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상균 민주노총위원장이 보내온 편지
 한상균 민주노총위원장이 보내온 편지
ⓒ 고동민

관련사진보기


면회를 했다. 3년을 감옥에서 꼬박 살고 나왔던  그는 또 갇혔다. 쇠창살 너머 단식으로 더 깡마른 사내는 씩 웃었다. 그에게 석방콘서트를 한다고 말해줬다. 그의 민망함을 무시하고 석방콘서트에 함께하시는 분들에게 전할 이야기를 편지로 써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바쁘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며칠 뒤 그에게서 편지가 왔다. 난 그의 글을 잘 익은 홍시맛을 보듯 찬찬히 읽어내렸다. 홍시맛나던 그의 글을 소개한다.

감옥에 갇힌 한상균이 더 큰 감옥에 갇힌 당신들에게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1등을 많이 하는 나라입니다. 그중 노동유연성과 비정규직 비율은 단연 1등입니다. 사람을 자르고 인건비 깎는 일에 온갖 제도와 편법을 동원합니다. 그러다보니 기술과 설비, 사람에게 투자할 이유가 없습니다. 재벌들의 금고에는 돈이 넘쳐나지만 노동자들은 가난해지는 분명한 이유입니다.

박근혜 정권은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며 당선이 되었지만 국민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국민성공시대 5년은 삽질만 했고 국민행복시대 3년은 무능한 대통령 수습하느라 개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비정상적인 국정운영으로 가계부채 1200조, 국가부채 600조 시대를 열어젖혔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모든 문제가 노동자들 탓이라고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4살 청년을 강제로 '희망퇴직'시킨 경제단체 대표들의 소원수레를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 노동개혁이라는 국민 홀리는 미끼입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첫 직선제 위원장인 저는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정권에 맞서 총파업을 조직했습니다. 해고의 억울함에 맞서 싸워 본 제가 쉬운 해고를 막는 선봉이 되겠다며 전국을 돌며 총파업을 호소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쉬운 해고와 비정규 악법을 막아내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결국 제 이름이 수첩에 적혔나 봅니다. 모든 언론을 총동원해 어마어마한 범죄자인양 낙인을 찍었습니다. 해고자인 제게 귀족노조의 딱지를 붙이고 민주노총을 폭력의 온상으로 도배했습니다. 독재정권에서나 있었던 소요죄를 부활시켜 스스로 유신독재정권임을 자처했습니다.

국회의장에게 불법적인 직권상정을 겁박하고 새누리당에게 총선을 미끼로 거수기 역할을 지시했습니다. 청년들의 일자리가 걱정된다며 부모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조삼모사도 안 되는 논리로 세대분열 게임에 푹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도덕한 정권이 내지르는 허약하고 치졸한 공안광풍과 노동개악의 가면은 국민들의 공분만을 불러올 뿐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바보로 살지 않을 것입니다. 입만 열면 국가를 위해서라고 떠들지만 그 국가를 위기에 빠뜨리는 세력들이 누구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살면 노동자도 사는 것이 아니라 기업만 잘 살고 노동자들은 버려지는 것을 수없이 목도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4월이 되면 총선입니다. 지역을 위해 일하는 일꾼이 되겠다고,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호들갑 떨지만 결국 재벌들을 위해서, 권력을 위해서 충성을 다할 정치꾼들이 득실거립니다.

하지만 분열된 야당 덕에 청와대 거수기 정당은 어부지리 200석을 내다보며 표정관리 하느라 생쇼를 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이 투쟁만으로 돌파하기엔 고민이 많아지는 시기입니다. 투쟁과 선거 어느 것이 쉬울까요. 침묵하는 노동자들을 한편으로 모아내야 하니 쉽지는 않습니다.

거기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정권과 민주노총 중 누가 나의 삶을 지금보다 더 나아지게 만들어 줄 것인지 주판을 튕기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에게 희망이 되지 못한 민주노총은 진솔하게 반성합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국가위기의 주범으로 몰려야 하는 이때, 표를 구걸하는 보수 양당의 선거도구가 되어야 되겠습니까.

반노동, 반민주, 반민생, 반역사, 친재벌세력의 영구집권 음모를 막아내기 위해서는 노동자, 농민, 빈민, 청년, 학생, 시민사회, 영세상인, 서민이 한편이 되어야 합니다. 민주노총이 맨 선두에서 길을 열어가겠습니다.

저는 노동자가 약자란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구속되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의한 정권이 누굴 가둔단 말입니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워나가는 노동자의 마음으로 무도한 정권과 싸우는 분들과 함께 호흡하도록 하겠습니다. 민중의 봄이 저만치 오고 있다는 확신으로 이곳에서 마음 보내는 일이라도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한상균 석방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민망한 일입니다. 아직 노동개악을 막지도 못했고, 무도한 정권과 맞서 싸워야 할 이때 다른 분들에게 책임을 넘겨드린 것 같아 송구스런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웃는 사진 한 장 없어서 행사 준비하기 힘들었다는 동지들의 푸념 또한 송구스럽습니다. 웃을 일 만드는 민주노총, 석방이 아니라 해방을 준비하는 민주노총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십시오. 사랑합니다.

2016년 1월 9일 동지들의 동지여서 행복한 한상균 올림

ps. 꼭 한 편이 되어야 합니다. 동지들...

이 웃는 모습을 찍으려고 사진작가가 무척 노력했다는 후문이다.
▲ 한상균 민주노총위원장 사진 이 웃는 모습을 찍으려고 사진작가가 무척 노력했다는 후문이다.
ⓒ 정택용

관련사진보기


1월 21일 (목) 19시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 한상균석방콘서트 웹자보 1월 21일 (목) 19시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 한상균을 기다리는 사람들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한상균 석방콘서트는 1월 21일 (목) 19시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진행됩니다.



태그:#한상균, #쌍용차, #석방콘서트, #민중총궐기, #해고자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쌍용차 복직자. 현재 쌍용차지부 조합원. 훌륭한 옆지기와 살고 있는 세아이의 아빠.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