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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스스로 별칭을 '빅풋(BigFoot) 부부'라고 붙였습니다. 실제 두 사람 모두 '큰 발'은 아니지만, 동네 골목부터 세상 곳곳을 걸어 다니며 여행하기를 좋아해 그리 이름을 붙였지요. 내 작은 발자국 하나하나가 모여 새로움을 발견하는 거대한 발자국이 된다고 믿으며 우리 부부는 세상 곳곳을 우리만의 걸음으로 여행합니다. 우리 부부가 함께 만든 여행 영상도 즐겨 보시길 바랍니다. - 기자 말



그라나다를 떠나기 전 우리는 옛 아랍인이 모여 살던 곳으로 그라나다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알바이신 지구'도 돌아봤고, 스페인 바로크 양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카르투하 수도원'도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동영상이나 여행기에서 그 부분은 살짝 건너뛰기로 했습니다.

스페인 여행에서 우연히 계속 만나게 된 두 명의 한국인 여행자와 이 여정을 함께 했는데, 그분들 허락을 얻지 않고 영상이나 사진을 쓰는 건 안 될 일 같아서입니다. 하지만 그라나다 여행을 하게 된다면 알바이신 지구나 카르투하 수도원도 빼먹지 말고 들러보세요.

우리 부부는 그라나다를 떠나 피카소의 고향, 말라가(Malaga)로 향했습니다.

말라가 대성당, 짓다가 만 까닭은?

탑이 하나만 세워져 있어 '외팔이'란 별명이 붙었다.
▲ 말라가 대성당 탑이 하나만 세워져 있어 '외팔이'란 별명이 붙었다.
ⓒ 박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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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짐을 풀고 보니 창밖으로 대성당(Catedral)의 종탑이 보입니다. 대성당과 숙소가 지척(咫尺)인 이유로 말라가 여행의 첫 순서는 대성당이 됐습니다. 1528년에 디에고 데 실로가가 짓기 시작한 이 대성당의 별명은 '라 만키타(외팔이, La Manquita)'라고 합니다.

대성당 정면에 서면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양쪽에 균형을 잡고 있어야 할 탑이 하나만 온전히 지어져 있고, 하나는 짓다만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성당이 처음 지어질 당시 재정 부족으로 나머지 탑 하나를 다 짓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지금껏 이렇게 미완성으로 둔 걸 보면 '외팔이'란 별명이 이곳 사람들 마음에 들었거나 '미완성'인 모습이 더 독특하게 여겨졌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Luis Ortiz에 의해 디자인됐으며 적갈색 삼나무로 제작됐다.
▲ 말라가 대성당 성가대석 Luis Ortiz에 의해 디자인됐으며 적갈색 삼나무로 제작됐다.
ⓒ 박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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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내부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으로 장식돼 있습니다. 17세기 삼나무로 만들어진 성가대석과 바로크 양식의 멋진 파이프 오르간도 놓치지 말고 보시고요, 시간적 여유가 좀 있다면 대성당 박물관도 둘러보면 좋습니다. 스페인 기독교 미술의 역사와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그림과 석상들이 다양하게 전시돼 있습니다.

말라가의 햇살은 겨울인데도 눈부시고 따스했습니다. 대성당에서 이슬람 성채인 알카사바(Alcazaba)까지 거리가 좀 있지만, 햇살이 좋아 걷기로 합니다. 알카사바 입구에는 3세기 건축물인 로마 시대의 원형극장 터도 남아 있으니, 잠깐 걸음을 멈춰 눈에 담고 가면 됩니다.

이슬람 지배자의 성이었던 알카사바를 오르는 길은 그야말로 싱그럽습니다. 겨울인데도 오렌지가 한가득 열려있고 야자수가 뻗어있으며 갖가지 꽃들이 피어있습니다. 게다가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이슬람의 건축양식까지 더해져 이국적인 풍경 속에 푹 빠져 걷게 됩니다.

