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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들이 가장 싫어하는 헌법 조항이 있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119조 2항이다.

이 조항에 나타난 경제민주화를 실천하는 방법 중 하나가 정경유착을 단절시키는 것이다. 19세기 후반 상인인 사극 <객주>의 주인공 천봉삼(장혁 분)도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데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특권 기업인 육의전이 정권과 유착된 현실에 도전장을 내걸고 있다. 또 그는 소규모 보부상의 이익을 보호해야 할 보부상 지도부마저 정권 및 육의전과 유착된 현실에 분개한다. 그래서 그에 대해서도 맞서고 있다. 

천봉삼은 불의에 맞서 경제정의를 추구하지만, 그의 의지는 번번이 꺾인다. 그 주변에는 정경유착이 단절되면 손해를 보는 세력이 있다. 그들은 천봉삼의 행동을 일일이 훼방할 뿐만 아니라, 언제라도 천봉삼을 저 세상에 보내고자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경제민주화의 투사, 경제정의의 투사인 천봉삼의 삶은 그래서 험난하고 고달프다.  

 드라마 <객주>.
 드라마 <객주>.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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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기업인은 주로 제조업이나 서비스업과 관련되어 있지만, 드라마 속 천봉삼 시대의 기업인은 주로 상업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시대까지만 해도, 경제정의는 주로 상인과 관련된 것이었다.

천봉삼은 정경유착으로 돈을 버는 특권 상인들의 보수적 행태에 분노하고 있지만, 사실 상인들은 원래는 진보적인 쪽에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옛날 사회에서 상인은 농민처럼 특정 토지에 묶여 한 군데서만 살지 않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자유롭게 살았다.

그래서 이들은 옛날 동아시아 정부의 백성 통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다. 농업경제시대의 정부는 토지에 매여 있는 백성들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했다. 그래서 상인들처럼 토지에 매이지 않는 사람들은 국가가 마음대로 통제하기 힘들었다. 

또 상인들은 여러 지역을 이동하다 보니, 농민들이 들을 수 없는 다양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많은 정보를 획득하고 이것을 기초로 진보적 의식도 갖출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옛날 국가는 이들을 문제 집단으로 취급할 수밖에 없었다. 상인이 많아지면 백성 통제가 어렵다는 우려를 품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19세기까지만 일반 서민들은 평생을 가도 군(郡) 단위 지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군 단위를 벗어나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주로 관료가 아니면 상인이었다. 그래서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전국적 혹은 세계적 차원의 인식체계를 갖추기 힘들었다. 그런 시절에 상인들 중에는 그런 광범위한 인식체계를 갖추는 이들이 있었다. 그래서 국가 입장에서는 이들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인기 미국 드라마 중에 <크로싱 라인> 시리즈가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속한 수사팀이 주로 유럽을 무대로 범죄수사를 벌이는 내용이다. 여러 나라 사람들로 구성된 이 수사팀은 국가가 아닌 유럽 단위로 움직이다 보니, 일반 경찰과 달리 국가에 대한 소속 의식이 좀 약하다.

서울에서 부산을 오고가는 식으로 런던에서 헤이그로, 헤이그에서 프라하를 다니다 보니 국가를 초월한 정체성을 서서히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국가에 속한 경찰들의 견제 대상이 된다.

옛날 정부의 시각에서 보면, 상인들은 <크로싱 라인>의 수사팀 같은 사람들이었다. 여러 지역의 정보를 입수하고 많은 지역을 이동하다 보니 일반 농민들과 다른 정체성을 갖게 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정부 입장에서는 통제하기 힘든 대상이었다. 이 때문에, 옛날 동아시아 정부는 상인들에게 부정적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상인에 대한 국가의 부정적 시선은 이들에 대한 차별에서 잘 나타난다. 국가는 상인을 차별할 목적으로 이들의 옷차림에까지 개입하고 들었다. 이에 관한 기록이 고대 중국의 역사서에서 곧잘 드러난다. 

사마천이 지은 <사기>에 평준서(平準書)라는 부분이 있다. 경제문제를 다룬 파트다. 이 평준서에서는 "한나라 고조는 상인들이 비단옷을 입거나 수레를 타지 못하게 했다"고 했다. 한나라 고조는 한고조 유방이다. 그가 취한 상인 억제 정책을 소개한 것이다. 상인들이 경제력에 걸맞은 사치를 누리지 못하게 함으로써 이들이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막고자 했던 것이다.

