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녀석은 그냥 그 자리에서 멀뚱멀뚱 서 있다. 명상에 잠긴 듯 쌍꺼풀의 긴 눈썹을 살며시 내린 채로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가만 보니 코뚜레는 없었지만 목에 줄이 둘러져 있다. 어쩌면 자신을 사육하고 있는 주인에게서 도망쳐 나온 녀석일 수도 있다. 소떼를 몰고 다니는 목동에게서 도망친 것일까. 아니면 집 울타리에서 도망쳐 나온 녀석일까. 이도저도 아니면 사람 사는 속세를 떠난 것일까. 녀석은 홀로 떠돌아다니는 내 처지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비탈진 산길 아래로 힌두사원이 작게 보인다. 거기서 망자의 넋을 기리는 천도제 같은 의식을 치루고 있었다.
 비탈진 산길 아래로 힌두사원이 작게 보인다. 거기서 망자의 넋을 기리는 천도제 같은 의식을 치루고 있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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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뚱멀뚱 나를 쳐다보고 있는 소와 헤어져 산을 내려섰다. 왔던 길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올라왔을 때와는 다른 지름길을 선택했다. 나선형의 길이었지만 아찔했다. 경사도가 올라올 때보다 심했다. 경사도가 심한 만큼 다리에 부쩍 힘을 줘야 했다. 무릎 통증이 더욱더 심하게 옥죄어 왔다. 중간중간 수없이 주저앉았다. 얼마쯤 내려서자 나선형의 돌길, 저 아래에 힌두 사원이 보였다. 사원 근처로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내려섰다.

사원에서 사람들이 모여 어떤 의식을 치루고 있었다. 사원 입구의 낮은 돌담에 앉아 있는 몇몇 사내들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다. 입구에 앉아 있는 한 사내에게 모두가 가족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한다. 다들 사원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아주 오래된 고목나무 그늘 아래 모여 있었는데 표정들이 밝지 않다. 사진기를 들이댈 수 없을 정도로 분위기가 침울했다. 평일날 가족들이 모여 의식을 치루고 있는 걸 보면 망자를 하늘로 올려 보내는 천도제 같은 의식을 치루고 있는 듯 보였다.

누구 돌아가셨는지 물어 보려다가 그만두고 사원을 뒤로 하고 산길을 내려섰다. 문득 소가 아주 오래된 꿈속처럼 떠올랐다. 아까 산 중턱에 난데없이 나타난 그 소는 대체 뭐란 말인가. 망자의 넋이라도 되는 것일까. 망자의 넋이 소에 씌워져 자유롭게 산을 배회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힌두교에서는 소를 신성시 여기고 있다. 그리고 이곳 문시아리 사람들이 힌두교의 3대 신 중에 하나인 시바신이 거처하고 있다 믿고 있는 시바산, 그 시바의 품에 안기듯 시바산 앞에 우두망찰 서 있던 소, 그리고 죽어서 신의 품에 안기고 싶어했을 힌두교 망자, 분명 뭔가 연관성이 있어 보였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망자의 넋을 떠올리며 자동차가 다니는 신작로 길로 접어들고 있는데 힌두사원에서 종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그 종소리를 들으며 소의 목에 종이 달려있었던가
싶어 소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내 복잡한 의식과는 달리 소는 모든 것을 초월한 듯 아무런 생각 없이 그 순박한 눈을 끔벅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인적 없는 신작로를 지나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어디론가 목적지를 향하는 길은 멀고 힘들게 다가오지만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길은 한결 수월하다. 골목길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마주쳤다. 사진기를 꺼내들자 세 녀석이 다정하게 어께동무를 하며 폼을 잡는다. 해진 옷에 꼬질꼬질한 얼굴로 환하게 웃는다. 아이들의 환한 웃음만큼이나 사람 사는 세상이 기분 좋게 다가왔다.

해진 옷에 꼬질꼬질한 얼굴, 어께동무를 하고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
 해진 옷에 꼬질꼬질한 얼굴, 어께동무를 하고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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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북인도 문시아리, #시장, #인도의 소, #망자의 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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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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