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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이상하다. 많은 음식점과 주점이 있고, 날마다 많은 술들이 소비되고 있는데 정작 '서울의 술'은 없다. 누군가는 "서울 장수막걸리나 참이슬 정도가 서울 술의 상징이 아니겠냐"라고 말하는데, 동의하기에는 갸우뚱거려진다.

어렵다. 장수막걸리는 서울에서 만들어지긴 하지만 서울 술이라고 답하기 곤란하다. 원료만 따졌을 때, 서울의 수돗물로 빚지만 쌀은 수입쌀을 쓴다. 서울 사람들이 많이 소비한다는 것뿐, 서울의 역사나 정체성을 담고 있지는 않다. 경기도 이천과 충북 청주에서 생산되고 있는 참이슬은 태생부터 서울이 아니다.

그렇다면 서울에 술이 아예 없었던 것일까? 아니다. 약주 삼해주, 소주 삼해주, 송절주, 향온주가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다만 아쉽게도 그 술들은 상품화되지 않아서, 맛볼 수 없을 뿐이다.

이 네 종류의 술 중에서 서울을 대표하는 술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삼해주(三亥酒)다. 삼해주란 해일(亥日)마다 세 번에 걸쳐 빚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해일(亥日)은 십이간지의 마지막 날이다.

서울의 술, 삼해주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삼해주 술병.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삼해주 술병.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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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해주에 관련된 문헌 자료는 아주 많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 시인 이규보가 쓴 '나는 또 특별히 시 한 수를 지어 삼해주를 가져다 준 데 사례하다'(予亦別作一首謝携三亥酒來貺)라는 시가 <동국이상국집>에 전해온다. 

쓸쓸한 집 적막하여 참새를 잡을 만한데 / 閑門寂寞雀堪羅
어찌 그대의 방문 생각이나 했으랴 / 豈意君侯肯見過
또 한 병의 술 가져온 정 이미 두터운데 / 更把一壺情已重
더하여 삼해주 맛까지 뛰어났으니 / 況名三亥味殊嘉

조선시대 세조의 궁중 어의로 활동했던 전순의가 쓴 <산가요록>(1450년대 작성)에 쌀 20말로 빚은 삼해주 만드는 법이 실려 있다. 한글로 전해오는 가장 오래된 조리서인 장계향의 <음식디미방>(1670년대 작성)에는 삼해주 빚는 방법이 네 가지나 실려 있다. 조선시대 문장가 고봉 기대승(1527~1572) 선생이 담양 식영정에서 지은 시에도 "좋은 술 삼해를 기울이고"(美酒傾三亥)가 나온다.

<조선왕조실록> 정조 18년 갑인(1794, 건륭 59) 10월 24일 (무인)의 기록에 삼해주가 등장한다. 신하들이 '농사 작황이 좋지 않으니 금주령을 내리면 어떻겠습니까'라는 소견에 정조는 그럴 수 없는 이유들과 함께 "더구나 삼해주가 이미 다 익었으니 이제 와서 이미 다 빚어놓은 술을 공연히 버리게 할 수는 없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이어져오던 삼해주는 1849년에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 3월 편에 서울의 지명과 함께 등장한다.

"술집에서는 과하주를 빚어 판다. 술 이름으로는 소국주, 두견주, 도화주, 송순주 등이 있는데 모두 봄에 빚는 좋은 술들이다. 소주로는 독막(지금의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서 대흥동 사이) 주변에서 만드는 삼해주가 가장 좋은데 수백 수천 독을 빚어낸다. 평안도 지방에서 쳐주는 술로는 감홍로와 벽향주가 있고, 황해도 지방에서는 이강고, 호남 지방에서는 죽력고와 계당주, 충청도 지방에는 노산춘 등을 각각 가장 좋은 술로 여기며 이것 역시 선물용으로 서울로 올라온다."(정승모 풀어씀, 도서출판 풀빛, 2009)

놀랍다. 지금의 마포에서 삼해주를 수천 독을 빚어냈다고 하니. 그 뒤로 1935년에 일본인들이 작성해 편찬한 <조선주조사>에 삼해주 생산량이 더 구체적으로 나온다. 지금의 공덕동인 공덕리에는 100여 호의 소주 제조가가 있어 큰 곳은 1년에 약 60석(1만800리터), 최소는 3석(540리터) 정도를 제조했는데, 그 양이 총 3000석(540톤 정도)이나 됐다고 한다. 마포 공덕리는 삼해주 천국이었던 셈이다. 

