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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반영 혼인지는 삼성혈에서 태어난 탐라의 시조 고.양.부 3신이 수렵생활을 하며 지내다가 동쪽나라(벽랑국)에서 온 세 공주와 합동혼례를 올렸다는 장소로 조그마한 연못이 있다. 삼신인이 이곳에서 혼례를 올림으로써 비로소 제주민이 늘어나고 농사가 시작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 김민수
3박 4일 여행 기간 내내 눈보라와 칼바람은 우리를 따라 다녔다. 아주 간혹, 푸른 하늘과 한줌의 햇살을 건낼 뿐이었기에 야속하기도 했다. 이제 거의 여행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일행은 칼바람과 눈보라 속에서 걷는 재미(?)를 알아가고 있었다.

이미 일행 중에는 감기에 걸린 친구도 있었기에 바다나 오름을 고집할 수도 없었다. 아침을 먹고 일단은 '김영갑 갤러리'에 갈 계획을 세웠다. 숙소는 성산포 쪽에 있었으므로 일주도로를 따라 삼달리(김영갑 두모악갤러리가 있는 곳)로 가기 전 온평리에 있는 '혼인지'를 들렀다 가기로 했다.

혼인지는 삼성혈과 더불어 제주의 시조와 관련된 전설을 갖고 있는 곳이지만, 관광지로 알려지지는 않았다. 내가 그곳에 살 적에도 그곳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 아니기에 나는 오히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것이 좋아 그곳을 자주 찾았다.

친구들은 믿지 않은 '우렁된장국'
혼인지 지금은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많이 변했다. 개발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개발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심사숙고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그곳을 자주 찾았던 이유 중 하나는 그곳에 있던 동백과 사스레피나무 때문이었는데, 개발하면서 그 나무들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 김민수
그곳엔 얕은 연못이 있고, 연못엔 수련이 있는데 여름엔 장관을 이룬다. 제주도에서 천연의 습지를 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에 신기했고, 나는 그곳에 있었던 동백나무와 사스레피나무에 반했다.

혼인지 뜰에는 제법 큰 동백나무가 있었는데, 붉은 홑동백을 피우는 나무였고, 동백나무 아래는 백화등줄기가 퍼져있어서 붉은 동백이 떨어져 연록의 백화등줄기의 이파리와 어우러지는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연못을 둘러싸고 있었던 방풍림은 사스레피나무였는데, 해안가의 사스레피나무가 바람에 시달려 무릎 아래 크기 정도밖에 안되는 것에 비하면 4~5미터 정도의 큰 나무였다. 사스레피나무는 이파리 아래에 작은 꽃을 피우는데, 그곳에서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볼 수도 있었다. 작은 종을 닮은 사스레피나무의 꽃은 마치 은방울꽃의 축소판 같았다.

게다가 연못을 거닐다 우연히 우렁이알과 우렁이를 발견했다. 어찌된 까닭으로 그곳에 살게 된 것인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아마도 제주도에서 우렁이를 잡아서 삶아먹어본 추억을 가지고 있는 이는 드물 것이다. 토종우렁이가 아닌 양식우렁이라서 맛이 없어 단 한 번 몇 마리 잡아 우렁된장국을 끓여먹었었지만, 제주도에서 우렁이를 잡아 우렁된장국을 끓여먹었다는 내 말을 친구들은 믿지 않았다.
애기동백 오랜 세월 혼인지에 자리하고 있던 동백나무는 어디로 가고 초입에 몇 년 되지 않은 애기동백이 자리하고 있다. 그나마 여름이면 수련이 피어나는 연못은 그대로 남아있어 다행이고, 산책로가 만들어졌으니 훼손이 덜 될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받는다. ⓒ 김민수
그리고 고사리철이면 혼인지 주변에 고사리가 많아 종종 찾기도 했다. 그런 곳이었는데 내가 제주도를 떠날 무렵(2006년), 혼인지에도 공사가 시작됐다. 그리고 거반 10년여 만에 그곳을 들렀을 때에는 이전에 없었던 건물들이 있었고, 혼인지도 산책로가 만들어지면서 대체로 관광지로서의 모습을 가졌다.

그러나, 그곳엔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동백나무와 사스레피나무는 없었다. 어쩌면 늘 이런식의 개발이 아닌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지만, 그 속내를 모르니 마냥 비판적인 눈길만 보낼 수는 없을 것이다.
혼인지 혼인지 산책로에서 만난 늘푸른 나무에 하얀 눈이 소복히 쌓였다. 제주 평지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풍광이다. 그나마 그들이 있어 덜 슬펐다. ⓒ 김민수
그래도 그나마 반영은 보았으니까. 아직도 피어나고 있는 수련의 흔적도 보았고, 우렁이 알도 보았고, 아무리 개발되어도 건들 수 없는 그 무엇들은 여전히 있으니 그 정도로 만족해야 하지 않겠는가?

