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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당국이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해 '8.25 합의' 이후 5개월간 중단했던 대북확성기 방송을 8일 정오에 전면재개한 가운데 경기 중부전선에 설치된 대북확성기의 모습. 이번 대북확성기 방송은 남한의 발전상과 북한의 실상, 김정은 체제에 대한 비판 메시지를 담았으며, 최근 화제가 된 가수 이애란의 '백세인생'도 포함되었다. 최전방 부대 11곳에 설치 된 확성기는 출력을 최대로 높일 시 야간에 약 24km, 주간에는 10여㎞ 떨어진 곳에서도 방송 내용을 정확하게 들을 수 있다.
▲ 이애란 노래 '백세시대' 포함 대북확성기 방송 재개 군 당국이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해 '8.25 합의' 이후 5개월간 중단했던 대북확성기 방송을 8일 정오에 전면재개한 가운데 경기 중부전선에 설치된 대북확성기의 모습. 이번 대북확성기 방송은 남한의 발전상과 북한의 실상, 김정은 체제에 대한 비판 메시지를 담았으며, 최근 화제가 된 가수 이애란의 '백세인생'도 포함되었다. 최전방 부대 11곳에 설치 된 확성기는 출력을 최대로 높일 시 야간에 약 24km, 주간에는 10여㎞ 떨어진 곳에서도 방송 내용을 정확하게 들을 수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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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정부의 대북정책은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북한이나 남북관계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유혹을 이겨내느냐가 대북정책의 관건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는 걸 보고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나는 그 예감을 당시 한 간담회에서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도 글러버린 것 같습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이 계속 될 것 같습니다."

'Wag the dog', 즉 개의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것은 주객전도(主客顚倒)를 뜻한다. 이 글에서는 '국민의 안전과 복지를 위해 존재해야 할 정치가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민의 안전과 복지에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를 의미한다. 특히 국민 안전과 복지에 직결된 안보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태도를 뜻한다.

그 백미(?)는 2012년 대선을 강타한 'NLL 파동'에 있었다.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지낸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은 대선을 불과 두 달 앞두고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일부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노무현이 NLL를 포기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이 있었다. 정 의원이 정상회담 대화록을 접한 시점은 2009년이었는데, 3년 동안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 그러다가 대선을 코앞에 두고 NLL 파동을 일으켰다.

이와 관련해 정 의원은 이렇게 해명했다.

"그때(2009년)는 북한에서 이 문제(NLL)를 건드리지 않았다. 북한이 지금까지(2012년) 입을 다물고 있었다면 나도 안 꺼냈다."

하지만 이건 거짓말이다. 정문헌이 통일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09~2010년은 북한이 NLL을 가장 크게 건드렸던 시기였다. 반면 2012년은 북한이 거의 입을 다물고 있던 때였다. NLL 파동은 '대선용'이었던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국방부, 국정원, 보훈처 등 국가안보기관들이 총동원돼 선거에 개입했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대북 확성기 방송인가?

북한의 수소탄시험에 대응하여 대북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8일 오전 경기도 한 지역에 설치 된 자주포가 북쪽을 향해 전진 배치 되어있다. 이 자주포는 2015년 8월 21일 북한의 포격 도발 발생 당시 동일하게 전진 배치 되었다.
 북한의 수소탄시험에 대응하여 대북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8일 오전 경기도 한 지역에 설치 된 자주포가 북쪽을 향해 전진 배치 되어있다. 이 자주포는 2015년 8월 21일 북한의 포격 도발 발생 당시 동일하게 전진 배치 되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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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무모하고도 반평화적인 '수소폭탄' 실험 발표가 있었던 1월 6일,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권에서는 모든 정쟁을 멈추고 국민의 안위를 위해 다 같이 힘을 모아주시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노동악법 밀어붙이기와 굴욕적인 위안부 협상 결과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을 무마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급기야 청와대는 대북 확성기를 다시 틀겠다고 발표했다. 북한의 핵실험이 "8.25 남북합의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라는 것이 그 근거이다. 8.25 합의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은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이라는 조건을 달았는데, 북핵 실험을 '비정상적인 사태'로 규정한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냄새가 풀풀 풍긴다. 정부 여당이 판을 키우겠다는 심사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태도이기 때문이다. 법이나 합의에 대한 해석은 엄격하게 하는 게 기본이다. 모호하고 추상적이기 쉬운 국가간, 혹은 정부간의 합의에는 그 맥락이 존재한다.

