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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 은평구에서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른 헌책방에서 직원으로 일하기도 했지만 2007년부터는 제 이름으로 사업자신고를 냈습니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 나가다보니 가게 나이는 이제 햇수로 열 살이 됐습니다.

헌책방에서 일하기 전에는 IT회사를 다녔습니다. 대학에서도 컴퓨터 관련 학과를 공부했습니다. 주체적이지 않았던 성격 탓인지 컴퓨터 학과를 졸업하고 IT회사에 취업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졌고 거기서 오래 일했습니다. 당시는 1990년대였고 벤처열풍이 한창이었기에 IT회사에서 일하는 건 그렇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과의 만남이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도 계속 그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 사람의 존재를 알았을 때, 안타깝게도 그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반 일리치(Ivan Illich)라는 학자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던 저는 대학에 다닐 때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헌책방에 자주 다녔습니다. 초등학생이던 저에게 헌책방이라는 걸 알게 해 준 사람은 한동네 살던 대학생 형들이었습니다. 형들은 "책을 비싸게 사면 술 먹을 돈이 모자란다"는 우스개를 하면서 헌책방에 몰려다녔고 책은 읽고 싶지만 용돈이 너무 적었던 저는 책을 싸게 살 수 있는 곳이 있다는 말에 솔깃해서 형들을 따라다녔습니다.

한번 헌책방의 매력에 빠지니까 헤어 나오기 힘들었습니다. 헌책방의 좁은 서가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이상한 기운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회사에서의 일은 하루하루가 비슷하게 흘러갔기 때문에 지루했습니다. 뭔가 자극이 필요했는데 저에게는 매번 새로운 책을 발견하게 만드는 헌책방이야말로 최고의 놀이동산이었습니다. 퇴근하면 거의 매일 헌책방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저축하고, 외식하고, 쇼핑하고... '평범함 생활' 중 맞은 뒤통수

이반 일리치의 책들 왼쪽에서부터 <그림자 노동>(사월의책, 2015년), <그림자 노동>(분도출판사, 1988년),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느린걸음, 2013년)
▲ 이반 일리치의 책들 왼쪽에서부터 <그림자 노동>(사월의책, 2015년), <그림자 노동>(분도출판사, 1988년),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느린걸음, 2013년)
ⓒ 윤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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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운명의 해인 2002년입니다. 월드컵 열기가 한창이던 그때, 저에게는 축구보다 더 중요한 사건과 마주했습니다. 그해 6월 종로서적이 영업을 완전히 종료한 것입니다. 100년이라는 역사를 가진 대형서점이 한순간 문을 닫는 것을 보면서 많이 슬펐습니다. 가슴에 구멍이 난 것처럼 마음이 쓸쓸했던 그 무렵 시내 헌책방에 갔다가 이반 일리치의 책을 만났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깊은 생각이란 게 별로 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매일 똑같이 일하고 나면 한 달에 한 번씩 통장에 숫자가 늘어나는 게 노동이었고 그걸로 맛있는 걸 사먹거나 갖고 싶던 물건을 구입하는 게 행복이었습니다. 그런 생활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사는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100년 된 종로서적이 자고 일어나니 사라졌고 일리치는 사람들에게 미래가 없다고 말합니다.

"미래 따위는 상관없다. 미래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먹이로 삼는 우상인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미래가 없다."(이반 일리치, "더글라스 러미스와의 대화 中에서", <그림자 노동>, 분도출판사, 1988년, 221쪽)

일리치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고 비로소 저는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행복, 아니, '잘 산다는 것'은 제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확실히 다른 의미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공동체에 나를 포함해 구성원이 다섯 명이고 누릴 수 있는 것의 총합이 100이라고 했을 때, 나 혼자 80을 가지고 다른 네 명이 5씩 나눠가진다면 과연 나는 행복한 위치에 있는 것일까요?

이렇게 산다면 다섯 명 모두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똑같은 조건에서 다 함께 20씩 나눠가진다면 어떨까요? 나의 몫은 80이었을 때보다 한참 적은 20이 되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코 나쁘지 않습니다. 80에서 20으로 떨어진 걸 수치만으로 보자면 당연히 절망적이겠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이 공동체 전체를 본다면 이제 더 이상 누구 때문에 좌절하거나 비교하는 삶을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80을 갖고 있던 나 역시 지금은 20을 갖게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훨씬 풍성한 만족감을 느끼며 살 것입니다.

이반 일리치가 계속 주장하는 것이 바로 이런 삶입니다. 하지만 당시로썬 실행 불가능한 급진적인 의견이라며 매도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일리치의 모든 책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수송 수단보다 발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기, 공급주택에 대한 소유권을 차지하기보다 자신이 만들어가는 집에서 살아가기, 발코니에 토마토 심기,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없는 술집에서 사람들과 만나기, 각종 치료 요법 없이 고통을 겪어내기, 의료의 감시 하에 이루어지는 살해보다 '죽는다'는 자동사로 표현되는 행동을 택하기 등의 재발견을 일부러 축복과 은총이라고 말합니다."(이반 일리치,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느린걸음, 2013년, 25쪽)

이 말은 1988년에 했던 강연에서 나온 것이지만 일리치의 생각은 더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소유와 자본, 그리고 전문가그룹의 관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일리치의 책을 찾아 읽으면서 처음엔 반성이, 그리고 곧 어떤 희망적인 생각이 움트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히 일치시키지는 못하더라도 할 수 있는 만큼 일리치의 이론을 따라서 살아보아도 될 것 같았습니다. 나 혼자가 아닌 여럿이 다 함께 만족한 삶을 사는 방법이 책 속에 있었습니다.

