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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서울에 일이 있어서 올라왔다. 이틀간의 볼일을 마치고 25일 낮차로 장성에 돌아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 벌써 집 나섰어요?"
"지금 터미널로 가려는 참이에요. 왜요?"
"오지 마, 오지 마. 지금 장성은 난리도 아니에요. 수돗물이 안 나와서 밥도 못하고 화장실 사용도 못 해요."
"…."

화장실 볼일, 어디로 가야 하나...

언 듯 보기엔 꼭 크리스마스카드 같지만...
 언 듯 보기엔 꼭 크리스마스카드 같지만...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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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우리 동네에는 젊은 사람이 없어서 눈이 저절로 녹기를 기다려야 한다.
▲ 한숨 장성 우리 동네에는 젊은 사람이 없어서 눈이 저절로 녹기를 기다려야 한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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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을 떠나 올 때만 해도 눈은 26cm나 내렸지만 수돗물은 나왔었다. 남편과의 전화 내용은 이랬다.

'25일 아침에 화장실을 갔는데 물이 안 나왔다. 화장실이니까 유별나게 추워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아침밥을 지으려고 부엌의 물을 틀었으나 역시 물이 나오지 않았다. 마당의 수도관에서부터 얼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나가서 외식을 하려고 해도 눈 때문에 자동차를 움직일 형편도 아니다. 다행히 온수는 나와서 아쉬운 대로 음식은 해결할 수 있으나, 온수는 너무 뜨거웠다. 고무장갑을 껴도 뜨겁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화장실이다. 온 동네가 다 같은 처지이니 어디고 오갈 데도 없다. 대변을 해결하려면 굶거나, 읍내 관공서나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건물 화장실로 가면 되려나? 아니면 눈을 헤치고 밭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 와중에도 남편의 걱정은 다른 데 있었다. 동네의 어르신들은 비상식품도 별로 비축하지 않았을 텐데 식사는 하시는지, 마실 물은 있는지. 남편은 나더러 온 동네 사정이 이러니 내려오지 말고 날씨가 완전히 풀리면 내려오란다.

남편 역시 일흔이 넘은 나이다. 동네 어르신들의 연세가 남편보다 많아서 상대적으로 젊어 보일 뿐이다. 그러니 서울에 남아 있는 내 마음도 편할 리 없다. 발이 묶인다는 것은, 하늘길이나 바닷길이나 여타의 길 사정이 어려워서 발이 묶인다는 말은 들어 봤어도 추위 때문에 발이 묶이는 희한한 사태도 다 있다.

1층은 물이 넘치는데, 위에선 세탁기를...

물이 문턱을 넘어 집안으로 들어오기 직전이다. 냄비 받침이 둥둥 떠 있다.
▲ 물 찬 베란다 물이 문턱을 넘어 집안으로 들어오기 직전이다. 냄비 받침이 둥둥 떠 있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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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시골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서울 우리 집은 아파트 1층이다. 지난 24일부터 세탁기가 있는 베란다 배수관이 얼어서 1층인 우리 집으로 위층에서 흘러내린 물이 넘치기 시작했다. 관리실 직원들이 와서 뚫어주고 갔다. 아파트 관리실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안내방송을 내보낸다.

"날씨가 혹독하게 추운 관계로 배수관이 얼어서 낮은 층 베란다로 물이 넘치고 있습니다. 날씨 풀릴 때까지 낮은 층 세대를 생각해서 세탁을 삼가시면 고맙겠습니다."

그 날은 물을 안 쓰는지 베란다에 이상이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웬걸! 다시 베란다로 물이 넘치기 시작했다. 관리실에서는 계속해서 세탁기 사용을 자제해 줄 것을 부탁한다고 방송했다.

이 사태가 아파트 1층의 단점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배수관을 녹이는 분들이 오지 않아서 관리소에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뜻밖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층만 그런 게 아니라고. 1층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됐고, 13층이나 높은 층에도 그보다 더 높은 층에서 흐르는 물이 미처 다 내려가기도 전에 얼어서 물이 넘친다고 했다.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이니 조금 더 기다려달라고 했다.

베란다 물이 집안으로 들어오기 직전이다. 나는 너무 급한 나머지 24층이나 되는 우리 아파트에서 한 집 한 집 찾아가 사정을 알리고 양해를 구했다. 지금이라도 빨래를 하고 있다면 멈춰 달라고. 2층부터 24층까지 한 계단씩 올라가서 집집이 벨을 눌리고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었다. 마침 어느 집에서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사정 얘기를 했더니 멀뚱멀뚱하게 쳐다보며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앞베란다인줄 알았는데, 뒷베란다도 그래요?"

세상에나, 앞베란다 뒷베란다 다르게 추위가 피해갈 리 없을 텐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도 물은 계속해서 내려왔다. 그녀가 빨래를 마저 하는 모양이다.
관리실에서 온 분들이 스팀으로 녹여서 물이 빠졌다. 밤늦도록 계속해서 베란다에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잠을 설쳤다가 늦잠을 자버렸다.

도시나 시골이나... 겨울, '꼴값' 제대로 한다

쓸쓸하기는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며칠째 오는 이도 없고 집을 나설 엄두도 안 난다.
▲ 고립2 쓸쓸하기는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며칠째 오는 이도 없고 집을 나설 엄두도 안 난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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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늘, 깜짝 놀라서 오전 9시 반에 베란다로 뛰어가 봤다. 또 물이 넘쳤다. 관리실에서 사람이 나와서 또 뚫어주고 갔다. 주의하라는 방송 멘트는 어김없이 또 나왔다.

사람 환장할 노릇이 또 생겼다. 뚫은 지 두 시간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비누거품을 동반한 물이 넘치기 시작했다. 윗층에서 내려오는 물소리가 이젠 악다구니로 들린다. 헛웃음밖에 안 나온다. 이것이야말로 아노미(ANOMIE)현상, 문화지체현상의 일환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사회 구조로 볼 때 학력은 높아만 가는데 그 가치에 부응하지 못하는 현상들.

오늘만 두 번째로 배수관을 녹이고 있던 한 분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아무래도 집 안 사정이 아니라 밖에서 문제가 생긴 것 같단다. 한 무리가 밖으로 나가서 배수관을 묻은 언 땅을 팠더니 역시나 밖에서부터 얼어 들어왔던 게다. 그러나 누군가는 내 사정이 아니라며 지금도 세탁기를 돌리고 있다. 이제 일하시는 분들은 장비를 밖으로 옮겨서 땅을 파기 시작했다. 꽁꽁 언 땅을. 계속 배수관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정말 야속하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베란다에서와 밖에서 동시에 공사가 한창이다. 시골엔 물이 안 나오고, 서울엔 아파트 베란다 배수관으로 물이 넘친다. 겨울 꼴값 제대로 한다.

발자국 하나 없는 춥고 외로워 보이는 집
▲ 고립 발자국 하나 없는 춥고 외로워 보이는 집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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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폭설, #꼴값, #발이 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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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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