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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같은 노래를 품고 사는 사람은 알게 되지…,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본 사람은 알게 되지…,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이 모든 외로움 이겨낸 바로 그 사람~~ " - 안치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덕의 모친에 대해 더 이상 우리는 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덕이는 열심히 노트에 엄마와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덕이가 정직원이 됐다. 덕이의 월급을 내가 관리하면서 무엇에 얼마 만큼 사용되는지 매달 설명해줬으나 이젠 덕이가 본인의 수고로움으로 얻은 것인 만큼 스스로 규모있게 사용하도록 해야겠다 생각했다.

고모 : "덕이가 이제는 정직원이구나~."
: "응."
고모 : "정직원이다 보니 보너스도 입사 때 설명들은 만큼 나올 거야, 덕아~. 지금까지는 내가 관리했지만 이달 부터는 네가 매달 생활비를 비롯해서 필요한 곳에 쓰면서 관리하는 것이 어떠니?"

덕이는 순간 멈칫한다. 덕이는 숫자에 대해 자신감이 더 필요하다. 아직까지는.

고모 : "고모는 덕이가 스스로 관리할 수 있을 때까지는 매달 함께 살펴볼거야."
: "알았어."

이렇게 할머니와 함께 우리 셋은 덕이의 월급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이야기나눴다. 그동안은 정해진 날에 정해진 월급을 받다 보니 특별히 덕이가 신경써야 할 일은 없었다. 더군다나 아직은 월급이 적어도 너무 적었다. 그래도 드디어 정직원으로 첫 보너스를 받는 추석이 다가왔다.

고모 : "덕이는 추석 보너스 받으면 뭘 할 계획이니?"
: "내가 알아서 할게."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꿈에 부픈 표정으로 자신감이 넘친다.

고모 : "하고 싶은 게 있나 보네?"
: "응."

생애 첫 보너스 받은 덕이, 뭘 사왔을까

계획성 있는 지출이 필요했다.
 계획성 있는 지출이 필요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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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대로 기다려봤다. 추석 이틀 전, 퇴근한 덕이의 오른손에 묵직한 박스가, 그리고 왼손에는 비닐봉지 안에 뭔가 무거운 게 들어 있었다.

고모 : "좋은 것 샀나 보다?"
: "응."

덕이의 얼굴에 행복이 묻어나왔다.

고모 : "뭔데?"

덕이는 거실 식탁 위에 물건을 쫙~ 풀어놨다. 나는 '아니, 이것들은?'이라면서 순간 멈칫했다. 미니 노트북에 음악과 게임 시디를 합해서 보너스를 다 썼다.

고모 : "덕이가 미니노트북을 무척이나 갖고 싶었었나 보다."
: "응. 이것으로 인터넷도 할 거야."

덕이는 신났다.

고모 : "첫 보너스니까 덕이가 평소에 갖고 싶었던 걸 잘 샀네."

그러면서도 난 2% 부족함을 느꼈다.

고모 : "덕아~. 무엇보다도 덕이가 기뻐하니까 나도 좋아. 음…. 한편으로 덕아, 이런 말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망설였지만….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홍시 하나라도 사왔으면 더 좋았을걸…."

순간 덕이는 당황한다. 자기만을 위해서 돈을 다 썼음을 그제서야 알아챈 것이다. 너무 기분이 좋다 보니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 "지금 나가서 사올까?"
고모 : "홍시 살 돈 카드에 남았니?"
: "아니."
고모 : '그럼 어떻게 살건데?"
: "고모가 줘."
고모 : "왜?"
: "다음엔 꼭 기억할게."

덕이는 할머니께서 좋아하는 홍시를 사왔다. 다행히 집앞에 과일가게가 있었다. 나는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한 번 덕에게 경제 관리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여겼다. 사실 나는 많이 아프다. 솔직한 심정은 얼마동안 만이라도 누구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벗어나 혼자 조용히 살아보고 싶다.

