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포스터

▲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포스터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한때 <스타워즈>는 혁신이었다. 드넓은 은하계를 무대로 펼쳐진 조지 루카스의 상상력은 판타지 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J.R.R 톨킨(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 3부작 등의 저자)이나 김용(무협소설 <사조영웅전> <소오강호> 등의 저자)에 비해도 손색이 없는 것이었다. 독특한 특성을 가진 종족들이 저마다의 삶의 방식으로 다양한 행성에 흩어져 살아간다는 상상, 포스라 불리는 신비로운 기운을 다스려 초월적인 힘을 발휘하는 제다이 전사들, 전 우주를 지배하려는 제국군과 이들에 저항하는 저항군의 흥미진진한 대결, 출생의 비밀과 배신, 복수라는 시공간을 초월한 흥행요소까지를 이 시리즈는 두루 갖추고 있었다. 그러니 시리즈의 첫 편 <스타워즈 에피소드 4-새로운 희망>이 1970년대 후반 미국 전역을 강타한 건 필연인지도 모를 일이다.

1970·1980년대 등장해 전설이 된 4~6편과 십 수 년의 시차를 두고 만들어진 1~3편은 두 세대에 걸친 장대한 드라마를 멋들어지게 매조지었다. 4편 이후 제작에만 전념해온 조지 루카스가 오랫동안 직접 연출한 1~3편은 아쉬운 완성도에도 전설적인 프리퀄로 남았다.

그리고 올 겨울 <스타워즈>의 7번째 시리즈가 개봉했다. 연출은 무려 '쌍제이' J. J. 에이브람스가 맡았다. 오우삼에 의해 요단강을 건널 위기에 처했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 숨결을 불어넣고 <스타워즈>와 쌍벽으로 불리는 <스타트렉>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스크린에 안착시킨 바로 그 감독 말이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는 자타공인 2015년 최대의 대작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민낯이 드러났다. 당대의 팬들을 열광시켰던 혁신적인 기술력도, 상상해본 적 없는 세계관이나 캐릭터도 이번 시리즈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전설을 이어받아 관객들을 새로운 지평으로 이끌어줄 중책을 맡은 선장은 대체 무엇을 고민했던 것일까?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나는 종갓집에 시집간 신세대 며느리처럼, 조지 루카스의 그림자에 갇혀버린 쌍제이의 무력함만을 보았다.

'죽음의 별'보다 수 십 배 커진 우주병기와 더 빨라진 신형 전투기 정도로는 수 십 년의 시차를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규모와 성능이라면 굳이 <스타워즈>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판타지·공상과학 영화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게 아니었던가. 새로운 시리즈가 승부해야 하는 지점은 더 깊은 감동을 위한 드라마와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세계관이어야 했다.

하지만 쌍제이는 부모 없이 자란 아이가 타고난 포스를 깨닫고 정의의 편에 서서 싸운다는 구성부터 위기가 도래(제국군의 신무기가 저항군의 행성을 파멸시킬 시한)하기 전까지 적의 신무기를 부숴야 한다는 설정까지, 과거의 시리즈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는 주인공이 사는 행성을 제외한 다른 행성들을 충분히 비춰주지 않은 나머지 행성들이 파괴되던 순간에서조차 그 고통과 충격을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는 기초적인 실수까지 범하고 말았다.

과거의 시리즈가 보여주었던 다채로운 세계관을 충실해 재현한 것도 아니다. 지난 시리즈에선 제법 비중이 있었던 인간 이외의 종족들은 이번 시리즈에선 술집이나 버려진 별에서 병풍처럼 등장할 뿐이다. 새로운 시리즈가 목적한 것이 과거의 영광에 기대어 기념품이나 더 팔아먹자는 건지, 또 한 편의 영웅전설을 써나가겠다는 것인지, 헷갈리는 순간이었다.

<스타워즈>는 아나킨부터 루크를 거쳐 레이(그녀가 루크의 딸이건 쌍둥이 형제 레이아의 딸이건 간에)에 이르는 3대의 이야기다. 태생적으로 재능을 타고난 이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성장해 운명적인 싸움을 벌여나가는 신화적 설정을 따른다. 서로 혈연인 이들이 평행이론에 가까운 운명을 겪는 과정은 몹시 인상적이다. 제다이에게 발탁돼 전사로 길러지고 저항군의 편에 서서 싸우는 아나킨과 루크, 부모와 떨어져 버려진 별에서 자라던 중 운명적인 만남을 갖고 거대한 싸움에 휘말리는 루크와 레이.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각각의 이야기는 성장과 비극, 화해와 초월이라는 영웅적 대서사극이 갖춰야 할 거의 모든 요소를 갖춘 듯 보인다.

톨킨이 그린 빌보 배긴스와 프로도의 모험서사가 그랬고 김용의 사조삼부곡(<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에서 펼쳐진 곽정과 양과, 장무기의 이야기가 그러했듯, <스타워즈> 역시 3대에 걸친 영웅서사가 되어야 마땅했다. 특히 앞선 세대의 이야기를 갈무리하는 마지막 세대의 이야기야말로 시리즈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걸작이 되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원작자 조지 루카스가 3세대에 걸친 선택받은 영웅의 전설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일 테니까. <스타워즈>의 마지막 시리즈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래서 다행하고 또 다행한 일이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장면 영화가 시도한 몇 안 되는 파격. 영화는 여성 주인공 레이(데이지 리들리 분)와 포스를 쓸 줄 아는 흑인청년 핀(존 보예가 분)을 내세워 극을 이끌어간다.

▲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장면 영화가 시도한 몇 안 되는 파격. 영화는 여성 주인공 레이(데이지 리들리 분)와 포스를 쓸 줄 아는 흑인청년 핀(존 보예가 분)을 내세워 극을 이끌어간다.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와 <빅 이슈>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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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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