작년 8월에 남측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한 데에는 지뢰사건이 있었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한의 무력 충돌 위험도 있었다. 8.25 합의는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고, 이에 따라 '비정상적인 사태'는 북한의 무력 도발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핵실험이 이에 해당하는지는 합의의 영역이 아니라 해석의 영역이다. 국방부가 8.25 합의 직후 북한의 핵실험이나 장거리 로켓 발사가 '비정상적인 사태'에 해당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북핵 실험 하루 만에 이를 '비정상적인 사태'로 해석하고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기로 했다.

이러한 불필요하고도 성급한 결정은 그 배경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안보 위기를 고조해 대일 굴욕 외교에 대한 비판 여론을 덮고 총선도 안보 프레임으로 압승을 도모하겠다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거 말고는 무모하고도 위험천만한, 그것도 서둘러서 확성기를 틀기로 한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

지하의 핵폭풍과 확성기의 후폭풍이 만나면

북한의 수소탄 실험을 조선중앙TV가 보도한 6일 오후 서울역 내에서 한 군장병이 관련 뉴스가 나오는 앞을 지나고 있다.
 북한의 수소탄 실험을 조선중앙TV가 보도한 6일 오후 서울역 내에서 한 군장병이 관련 뉴스가 나오는 앞을 지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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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실험과 남한의 확성기 방송으로 한반도는 그야말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짙은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북한이 또다시 대북 확성기 조준 타격을 위협하고 준전시상태와 최후통첩을 운운하면, 그리고 남한이 몇 배로 보복하겠다는 방침이 충돌하면, 남북한은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 1차적인 피해자는 전방 군인들과 접경 지역 주민들이 될 수밖에 없다. 나라를 믿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대에 간 젊은이들은 최고통수권자의 정치적 욕심으로 인해 하지 않아도 되는 고생을 하게 되었다. '겨울 같지 않은 겨울'로 지역 경제에 직격탄을 맞아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하던 전방 지역 주민들은 또다시 죽고 사는 문제를 걱정해야 할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위기의 끝이 안 보인다는 데에 있다. 정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의 근거로 북핵 실험을 들었다. 이에 따라 북한이 이에 대해 유감을 표하거나 재발 방지(핵실험 중단 약속)를 하지 않는 한, 스피커 스위치를 내리는 게 어려워졌다.

하지만 북한이 남한에 이런 약속을 할 리는 만무하다. 작년 8월 위기와 달리 제3자, 즉 미국과 중국의 중재를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사안 자체가 남북한의 무력 충돌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도 당사자인 북핵 실험에 대한 남한의 대응 조치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추가적인 대북 제재를 예고한 유엔 안보리의 결의는 1월 말이나 2월 초에 나올 전망이다. 북한이 이를 구실로 무슨 악수를 두고 나올지 모른다. 또한 2월 말이나 3월 초부터는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이 시작된다.

특히 올해에는 북핵 실험에 대응해 핵전폭기와 핵잠수함 등 미국의 전략 무기 투입이 거론되고 있다. 북한이 그냥 지나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힘들다. 한마디로 안보 위기의 장기화가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북풍은 안 통한다'는 확고한 의지 보여줘야

안타깝게도 분단된 한반도 주민들은 양측 지도자의 비정상적인 행태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철천지 원수처럼 보이는 두 정권이야말로 전형적인 적대적 공생 관계에 있다. 급기야는 한반도를 안보 절벽, 전쟁위기로 몰고 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북한과 다른 점이 있다. 우리에겐 국민의 안위와 민주적 가치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략적 이익에 눈이 먼 집권 세력을 심판할 수 있는 수단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선거이다. 우리 국민이 '북풍은 안 통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줄 수 있는 지혜와 의지를 보여준다면, 한국 민주주의를 위협해온 북풍과 결별할 수 있다. 어쩌면 올해 총선과 대선은 이를 위한 기회일지 모른다.


태그:#핵실험, #대북 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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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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