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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비밀은 없다'라는 말이 이래서 있는 걸까. 교통사고 후 오빠는 우리가 맡고, 올케는 친정에서 맡기로 한 뒤 이렇게 양쪽에서 치료를 하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오빠의 생사가 불분명한채 더욱 건강이 악화되고 있을 때, 양가에서 '합의이혼서류'를 정리했다. 그 후로 올케 또한 우리집에서 사망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덕에게도 돌아가신 것으로 이야기했다. 그러므로 사진들도 남기지 않고 정리했다.

그런데, 덕이가 22세 때에 시청에서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떼야 할 상황이 있었다. 그로 인하여 생모의 생존을 알게 된 덕이는 많이 방황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현실에 있어서 어쩔 수 없음을 알게 된 후로 잠잠해졌었다. 그런데 회사 신입 후배의 "첫 월급 타면 엄마 밥 사드린다"라는 말을 듣고 다시 흔들리고 있다. 부모의 결혼사진을 책상 앞 액자에 넣어 매일 아침 저녁으로 그 사진을 얼마나 바라보는지…. 가슴이 아프다.

고모 : "사랑하는 덕아~~ 엄마 보고 싶어?"
: "응."
고모 : "어떻게 하면 좋을까?"
: "몰라."

덕이와 나는 그 방법은 알지만 생모의 현재 생활을 보호하고 존중해드리기 위해 참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니 더 이상 서로가 할 말이 없는 게다.

고모 : "덕아, 미안해. 내가 할 말이 없어."
: "알아."
고모 : "나도 지금 너의 심정이 어떤지 조금은 알 것 같아."
: "응."

고모 : "후배 직원은 엄마께 밥 사드린다고 기대감에 행복해 할 것 같은데?"
: "꼭 그렇지는 않아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지금 함께 살지 못한대."
고모 : "저런~ 그랬구나."
: "그래도 엄마를 볼 수는 있으니까~."
고모 : "우리 덕이도 엄마를 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
: "참아야 하는 거 알아."

"덕아"라고 부르며 눈을 잠시 바라보다가 "덕이는 참아야 하는 것을 알고, 참을 때 마음이 아플 것 같은데~ 어떠니?"라고 묻자 고개를 떨군다. 

"엄마랑 뭘 하고, 뭘 먹고 싶은지 써보는 건 어때?"

덕이는 뭘 엄마랑 하고 싶을까. 뭘 엄마랑 먹고 싶을까.
 덕이는 뭘 엄마랑 하고 싶을까. 뭘 엄마랑 먹고 싶을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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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동안 덕에게 교육한 것이 맞나?'라는 흔들림이 왔다. 그동안 나는 덕에게 '무엇이든 할 거면 온 힘을 다해서 하고 안 할 거면 관심을 끊으라'고 권했다. 이런 훈련이 오랫동안 이뤄지고 길들여지다 보니 어느덧 나와 덕이는 뭔가 선택의 유무가 결정되면 그대로 행했다. 끊어야 할 것은 끊고, 할 거면 온 힘을 다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생모에 대한 그리움은 어쩌란 말인가. 끊을 수도 없고, 안 끊을 수도 없으니….

덕이의 아픔이 나는 어느 정도 인지 정확히 모르므로 옆에서 함께 있으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다. 조심스럽다. 내가 바라기는 덕이가 충분히 그리워할 수 있고 그 그리움을 지닌채 하루하루 생활할 수 있는 것도 덕이임을. 스스로 느껴지는 그대로 인정함으로 덕이가 덜 아프기를 기도할 뿐 지금은 내가 어떻게 손써 볼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중 나는 덕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해봤다.

고모 : "덕아~.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덕이가 엄마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엄마와 함께 해보고 싶은 일들을 써보면 어떨까?"
: (생각을 한다.)
고모 : "덕이가 엄마와 밥을 어디서 어떤 메뉴로 할 것인지 그리고 그때 덕이와 엄마는 어떤 복장으로 어디서 만날 것인지, 함께 가보고 싶은 곳에 가려면 어떻게 갈 것인지 그리고 서로 함께 할 시간이 만약에 짧게 1~2시간 정도만 있을 때와 함께 잠까지 잘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무엇을 어디에서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이런 점들을…."

조용히 듣고 있던 덕이는 이런 나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인다. 다음날 나는 퇴근하면서 덕이가 엄마와 하고 싶은 내용들을 기록할 노트를 한 권을 샀다. 덕이가 샤워 중이길래 덕이 책상에 놓으려고 하니까 이미 그곳에는 너무나 예쁜 노트가 있었다. 덕이가 사온 것이었다. 그 노트에 거의 매일 뭔가 기록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궁금해도 덕이가 그 내용을 먼저 말하기 전엔 기다리기로 마음 먹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는 동안 다행히 덕이 표정이 그리움에 슬픈 표정 보다는 점점 밝아진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 "고모~ 엄마는 무슨 음식 좋아했어?"
고모 : "응?"

사실 나는 기억이 없다. 덕이 엄마, 아빠는 결혼 후 분가했고, 그때 나는 외국 유학 중이었다. 그래서 덕이 엄마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고모 : "미안해, 덕아. 사실 나는 잘 몰라."
: "그래?"
고모 : "응…. 근데 아마 한식을 좋아하셨을 거야. 덕이 아빠는 한식을 좋아하셨고, 특히 된장찌개를 제일 좋아하셨어. 불고기도 좋아하셨지. 그래서 덕이도 불고기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 "나는 피자, 치킨도 좋아하는데~."
고모 : "고모 생각에 치킨을 좋아하셨을 것 같기도 한데, 어쩌면 피자도…."
: "과일은 무엇을 좋아하실까? 할머니는 여름엔 참외를, 겨울엔 홍시를 좋아하시니까 엄마도 그럴까?"
고모 : "응. 그러실 것 같아."

그 동안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더군다나 뭔가 궁금한 것에 대한 질문이 거의 없었던 덕이가 이렇게 말을 많이하고, 궁금해하다니…. 엄마가 사무치게 그립긴 그리운가 보다.

그래도 다행이다. 앞일은 아무도 모르지만 덕이의 마음이 슬픔에 짓눌리지 않고 기대감 속에서 엄마와 함께할 계획을 세우니까. 얼굴이 밝다. 마음가짐이 달라지면 삶이 달라지듯, 이렇게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환경이나 유전적 요인이 아닌 혼자서 할 수 있는 자신의 '태도'에 달려있다. 이 또한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우리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뻐하는 마음은 좋은 약이지만, 꺾인 영은 힘이 빠지게 한다." - 잠언 17:22


태그:#엄마, #음식, #과일, #행복,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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