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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바보처럼 노려보는 텅 빈 캔버스를 마주할 때면,
그 위에 아무것이든 그려야 한다.
너는 텅 빈 캔버스가
사람을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지 모를 것이다.
비어 있는 캔버스의 응시,
그것은 화가에게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캔버스의 백치같은 마법에 홀린 화가들은 결국 바보가 되어 버리지.
많은 화가들은 텅 빈 캔버스 앞에 서면 두려움을 느낀다.
반면에 텅 빈 캔버스는
"넌 할 수 없어"라는 마법을 깨부수는
열정적이고 진지한 화가를 두려워한다.'

빈센트 반 고흐, '1884년 10월 테오에게 보낸 편지 中'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책 표지.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책 표지.
ⓒ 예담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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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다닐 즈음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얼마 전 선물받아 간만에 다시 읽게 되었다. 전에 읽었을 때는 표지에 '밤의 카페'가 인쇄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에 선물받은 책엔 자화상으로 바뀌어있는 게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이 외로운 그림이 내게 다시 이 책을 펴도록 했으니 표지를 바꾼 게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닌 것 같다.
 
사실 나는 고흐의 자화상을 좋아하지 않는다. 고흐는 실제 삶에서도 예민하고 나약한 기질로 스스로를 필요 이상 괴롭혔고 스스로를 실제보다도 더 우울하고 고통받는 존재로 왜곡해서 인식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자화상이 그의 삶보다도 더 고독하다고 생각하고 그의 거의 모든 자화상에서 느껴지는 극도의 공허함에 불편함을 느낀다.
 
동생이자 친구 그리고 예술적 협력자였던 테오에게 보낸 편지들로 거의 대부분이 채워진 이 책은 마치 성장에 실패하는 성장영화, 혹은 새드엔딩으로 끝나는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예리한 감수성을 가진 유리같은 영혼이 그 깨지기 쉬운 기질을 이겨내지 못하고 고독한 환경 속에서 조금씩 금이 가다 마침내 산산이 박살나버리고 마는, 파국적인 엔딩의 영화 말이다.
 
예술적 성취에 삶 전체를 쏟아붓고 그림으로써 그림 이상의 것에 도달하기를 갈구했던 고흐. 나는 그가 거의 구도에 가까웠던 예술의 길에서 인간으로서의 삶과 예술가로서의 성취를 조화시키지 못하고 급기야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만다는 이야기의 결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마치 비극적 결말을 알고 보는 영화처럼 읽는 내내 고통받게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표지에 실린 그의 슬픈 눈망울은 내가 이 책을 펼쳐들도록 만들었고 나는 꼭 팔 년 전 그때처럼 이미 죽어버린 이의 죽음에 깊은 슬픔을 느끼고야 말았다.

고독에 패배한 처절한 예술가

붓꽃(iris), 한 송이만 흰 색으로 그려진 붓꽃이 어딘가 외롭고 처연했을 고흐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하다
▲ 빈센트 반 고흐 붓꽃(iris), 한 송이만 흰 색으로 그려진 붓꽃이 어딘가 외롭고 처연했을 고흐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하다
ⓒ 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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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하기 7개월쯤 전, 그가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화가는 눈에 보이는 것에 너무 빠져있는 사람이어서, 살아가면서 다른 것을 움켜쥐지 못한다'는 사람들의 미신적인 생각을 틀렸다고 할 수 없어 슬프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 미신적인 생각은 실상 미신적이지만은 않았기에 고흐는 결국 이 생각을 넘어서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예술의 본질은 단순한 자연의 모방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 즉 표현에 있다고 생각한 한 예술가가 아이러니하게도 표현의 주체인 스스로의 성장을 이루지 못한 채 자신을 가로막은 고독 앞에 무릎 꿇고마는 순간을 목격하는 것은 너무도 괴로운 경험이다. 만약 그가 사람들의 생각을 미신이라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리하여 더이상 고독에 스스로를 학대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면, 아마도 더 좋은 무언가를 그림에 담아낼 수 있었을 텐데.
 
그가 이 미신에, 그리고 고독에 패배해버린 1889년부터의 작품은 고독과 필사적으로 투쟁하고 있었던 1888년까지의 그림보다 더 처절하고 더 간절할지언정 더 위대하지는 못하다고 생각한다. 내겐 그 사실이 너무도 슬프게 다가온다.

더 적극적인 사람이 더 나아진다

아를의 방
▲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방
ⓒ 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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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적극적인 사람이 더 나아진다. 게으르게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느니 실패하는 쪽을 택하겠다."(테오에게 쓴 편지 중) 라는 명제를 요즈음 접했던 많은 작품들에서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한동안, '더 나아지는 것이 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보다 더 낫다'는 이 명제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건대 이 명제는 참으로 옳다. 이는 움직인 그곳이 현재 서 있는 곳보다 낫기 때문에 의미를 얻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지 않으면 퇴화할 수밖에 없는 삶의 잔인함을 인식한 자들에게 의미를 갖는 통찰이기 때문이다. 퇴화한다는 것은 죽음과 통하고 삶이란 결국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생명의 몸부림일 뿐이니까.

그렇지만, 이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한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변한다는 걸 가슴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에는 생각보다 큰 아픔이 따른다. 실패한 삶을 산 성공한 예술가, 비록 그 자신은 성공을 보지 못한 채 죽고 말았지만,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를 읽다 보면 행복한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반 고흐, 영혼의 편지>(빈센트 반 고흐 지음 / 예담출판사 / 2005.06. / 9800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양장)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예담(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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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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