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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문화부 장관 모니카 그뤼터스(사진 가장 왼쪽)와 베를린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500만번째 방문자.
 독일 문화부 장관 모니카 그뤼터스(사진 가장 왼쪽)와 베를린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500만번째 방문자.
ⓒ 독일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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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베를린 심장부에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비에 500만 명째 방문객이 다녀갔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념비 아래에 있는 전시관인 '정보의 장소(Ort der Information)' 방문객이다. 오다가다 기념비를 마주하고 지나간 이들은 셀 수가 없을 것이다.

독일 역사의 부끄러움을 그대로 드러낸 이 곳에서 독일 문화부장관은 500만 명째 방문객을 직접 맞이했다. 뷔텐베어그에서 온 고등학생은 꽃다발을 받고 사진도 찍어야(?) 했다. 이 사진은 독일 문화부의 보도자료에 실려 널리 널리 퍼져나갔다. '독일의 과거사 영구 책임'이란 문구와 함께.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한 곳에만 매년 78억 지원

나치 범죄 기억 및 희생자 추모를 위한 독일 문화부 지원금 현황
 나치 범죄 기억 및 희생자 추모를 위한 독일 문화부 지원금 현황
ⓒ 이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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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문화부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기억하고 생각하기'다. 나치와 동독 공산주의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일이다. 나치 강제 수용소와 피해자를 위한 추모기념관에 독일 문화부는 지난해에만 총 1377만 유로(한화 약 180억 원)를 지원했다.

독일 문화부의 지원을 받는 전국 각지의 나치 범죄 기억 및 희생자 추모 기관 분포. 26개 도시의 33곳이 독일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
 독일 문화부의 지원을 받는 전국 각지의 나치 범죄 기억 및 희생자 추모 기관 분포. 26개 도시의 33곳이 독일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
ⓒ 독일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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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가장 많은 지원금이 들어가는 곳은 베를린 홀로코스트 기념비/전시관이다. 지난 한 해 지원금만 319만 유로(약 42억 원)에 달한다. 인건비와 유지 관리비는 물론 전시회와 교육 프로그램 등에 쓰이는 비용이다. 올해는 예산을 좀 더 늘려 328만 유로가 책정됐다. 독일 문화부가 지원하는 나치 범죄 기억 장소 및 기념관은 독일 전역 26개 도시에 퍼져있다.

독일의 나치 범죄 기억과 희생자 추모 지원은 문화부에서 하는 게 다가 아니다. 외국에 있는 홀로코스트 관련 기념관 및 프로젝트는 독일 외교부가 맡는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한 곳에만 따로 항목을 편성해 매년 600만 유로(약 78억 원)를 지원하고 있다.

1945년 아우슈비츠
 1945년 아우슈비츠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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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아우슈비츠 수용소 박물관
 2015년 아우슈비츠 수용소 박물관
ⓒ 아우슈비츠 수용소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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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는 1940년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학살하기 위해 만든 최대 규모의 수용소다. 오로지 학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독가스실과 화장터, 강제노역 수용소 등이 그대로 남아 그날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명한다. 이곳에서만 학살된 희생자 수가 150여 만 명에 이른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는 오늘날 테러와 인종주의, 홀로코스트의 상징적인 장소로 남아있다. 아우슈비츠 박물관은 단순히 시설을 유지하고 방문객을 맞이하는 것을 넘어, 당시 물품이나 문서를 보존하고 기록하는 프로젝트와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독일은 이 아우슈비츠 박물관을 관리하는 아우슈비츠-비어케나우 재단에 매년 600만 유로(약 78억 원)를 지원한다. 일본의 일회성 예산 10억 엔(약 100억 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박물관의 2014년 예산
 아우슈비츠 수용소 박물관의 2014년 예산
ⓒ 아우슈비츠 수용소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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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독일 기금이 전체 아우슈비츠 박물관 예산의 4%에 불과한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박물관의 2014년 예산을 보면 박물관 자체 수입과 폴란드 정부 기금, 유럽연합 기금, 폭스바겐의 지원금 등이 포함되어 있다.

아픈 역사를 보존하고 기록하는 일에 가해 국가뿐만 아니라 관련된 모든 국가가 함께 합의하고 협력하는 것이다. 가해 국가인 독일이 피해 국가와 희생자들에게 진정으로 사과하고 법적 배상이 이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화해가 이루어진 이후, 그 역사를 기록하고 후대에 전하는 일은 당사자 모두가 함께 해나간다.

이 외에도 독일은 '홀로코스트 추모 프로젝트'를 위해 지난해만 655만 유로(약 85억 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이 기금은 국제홀로코스트추모협회 분담금, 구 소련 지역 나치 희생자 무덤 보존, 동유럽 지역 유대인 공동묘지 보호 등에 쓰였다.

단 한 번, '순수 일본 정부 예산' 100억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11월 2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한일 정상 기념촬영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11월 2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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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 정부가 한일 '위안부' 합의 결과를 내놓으며 강조한 것이 있다. '순수 일본 정부 예산 10억 엔'이다. 100억 원, 재단을 설립하는 데 민간 자금이 아닌 일본 정부의 예산이 들어간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단 한 차례 지급되는 10억 엔, 재단은 한국이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이조차도 불투명한 상태다. 일본 정부는 소녀상 이전을 10억 엔 지급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독일은 자국 내 수많은 강제수용소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지키는 것으로 역사와 반성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 내 눈 앞에 남아있는 내 잘못을 그대로 직시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추모를 끝내지 않는다. 이게 그들이 말하는 '영구 책임(Immerwährende Verantwortung)'이다.

'일본군 위안부'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일본 땅에 위안소가 남아 그들의 양심을 찌르고 있는 게 아니다. 도쿄 한 중간에 위안부 소녀상이 세워져 매년 수많은 방문객의 시선을 받는 것도 아니다. 일본 정부로서는 '외국'에 남아있는 몇몇 피해 생존자들이 그들이 짊어질 책임의 끝이라 생각할 수 있다. 눈엣가시인 소녀상까지 치워버린다면 더할 나위 없다. 이를 위해 10억 엔은 충분한 액수로 책정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성과 법정 배상은 쏙 빠지고, 정체도 불분명한 재단 지원금이 협상의 성과라며 강조하는 한국 정부는 위안부 할머니의 말처럼 '어느 나라 외교부'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피해자들에 대한 추모와 명예회복, 인간 존엄을 앞에 두고 돈 이야기를 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중요하다. 독일 정부의 지원금을 받은 각 지역의 기념관과 재단은 저마다 다양한 전시 및 문화 프로젝트와 학생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꾸린다. 역사를 기록하고 연구하는 학술적인 활동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는 독일이 짊어져야 할 영구적인 책임을 세대를 이어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그 전에 피해 국가와 피해자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법적 배상이 전제되었음은 물론이다.


태그:#위안부, #홀로코스트, #아우슈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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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을 공부했다. 지금은 베를린에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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