한나라 정부는 세제 정책에서도 상인을 차별했다. 인두세는 소득과 관계없이 각 개인에게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세금이었다. 이런 인두세와 관련해서도 상인들을 차별했다. 한나라 제2대 군주인 혜제 시대를 기록한 <한서> 혜제 본기에서는 일반인에게는 인두세로 120전(錢)을 걷으면서 상인에게는 240전을 걷었다고 했다.

소득과 관계없이 상인에게 중과세한 것은, 가급적 상인이 되지 말고 농사에나 전념하라는 국가의 대국민 메시지였다. 상인들로부터 세금을 거둠으로써 생기는 재정적 이익보다는, 상인이 많아짐으로써 생기는 정치적 불안정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는 판단에서 그런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국가가 상인을 경계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양자 간에는 불편한 관계가 유지되었다. 상인과 국가의 불편한 관계는 농업경제시대 내내 계속 유지됐다. 이것은 중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천봉삼(가운데, 장혁 분)과 동료들.
 천봉삼(가운데, 장혁 분)과 동료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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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관계가 불편했기 때문에 상인과 국가 간에는 정경유착 같은 게 없어야 마땅했다. 그런데도 그런 유착관계가 오래 전부터 형성됐다. 그리고 그로 인한 경제질서의 건전성이 침해를 받았다. 드라마 속 천봉삼은 그런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상류층 상인과 국가 사이에 유착관계가 나타난 것은 상인이 갖는 고유한 특성 때문이었다. 장사를 하려면 여러 지역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한다. 상품 가격이나 사람들의 기호가 지역마다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야, 이 지역에서 물건을 사서 저 지역에 가서 팔 수 있다. 그래서 상인들은 농민과 달리 여러 지역에 대한 정보가 많았다.

지금처럼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여러 지역의 정보를 입수하려면 광대한 지역에 걸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밖에 없다. 상인들은 동료들의 협력체제를 통해 그런 정보를 유통시키고 획득했다. 한국의 경우에는 보부상들이 그런 네트워크를 잘 구축했다.

상인 조직이 보유한 정보와 조직력은 옛날 정부 입장에서는 군침이 돌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옛날 국가는 지금 같은 전국적 규모의 경찰력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전국적 조직력과 정보력을 구축한 상인 집단에게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로 상인과 국가 간의 갈등관계에도 불구하고 상류층 상인과 국가 간에 이른바 정경유착이란 관계가 형성될 수 있었다. 국가는 상인 집단의 정보와 조직력을 빌리고, 상인 집단은 국가로부터 보호와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상인과 국가의 유착을 보여주는 역사 속의 사례는 많다. 19세기 중반에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경복궁을 중건하고 서양과 대결 국면을 펼칠 때, 보부상들은 전국적 조직망을 활용해서 궁궐 공사 및 전쟁에 필요한 물자들을 수송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또 동학농민전쟁과 독립협회 활동으로 조선의 구체제가 위협을 받을 때는 이들이 국가권력과 손잡고 무기를 들고 나섰다. 

이들이 꼭 집권 여당과만 협력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반대편에도 줄을 섰다. 고려 말인 1388년에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이란 쿠데타를 벌일 때도 그랬다. 보부상 집단은 정부군이 아닌 쿠데타군을 위해 보급 조달을 담당했다. 이때 보부상 집단을 이끈 상인이 보부상들의 전설적 인물인 백달원(백토산)이었다.

상인의 정보망과 조직력은 옛날 국가의 백성 통제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었다. 그래서 상인들은 진보적이 되기 쉬웠다. 이 때문에 옛날 정부는 그들을 법적으로 차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상인들을 진보적으로 만들기 쉬웠던 그런 특성이 도리어 그들을 보수적으로 만들고 말았다. 정보와 조직을 탐낸 국가나 정치권력이 상인집단에 손을 내밀면서 정경유착 관계가 형성됐고, 이로 인해 <객주>의 천봉삼이 걱정하는 것처럼 상인집단이 보수적 집단으로 변질되고 상황이 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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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 노비들,왕의 여자,철의 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