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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언제나 돌아올 것을 전제로 한다. 돌아오지 못하고 떠도는 것은 방랑이다. 나에게 있어 사막으로의 여행은 재충전을 위한 가혹한 휴식이다. 새로운 만남과 절대고독 속에서 얻는 지혜는 소중한 자산으로 몸속에 녹아들어 일상(日常)의 나를 풍요롭게 한다. 나는 약하지만 약하지 않은 나를 발견한다. 그러니 여정의 불편함은 기꺼이 감수하고야 만다.

중국 서역 실크로드에 있는 오지 속의 오지. 지구상 가장 여행하기 힘든 지역 중 하나로 알려진 타클라마칸사막을 달리기 위해 중국 대륙을 건넜다. 2010년 8월 19일, 북경과 우루무치를 거쳐 자정에 도착한 호탄(Khôtan)은 지구 밖 행성에 불시착한 것처럼 낯설고 을씨년스러웠다.

다음날 16개국에서 모여든 40명의 선수들은 타림분지를 지나 동쪽으로 250km 떨어진 타클라마칸사막으로 향했다. 회색빛 세상, 창밖은 모래와의 전쟁을 방불케 했다. 호탄에서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 그 자체였다.

타클라마칸사막까지 100km, 48시간 안에 들어와야 한다

그곳엔 죽음의 바다, 타클라마칸사막이 있다.
▲ 가자! 호탄으로~ 그곳엔 죽음의 바다, 타클라마칸사막이 있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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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역 아주 깊숙한 곳에 숨어있다.
▲ 타클라마칸사막 지도 중국 서역 아주 깊숙한 곳에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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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는 타클라마칸사막 한가운데에서 시작해 블랙 제이드 강(Black Jade River)과 투슬루코타크(Tuslukotak) 마을을 지나 다시 타클라마칸사막까지 100km의 거리를 외부의 지원 없이 달려 48시간 안에 들어와야 했다. 어느 누구도 완주를 장담할 수 없지만 도전과 모험을 쫓는 전 세계 마니아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그만이었다.

오후 6시, 원주민들의 요란한 북소리가 울려 퍼지자 움츠렸던 선수들이 연이어 모래폭풍 속으로 뛰어들었다. 경기 전부터 불어대는 광풍이 바닥의 모래를 훑어 올리며 거세게 회오리쳤다. 뿌연 흙먼지에 갇혀 사방을 분간할 수 없었다. 선수들은 주로를 이탈하지 않기 위해 산짐승처럼 눈을 번득이며 두리번거렸다. 1200여 년 전 신라 고승 혜초는 불법(佛法) 찾아 죽음의 바다(Sea of Death) 타클라마칸사막을 건넜다. 그때 불어댄 모래바람도 지금 보다 덜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막의 유일한 사역과 교통수단 낙타
▲ 낙타와 함께 춤을 사막의 유일한 사역과 교통수단 낙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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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멀고, 더 깊은 곳으로...
▲ 거침없는 전사들의 역주 더 멀고, 더 깊은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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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고독과 밤의 공포는 갔다.
▲ 죽음의 바다를 온전히 건넌 재우군 절대고독과 밤의 공포는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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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0시, 바람이 잦아든 사막의 밤은 음산한 기운을 짙게 드리웠다. 일그러진 구름이 마블링처럼 형체를 바꿔가며 나의 동체를 따라 다녔다. 출발부터 묵묵히 내 옆에 바짝 붙어 오던 재우군이 말을 건넸다.

"사막의 밤에 혼자 걸으면 무섭지 않나요?"
"사막이 좋은 이유는 온 밤을 홀로 지새울 수 있기 때문이지. 사람은 절대고독 속에서 성숙되거든."
"그렇군요. 저도 한번 사막의 밤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재우군은 다리를 절뚝이며 어둠속으로 멀어져갔다. 오늘밤 두려움을 떨치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 대범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원했다.

주로를 알리는 푯대는 밤새 광활한 사구 지역으로 이어졌다. 오전 4시 30분, 양 엄지발톱이 모두 들떠 43km 지점 CP3에 도착했다. 10시간 넘게 달려온 터라 허기와 한기가 동시에 몰려왔다. 밤하늘에서는 달이 저문 새를 틈 타 수많은 별들의 보석 빛향연이 펼쳐졌다. 치열했던 온밤을 보내고 나는 하늘과 가까운 모래언덕에 누워 대자연의 연회를 즐기다 잠이 들었다.