회사를 관두고 일리치를 따랐습니다

종로서적 사건과 일리치와의 만남이 있고 나서 얼마 후 회사를 그만두었고 책에 관련된 일을 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면서 몇 년 동안 여러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배운 것도 많았습니다. 이윽고 2007년에는 사업자등록을 내고 헌책방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우선 어렵지 않은 것부터 실천했습니다. "첫째, 헌책방은 시내가 아닌 동네에 가게를 둔다. 둘째, 내가 모르는 책은 팔지 않는다. 알아도 다른 사람에게 권할 수 없는 책은 팔지 않는다. 셋째, 온라인 판매는 하지 않는다." 이것이 맨 처음 세운 규칙입니다. 매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오가며 책처럼 생긴 물건을 사고팔아 돈을 버는 가게가 아니라 서로에게 신뢰를 주는 공간, 책을 팔되 그 안에 있는 의미도 함께 나누는 공간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다음으로는 '에너지'와 '노동'에 관한 부분입니다. 헌책방을 운영하면서 처음에는 일산에 집이 있었지만 몇 년 후 일리치의 조언대로 일터가 있는 동네인 은평구로 이사 왔습니다. 날씨가 좋을 때면 걸어서 출퇴근이 가능하고 보통은 자전거를 이용해서 오갑니다.

이건 정말이지 획기적인 삶의 풍요로움을 가져다주었습니다. 2시간씩 걸려서 회사와 집을 오갈 때와는 모든 면에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일터에 가기위해 가공된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고, 자동차처럼 빠른 이동수단도 불필요해졌습니다. 게다가 삶터와 일터가 한 동네이다 보니 소비도 주로 동네에서 하게 됐습니다. 동네에 있는 생활협동조합에 가입했고 얼마 전엔 의료생협의 조합원이 되었습니다.

노동의 리듬도 일하는 사람, 곧 저의 리듬에 맞추어서 새로 만들어갔습니다. 처음엔 여느 가게들과 같이 아침에 문을 열어서 밤늦게까지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문 여는 시간을 오후 3시로 바꿨습니다. 대신 퇴근하고 헌책방에 들르는 동네손님을 고려해서 밤 11시까지로 운영시간을 조정했습니다. 하루 8시간 노동입니다. 아침시간에 일하지 않는다는 건 삶에 축복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회사생활을 할 때보다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졌습니다. 90kg에 가깝던 몸무게가 정상 수준인 60kg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림자 노동의 예로는 여자들이 집에서 하는 대부분의 가사 노동, 장보기, 학생들의 벼락치기 시험공부, 직장 통근 등이 있다. 이밖에도 어쩔 수 없는 소비로 인한 스트레스, 의사의 지겨운 지시를 고분고분 따르기, 관에 대한 순종, 강요된 일을 하기 위한 준비, 그리고 '가정생활'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수많은 활동들이 포함된다."(이반 일리치, <그림자 노동>, 사월의책, 2015년, 176쪽)

지금까지 해오던 모든 노동, 그리고 일리치가 말한 "그림자 노동"까지 포함한 대부분의 일상생활을 다시금 진지한 눈으로 돌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처음 책을 읽을 땐 이게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몸으로 실천하며 비로소 조금씩 알게 됩니다. 몸과 마음의 건강함, 풍요로움, 그리고 생활의 만족은 많은 돈이나 멋진 집, 최신형 자가용 보다는 사실 노동과 관계가 깊은 것이었습니다.

'주4일 근무제' 제가 해보려고 합니다

동네 헌책방의 주사파 선언 이상한나라의헌책방 SNS에 올린 공지 사진
▲ 동네 헌책방의 주사파 선언 이상한나라의헌책방 SNS에 올린 공지 사진
ⓒ 윤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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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좀 더 어려운 것에 도전했습니다. 공식적으로 가게에 나와 일하는 시간을 대폭 줄였습니다. 2016년 1월부터는 매주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 이렇게 3일을 휴식하고 나머지 4일만 일합니다. 헌책방 SNS에 그런 내용을 공지했더니 어떤 분이 "주사파!"라는 재미있는 댓글을 남겼습니다. 글을 보고 처음엔 깜짝 놀랐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저는 올해부터 일주일에 4일만 일하는 "주사파(週四派)"입니다. 자신이 일하는 직장에서도 주4일제를 하면 좋겠다는 댓글부터 응원한다는 말까지 많은 분들이 헌책방의 "주사파 선언"에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물론 회사생활을 할 때 망가진 저의 건강이 완전히 정상궤도에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린 부분도 있습니다만, 가장 큰 요인은 역시 이반 일리치입니다. 일주일에 4일 일하고 3일은 나와 내 주변을 돌보는 건 조만간 세계적인 추세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발전과 소유라는 환상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앞으로 저에게 매주 주어진 3일은 단순히 일을 안 하며 놀고먹는 3일이 아니라 더 큰 삶의 혁명이 일어나는 시간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처음엔 한 두 사람이 시작한 일이겠지만 여럿이 오가면 길이 된다는 루쉰의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마지막으로 조금 전 인용한 일리치의 글을 다시 봅니다. 사람들에게 미래가 없다면 또 다른 무엇이 있을까요?

"미래 따위는 상관없다. 미래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먹이로 삼는 우상인 것이다. 물론 제도에는 미래가 있다. 과학은 미래를 갖고 있다. 어떤 정부도 미래계획이 있으리라.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미래가 없다. 사람들에게 있는 것은 희망뿐이다."(이반 일리치, <그림자 노동>, 분도출판사, 1988년, 221쪽)


그림자 노동

이반 일리치 지음, 노승영 옮김, 사월의책(2015)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 현대의 상식과 진보에 대한 급진적 도전

이반 일리치 지음, 권루시안 옮김, 느린걸음(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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