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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스스로 별칭을 '빅풋(BigFoot) 부부'라고 붙였습니다. 실제 두 사람 모두 '큰 발'은 아니지만, 동네 골목부터 세상 곳곳을 걸어 다니며 여행하기를 좋아해 그리 이름을 붙였지요. 내 작은 발자국 하나하나가 모여 새로움을 발견하는 거대한 발자국이 된다고 믿으며 우리 부부는 세상 곳곳을 우리만의 걸음으로 여행합니다. 우리 부부가 함께 만든 여행 영상도 즐겨 보시길 바랍니다. - 기자 말


"꿈이 있는 곳, 조물주는 이곳에서 내 영혼에 음악의 씨를 뿌려놓았다."

기타리스트 안드레스 세고비아는 그라나다를 이렇게 표현했답니다. 아마 그 감동의 중심에는 알람브라 궁전이 있었을 겁니다. 영혼에 선율을 불어넣고 마음에 갖가지 물결을 만드는, 알람브라는 그런 곳입니다.

알람브라는 조그만 산 전체를 궁전으로 만들었습니다. 유럽의 왕궁이 평면적인데다 인공적으로 정원을 만든 것과는 달리 알람브라는 산의 곡선을 그대로 살리고 울창한 나무숲이 궁전 전체를 덮고 있는 특징이 있지요.

알람브라 궁전은 나스리드 왕조가 그라나다를 다스리던 칼리프 시대에 지었습니다. 가톨릭 왕들의 국토회복 운동으로 스페인의 모든 지역을 뺏기고 마지막에 유일하게 남은 이슬람 지역이 그라나다였지요. 그런데 그라나다의 이슬람 왕조는 점점 세력이 약화되어 가는데도 불구하고 지구상에 이상적인 파라다이스를 창조해내려고 했습니다. 알람브라 궁전을 지은 거지요. 석고와 목재, 타일 같은 평범한 재료들이 사용됐지만, 작품은 훌륭함을 넘어 특별함을 뽐냅니다.

알람브라 궁전, 처음부터 이렇게 멋져도 되나

알람브라 궁전 전경 알바이신 지구에서 바라본 알람브라 궁전의 모습. 알람브라는 조그만 산 전체를 궁전으로 만들었다.
▲ 알람브라 궁전 전경 알바이신 지구에서 바라본 알람브라 궁전의 모습. 알람브라는 조그만 산 전체를 궁전으로 만들었다.
ⓒ 박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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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 아름다움과 특별함이 잘 살아있어 알람브라 궁전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입장권은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 있고, 오전 입장권을 가진 사람은 오후 2시 이전에 모든 관람을 마치고 나와야 하기 때문에 좀 계획적인 관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부부는 아쉽게도 그렇게 계획적이지가 못했답니다.

알람브라 궁전은 크게 나스르 궁전과 카를로스 5세 궁전, 알카사바, 헤네랄리페의 4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슬람 예술의 정수로 불리며 알람브라 관광의 백미로 꼽히는 나스르 궁전은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이 정해져 있고, 입장권을 끊을 때 내가 입장할 시간을 정해줍니다. 그러니까 나스르 궁전의 입장 시간을 보고 나머지 관람을 계획해야 하는 거지요. 그런데 우린 그 사실을 망각했던 겁니다.

우리 부부는 본격적인 알람브라 관광에 앞서 옛 성채인 알카사바 앞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부터 마셨습니다. 알람브라를 제대로 알려면 알람브라의 공기와 기운부터 흠뻑 느껴봐야 한다며 유유자적했지요.

그런 뒤 느긋한 걸음으로 알람브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9세기의 성채 알카사바(Alcazaba)에 들어가서 그 옛날 군인들의 숙소와 목욕탕의 흔적 등 유적들을 두루 살펴보려는 찰나~ 우리에게 주어진 나스르 궁전의 입장 시간을 보게 됐습니다. 입장 시간이 채 5분도 남지 않은 시간! 벨라 탑에 올라 내려다보는 전망이 최고라는 여행서의 유혹도 뒤로하고 달음박질을 쳐야만 했어요.

알람브라에서 가장 오래된 알카사바(성채) 성채 내부에 군인들의 숙소와 창고, 터널, 목욕탕 등의 흔적이 남아있다.
▲ 알람브라에서 가장 오래된 알카사바(성채) 성채 내부에 군인들의 숙소와 창고, 터널, 목욕탕 등의 흔적이 남아있다.
ⓒ 박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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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쌔게 달려간 보람이 있었습니다. 살짝 늦긴 했지만, 우리 부부는 같은 시간에 나스르 궁전에 입장하는 다른 관광객들 꽁무니에 서서 무사히 입장할 수 있었으니까요.

나스르 궁전의 관람은 메수아르의 방(Sala del Mexuar)에서 시작합니다. 이곳은 1365년에 완성된 회의실로 그라나다의 왕이 신하들의 탄원을 경청했으며 각료회의를 소집하던 곳입니다. 천장을 장식한 아라비아 문양의 타일과 벽면을 장식한 아랍 문양의 석회 세공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이제 관람 시작인데, 처음부터 이렇게 멋져도 되는 것인지.

