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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치 남매는 아직 사춘기도 되지 않은 어린 아이들이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공기총을 들고 의기양양해 하는 그들에게 아빠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는 말한다.

"난 너희들이 마당에서 깡통이나 쏘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새들도 쏘게 되겠지. 맞출 수만 있다면 어치새 같은 것은 원하는 대로 쏘아도 좋다. 하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것은 죄가 된다는 걸 명심해라."

남매에게는 엄마가 없다. 집안일을 대신 해주는 흑인 아줌마는 앵무새를 해쳐선 안 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농작물을 망치는 조류들과는 달리 앵무새는 그저 사람들을 위해 마음을 열고 노래를 들려주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앵무새 죽이기>는 미국의 여류작가 하퍼 리가 쓴 장편소설이다. 원제는 'To kill a mockingbird'. 여기서 '앵무새'라고 번역된 'mockingbird'는 집에서 널리 키우며 사랑받는 바로 그 앵무새가 아니라 다른 새들의 울음소리를 흉내내며 살아남는 흉내지빠귀를 말한다.

이 책이 국내에서 정식출판된 것은 미국에서 발표된 1960년보다 훨씬 늦은 2003년이었다. 그전까지는 해적판으로만 떠돌고 있었다. 처음 번역한 누군가의 영어사전에 앞서 말한 단어의 의미가 '앵무새'라고 적혀 있던 것이 영원히 바로잡을 수 없는 오역을 남겼다.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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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치 남매가 사는 앨라배마 주의 작은 도시에는 앵무새 같은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흑인이지만 글도 읽을 줄 알고 누구보다도 요리를 잘하는 캘퍼니아 아줌마, 교육열에 불타는 수줍음 많은 처녀 캐럴라인 선생님, 감자 한 자루를 받고 환자들을 치료해주는 의사 레널즈, 성실한 톰 로빈슨, 그리고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부 래들리...

모두가 남을 해치긴커녕 아름답게 노래하는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지만, 헌법에 적혀 있는 것처럼 공평한 대우를 받지는 못했다. 대공황이 휩쓸어간 1930년대의 미국에서는 말이다. 핀치 남매는 마을에 네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계층'이니 하는 단어를 알지 못하는 남매로서는 생각할수록 답이 나오긴커녕 어려운 얘기일 뿐이다.

하퍼 리가 자란 앨라배마 주는 미국 남부에 속한 곳이다. 남북전쟁 이전에는 목화재배를 위해 수많은 흑인 노예를 부렸고, 그래서 흑인 인구비율이 높으면서도 한편으론 백인 보수주의가 팽배한 곳이었다.

하퍼 리가 29살이었던 무렵에 앨라배마에서는 흑인 여성 로자 파크가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사건이 일어난다. 흑인은 백인과는 수도꼭지도 다른 걸 쓰고, 버스에 먼저 탔더라도 백인이 보이면 뒤쪽으로 자리를 비켜야 한다고 정해져 있던 시절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종차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버스 보이콧 운동'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듬해, 하퍼 리는 회사를 관두고 '앵무새 죽이기'를 쓴다.

작품 속의 배경으로 나오는 메이콤은 당시 앨라배마 주의 축소판 같은 곳이다. 주인공 핀치 남매가 사는 마을은 표면적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숨이 막힐 것 같은 구습과 편견에 점령당한 곳이다. 남매는 자라면서 마을 사람들이 강요하는 부조리한 일들을 깨닫고 맞서 저항하는 법을 배운다. 또한 아빠 핀치 변호사는 아이들에게 나침반이 되어 믿고 싸워야만 할 신념과 또 참된 용기가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1955년,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은 로자 파크처럼 말이다.

하퍼 리는 작품을 발표한 1960년에서도 한참 먼 1930년대 미국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책에서 고개를 든 나에게는 2016년의 한국이 보인다. 내가 사는 서울에서는 책 속 메이콤처럼 흑인들만 모여 사는 마을도 없는데 너무나도 많은 차별과 편견을 목격하게 한다.

불과 며칠 전에도 한 기업 회장의 운전기사가 당했던 굴욕을 보도하는 기사를 읽었다. 좁은 차 안에서 회장님과 운전기사 사이에 놓인 간격이 50년대 미국 앨라배마 주의 흑백 거주 지역을 나눈 거리만큼이나 멀었다.

작중에서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는 "형용사를 모두 지우고 나면 진실만이 남는다"고 말했다. 그릇된 시도들을 합리화 하려는 정치와 언론의 많은 말들 가운데 헛된 수사를 지우고 나면 최후에 남는 진실이란 무엇일까.

애티커스 변호사는 거짓과 싸우다가 '깜둥이 애인'이라는 조롱을 듣는다. 한국은 잘못된 세상의 공식과 싸우는 사람들을 어떻게 부르고 있나. 어쩌면 앵무새의 죽음은 책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열린책들(2015)


태그:#앵무새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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