"아이를 마땅히 가야 할 길에 따라 훈련하여라. 그러면 늙어서도 그 길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 잠언 22:6

덕이 덕분에 행복한 겁니다

우선은 한 달 생활비는 구체적으로 얼마가 필요한지 그리고 그 외에 사고 싶을 수는 있으나 그것이 정말로 꼭 필요한지, 그것이 언제 무엇을 할 때 필요한지,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미니노트북 같은 경우에도 집에 유선 컴퓨터와 덕이 노트북(대학 입학때 받은 것)과 휴대전화가 있으니 그것을 굳이 사야 하는지 따져봐야 했다. 다행히도 덕이의 종교적인 양심에 근거해 폭력적인 게임CD와 야동은 없었으나 한꺼번에 자기가 좋아하는 CD 일곱 장을 산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봤다.

나와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덕이의 이마에 11자가 그려진다. 뭔가 불편해 보인다.

고모 : "덕이 이마에 11자가…. 불편하고 부담되니? 생활이라는 것은 매일매일 밥을 먹기위해서만도 쌀, 전기요금, 가스요금, 수도요금이 필요하고, 거기에 반찬들… 관리비, 전화·통신비 등…."

이렇게 생활에 필요한 전반적인 사항들을 하나씩 덕이 스스로 기록하게 하면서 이야기했다. 다행히도 그중 몇 가지는 아직 사지 않아도 된다. 나는 해마다 찹쌀과 멥쌀은 한가마니(80kg)씩을 벼 추수철에 사 놓는다. 크고 까만 비닐봉지로 씌워놓고 서늘한 방에 놓으면 1년을 둬도 변하지 않는다. 우리집은 1년에 그 정도를 먹는다.

그리고 서리태(콩)는 한 말, 팥은 반 말, 참기름 한 말을 짜고, 들기름 두 말을 짜야 한다. 거기에 마늘·고춧가루 등도 해마다 믿을 만한 아주머니께 부탁해 사 놓는다. 하물며 쪽파도 제철에 사서 송송 썰어놓은 다음 냉동실에 넣고 계란찜·계란말이 등 요리를 할 때 사용하곤 한다.

내년 추수 때까지는 이런 비용은 들어가지 않겠지만, 이런 것들도 생활비에 하나하나 넣어야 한다. 덕이는 메모해가면서 매달 들어가는 비용, 분기별로 들어갈 비용, 1년에 한 번정도 들어갈 비용을 구분해서 기록했다. 거기에 고기를 좋아하는 덕이는 거의 매일 저녁 반찬으로 고기를 먹는다. 때로는 간식이나 야식으로 피자나 치킨도…. 덕이는 장난이 아닌 듯 진지하다.

한편으로 내가 '덕이에게 너무 부담을 줬나'라는 생각이 들 즈음, 덕이가 한마디했다.

: "고모, 그럼 고모는 얼마 벌어?"
고모 : "왜?"
: "고모는 나와 할머니가 함께 사는 생활비 그리고 내 학비, 기숙사비…. 거기에 고모도 공부를 했었잖아."

덕이의 말을 들으며 '인생 참으로 놀라운 것'임을 실감했다 놀랍게도 내가 덕에게 모든 관심을 보여 어떻게 해서든 덕이의 건강과 행복만을 생각하면서 일했을 때는 한동안 주식값이 올라줬고, 그후로는 조그만 아파트를 하나 샀을 때 그 아파트값이 올라줬다. 그리고 상담과 교육, 특강도 전국에서 초청받을 정도로 많았다. 그래서 덕이도 인정할 정도로 덕이가 원하는 것, 하고싶은 것을 충분히 해줄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덕이가 이런 고모가 있는 게 복이다"라고.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이런 덕이 덕분에 내가 용기와 살아야 하는 목적과 주위를 살펴볼 수 있는 심성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그 감사함을 알게 됐으니 내가 복이 많은 것이라는 걸.


태그:#정직원, #임시직, #월급, #보너스,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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