이방인을 자신의 집에 초대해준 오아시스 마을 주민

더 높은 곳으로...
▲ 듄의 능선을 따라 더 높은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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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에겐 야생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 사막의 소녀들 그녀들에겐 야생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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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 둘째 날, 듄 지역을 벗어나 블랙 제이드 강과 마주쳤다. 카라카쉬(Karakash)로도 불리는 이 강줄기는 티베트 고원 북서쪽 아크사이 친(Aksai Chin)에서 타클라마칸사막을 가로질러 타림분지로 흐르다 타림강과 만나 신장 위구르 자치주까지 이어졌다.

강기슭 모래가 연신 엄청난 굉음을 내며 허물어져 물속에 잠기고 있었다. 무심코 다가섰다가는 함몰되는 모래 더미와 함께 휩쓸릴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태양과 지표면은 대지 위의 모든 사물을 말려버릴 기세로 살인적인 열기를 뿜어냈다. 45도를 넘어선 기온이 50도에 바짝 다가섰다. 발을 디딜 때 마다 들뜬 발톱이 들썩거렸다.

늘어가는 주변의 관목과 초지를 따라 오아시스 마을 투슬루코타크로 들어섰다. 이토록 열악한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뿌리를 내린 위구르족의 염색체는 어떻게 변형됐을지 내심 궁금했다. 배낭을 메고 뒤뚱거리는 내게 오토바이를 탄 원주민이 뒷좌석에 올라타라고 연신 손짓을 했다. 점잖게 사양하자 극구 자신의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마실 물과 텃밭의 수박을 따주며 힘내라고 응원해주었다.

그가 생면부지인 내 손을 끈 건 오지까지 찾아든 이방인을 만난 반가움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비록 농로에서 허벅지와 종아리에 들러붙은 수백 마리 모기떼의 공격을 받으며 마을에서 쫓겨났지만 대가없이 후의를 베풀어준 웃음 띤 그의 모습이 레이스 내내 아른거렸다.

이곳에도 자연과 문명이 공존하고 있었다.
▲ 투슬루코타크 마을 신작로 이곳에도 자연과 문명이 공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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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는 원주민 아이들의 놀이터다
▲ 낯선 이방인을 위한 포즈 모래는 원주민 아이들의 놀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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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가 좋은 건 동반자가 있기 때문이다.
▲ 다정한 동행 레이스가 좋은 건 동반자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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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맞은 사막의 밤. 또다시 근원을 알 수 없는 모래폭풍이 선수들을 집어삼킬 기세로 휘몰아쳤다. 전날 불어댄 바람과는 비교할 바 아니었다. 몸을 웅크린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푯대가 순식간에 뽑혀 날아갔다. 터진 물집이 양말 속에서 질컥거렸다.

오전 1시를 훌쩍 넘겼다. 눈알에 핏발을 세우며 내 안의 공포를 집어 삼켰다. 자칫 주로를 잃으면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 미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제7구간 15km를 남겨놓고 5명의 선수가 레이스를 포기했다. 지치면 지고 미치면 이긴다. 레이스 끝자락에서 손을 맞잡은 싱가폴 선수 맹포(Meng Poh)와 미친 듯이 오른쪽 능선을 치고 올랐다. 경계 위에 선 맹포가 내 어깨를 흔들며 흥분된 어조로 소리쳤다.

"저길 봐, 캠프가 보인다!"

우리는 가정과 직장 그리고 사회의 일원으로 무대를 옮겨가며 관객들의 호응에 길들여져 있다. 연극 같은 인생에서 무엇으로 성공과 행복을 가늠할 수 있을까. 온전한 광대가 아니기에 우리에겐 자신을 주체적으로 개척하며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다. 유난히 무더웠던 그해 여름, 나의 특별한 사막 여행은 일상으로 돌아와 내 삶의 텃밭을 아름답게 가꾸는 자양분이 되었다. 새로운 세계에 눈뜨게 하고 행복을 가늠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사막에 서면 나는 대범한 모험가가 된다.
▲ 레이스중 귀중한 한 컷 사막에 서면 나는 대범한 모험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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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폴 선수 맹포와 함께
▲ 완주의 기쁨 싱가폴 선수 맹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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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타클라마칸사막 레이스 : http://www.4deserts.com



태그:#사막, #오지, #김경수, #오지레이스, #타클라마칸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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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을 핑계삼아 지구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넘나드는 조금은 독특한 경험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오지레이서라고 부르지만 나는 직장인모험가로 불리는 것이 좋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지난 19년 넘게 사막과 오지에서 인간의 한계와 사선을 넘나들며 겪었던 인생의 희노애락과 삶의 지혜를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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