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날의 분위기>에서 재현 역의 배우 유연석이 14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그날의 분위기>로 유연석은 또 다시 멜로에 도전했다. 전작이 <뷰티 인사이드>고, 차기작이 <해어화> 모두 멜로 장르다. 다만 이번 <그날의 분위기>는 약간의 코믹함도 가미돼 있다. "진심에 대한 영화"라고 그가 소개했다. ⓒ 이정민


부산행 기차를 탔는데 옆자리에 번듯한 이성이 앉아 있다면? 인연을 믿고 사랑에 설레는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그를 의식하기 시작할 것이다. 같은 상황을 묘사한 영화 <그날의 분위기>에서 재현(유연석 분)은 거침없이 수정(문채원 분)에게 말한다.

"나 오늘 당신이랑 자려고요."

보통의 경우라면 강한 불쾌감을 줄 법한 이 말이 희한하게 악의 없이 들린다. 혹시 말을 건넨 사람이 훤칠하고 말끔하게 생긴 유연석이라서? 지난 14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유연석은 "악의 없음"과 "진심" 때문임을 강조했다.

당황스럽지만, 나쁘진 않은

 영화 <그날의 분위기>의 한 장면.

영화 <그날의 분위기>의 한 장면. 재현(유연석 분)은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수정(문채원 분)에게 접근한다. 처음 보자마자 대뜸 "당신과 자려고"라는 말을 뱉는 이 남자. 분명 범상치 않다. ⓒ 쇼박스

영화는 기차 안에서 처음 만난 두 남녀가 서로의 업무에 얽히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분위기를 따져보면 멜로보다는 가볍고 로맨틱 코미디보다는 다소 진지하다. 낯선 여자에게 대놓고 작업을 거는 모습에 혹여나 지금 청춘들의 사랑 방식인가 생각하기에 십상이지만,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을 여는 과정에서 보편성을 다져나간다.

유연석 역시 "재현의 대사와 행동이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요즘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소재"라고 밝혔다. "하룻밤 사랑을 위해 맹렬히 달려들지만, 그 안에 거짓이 없고 여자의 마음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유연석이 해당 작품 대본을 처음 받은 건 2년 전 봄. "원래 10년 전부터 기획된 프로젝트였는데 지금에 맞게 각색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제 입장에서 이런 바람둥이 같은 캐릭터는 처음이라 낯설긴 했죠. 다행히 기차 신을 처음부터 촬영하진 않고 감정이 어느 정도 쌓인 중반에 찍었어요. 감정선이 익숙한 상태에서 임하긴 했죠. 이 영화를 보신 지인분들이 유연석의 실체는 뭐냐며 우스갯소리를 했는데, 저도 모르게 평소 제가 가진 능청스러움이 그 캐릭터를 할 때 묻어나더라고요.

재현이가 물론 발칙한 행동, 부담스러운 언행을 하지만 관객 입장에선 이 캐릭터의 호감을 충분히 믿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영화를 보면) 질척대긴 하지만 이 남자가 결국은 밉지 않거든요. 거짓 없이 진정성을 보이면서 믿음을 얻어가는 거죠."

여행가 유연석

굳이 낯선 이성이 아니더라도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점점 배타적이 되기 쉬운 요즘이다. 유연석 역시 그 지점에 공감했다. "사소한 말이라도 먼저 걸면서 마음을 열어보는 건 어떨까"라며 "낯선 이성이 옆에 있다면 소박하게 행선지라도 물어보는 것도 좋다"며 그가 웃으며 제안했다.

평소 혼자 여행하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낯섦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설렘을 그 역시 잘 알고 있을 터. 특히 해외에 나갈 때면 유연석은 다른 교통수단보다 기차를 선호한다. "유독 한국에선 익숙하지 않은데, 여행자들끼리 대화하고 경험을 나누는 게 외국에선 자연스럽다"며 유연석은 여행 중 겪은 일화를 전했다.