메수아르의 방을 나서면 아라야네스 중정(Patio de los Arrayanes)으로 이어집니다. 남북으로 35m, 동서로 7m에 이르는 직사각형 연못 양 옆으로 천국의 꽃이라는 '아라야네스'가 심어져 있어 붙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내가 본 여행서에서는 꼭 연못 남쪽 끝에 서서 전체를 보라고 돼 있었습니다. 우아한 석주와 섬세한 세공으로 장식된 아치, 그 위의 푸른 안달루시아의 하늘까지, 알람브라의 그 모든 것이 연못의 잔잔한 수면 위에 드리워져 있다고요. 네, 서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아리야네스의 중정 은매화 울타리와 우아한 아치가 연못에 반사된 모습이 아름답다.
▲ 아리야네스의 중정 은매화 울타리와 우아한 아치가 연못에 반사된 모습이 아름답다.
ⓒ 박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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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탈 정원 꽃과 나무로 둘러싸인 연못에 귀부인의 탑이 아름답게 반사됐다.
▲ 파르탈 정원 꽃과 나무로 둘러싸인 연못에 귀부인의 탑이 아름답게 반사됐다.
ⓒ 박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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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브라는 공간과 빛, 물, 그리고 장식 등을 신비하게 이용했다는 말이 딱 맞습니다. 뭐 하나를 콕 집어 말할 순 없지만 신기하게도 보는 이들의 모든 감각을 요리조리 자극하는 신비로운 건축물들입니다.

아라야네스 중정에서 바르카의 방을 지나 코마레스 탑으로 나가면, 왕궁에서 가장 넓은 대사의 방(Salon de Embajadores)입니다. 왕이 여러 나라에서 온 대사들을 만나는 공식 알현실입니다. 천장의 상감과 벽면의 석회 세공, 벽면의 타일 장식까지 아라베스크 문양의 일대 파노라마를 볼 수 있다는 방입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가 갔을 때는 방 전체가 복원 공사중이라 아쉽게도 그 파노라마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공사가 여기서 끝이 아니었네요. 알람브라 관광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사자의 중정(Patio de los Leones)마저 대대적인 공사중이었어요. 지금은 공사를 모두 끝내고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다니,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 분들은 너무 걱정 마시고요.

천장에서 눈을 뗄 수 없는 '두 자매의 방'

사자의 중정 알람브라 관람의 백미로 꼽히며 현재는 공사가 끝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 사자의 중정 알람브라 관람의 백미로 꼽히며 현재는 공사가 끝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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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때문에 조금 산만하긴 했지만 124개의 가느다란 대리석 기둥이 받치고 있는 아치들이 중정을 에워싸고 있어 이곳에 서면 정말 이슬람 왕궁의 정교함 속에 들어와 있음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124개나 되는 기둥을 서로 연결해주는 아치 위로는 빈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아랍의 문양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는데요, 그 때문인지 약간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듭니다.

중정의 중앙에는 이 정원의 이름이 '사자의 중정'이 된 이유, 12마리의 작은 대리석 사자 형상들이 분수를 받치고 있습니다. 공사중만 아니었다면 분수에서 물이 솟아오르고 사자들의 입에서도 물줄기가 타원형을 그리며 뿜어져 나왔겠지요.

알람브라를 구경하다 보면 이렇게 이름난 중정의 연못이나 분수가 아니어도 곳곳에서 작은 분수와 정원 곳곳에서 흐르는 작은 샘물을 볼 수가 있습니다. 무어인들은 물에 대한 애착이 각별했던 민족이다 보니, 궁정에서는 물론 가정집에서도 샘이나 분수를 어김없이 설치했다고 합니다. 또 궁전의 여러 방을 덥히던 난방용 물 또한 분수로 흘러나와 건물을 돌게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예술에 기술까지 더한 무어인들의 역량에 새삼 감탄하게 됩니다.

두 자매의 방 천장을 뒤덮은 기이한 종유석 모양의 모카라베 장식이 아름답다.
▲ 두 자매의 방 천장을 뒤덮은 기이한 종유석 모양의 모카라베 장식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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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자매의 방(Sala de las Hermanas)에 들어서니 천장에서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저런 걸 모카라베(Mocarabe) 양식이라고 한다지요. 종유석 모양을 본뜬 복잡한 양식이라고 하는데, 자세히 보면 작은 나선형 조각들이 셀 수 없이 연결돼 있습니다. 남편이 캠코더로 당겨 찍은 영상을 보니, 이 작은 나선형 조각 곳곳에 왕실의 문장이 새겨져 있더라고요. 도대체 그 작은 하나들을 모아 어쩜 저렇게 넘실대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그런데 뒷목이 아파오도록 천장을 올려다 보다 문득 깨달았네요. 이 방의 화룡점정은 '햇살'이었다는 걸요. 모카라베 장식 아래 16개의 창으로 비춰드는 햇살이 이 방의 구석구석 작은 장식 하나도 놓치지 말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습니다. 물론 이 햇살까지도 예술가의 정교한 계산 속에 포함돼 있었겠만지요.

