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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강적들' 출연진이 2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컴오피스 네오 발표 행사에서 한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손정혜 변호사, 박은지 아나운서,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 이봉규 시사평론가, 김성경 아나운서.
 TV조선 '강적들' 출연진이 2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컴오피스 네오 발표 행사에서 한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손정혜 변호사, 박은지 아나운서,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 이봉규 시사평론가, 김성경 아나운서.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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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9! 응답하라 한글과컴퓨터"

한글 워드프로세서 원조 '한글과컴퓨터(한컴)'의 부름에 '아래아한글(아래 한글)' 세대가 응답했을까? 26일 오후 한컴오피스 신제품 발표 행사가 열린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그랜드볼룸은 최대 1800명까지 수용할 수 있었지만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이날 선착순 1000명에게 새로 나온 '한컴오피스 네오' 정품 패키지를 준다는 말에 참가자들이 일찌감치 몰린 탓이다. 그나마 선착순 상품도 행사 시작 30분여를 남겨놓고 동나고 말았다.

'공짜 마케팅'도 한몫했지만, 이날 행사를 통해 '한글'에 대한 관심이 아직 식지 않았음이 증명됐다. 한컴은 지난 2005년부터 '마이크로소프트(MS) 오피스'에 맞서 오피스 프로그램도 꾸준히 개발해왔다. '엑셀'에 맞선 데이터 분석용(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 '한셀'과, '프리젠테이션'에 맞선 발표 자료 프로그램 '한쇼'가 그것이다. 워드프로세서만으로 오피스 시장에서 승산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관련기사: 1등만 기억하는 세상, '청년 한컴'의 생존법)

세계 시장 5% 목표, 믿는 건 '반MS' 정서?

하지만 MS가 장악한 오피스 시장을 뒤집기는 역부족이었다. 2014년 말 20%에 머물던 한컴 오피스 점유율이 지난해 30%대로 올라서긴 했지만 여전히 MS가 70% 가까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그나마 공공기관과 개인 사용자들이 꾸준히 '한글'을 쓴 덕에 한컴오피스도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다.

한컴에서 최근 워드프로세서 이용자 825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했더니 '한글' 사용자는 58%로 MS 워드를 크게 앞섰다. 하지만 1990년대만 해도 한글의 시장점유율이 90%에 달했다. 그사이 MS 오피스는 기업 시장을 중심으로 점유율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렸다.

지난 2010년 11월부터 한컴을 이끌고 있는 김상철 한컴그룹 회장은 이날 글로벌 진출을 확대해 세계 오피스시장 점유율 5%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김 회장은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은 데스크톱에서 모바일과 클라우드로 넘어가고 있는데 우린 이미 4~5년 전부터 준비해 이미 세계적 수준이고 (삼성) 스마트폰에 한컴 솔루션이 탑재돼 전 세계 3억 명이 사용하고 있다"면서 "지금 세계 시장 점유율은 0.4-0.5% 정도지만 5%만 달성해도 1조 4천억 원대 매출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컴은 이미 인터넷과 연결해 사용하는 '웹오피스' 프로그램을 앞세워 러시아, 중국, 중동, 남미, 인도 등 '반MS' 정서가 강한 국가에 진출했다. 김 회장은 "모든 소프트웨어는 (데이터가 저장되는) 서버가 중요한데, 미국 공룡 기업에 정보가 유출되는 걸 꺼리는 국가부터 영업하고 있다"면서 "한국 시장도 MS가 70%, 한컴이 30% 정도인데 '네오'가 나가면 이 판도가 바뀔 것이고 한컴 점유율이 50%를 넘으면 MS는 한국에서 진퇴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한컴오피스 네오는 MS 워드 문서 전용 편집기인 '한워드'를 처음 추가하는 등 호환성을 한층 강화했다. 기존 '한글'에서도 워드 문서를 볼 순 있었지만 서식이 깨지는 등 호환이 불완전했기 때문이다. 또 글로벌 진출을 염두에 두고 영어,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 등 9개 국어 번역 기능도 추가했다. '표'와 같은 기존 문서 서식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번역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날 현장에서 대화체나 복잡한 문서까지 테스트할 순 없었지만 '제품 사용설명서'처럼 어느 정도 표준화된 문서의 경우 비교적 원문에 가깝게 번역했다.

'응답하라 1989' 애국심 마케팅 통할까

한글과컴퓨터에서 26일 발표한 '한컴오피스 네오' 패키지는 1989년 한글 워드프로세서 초판 패키지를 본 따 만들었다.
 한글과컴퓨터에서 26일 발표한 '한컴오피스 네오' 패키지는 1989년 한글 워드프로세서 초판 패키지를 본 따 만들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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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컴은 한컴오피스 네오 패키지를 지난 1989년에 처음 나온 '한글' 패키지를 본떠 만드는 등 한글 초기 사용자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대부분 20~30대였지만 40~50대 중장년층도 적지 않았다. 

이날 행사를 연 것도 종합편성채널 'TV조선' 간판 시사토크 프로그램인 '강적들' 출연자들이었다. 강적들에서 '보수 논객'으로 통하는 시사평론가 이봉규씨는 이날 "한컴은 애국기업"이라면서 "김상철 회장 발표는 빌 게이츠보다 나은데 세계 시장 5%는 너무 통이 작다, 목표를 50%로 높이자"고 치켜세웠다.

손정혜 변호사도 "일본은 소프트웨어 정품 구매율이 90% 이상인데 우린 20~30% 수준"이라면서 "1998년 국민이 '한글' 지키기에 나서 정품이 6배 넘게 팔렸는데 그때 MS에 넘어갔다면 지금의 한글도 없었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실제 당시 MS에서 한컴에 거액을 투자하는 조건으로 '한글' 개발 중단을 요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글 8.15 버전'이 4개월 동안 70만 개나 팔리기도 했다.

최근 총선 출마를 선언한 이준석씨도 "한컴이 위기를 극복한 건 단순히 애국심에 호소해서가 아니다"라면서 "애국심 마케팅으로 품질이 안 좋은 차를 팔면 사겠나, 내 돈 주고 살 가치가 있을 때 사는 것"이라며 한컴 제품의 경쟁력을 강조했다.

정작 정곡을 찌른 건 박은지 아나운서였다. 박 아나운서는 이날 "(MS가 1990년대 국내 시장을 장악하려고 했던 것처럼) 한컴오피스도 '반MS' 나라에 무료로 배포해 시장을 키우면 안 되나"라고 말했다가 다른 출연자들에게 "그러다 회사 망한다"고 면박을 당했다. 이에 박 아나운서도 "소프트웨어를 돈 내고 산다는 걸 20대에 처음 알았다"면서 "이제는 제 돈 내고 사겠다, 정품 쓰자"고 마무리했다.

실제 한컴의 최대 경쟁자는 더 이상 MS가 아니다. 그사이 모바일, 클라우드를 중심으로 무료로 쓸 수 있는 오피스 프로그램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컴오피스 네오 패키지의 경우 일반용이 30만~40만 원대에 이르고, 가정용도 4만~5만 원대다. MS 오피스 가격에는 못 미치지만, 일반인들에겐 애국심만으로 넘을 수 없는 큰 장벽인 셈이다.


태그:#한글과컴퓨터, #한컴, #한글, #MS 오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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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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