이슬람교 지배자의 성채. 겨울인데도 오렌지가 주렁주렁 열렸다.
▲ 알카사바 (Alcazaba) 이슬람교 지배자의 성채. 겨울인데도 오렌지가 주렁주렁 열렸다.
ⓒ 박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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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내부에는 이곳의 역사를 보여주는 갖가지 자료들도 전시돼 있어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아랍인들은 8세기부터 11세기 사이에 기존의 로마 성곽 위에 이 멋들어진 성채를 올렸다고 합니다. 이후 이슬람 세력이 쇠퇴하고 1487년 말라가가 기독교도들의 수중에 들어간 이후에도 가톨릭 왕들은 무어인들을 말라가에서 내쫓지 않았고 그 덕분에 무어인들은 계속해서 이 지역 발전에 공헌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이슬람의 성채도 따사로운 지중해 햇살 아래 온전히 남아있을 수 있었겠지요.

침략과 탈환 뒤에 '내쫓기지 않음'을 그저 감사할 일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종교와 문화가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고 망가뜨리고 말살하는 것만은 하지 않아도 좋겠다 싶습니다.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의 뛰어남을 '함께' 뽐내며 이웃할 수도 있다는 걸 이렇게 지난 역사의 유물들이 보여주고 있는데, 지금껏 세상 곳곳에서 그 '공존'이 인정되지 않고 있음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알카사바에서 최고로 전망이 좋은 파티오

알카사바 최고 전망대에서 관광객들이 말라가 항구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알카사바 최고 전망대에서 관광객들이 말라가 항구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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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사바 전망대에서 바라본 지중해와 말라가 시내 전경
 알카사바 전망대에서 바라본 지중해와 말라가 시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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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사바의 최고 '전망 좋은 곳'은 아기자기한 분수가 있는 파티오(patio, 스페인식 가정의 안뜰)랍니다. 이곳에 이르려면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언덕을 올라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세상의 모든 전망 좋은 곳이 그렇듯 힘들게 오르는 노력이 헛되지 않다는 걸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보여줍니다.

지중해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항구와 투우장이 자리한 말라가 시내가 시원스레 내려다 보입니다. 겨울이라 많지 않은 관광객이 같은 방향으로 서서 숨을 고르고, 웃음 섞인 이야기를 나눕니다. 같은 곳을 보며 같은 느낌을 가진다는 것, 여행에서 내 옆에 선 모든 이들이 그저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 때문일 겁니다.

알카사바를 찾는 이들 중에는 이 전망을 끝으로 내려가는 길을 선택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올라 정상까지 가기로 합니다. 히브랄파로성(Castillo de Gibralfaro)에 서기 위해서입니다. 히브랄파로성은 알카사바를 방어하기 위해 건설된 성으로, 해발 130m의 언덕 위에 14세기 성벽이 이어져 있습니다. 히브랄파로는 아랍어로 '산에 있는 등대'란 뜻이라는데, 이곳에서는 그야말로 360도 전망이 펼쳐집니다.

이 요새는 도시와 바다로 들어오는 적들을 감시할 목적으로 지어져 스페인에서 화약을 이용한 첫 전투가 있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또 기독교 세력이 펼친 국토회복 전쟁이 가장 오래 지속된 곳 중 한 곳이라고도 하고요. 평화롭고 아름답기만한 지금의 풍경에 풍덩 빠져 즐거운 속에서도 히블라파로성의 치열했던 옛 역사도 한 번 되새겨 봅니다.

'산에 있는 등대'란 뜻으로 알카사바를 방어하기 위해 세워졌다.
▲ 히브랄파로성 (Castillo de Gibralfaro) '산에 있는 등대'란 뜻으로 알카사바를 방어하기 위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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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랄파로성 안에 있는 카페에서 여행자들이 햇살을 받으며 차를 마시고 있다.
 히브랄파로성 안에 있는 카페에서 여행자들이 햇살을 받으며 차를 마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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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유물이 가득한 대성당도 보고 힘겹게 언덕을 올라 이슬람의 두 성채도 봤는데, 아직 우리 부부의 말라가 여정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피카소(Pablo Picasso)'가 남았거든요.