삼해주 수천 독을 빚었다던 마포엔 흔적조차 없지만

 체에 내린 고은 밀가루로 누룩을 만든다.
 체에 내린 고은 밀가루로 누룩을 만든다.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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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밑술을 담그기 위해서 쌀과 밀가루를 섞어 덩어리를 만든다.
 중밑술을 담그기 위해서 쌀과 밀가루를 섞어 덩어리를 만든다.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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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과 밀가루로 만든 덩어리를 뜨거운 물에 익혀내고 있는 삼해주 기능보유자 권희자 장인.
 쌀과 밀가루로 만든 덩어리를 뜨거운 물에 익혀내고 있는 삼해주 기능보유자 권희자 장인.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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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해주가 마포에 많았던 것은 마포나루라는 포구, 요즘으로 치면 서울역이나 강남터미널처럼 사람 왕래가 잦았던 지역이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소주는 전통적으로 북쪽 지방이 강했는데, 서해안을 거쳐 한강을 거슬러와 마포에 정착한 평안도·황해도 소주 기술자들이 합류해 삼해주 빚는 기술도 향상됐다고 한다. 때로는 과거 보러온 남편을 뒷바라지하던 평안도 아낙이 삼해주 도가에서 일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서울시 삼해주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인 권희자 선생은 해일 해시에 술을 빚었다고 한다. 해시가 오후 9시부터 오후 11시 사이니, 한밤중에 술을 빚은 게다. 권희자 선생의 제법에 따르면, 정월 첫 해일에 멥쌀을 가루내서 끓는 물을 붓고 범벅을 누룩과 함께 치대 삼해주 밑술을 빚는다. 음력 2월 첫 해일에는 멥쌀가루에 밀가루를 섞어 뜨거운 물로 익반죽해 끓는 물에 익히고 이를 밑술과 섞어 중밑술을 빚는다. 음력 3월 첫 해일엔 고두밥을 지어 중밑술과 섞어 마지막 덧술을 한다. 이렇게 세 번에 나눠 빚는 삼해주가 다 익으면 맑은 청주를 얻게 된다. 이를 소주고리로 증류시키면 삼해소주가 된다.
 
삼해주는 버드나무 가지에 새순이 돋는 봄에 마신다 하여, 버드나무 꽃을 뜻하는 유서주(柳絮酒)라는 운치 있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이르면 4월말 늦어도 5월에는 즐길 수 있는 술이다.  

이쯤 되면 삼해주를 서울의 술이라고 칭할 만하다. 그런데 삼해주가 서울을 대표하는 술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혹시나 해서 나는 마포구 공덕동 일대에서 삼해주를 수소문한 적이 있다. 하지만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마포구의 향토사학자에게 물어보니, 그이도 알 길이 없고, 흔적 하나 남은 곳이 없다고 했다. 100년 전에는 수천 독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하나도 없다니.
  
오랜 세월 한양 사람들의 시름을 달래주었고, 마포나루를 드나들었던 옛 사람들이 달콤하게 맛봤을 삼해주를 이제라도 다시 맛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왜 없겠는가. 삼해주 기능보유자도 있고, 삼해주 제법도 옛 문헌에 잘 남아있으니, 삼해주를 빚으면 될 일이다. 
                               
2016년 올해는 정월 첫 번째 해일이 2월 11일이고, 두 번째 해일이 3월 18일, 세 번째 해일이 4월 11일이다. 계승되고 있는 전통 술 중에서 해마다 술 빚는 날이 정해진 술은 삼해주밖에 없다. 이 날에 맞춰 삼해주를 빚어보면, 왜 36일이나 24일 간격으로 해일에 술을 빚었는지 얼마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올해는 나 또한 꼭 삼해주를 빚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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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평론가, 여행작가. 술을 통해서 문화와 역사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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