개발의 광풍에 어릴적 살던 동네의 흔적이 싸그리 없어진 내 고향 서울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영갑이형이려니 했다
김영갑갤러리의 돌하르방 두모악 김영갑갤러리에 있는 돌하르방에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다. 나름 잘 어울리는 배치다. ⓒ 김민수
혼인지에서 나와 삼달리에 있는 김영갑 갤러리로 향했다. 주차장 입구가 바뀌어서 잠시 헤맸지만, 김영갑 갤러리의 뜰에는 이전에 보지 못하던 조형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름 이렇게 변하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김영갑 형이 기억되고 있다는 증거였기에 나름 좋았다.

카메라를 메고 있는 돌하르방, 아마도 영갑형이려니 했다. 지금도 후회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2005년 김영갑 형이 타계하자 지역신문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 뉴스화됐다. 그렇게 유명하신 분이었구나, 나 같은 무명인은 굳이 장례식에 참여하지 않아도 쓸쓸하지 않겠구나 싶었다.

거기엔 약간의 배신감(?) 같은 것들도 있었다. 그가 어렵게 사진작업을 할 때에는 눈길조차도 주지 않던 이들, 루게릭병에 걸려 고생을 할 때에도 무관심하던 이들이 그가 죽음으로 신화가 되려하니 저마다 자기가 가장 친했노라고 나서는 것 같아 불편했다. 그래서 제주에 있으면서도 그냥 그의 장례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나도 그에게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으면서 추모의 글만 썼었다. 그냥 그랬다. 아무튼 지금은 후회스럽다.
동백 김영갑갤러리 입구에 동백 한 송이가 떨어져 있었다. 김영갑갤러리는 그의 사진뿐 아니라 정원도 아름다운 곳이다. ⓒ 김민수
맨 처음 두모악갤러리가 문을 열었을 때, 찾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곳은 사진애호가들에게 뿐만 아니라 일반 관광객들에게도 필수코스가 됐다. 그것이 좋은 것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판단할 수 없다.

갤러리를 돌아본 이들은 그가 작업했던 오름을 올랐고, 지금 오름 역시도 관광객들의 필수코스가 돼 가고 있다. 더 많은 이들이 오름을 찾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판단할 수 없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용눈이오름, 그 주변엔 그가 찍었던 사진을 그 누구도 다시는 찍지 못하게 항려는 배려(?)인지 남쪽으로는 풍력기가 자리하고 있고, 모노레일인가 뭔가가 오름 초입에 생겼다.

아는 이들만 찾던 오름이 이젠 보편적인 관광상품이 된 것이다.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올레길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오름을 찾는 이들은 아는 이들만 찾아가던 곳이었다. 이런 현상 역시도 좋은 것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가 없다. 다만, 상품화돼 가는 게 아쉽다.
김영갑 두모악을 가꿀 때, 아픈 몸을 이끌고도 종일 나와 지켜보던 작업실에 그의 유품과 사진이 걸려있다. 2005년 5월 29일 하늘의 부름을 받기 전, 그 작업실에서 영갑 형과 몇번 만나 사진에 대한 이야기와 제주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했었다. ⓒ 김민수
그는 두모악갤러리를 만들때 아픈 몸으로도 종일 그곳에 나와 작업실을 지켰다.

그는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사랑했으며, 그를 찾아온 사람 누구에게도 친절한 사람이었다. 어느날 약속도 하지 않고 두모악갤러리를 찾았을 때, 그가 작업실에 앉아있었고 눈인사를 나눴다. 갤러리를 돌아본 후에 삼달리와 멀지 않은 종달리에서 왔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기적처럼 "종달리에 김민수라는 분을 아냐?"라고 물었다.

자연산문집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라는 작품을 출간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고, 제주MBC 어느 생방송 프로그램에 일주일에 한 번씩 출연하고 있었던 때였다. 그런저런 까닭으로 그도 나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 뒤, 산문집에 사인을 해서 그곳을 다시 찾았을 때 그는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때는 정원이 막 만들어지고 있었던 때였다. 내가 책을 건내자, 그도 사진집 두어 권에 사인을 해서 건냈다.