나스르 궁전의 한 풍경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이슬람 문양이 궁전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 나스르 궁전의 한 풍경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이슬람 문양이 궁전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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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슬람 문화에서는 동물이나 사람의 형상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것이 우상 숭배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슬람의 문양은 기하학적 무늬의 무한 반복이라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알람브라 궁전처럼 그 복잡하고 현란한 기하학적 무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한꺼번에 눈에 들어올 때는 그 아름다움을 세세히 보기보단 한눈에 슥 훑고 지나가기 일쑤이지요.

우리 부부 역시 나스르 궁전 초입부터 그렇게 건성으로 삼강 세공, 석회세공, 타일 장식으로 달리 꾸며진 숱한 이슬람 문양들을 스쳐 지나왔습니다. 하지만 두 자매의 방에 비친 그 햇살 덕분에 이후의 발걸음이 조금 느려졌습니다.

여유있게 걸으며 자세히 보고 그 느낌을 빨리 뺏기기 싫어 잠시 쉬었다 갑니다. 그리고 함께 앉아 같은 느낌으로 같은 공기를 마시는 이들과 가벼운 미소로 인사를 나누지요.

 스페인 관광객들이 카를로스 5세 궁전 벽에 등을 기대고 볕을 쬐며 쉬고 있다.
 스페인 관광객들이 카를로스 5세 궁전 벽에 등을 기대고 볕을 쬐며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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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5세 궁전 정사각형의 견고한 건물에 원형 중정을 배치하고, 중정을 둘러싼 2층 구조의 회랑을 만들었다.
▲ 카를로스 5세 궁전 정사각형의 견고한 건물에 원형 중정을 배치하고, 중정을 둘러싼 2층 구조의 회랑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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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브라 궁전을 걸으며 주위와 어울리지 않고 생뚱맞아 보인다는 건물이 있으면 그게 바로 카를로스 5세 궁전(Palacio de Carlos V)입니다.

이곳은 이슬람의 마지막 유럽 영토였던 그라나다를 빼앗은(가톨릭 입장에선 되찾은) 이사벨 여왕의 외손자인 카를로스 5세가 이슬람 건축에 대항해 세운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입니다. 딱딱한 정방형의 바깥 모습과 달리 원형의 중정을 에워싼 2층 기둥이 아름다운 내부 모습이 색다르게 다가오는데, 2층에는 주립 미술관이 있고 중정에서는 매년 국제 음악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카를로스 5세 궁전은 스페인 르네상스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며 스페인 최고의 왕실 건축물 중 하나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부부가 느끼기엔 훌륭한 건축물이 맞긴 하겠지만 자리 선택을 잘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생뚱맞다는 표현을 썼고요.

그라나다의 마지막 이슬람 왕이었던 보아브딜은 영토를 내주면서 알람브라 만큼은 파괴하지 말아달라는 조건을 붙였답니다. 이사벨 여왕도 종교의 다름과 상관없이 알람브라를 너무나 사랑했다고 하지요. 그런데 산 전체를 이슬람의 문화와 예술로 조화롭게 가꿔놓은 한 가운데 그에 대항한 거대한 기독교 건물이라니. 두 왕들에게 이 건물 건축에 대한 찬반을 물었다면, 종교와 여러 이해 관계를 떠나서 "난 반대일세"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왕의 여름 별궁 헤네랄리페의 아세키아 정원 정원에 분수가 솟아오르고 직원이 꽃을 가꾸고 있다.
▲ 왕의 여름 별궁 헤네랄리페의 아세키아 정원 정원에 분수가 솟아오르고 직원이 꽃을 가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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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브라 궁전을 벗어나 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그라나다 왕의 여름궁전인 헤네랄리페(Generalife)가 보입니다. 왕족들이 궁전 내의 복잡한 일에서 벗어나 하늘과 좀더 가까이, 자연 속에서 한가로움을 즐기기 위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온종일 걸으며 궁전을 관람하는 것도 힘겨운 일이었던지, 그 힘겨움을 벗어나 나무와 꽃과 물과 푸른 하늘 속으로 들어오니 다리가 탁 풀리고 마음을 툭 내려놓게 됩니다. '알람브라 궁전'에서의 지난 걸음들이 벌써 아름다운 '추억'이 된 것만 같습니다.

프란시스코 타레가(Francisco Tarrega)가 작곡한 그 유명한 트레몰로 기타 연주곡인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 절로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그 애절한 기타 선율이 생각나서일까요. 알람브라를 도는 내내 감탄을 연발하며 행복한 걸음을 걸어왔는데, 왜 순간 가슴 한구석이 아려오는지 모르겠습니다. 헤네랄리페의 물줄기가 경쾌하게 솟아오르고 겨울임에도 꽃들이 생글 웃고 있는데, 왜 마음이 시린 것만 같은지 모르겠습니다.

알람브라 궁전 곳곳의 생생한 아름다움이 풀버전 동영상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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