말라가는 피카소의 고향입니다. 메르세르 광장에는 청동으로 만든 피카소의 동상이 물끄러미 광장을 보며 앉아있습니다. 피카소의 흔적을 찾아 이곳에 온 여행자들은 그 옆에 앉아 피카소의 시선을 쫓게 되지요.

이 광장 입구에 피카소가 태어난 집(Casa Natal de Picasso)이 있습니다. 1881년 10월 25일에 피카소는 이곳에서 태어나 1년 반 정도를 살았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내부를 개조해 미술관으로 개방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피카소의 작품들을 비롯해 피카소의 배내옷과 어린 시절 사진 등도 전시돼 있고, 건물 3층에는 피카소와 관련된 각종 자료를 갖춘 도서관도 있습니다.

피카소가 자신의 미술관 만들라는 유언을 남긴 도시

아이가 앉아 노는 이 자리에 많은 여행자들이 앉았다 간다. 광장 입구에는 피카소 생가가 있다.
▲ 메르세르 광장에 있는 피카소 동상 아이가 앉아 노는 이 자리에 많은 여행자들이 앉았다 간다. 광장 입구에는 피카소 생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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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유언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가족이 기증한 155점의 피카소 작품이 전시돼 있다.
▲ 피카소 미술관 피카소의 유언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가족이 기증한 155점의 피카소 작품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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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생가에서 두세 블록 떨어진 곳에는 피카소 미술관(Museo Picasso Malaga)도 있습니다. 16세기에 지어진 부에나비스타 궁전을 개조해서 만든 이 미술관은 안달루시아 건축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건물로도 유명합니다.

피카소의 고향인 말라가에 피카소 미술관이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만, 피카소는 자신의 고향인 말라가에 자신의 미술관을 만들도록 유언까지 했다고 합니다. 피카소는 '프랑코 독재 정권이 지속되는 한 결코 스페인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공언했을 정도로 스페인의 독재 정권은 미워했지만, 스페인 사람으로서의 자긍심과 조국 스페인에 대한 사랑은 죽을 때까지 놓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피카소의 가족들은 그의 유지를 받들어 이 미술관에 많은 작품을 기증했습니다. 며느리인 크리스티네 루이즈 피카소가 133점, 손자 베르나르드 루이즈 피카소가 22점을 기증해서 1901년에서 1972년 사이에 그린 피카소의 작품 155점이 이 미술관에 전시돼 있습니다. 그 중에서 피카소의 첫 번째 부인 올가가 모델이 된 <만티야를 걸친 올가>와 그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파올로가 모델인 <하얀 모자를 쓴 파올로>는 이 미술관에 소장된 보물로 손꼽힙니다.

햇살 가득한 콘스티투시온 광장에는 말라가 시민들의 활기도 가득하다.
 햇살 가득한 콘스티투시온 광장에는 말라가 시민들의 활기도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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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에 이슬람 성채에 피카소까지. 스페인 여행을 계획하기 전엔 이름도 생소했던 말라가에 참 보물들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말라가에서 하루를 보내고 보니 이 도시가 가진 가장 큰 보물은 그 어떤 유물도 아닌, 겨울에도 빛나는 '햇살'이란 걸 알았습니다. 이런 따사로움이 있으니 이슬람도 기독교도 이 도시를 탐냈겠지요. 피카소의 열정도 이 햇살 아래서 키워졌을 거란 확신마저 듭니다.

햇살 가득한 말라가 곳곳의 풍경을 고스란히 동영상에 담았습니다.



태그:#스페인 여행, #말라가 여행, #피카소 생가, #알카사바, #히브랄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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