그리고 사진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그때 어떤 사진을 찍어야할지 모를 때였다. 일주일 정도 사진에 대해 고민한 후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김영갑 갤러리 김영갑 갤러리 뜰에는 토우들이 자리하고 있다. 한 겨울임에도 루른 덩굴식물뿐 아니라 수선화도 피어있었다. 어느 계절에 찾아도 아름다운 곳, 아픈 몸을 이끌고 조경공사를 할 때에 뜰을 거닐며 돌 하나하나를 어떻게 배치하는 것이 좋을지 살펴보았을 김영갑 형의 바람대로 뜰은 지켜지고 있을까? ⓒ 김민수
그리고 내가 제주의 야생화를 담겠다고 하자, 참 어려운 작업일 것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같은 사진이 가장 많이 나올 가능성이 있은 작업'이며, 단지 '야생화 사진'은 이미 많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의미가 있는 일이니 남과 다른 구도로 야생화 사진을 담으라는 조언을 해줬다.

사진 초보였기에 그의 장노출 사진의 기능에 대해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그것은 내가 스스로 배우는 것이 예의일 것이라 생각했고, 아픈 그와 오랜시간 대화를 나누는 것도 실례를 범하는 것 같아 만남의 시간은 늘 짧았다.

그 정도가 그와의 인연이다. 그 추억은 그가 제주에서 신화가 되어갈 수록 저 한 켠에 접어두어야 할 추억처럼 느껴진다. 내가 사진으로 그만큼 깊어지지 못했다는 것과 이젠 제주도를 떠난지 10년이 돼 간다는 것과, 어쩌면 다시는 제주도를 삶의 터전으로 삼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다.

15분 오른 오름, 바다의 끝을 보다
다랑쉬오름 이끈다랑쉬오름에서 바라본 다랑쉬오름, 김영갑형의 사진 주제였다. 나도 흉내를 내어 파노라마 사진으로 담아보았다. ⓒ 김민수
일행과 마지막 여행코스로 아끈다랑쉬오름으로 향했다. 사진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던 친구도 김영갑 갤러리를 다녀온 이후, 용눈이오름과 아끈다랑쉬오름을 오르고 나더니만 이런 말을 했다.

"나도 저 오름에 올라 풍광을 보니까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아."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질 못할 것을 아니까 빠지기 두려운거지. 미치지 않으면 못할 일이야."
"여행 내내 날씨가 궂어서 오히려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제주를 본 것 같아."
"맞다. 내가 제주도에 산다면 그런 날씨에 돌아다닐 일이 없었겠지."

아쉬운대로 아이폰에 있는 파노라마기능으로 사진을 담는다. 아끈다랑쉬오름을 오르는 데는 겨우 15분 남짓인 작은 오름이었는데 올라보니 저 바다의 끝이 보인다. 이 얼마나 신비스러운 오름인가?
아끈다랑쉬오름 아끈다랑쉬오름에서 바라본 제주의 동쪽, 저 멀리 지미봉과 우도와 성산일출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지미봉이 감싸고 있는 종달리에서 6년의 시간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면서 김영갑 형과 잠시나마 교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그가 루게릭병으로 힘든 삶을 살아갈 무렵이었으므로 만남은 늘 짧았지만, 늘 따스하게 맞아주었고, 그와 병이 나으면 함께 출사를 가자던 약속은 끝내 지키지 못했다. ⓒ 김민수
제주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길, 그 다음날부터 제주도에 폭설이 내렸다. 하마터면 원하지 않게 몇칠을 제주도에 갇힐 뻔했다. 여러 가지 일들로 미뤄볼 때 천만다행이긴 하지만, 그런 폭설 또한 장관이었을 터이다.

그 폭설에 제주일원을 누비고 다니는 페북 친구들의 소식을 듣자니 나도 제주도로 달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언제 봐도 좋은 제주이니 또 가면 또 다른 풍광을 보여줄 것이다.

아쉬운 점은, 제주도는 화산섬 그 자체만으로도 볼거리가 차고 넘치는 곳인데 제주도와의 전혀 연관성이 없는 관광상품들과 무슨무슨 박물관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오로지 자본의 논리만 따른다면, 제주도는 결국 자본의 노예가 돼 제주만의 모습을 잃어버릴 것이다.

김영갑 갤러리, 지금은 갤러리에 담긴 풍광을 좇아 여행을 다니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머지않아 그 풍광을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생각한다. 이렇게 급속도로 제주도가 황폐화될 줄은 몰랐다. 이것은 외형의 문제만이 아니라, 제주인의 마음까지도 변화시킨 듯하다.

제주도를 사랑하는 법,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제발 그대로 놔두는 것이 진정 제주도를 사랑하는 법이 아닐까 싶다. 그래야만 제주도는 살아있는 섬이 될 것이며, 우리나라에 제주도라는 섬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을 터이다.
태그:#혼인지,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아끈다랑쉬오름, #다랑쉬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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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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