"예전에 터키 여행 때였어요. 이동 중에 어떤 터키 여성분과 얘길 나누게 됐는데 그분도 해외에서 살다가 막 이스탄불에 왔다더라고요. 전 이곳이 처음이라 근처에 맛있는 식당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죠. 그분이 알려준 식당에 진짜로 갔어요. 스테이크와 디저트를 먹었는데 지금도 잊을 수가 없는 맛이었죠. 그 디저트를 기억하면서 제가 운영하는 바(유연석은 서울 이태원동에 작은 바를 운영 중이다-기자 주)에 메뉴로 올려놨어요!"

유연석은 이 영화를 통해서라도 "사람들이 마음의 여유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지하철에서 눈을 마주친다거나 같은 상황에서 만난 타인에게 눈인사할 수 있는 그런 여유다. 공공장소에서든 여행지에서든 스마트폰만 바라보는 한국 사람들을 보며 유연석은 "빠른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기기가 인간 사이 소통을 더 방해하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가 표현한 그 씁쓸함에서 사람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단계를 밟아가면서 생기는 힘

 영화 <그날의 분위기>에서 재현 역의 배우 유연석이 14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근까지 유연석은 쉼 없이 작품활동을 해왔다. 올해 들어 "진정한 휴식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며 그는 "활동을 쉬겠다는 건 아니지만 일하면서 여유를 찾고 싶다"고 말했다. 여행을 가도 대본을 들고 가고 집에서 드라마를 봐도 편히 보지 못하고 작품을 분석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서부터다. ⓒ 이정민


한동안 유연석 앞에는 '<올드보이> 아역 출신'이란 수식어가 있었다. 유지태 아역으로 전도유망했던 그는 스타로 급부상하는 코스가 아닌 독립영화 및 예술영화에 꾸준히 출연하면서 천천히 입지를 다져왔다. <혜화, 동> <열여덟 열아홉> 등으로 경험을 쌓다가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로 대중에게 크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배우를 꿈꿨던 진주의 한 초등학생이 이처럼 성장했다'는 말과 '근성의 배우'라는 수식어를 그에게 건넸다. "감사하다, 솔직히 다른 일을 꿈꿔 본적도 없다"며 그가 웃으며 답했다.

"데뷔 무렵이었나.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면 어떤 이득을 바라지 않고 일에 대한 즐거움을 믿고 10년은 해봐야 하지 않나 생각한 게 있어요. 정말 데뷔한 지 10년 만에 <응답하라 1994> 같은 작품을 만났고 사랑받게 됐죠. 큰바람은 없어요. 여태껏 해온 대로 일에 대한 즐거움을 잃지 않으려 노력할 거예요.

얼마 전까지 입시 철이었잖아요. 오랜만에 모교 교수님에게 문자가 왔어요. 학교 학생들을 인터뷰하는데 존경하는 배우를 묻는 말에 절 얘기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고요. 교수님도 뿌듯해 하셨어요. 차근차근 올라온 과정을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것 같고 그래서 너무 다행이라 생각했죠. 이제 시작인 거 같아요. 나라는 존재를 많은 분에게 알렸을 뿐이지, 더 안 좋은 상황이 올 수도 있고요."

"주위 시선에 흔들리지 않겠다"고 그는 다짐했다. 이렇게 말하는 유연석식 근성의 비밀이 궁금하다고?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였다. 인연을 피하지 않고, 매번 기대하며, 즐겁게 받아들이는 자는 이길 수 없는 법이다.

 영화 <그날의 분위기>에서 재현 역의 배우 유연석이 14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혜화,동> <열여덟, 열아홉> 등 독립영화계 스타로도 유명한 유연석. 지금의 상업영화 말고도 다양한 소규모 영화에 출연할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독립이니 상업이니 하는 분류는 자본에 의한 것이고, 그런 기준보다는 이야기가 좋고,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작품이면 다 하고 싶다"고 그가 답했다. ⓒ 이정민



유연석 그날의 분위기 문채원 응답하라 1994 올드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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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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